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들려주는 어린시절 운동화 이야기^^

맹츄 작성일 05.11.08 16:5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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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수권 기자] “다녀오겠습니다.”

“운동화 간수 잘 해라.”

제 엄마가 새벽 같이 일어나 정성들여 싼 김밥은 기어이 놔두고 몇 달 동안 용돈을 모아 산 새 운동화를 신고 지난주 화요일(10월 25일) 아들 문호(고1)가 을숙도로 소풍을 간다며 집을 나섰다. 내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한 마디 했더니, “아이참 아빠도, 신발 벗을 일 없다니까요”라며 뭔가 의미 있는 웃음을 지었다.


그 옛날 내 어린 시절의 초등학교 1학년.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마루 밑 댓돌에 새 운동화가 놓여 있었다. 당시로선 흔치 않은 흰 줄무늬가 선명한 파란 운동화였다. 어찌나 곱던지 마당이 다 훤했다. 동생이 어머니를 졸라서 산 것이 분명했다.

동생은 하고 싶은 건 꼭 하고 마는 고집이 센 동네 소문난 떼쟁이였다. 그와 반대로 나는 원래 소심하여 그때까지 한 번도 부모님을 졸라 본 기억이 없었다. 부럽기도 하고 샘도 났다. 내가 신고 있는 신발을 보았다. 검정 고무신이 너무 싫었다. 동생은 방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신발을 감추자!’

그러나 막상 감추어 둘 곳을 찾으려니 적당한 곳이 없었다. 그렇다고 잠깐 감추어 둘 것을 광 속에 넣기도 그렇고…. 이때 퍼뜩 눈에 띈 곳이 바로 옆 사랑방 군불 아궁이였다. 자고 일어난 동생의 놀란 모습을 떠올리며 얼른 집어넣고 집 밖으로 나갔다. 서석지(瑞石池) 정자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놀다가 저녁 때가 되어서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온 동네가 고무 타는 냄새로 진동했다.

그때까지도 운동화를 아궁이 속에 넣은 일을 까맣게 잊고 집에 오니 ‘아뿔싸’ 바로 우리집이었다. 불씨가 남아있었던 모양이다. 동생의 대성통곡을 듣고 사태의 심각함을 느껴 얼른 되돌아 나왔다. 저녁 어스름이 깔렸고 저녁밥 시간이라 마을은 조용했다. 마땅히 갈 데는 없고 ‘에라 모르겠다’며 집 앞 추자나무 위로 올라갔다. 그때까지 매미가 울고 있었다.

며칠 후 어느 장날, 어머니가 새 운동화를 사주셨다. 그 일로 야단도 맞았지만 얼마나 신고 싶었으면 그랬을까 뭐 그런 생각을 하신 것 같았다. 기분이 좋았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이 너무 더워 아이들과 강에서 멱을 감았다. 흙이 묻은 운동화를 깨끗이 빨아 햇볕에 바짝 말렸다. 너무 뽀송뽀송해서 다시 흙을 묻히고 싶지 않았다.

신발을 손에 들고 봇도랑을 건너뛰다가 그만 가시를 밟았다. 가시가 오른발 발가락 사이를 뚫고 올라왔다. 너무 아파 엉엉 울었다. 하늘이 노랬다. 놀란 아이들이 기별하여 마침 들에 있던 이웃집 아저씨가 달려와 나를 업고 집으로 왔다. 사람들이 모였고 작은 소동이 났다.

외출했다가 돌아오신 아버지께서 읍내 병원으로 데려가 메스(?)로 발가락 사이를 찢어 가시를 뽑았다. 마취가 되어 별로 아픔을 느끼진 못했지만 아버지도 차마 그 광경을 볼 수 없어 외면하셨다고 후에 말씀하셨다. 발이 나을 때까지 그 운동화는 신지 못하고 선반 위에 잘 모셔두었다.

두어 달 후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물어갈 무렵, 가을 소풍을 가게 되었다. 당연히 잘 모셔둔 운동화를 신고 갔다. 봉감탑이 우뚝 선 봉감 냇가의 모래밭이었다. 학교에서 꽤 먼 원족(遠足)이었다. 아무래도 모래밭은 운동화가 불편했다. 또다시 운동화를 감춰둘 곳을 찾았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봐도 마땅히 숨길 만한 곳이 없었다. 이런저런 궁리 끝에 적당한 곳에 모래를 파고 운동화를 묻은 뒤 그 위에 큼직한 돌멩이로 표시를 해두었다.

맨발의 모래밭. 그 촉촉한 감촉…

무지 신났다. 정신없이 놀았다.

닭싸움, 보자기 돌리기, 기마전, 보물찾기…

어느덧 해가 서산에 걸리고 즐거운 소풍은 끝났다. 산골 하루는 짧았다. 반별 인원 파악과 교장 선생님의 훈시를 듣고 이젠 각 마을 단위별로 모였다. 그때까지도 역시 신발에 대해선 까맣게 잊고 있었다. 동네 형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아차, 내 신발!’

급히 그곳으로 가봤지만 썰물처럼 아이들이 빠져나간 자리엔 무수한 발자국만 어지럽고 표시해둔 돌멩이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당황해하자 대여섯 명의 형들이 모래밭을 뒤졌지만 허사였다. 해는 뉘엿뉘엿 지고 갈 길은 멀고, 정말 낭패였다.

6학년 동네 큰 형이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며 자신의 신발을 벗어주었다. 자기가 맨발로 가겠다고 했다. 너무 미안해서 사양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시간도 많이 흘러 지름길을 택하기로 했다. 벌써 별이 보였다.






커다란 고무신을 질질 끌며 맨 뒤를 따랐다. 아무도 말이 없었다. 평지는 그래도 걸을 만 했다. 이제 산을 넘어야 한다. 가파른 오르막 산길. 헐렁한 신발이 미끄러워 도저히 걸을 수가 없었다. 자꾸만 뒤처졌다. 날은 어두워졌고 걱정이 된 형들이 다시 한 번 의논을 했다. 미안한 마음에 멀찌감치 서서 보고만 있었다.

잠시 후 결론이 났다. 6학년 형의 신발은 5학년 형이, 5학년은 4학년, 4학년은 3학년…. 그렇게 해서 내게는 2학년 형의 신발이 주어졌다. 모두들 제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을 꿰어 신고 엉거주춤 마주섰다. 그때 누군가 말했다.

“고무신 도레미파……”

/정수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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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이 글은 딸(정겨운)이 고등학교 3학년때 도서잡지 에 '아빠가 들려준 어린 시절 추억'이란 코너에 실은 것을 약간 수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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