자고나니 검색어 1위, '무명' 개그맨 한상진

FM중독 작성일 05.10.12 23:4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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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좋아해야 하는 건가요? 글에 너무 어두운 면만 보여준 건 아닌지…."

아들이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올린 글로 한나절 만에 포털사이트 '네이버' 인기검색어 1위를 차지한 개그맨 한상진(본명 한상웅·45)씨는 "아직 글을 못 봤다"면서 얼떨떨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13년 개그맨 경력의 한씨는 인터넷에 글이 올라가기 전까지만 해도 알려지지 않은 '무명' 연예인이었다. 갑자기 '유명' 연예인이 된 한씨는 12일 와의 통화에서 "이거 좋아해야 하는 건가요"라며 "글에 너무 어두운 면만 보인 건 아닌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한씨가 인터넷에 뜬 아들의 글 한편으로 얼떨떨해하는 이유는 이렇다. 한씨 아들 한제성(27·네이버 아이디 'j9935077')씨는 아버지 생일(14일)을 맞아 지난 9일 싸이월드 미니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방문 당부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

아들 한씨는 '개그맨 한상진을 아시나요'라는 제목의 이 글에서 "MBC 인기시트콤 에 경찰, 의사, 형사 등 단역으로 출연한 개그맨"으로 부친을 소개한 뒤 "아버지를 알아보시는 분들의 방명록이 담긴 미니홈피를 선물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이어 한씨는 "방문객 100명은 어렵겠지만, 저도 아버지처럼 도전해보려고 한다"면서 "언제 어디서라도 아버지를 보면 '개그맨 한상진'이라고 말해달라"고 당부했다.

인터넷은 사랑을 싣고... 홈페이지에 '고정출연' 요청 이어져

그가 부친에게 이같은 팬들의 '방명록'을 선물하고자 했던 이유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좌절하지 않는 아버지의 도전정신을 존경했기 때문.

아들에 따르면, 부친 한씨는 80년대 '중동 붐'이 일었을 때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근무하다가 32살의 늦은 나이에 개그맨 시험에 응시해 KBS 공채 8기로 데뷔했다.

하지만 오랜 무명생활에다 빚까지 져 미국으로 야반도주했다가 아내와의 사별 등 어려운 일을 겪고 다시 귀국한 뒤 단역 활동과 외부 행사를 뛰며 가족을 부양했다. 1남 1녀를 두고 있는 개그맨 한씨는 이날도 영등포구치소에서 위문공연을 하고 있었다.

결국 아버지에게 팬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아들 제성씨의 소박하고 간절한 소원은 '인터넷'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들 부자의 소식이 알려지자 개그맨 한씨의 미니홈피에는 이 날만 2만명이 넘는 네티즌이 방문했고, 격려 메시지가 쇄도했다.

네티즌들은 "포기하지 않는 모습에 감동했다" "앞으로도 좋은 연기 부탁한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으며 홈페이지에도 "한상진씨를 고정으로 출연하도록 해달라"는 요청이 이어졌다.

아들 제성씨는 와의 통화에서 "이같은 호응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면서 "방문객 100명만 모아 미니홈피를 13일 자정에 아버지께 보여드리려 했는데, 너무 얼떨떨하다"고 말했다.

또 그는 "걱정 반, 감사 반"이라며 "혹시나 아버지를 '띄우려고' 일부러 글을 썼다고 오해할까봐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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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아들 한제성씨가 인터넷에 올린 글 전문이다.

개그맨 한상진을 아시나요?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에 저희 아버지 생신(10월 14일)을 맞이해 조금 색다른 선물을 하고자 이렇게 글을 올려봅니다.

우선 저희 아버지는 젊은 시절 1980년대 우리나라에 사우디 공사 붐이 일었을 때 타지에서 일을 하시며 어린 저희를 먹여 살리셨습니다. 한국에 돌아오신 아버지는 어린시절 끼를 발휘해 개그맨 시험에 도전하셨습니다. 많은 시험에 낙방하셨지만 아버지는 절대 포기 하지 않으시고 KBS 91년 공채 8기로 입사에 성공하셨습니다. 공채 발탁 전부터 지금까지로 친다면 약 20년을 넘게 방송생활을 하셨군요.

