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포(呂布)는 천부적으로 완력이 무궁하였고 만 명도 당하지 못할 용기를 지니고 있었으며 검이며 창이며 활이며 모든 무기를 다루기 좋아하였다. 그의 부친은 이를 매우 기쁘게 여기고 여포가 15세 되던 해에 종산(鍾山: 지금의 南京市에 있음)에 있는 세공도인(世空道人)에게 보내어 수업을 받도록 하였다. 세공도인은 당대 무림(武林)의 절정고수(絶頂高手)로 90세의 고령인데도 창을 휘두르면 비바람이라도 뚫고 들어올 수 없을 정도의 무예를 지니고 있었다. 특히 방천화극(方天畵戟)을 다루는 솜씨는 실로 절묘하여 신선이라도 이를 보면 엄지를 세워줄 정도였다.
세공도인은 종산으로 자신을 찾아온 여포가 아직 어린 나이인데도 그 자질이 비범함을 보고는 매우 기뻐하며 즉시 제자로 받아 들였다. 불과 반년이 지나갔는데 십팔반무예(十八般武藝)를 모두 터득한 여포는 다시 일년을 기한으로 방천화극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방천화극의 72개 초식(招式) 중 이미 36개를 가르친 어느 날, 세공도인은 갑자기 손을 멈추고 여포를 쳐다보더니 마음에 동요가 일었다. 자신이 지닌 72개의 방천화극 초식은 웬만한 무인이라면 모두 상용(常用)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머지 절반은 실로 그 위력이 막강한 것으로 극히 배우기 어려운 것이기에 이러한 절세의 무공은 함부로 전수할 수가 없었다. 까닭에 그는 손을 멈춘 채 생각에 잠기더니 서서히 발걸음을 거처로 옮겼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여포를 부르더니 그에게 말하였다.
"봉선(奉先)아! 오늘 연습은 쉬고 나를 위해 한 가지 심부름을 해주어야겠다. 그리고 돌아온 후 다시 말하기로 하자. 너는 가기를 원하느냐?" 이 말에 여포는 황급히 대답하였다. "가기를 원합니다. 사부(師傅)님께서는 분부만 내려주십시오." 이에 세공도인은 몸을 일으켜 여포에게 다가가더니 한 마디 한 마디씩 차근차근하게 분부하였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이 종산의 남쪽 봉우리 정상에 석동(石洞)이 있는데 그 안에는 내가 감추어 놓은 보물이 있다. 이는 진산보석(鎭山寶石), 즉 종산의 맥을 진압하는 보물로 종석(鍾石)이라고 부른다. 이 돌은 영롱한 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둥글며 윤기가 넘쳐흐른다. 너는 이것을 내게 가져와 다오. 그리고 갈 때에는 먼저 강 하나를 건넌 후, 산으로 올라가 석동으로 들어가야 한다. 강에는 험한 외나무다리가 있으며 산에는 험한 오솔길이 있다. 석동 입구에는 또한 좁은 석창(石窓)이 있다. 너는 반드시 이를 거쳐서 동굴 안까지 가야만 한다. 절대로 다른 평탄한 길을 택해서 가면 안 된다. 나는 네가 종석을 가져오면 그때 가서 다시 무예를 가르쳐주마. 이제 즉시 출발하여 정오까지 돌아오도록 하여라."
여포가 어찌 스승의 말에 태만할 수 있겠는가. 즉시 신발을 추스르고 허리띠를 조여 매더니 한달음에 산 아래로 뛰어내려가 곧바로 남쪽 봉우리로 향하였다. 남쪽 봉우리 밑에 이르니 강 하나가 가로놓여 있었는데 폭은 넓지 않았으나 깊었으며 물살 또한 거세었다. 그곳에 외나무다리가 놓여 있는 것을 본 여포는 저도 모르게 탄식하며 소리쳤다.
"하느님 맙소사! 험하다고 하더니 조금도 거짓이 아니네. 이 다리는 속마저 푸석푸석할 정도로 다 썩어 버린 것 같구나. 이런 것을 어떻게 밟고 간단 말인가!"
