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죽었으면 나았을텐데.... 이교수의 한.

맹츄 작성일 05.11.10 16:2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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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심재율 기자]

장애인의 서러움을 이기려는 일념으로 앞만 보고 열심히 살았다. 교수도 되고 학장에도 뽑혔다. 그러나 지난 여름, 정신적인 지주가 되었던 아버지 마저 사망하고 난 뒤 김용호(金容昊·54·전자공학과 교수) 배재대학교 공과대학장은 문득 정신을 가다듬었다. 뒤를 돌아보니 자기 같은 장애인들이 갑자기 눈에 확 들어왔다.

‘이제까지 나 하나만 생각하고 이기적으로 살아왔던 것이 아닐까?’

그는 내년 초 공대학장 임기가 끝나면 청소년 장애인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겠다고 마음먹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자기 이야기를 꺼내려면 서러움에 눈물부터 쏟아져 제대로 털어놓은 기억이 없는 그가….

배재대 공대 학장실에서 만난 그는 시종 담담하고 명랑한 표정이었다. 건강하게 태어났으나 두 살 때 소아마비에 걸린 일, 뛰어난 시험성적에도 ‘취학 불능 불합격’ 판정을 받고 아버지와 친지 도움으로 간신히 연세대 이공계 최초의 장애인 학생으로 물리학과를 입학했던 일, ‘이 나라에선 죽어도 안 산다’며 미국 와이오밍 주립대학으로 유학을 떠난 사건, 손가락만 겨우 움직이며 전동휠체어를 탄 공학도를 보고 원래 희망이었던 전자공학으로 전공을 바꾸고 ‘그래도 모국에서 사람대접 한번 받고 싶다’며 대덕연구단지의 한 연구원에 취업한 일, “서서 강의할 수 있느냐”는 의구심을 떨치고 배재대 교수로 임용된 일 등 힘든 과거를 모두 삭인 것 같았다.

그러나 초등학교 시절 선 잠이 들었을 때 어머니와 이모가 나누던 말이 가슴을 후벼 파던 그 아픔이 아직도 복받치는 것은 어쩌랴. “용호 다리가 저래 걱정이다. 밥벌이나 하면서 살 지 모르겠다. 차라리 소아마비 걸렸을 때 죽었으면 나았을 텐데.”

순간 어린 용호는 소리 죽여 눈물을 쏟았다. ‘차라리…죽었으면…나았을 것을…’이란 소리가 비수가 되어 수십 년 동안 그의 마음을 찔러 댔다. 김교수는 이 부분을 말할 땐 자신도 모르게 책상 모서리를 꽉 붙잡았다.

그는 허리 아래 양쪽 다리를 전혀 쓰지 못하는 1급 중증 장애인이다. 학교서나 집에서나 두 쪽 목발을 짚고 다닌다. 이웃동네 가면 아이들이 그에게 돌팔매질 하며 비웃던 어린 시절, ‘세상에 짐이 되는 인생 아닌가’라는 좌절감이 왜 안 생겼을까. ‘공부해서 뭐해’ 포기하고 싶은 마음에 왜 안 시달렸을까.

그렇지만 그는 희망이 얼마나 큰 힘인지 안다. 중학생 시절 아버지 친구가 와서 ‘독일엔 아주 훌륭한 장애인 과학자가 있었다’고 했다. 진짜일까? 나를 위로하려 꾸민 말은 아닐까? 그러다가 “내가 한번 진짜 과학자가 돼 후배 장애학생들에게 진짜 그렇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굳게 마음을 먹었다.

2003년 장애인 학생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처음으로 배재대에 다니는 장애인 학생들을 접촉했다. “나도 너 같은 장애인이다”며 몇 번씩 전화 걸고 설득했지만 “만나기 싫다”는 거절…. 가까스로 한 여학생을 설득해 연구실로 불렀다. 마지못해 찾아온 여학생은 학교 다닐 때의 자기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시렸다. 장애인 사정을 너무 잘 아는 교수의 이야기를 한 시간 가까이 듣고 나서야 여학생은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눴다. 2시간 면담이 끝났을 때 여학생은 “내가 잘못 생각했다”며 눈물을 흘렸다.

30여년 전과 흡사한 학생들의 반응에 놀라, 이번엔 모교 연세대를 찾아갔다. 시설은 좋아졌지만, 학생들의 폐쇄적이고 어두운 마음은 비슷했다. 30명을 접촉했으나 실제 면담엔 4명만이 나타났다.

그러던 중 교수 선거에서 공대 학장으로 뽑혀 지난해부터 김교수는 전국공대학장 회의에도 참석하고, 워크숍이나 세미나에 자주 참석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또 놀랐다.

공대교수 중엔 자기처럼 완전히 목발을 짚고 다니거나, 휠체어를 타는 교수가 눈에 뜨지 않았다. “서글프더라고요. 나 말고도 목발을 짚으면서도 대학원 공부한 사람이 꽤 있을 텐데….” 그는 “아직도 한국엔 공대 교수가 된 장애인이 왜 이렇게 없느냐”고 묻는다.

그러면서 “공대는 실험이 많아 장애인은 힘들다는 정서가 아직도 강하지만, 요새는 기자재가 발달해 지체장애인도 얼마든지 실험이나 강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장애인 과학자를 한 번 이라도 직접 본다면 믿을 텐데…’ 라던 중학생은 스스로 그 회의와 의심을 푼 증거이자 희망이 되어 있다.

(대전=심재율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jys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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