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영 '병원24시'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맹츄 작성일 05.12.09 17:3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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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종영 한 달…JRN 오승배 PD가 전하는 뒷얘기
ARS 성금모금 안한 이유?..."한번도 행복한 적 없었다"는 출연자




극단의 절망 앞에서도 삶에 대한 의지를 잃지 않는 환자들을 통해 ‘평범한 삶’의 행복을 일깨워 줬던 KBS 다큐멘터리 . 이 프로그램은 지난 10월 25일 종영했지만 많은 시청자들은 아직도 가 남긴 여운을 기억하고 있다.

미디어다음이 지난달 17일부터 30일까지 조사한 ‘올해의 인물, e-만나고 싶은 사람’ 투표에서 제작진은 총 10292표 가운데 792표(7.7%)를 얻어 5위에 올랐다.

종영 후 프로그램 게시판에는 연일 ‘프로그램을 끝내지 마라’는 시청자들의 글들이 올라왔다. 시청자 황민영 씨는 "삶을 겸허한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이 프로그램을 통해 배웠다"며 "많은 시청자들의 의견을 듣고 꼭 다시 방영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또다른 시청자 김은미 씨 역시 "는 어떤 드라마나 영화보다 천 배, 만 배 이상의 감동과 슬픔을 안겼다"며 "언젠가 이 프로그램을 다시 만나길 기대한다"는 글을 남겼다.

촬영 기간에 환자 집에서 기거하는 경우 많아..촬영 후 가족처럼 되기도



의 오승배 팀장은 "응급실에서 일하는 의사들의 모습을 보고 의사에 대한 신뢰를 되찾았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프로그램을 통해 의사와 환자 사이의 간격을 좁히는데도 노력했다"고 말했다. ⓒ미디어다음
방영을 마친 지 한 달 남짓이 지난 후 만난 제작팀장 오승배 PD 역시 “많이 아쉽다”는 말로 입을 열었다. 평일 자정이라는, 결코 시청률을 장담할 수 없는 시간에 방송하면서도 7~12% 정도의 꾸준한 시청률을 올려 온 8년 장수 프로그램을 끝냈으니 아쉬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5명 PD들을 비롯한 제작진들의 아쉬움은 비단 시청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은 프로그램이 종영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평균 4~6주가량이 소요되는 제작 기간에 출연자들과 동고동락하며 환자들의 아픔을 알려온 그간의 노력이 더 이상 계속될 수 없다는 아쉬움이 더 크다.

오 팀장은 “취재 과정에서 위급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어 제작진들은 보통 촬영 기간에 환자의 집에서 기거할 때가 많다”며 “술도 마시며 힘든 점들을 털어놓고 나면 한 가족이 된다”고 말한다. 가족들의 안쓰러운 사연을 접하며 눈물을 참지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고, 촬영 도중에 환자가 사망해 버려 제작이 중단된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 '신파' 아닌 '휴먼 다큐'

생과 사를 오가는 고통을 그리면서도 눈물을 쥐어짜는 ‘신파’로 흐르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 의 미덕이다. 제작진들은 ARS 성금모금 전화번호를 만들어 달라는 시청자들의 줄기찬 요구에도 이에 따르지 않았다. 오 팀장은 “는 병원을 배경으로 한 ‘휴먼 다큐’이지 아픈 사람들의 경제적 어려움에 초점을 맞춰 구제해 주는 프로그램이 아니었다”고 설명한다.

도움을 주고 싶은 시청자는 프로그램 홈페이지에서 출연자 연락처와 은행 계좌번호를 확인한 후 은행에서 돈을 보내줘야 했다. ARS보다 다소 ‘불친절한’ 방법으로 도움을 주는 방식이지만 반향은 컸다. 홈페이지에서 연락처를 확인한 시청자들은 5000원, 1만원씩 작은 정성을 모아줬다. 도움을 받은 출연자들 중에는 자신들이 받은 사랑을 다시 되돌려 주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2000년 3월 방송에 출연한 ‘가희’(급성 골수성 백혈병 환아, 당시 나이 3세)의 가족은 시청자들이 보내온 돈 중 치료비로 쓰고 남은 500여만원을 다른 환아들을 위해 써 달라며 병원에 다시 내놓았다.

