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지체장애(1급)를 앓는 조은영양(16·수원 서광학교 중2 과정)은 진눈깨비가 흩날리던 1일 아침 등굣길에 경기 수원시 송죽동의 장안신협을 찾았다. 조양은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을 빼면 3년6개월째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장안신협에 얼굴을 내밀었다.
이날 아침 조양이 신협 정문을 두드린 시간은 여느 때와 같이 8시20분. 여느 금융기관은 아직 점포 문을 열지도 않은 시각이다. 하지만 신협 직원들은 노크 소리가 들리자마자 마치 일상적인 일인 것처럼 셔터 문을 열어 “안녕” 하면서 조양을 환하게 맞았다. 조양은 편치 않은 걸음걸이로 창구에 다가가 통장과 함께 1,000원짜리 지폐 2장을 내밀며 입금을 요청했다.
창구 직원은 정식 영업이 시작되는 9시보다 40분 이른 시각이었지만 마치 일상적인 일인 양 익숙한 일처리로 2,000원을 계좌에 넣었다.
조양과 이 신협 직원들의 우정이 싹튼 것은 2002년 5월 어느 날 아침 8시20분이었다. 몸과 마음이 편치 않은 한 소녀가 부자연스러운 행동으로 2,000원을 들고 입금해 달라며 찾아온 것이다. 직원들은 처음에는 매일 아침, 정식 개점시각보다 40분 일찍, ‘단돈’ 2,000원을 든 채 찾아오는 조양이 결코 반가울 리가 없었다. 입금을 거절하자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조양의 어머니 이애연씨(43)의 말을 듣고서 이 점포 직원들은 생각이 달라졌다.
이씨는 “딸이 즐거워하는, 몇 안 되는 일과 중의 하나가 ‘저금’입니다. 나를 따라 은행에 자주 다니더니 매일 은행에 가자고 졸라댑니다. ‘딸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판단해 마침 등굣길에 있는 장안신협을 통해 딸의 ‘소원’을 들어주고 있는 셈이지요”라고 말했다.
조양에게는 지난 3년6개월간 매일 2,000원씩의 입금 기록이 적힌 통장이 7개나 된다.
신협 직원들은 “은영이가 전국의 금융기관 창구 중 가장 이른 시각에 입금하는 손님”이라고 우스갯소리로 말하고 있다. 직원들은 조양의 돈을 계좌에 넣는 시각이 전산처리가 시작되기 이전이어서 수기(手記)로 통장을 작성한다. 직원들은 귀찮음 대신 “은영이 덕분에 정식 개점시각보다 이른 시각에 점포를 찾는 손님도 많아졌다”고 말했다.
신협 이현상 차장은 “은영이가 8시20분보다 5분이라도 늦게 오면 직원들이 걱정을 할 정도로 우정이 깊어졌다”고 말했다.
조양은 선천적으로 뇌에 장애가 생겼다. 간단한 단어 몇마디 말고는 의사소통이 어렵고 보행도 불편하다. 하지만 이 신협에 들러 매일 저금하는 순간 만큼은 이 세상 그 누구도 누릴 수 없을 정도로 조양에게는 행복한 시간이다.
어머니 이씨는 “저금을 시작한 이후 활발해졌고 낯가림도 줄었다”고 말했다. 곽미영 담임교사(34)는 “혼자서는 화장실도 못 갈 정도로 불편하지만 저금을 시작한 이후 적극적인 태도로 바뀌었다”고 기뻐했다.
조양은 ‘홀로서기’의 꿈을 이룰 때까지 저금을 멈추지 않을 작정이다. 그 때까지는 장안신협 직원들과의 우정도 지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