공채 발탁 이후로 아버지는 종종 얼굴을 TV에 드러내시며 두각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아버지 몰래 미국에 계신 이모의 사업 보증을 서시는 바람에 저희는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소유하고 있던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소유하고 있던 집을 모두 처분하고도 모두 정리가 안 돼서 저희는 야반도주로 한국을 떠나야 했습니다.

미국으로 간 온 가족은 먹고 살기 막막해졌습니다. 한국에서는 돈을 잘 버시던 아버지도 낯선 타지에선 힘이 무척 드셨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셔서 돈을 벌겠다고 하셨습니다. 정말 싫었지만 어떻게 할 수 없었기에 이별 아닌 이별을 하게 되었지요. 그렇게 한국에 가신 아버지는 공항에 내려서 주머니를 보니 2만 3천원이 있으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아버지는 다시 한국에 무일푼으로 돌아오셨습니다.

그 때 아버지의 친구분의 도움으로 차를 한 대 마련하셨습니다. 그 때 당시에도 중고값이 50만원이 안 되는 차였습니다. 저희는 미국에 있는 동안 학교도 잘 다니고 한국의 걱정을 잊고 사는 동안 아버지는 모든 생황을 차에서 하다시피 하며 저희에게 송금을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는 전화로 당시 최고 인기였던 봉숭아 학당의 배역을 맡으셨다고 기뻐 전화가 왔습니다. 정말 기뻤습니다.

그러나 출연횟수가 많아지고 늦깎이 개그맨으로 신문에도 기사가 날 무렵 그건 바로 빚을 다 못 받은 사람들의 탄원서였습니다. 아버지는 방송출연으로 잘 먹고 잘 사는데, 돈을 안 갚는다고 이런 형식으로 말입니다. 정말 날벼락같이 방송국에서 쫓겨나시게 된 거지요. 아버지는 출연료를 벌어 저희에게 송금하고 겨우 단칸방을 마련하신건데, 어쨌든 그후로 방송국엔 발을 붙이기가 힘들게 되었고, 상황은 더욱 나쁘게 흘러만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어머니가 식당일을 다녀오시던 도중 트럭과의 사고로 돌아가시게 된 것입니다. 정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저희는 한국으로 오게 됐습니다. 단칸방에서 아버지와 저 그리고 여동생 셋이 겨우 살림을 꾸려 나가게 됐습니다. 아버지는 비록 방송 출연은 못 하셨지만 워낙에 동료분들과 친분이 두터워 행사를 많이 다니시고, 우리나라 최고의 개그맨들만이 설 수 있다는 코미디클럽에도 출연하시게 됐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아버지의 고생으로 작은 아파트로 이사를 하게 됐고, 그 때의 빚은 혼자 힘으로 다 갚으셨습니다. 제가 대충 듣기론 약 2억 정도 된다고 합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대단한 아버지입니다. 그 후로도 아버지는 늘 재기를 노리셨습니다. 비록 TV엔 못 나가도 해외 공연도 많이 다니시고 또 교도소나 사회 여러 복지시설에 자주 공연을 다니셔 많은 감사패와 표창을 받아오셨습니다.

그렇게 해외 공연을 많이 다니시면서 아버지는 늘 할리우드 이야기를 하십니다. 그곳은 정말 대단하다고 그곳 핸드프린팅을 보시면 꼭 대스타들이 옆에 있는 것만 같다고... 그렇게 아버지는 연기에 대한 꿈을 끝까지 포기 안하셨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아버지에게 하늘이 주신 마지막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바로 인기리에 방영중인 의 출연입니다. 비록 고정적인 배역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버지께는 엄청난 행운이자 기회입니다. 은 이제 약 5회 정도의 방송이 나갔고, 그 때마다 다른 배역이긴 했지만 열심히 연습하셔서 촬영에 임하시고 계십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지금까지 한번도 가지지 못하신 게 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번 10월 13일 아버지의 생신에 아버지를 알아보시는 분들의 방명록이 담긴 미니홈피를 선물하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약 30여명의 방문객분들이 글을 남겨 주셨습니다. 제 목표는 100명입니다.

물론 어렵겠지만, 저도 아버지처럼 그렇게 도전해보려고 합니다. 여러분의 도움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잠시만 시간을 내서 도와주십시오. 그리고 아직 세상은 노력하는 사람이 성공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을 이루어주십시오. 긴 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감사드립니다. 언제 어디서라도 아버지를 보시면 '개그맨 한상진'이라고 말씀해주세요.

www.cyworld.com/forevergag


출처|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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