여포가 계속 한숨만 쉬고 다리를 쳐다보고 있을 때, 갑자기 '아이고'하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뒷전에서 사냥꾼 차림의 사람 하나가 나타났는데 50여세 정도 되어 보였으며 사냥감을 넣는 자루를 메고 있었다. 그는 황급히 여포에게로 다가오더니 눈을 치뜨며 물었다. "젊은이, 강을 건너려고 하는 것 같은데 어째서 이 외나무다리로 건너려하지? 이 다리는 모두 썩었는데 목숨이 아깝지도 않은가?" 이 말에 여포는 울상이 되어 대답하였다. "어르신께서 걱정해 주시니 감사합니다만 사부님께서는 저에게 남쪽 정상에 있는 종석을 가져오라고 하시면서 반드시 이 다리를 건너서 가야만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사냥꾼은 한 차례 자신의 허벅지를 치더니 말하였다. "아무리 사부의 말이라도 목숨이 중요한 거지. 어찌 오줌이 마려운 것을 참아가며 죽으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내 젊은이에게 말하겠는데 이 강의 하류에서 멀지 않은 곳에 돌다리가 있네. 내가 사냥할 때는 언제나 그곳으로 다니지. 그 돌다리를 건넌 다음 다시 이쪽 강 건너편으로 돌아온다면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이 말에 여포는 속으로 기뻐하며 생각하였다. "이 사냥꾼 말이 맞지. 어쨌든 사부님께서 아실 리가 없지 않은가?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는 사냥꾼과 작별하고는 곧 돌다리 쪽을 향하여 달려갔다. 손쉽게 강을 건넌 여포는 얼마 안 가 외나무다리가 있는 남쪽 언덕에 이르렀으며 다시 앞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다시 얼마 안 가 남쪽 봉우리 아래 이르러 머리를 들어보니 과연 한 가닥의 구불구불한 오솔길이 나타났는데 이 길은 바로 정상과 통하고 있었다. 다시 가까이 다가가 보니 마치 양의 창자와 같이 산허리를 빙빙 둘러싼 그 길은 무수한 동굴과 낭떠러지가 있었으며 양쪽으로는 무성한 풀과 나무와 가시덤불과 험한 바위로 그득하였다. 여포가 바야흐로 한 숨을 내쉬고 있을 때, 갑자기 숲을 헤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나무꾼 하나가 나타났는데 60여세 정도 되어 보였으며 허리에는 도끼를 차고 있었다. 그는 여포를 보더니 놀란 몸짓을 하고는 말하였다. "젊은이는 산 위로 오르려 하는가? 그런데 왜 이 길로 가려고 하지? 이 길은 매우 험할 뿐만 아니라 숲에는 독사가 우글거린다네. 한 번 물렸다 하면 살아날 방법이 없지. 나같이 늘 산에 사는 나무꾼도 이 길로는 다니지 않지." 여포가 또 사부가 분부한 말을 하자 중도에 나무꾼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그만 두게. 누가 젊은이를 이곳으로 가라했는지 무슨 분부를 했든지 이 길로는 절대로 오르면 안되네. 목숨이 제일 중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내 젊은이에게 일러주겠는데 이 산자락 동쪽에 또 하나의 길이 있는데 넓고 나지막하여 내가 땔감을 마련할 때는 언제나 그 길로 간다네. 그러니 자네도 그 길로 가게나." 이 말에 여포는 다시 마음속으로 기뻐하며 생각하였다. "오늘은 정말 좋은 사람만 만나게 되는구나. 참으로 복도 많지. 안 그랬었다면 이 몸은 살아 남기가 힘들었을 게야." 나무꾼과 작별한 여포는 즉시 좋은 길을 택해 달려갔다. 이윽고 정상에 오른 여포가 멀리 북쪽에 위치한 동굴을 바라보니 동굴 입구에는 과연 석창(石窓) 하나가 있었다. 여포가 그쪽으로 다가가 보니 석창 입구는 좁고 어두컴컴하였으며 음산한 기운마저 감돌고 있었다. 여포가 들어가기를 망설이고 있을 때 갑자기 근처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젊은이, 이 동굴 안으로 들어가려 하나?" 여포가 소리 나는 쪽으로 몸을 돌려보니 동굴 입구에는 70여세 된 어떤 노인이 앉아 있었는데 얼굴에는 때가 그득한 남루한 옷차림의 걸인으로 그 옆에는 대바구니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는 여포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일어나면서 말하였다. "아이고. 