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글을 익힌 칠순 할머니가 55년 전 사별한 남편을 그리며 쓴 편지글이 감동을 주고 있다. 맞춤법이 틀린 글자가 여러 군데지만, 할머니가 하고 싶었던 말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더 정겹다.
화제의 주인공은 남해 고현면에 사는 올해 일흔 다섯 살의 박상엽 할머니. 박 할머니는 남해군 문화체육센터에서 운영하는 '찾아가는 한글교실'에 참여해 글을 익혔다.
▲ 박상엽 할머니.
ⓒ2006 남해시대 주간지 <남해시대> 최근호에 따르면, 문화체육센터는 지난 8일 처음으로 한글을 배운 할머니와 할아버지 310명을 모아 놓고 '찾아가는 한글교실 한글글짓기대회'를 열었다. 121개 마을에서 내로라 하는 문장가(?)들이 참여해 실력을 뽐냈는데, 저마다 장원급제에 대한 의욕을 불태웠다고.
출품작 중에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입상작이 여럿 있었는데, 그 중 박 할머니가 적어낸 글이 애틋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꽃다운 18살에 결혼했던 박 할머니는 21살 되던 해에 남편을 잃었다. 한국전쟁 휴전선언을 불과 사흘 남겨두고 군대 갔던 남편이 영영 돌아오지 못한 길을 떠난 것이다. 박 할머니한테는 4개월 된 아들과 시부모님이 맡겨져 있었다.
박 할머니는 농사를 지어 아들을 공부시킬 수 없다는 생각에 부산 자갈치시장으로 가 장사를 하면서 아들을 공부시켰다는 것. 그 아들은 지금 은행 지점장으로 있는데 '착실하다'고 박 할머니는 소개.
글에서 박 할머니는 "여보 당신은 55년 동안 어떻게 지내고 있소"라고 물은 뒤, "우리가 만나면 얼굴을 알아 볼 수 있을까요. 훗날 나도 당신 찾아 하늘나라 가면 나를 찾아 주소. 우리 만날 때까지 편히 계십시오"라고 말했다.
함께 산 해는 3년이지만 55년간 떨어져 있었던 박 할머니와 죽은 남편. 박 할머니는 하늘나라에서 만났을 경우 얼굴을 알아 볼 수 있을지 걱정하면서도, 남편 더러 자신을 찾아달라고 애원하고 있다.
<남해시대>는 박 할머니의 글을 소개하면서 "그동안 남편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처음으로 편지로 그 마음을 전해본다"면서 "55년의 세월을 두 장의 편지로 써내기가 부족한지 자꾸만 눈물이 맺혔다"고 해 놓았다.
박 할머니가 쓴 글을 맞춤법에 맞춰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하늘 나라에 있는 당신에게. 55년 전의 당신을 오늘 불러 봅니다. 내 가슴이 메어지는 것 같소. 떠나면서 곧 돌아오겠다던 당신은 오늘까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아 우리 가족은 어떻게 살아 왔겠소. 늙으신 부모와 4개월 된 아들을 나한테 맡겨 두고 떠나신 후 부모님은 저 세상으로 떠나셨고, 남겨 두고 간 아들은 잘 자라서 부산에서 은행 지점장으로 착실히 살고 있소. 작은 농사 지으면서 아들 공부 시키기가 쉽지 않아 부산 자갈치시장에서 장사도 하면서 공부를 시켰소. 여보 당신은 55년 동안 어떻게 지내고 있소. 우리가 만나면 얼굴을 알아 볼 수 있을까요. 훗날 나도 당신 찾아 하늘나라 가면 나를 찾아 주소. 우리 만날 때까지 편히 계십시오. 11월 8일. 당신 아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