내가 보기엔 자네는 이 동굴로 들어가려는 것 같군. 그러나 이 석창을 한 번 살펴보게. 그곳에는 범이 살고 있네. 내 어제도 동냥하러 이곳을 지나갈 때에도 호시탐탐하며 웅크리고 있었네. 목숨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그러니 절대로 들어가면 안되네. 그래도 들어가야만 한다면 왜 구태여 위험한 석창으로 들어가려 하는가?" 이렇게 말한 걸인은 다시 쭈그리고 앉았다. 이 말에 온몸에서 땀이 흐른 여포는 마음을 바꿔 관솔에 불을 붙인 후, 석창을 피해 평탄한 동굴 입구로 들어갔다. 그리고 여남은 걸음도 채 못 가니 돌로 된 탁상이 보였으며 그 위에는 과연 영롱한 무늬의 종석이 있었다. 여포는 놀랍고도 기쁜 마음으로 급히 그 종석을 품에 넣은 다음 오던 길로 되돌아갔다. 정오가 될 무렵 돌아온 여포는 품안에서 종석을 꺼내 사부에게 올리며 말하였다. "사부님 분부대로 종석을 가져왔으니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어찌 알았으랴? 세공도인은 종석은 거들떠보지도 않고는 굳은 얼굴로 말하였다. "봉선아, 너는 정말로 모두 내가 시킨 대로하였느냐?" 이 말에 가슴이 떨리고 얼굴이 달아오른 여포는 사실대로 말하려 하였으나 문득 한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안되지. 다시 사실을 말한다면 사부님은 노하셔서 무예를 더 이상 전수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사부님이 동행하지 않았으니 거짓말을 꾸며댄들 어떻겠는가. 어찌 됐건 이렇게 무사히 살아서 돌아 왔으니 본전은 된 셈이 아닌가!" 이렇게 마음을 정한 여포가 말하였다. "사부님, 저는 확실히 분부하신 대로하였습니다." "정말이지?" "정말입니다!" "확실하지?" "확실합니다!" 그때서야 세공도인은 머리를 돌려 여포를 응시하면서 말하였다. "네가 오늘 나를 위해 이 일을 해주었으니 이제 너의 정성을 다 보인 셈이다. 이제 수업기간이 다 하였으니 오늘로 즉시 하산토록 하여라!" 이 말에 여포는 영문을 모른 채 가슴만 펑펑 뛰어 올랐다. 지금이라도 실정을 토로하려고 하였으나 사부가 어떻게 자신을 벌줄까 두려웠기에 그저 더 머물게 해달라고 부탁하기로만 작정하였다. 그리하여 입가죽이 닳고 눈물샘이 마르도록 애걸했지만 사부는 단지, "어서 떠나거라." 라는 한 마디만 하고는 눈을 지그시 감고 정좌한 채로 있을 뿐이었다. 이에 더 이상 기대할 수가 없다고 판단한 여포는 눈물을 머금은 채 행장을 꾸려 하산하는 수밖에 없었다. 여포가 떠난 후, 세공도인이 손짓을 하자 집안에서 세 사람이 나왔으니 그들은 여포가 만났던 사냥꾼과 나무꾼과 걸인들로서 원래 세공도인의 사제(師弟)들이었다. 세공도인은 크게 탄식을 하더니 그들에게 말하였다. "오늘의 일은 어찌 그 애에게 종석 따위를 가져오게 한 것이었겠소. 그 애의 인간성을 시험해 보려는 것이었지. 다행히 내가 먼저 수를 썼기에 망정이었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큰 실수를 저지를 뻔하였소. 이처럼 마음속에 주견(主見)이 없고 살기를 도모하고 죽기를 겁내며 불충불의(不忠不義)하며 주인을 속이는 인간이라면 반드시 큰 실수를 저지를 것이니 만약 방천화극의 72개 초식을 모두 전수했더라면 어찌 천하를 어지럽히지 않을 수 있겠소? 36개의 초식을 가르친 것도 지금은 후회막급할 뿐이오."
말을 마친 세공도인은 하늘을 우러러보며 다시 탄식을 그치지 않았다. 과연 세공도인이 예상한대로 하산을 한 여포는 자신의 무궁한 완력과 방천화극 솜씨를 믿고는 세상을 뒤흔들면서 명리만을 추구하였으며 급기야 패하게되자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였다. 즉 처음에는 정원(丁原)을 의부(義父)로 섬기더니 그를 죽이고 동탁(董卓)에게 빌붙었으며 다시 동탁을 배신하고 죽이더니 결국은 백문루(白門樓)에서 조조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하면서 죽임을 당할 때까지 그 어떤 사업도 이루지 못하고 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