종양으로 한쪽 다리를 절단한 스물여섯 살 이민경 씨는 방송을 통해 든든한 친구들을 얻었다. 지난 3월, 다리를 절단하고도 희망을 잃지 않는 이 씨의 얘기를 방송으로 본 시청자들은 게시판에서 연락을 주고받다가 함께 모여 이 씨의 병문안을 갔다. 이들은 지금 이 씨의 좋은 친구들이 됐다.


섭외, 촬영 과정에서 어려움 많아..출연자 반대로 촬영된 화면 방송 못 한 적도



홈페이지에는 종영을 반대하는 시청자들의 글이 줄을 이었다. ⓒ미디어다음
방송이 나간 후 항상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제작진들을 가장 슬프게 했던 것은 출연자들의 사망 소식. 방송 후 얼마 되지 않아 환자가 사망할 경우, 방송분은 출연자의 살아있는 순간 마지막 기록이 돼 버리고 만다.

촬영 단계에서 어려움도 많았다고 한다. 오 팀장은 "섭외부터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한다. 방송에 나가게 되면 주변 사람들이 자신들의 사정을 다 알게 되기 때문에 출연을 고사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

"한 출연 예정자는 ‘아이가 아픈 것을 직장 사람들이 모른다’며 ‘방송을 본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동정할까봐 출연하지 않겠다’고 했다. 또 한번은 수전증을 앓는 환자를 주인공으로 촬영을 다 마쳤는데 이 출연자가 방송 직전 나가고 싶지 않다고 밝혀 방송을 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섭외에 성공해 촬영을 시작한 후에도 어려움은 계속된다. 환자들이 매우 예민한 상태여서 환자와 환자의 가족들과 신뢰 쌓기가 쉽지 않다. 오 팀장은 “큰 고통을 안고 있는 환자들에게 뭐라고 위로의 말을 해야 할지 난감한 경우가 많다”며 “충분한 신뢰를 주지 않으면 촬영이 순족롭게 진행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담당 주치의도 항상 촬영을 반기는 것은 아니다. 다행히 환자의 상태가 좋아지면 의사에게도 좋은 일이지만 병세가 악화되는 경우 치료 과정과 상관없이 욕을 먹기도 한다는 것. 또 의사 가운데는 치료과정을 상세히 보여줘야 하고 환자의 상태가 바뀔 때마다 이를 제작진에게 자세히 설명해야 하는 일에 부담을 느끼는 경우도 가끔 있다.

때로는 같은 병실 환자들이 제작진의 잦은 방문을 싫어하기도 했다. 그래서 제작진은 항상 촬영 전 같은 병실 환자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그럼에도 자신의 병실에서 촬영이 이루어지는 것을 꺼리는 환자들은 아예 병실을 옮겨버리거나, 출연자에게 다른 병실로 갈 것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출연자들, '내가 이렇게 될 줄 몰랐다'



오 팀장은 "어떤 방식으로든 이런 프로그램이 다시 생겼으면 한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미디어다음
어느 하나 안쓰럽지 않은 출연자가 없었지만 그 가운데 오 팀장의 기억에 가장 또렷이 남아있는 출연자는 2003년 11월에 방송한 ‘통 할머니의 머나먼 길’의 박순자 씨. 박 씨는 ㄱ자로 완전히 굽어 버린 허리 때문에 밖에 나갈 때는 바퀴가 달린 쓰레기통을 밀고 다닌다. 방송은 20년간 건물 청소를 하며 하나뿐인 아들을 키워온 박 씨가 허리 수술을 받는 과정을 담았다.

오 팀장은 아들을 재워놓고 빨래를 하는 박 씨에게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냐”고 물어봤더란다. 그랬더니 박 씨는 “한 번도 행복한 때가 없었다”고 대답했다고. 그냥 하루하루 먹고살기에 급급한 박 씨에겐 ‘행복’이란 단어조차 생경했던 것이다.

그는 또 다른 일화도 소개했다.

“부인이 이를 닦다가 그대로 쓰러져버려 남편이 아내의 병수발도 하고, 평소처럼 가장의 역할도 하며 육아 등 부인의 일까지 모두 떠맡아 버렸다. 하루 아침에 삶이 180도 바뀌어 버린 남편은 제작진에게 ‘나는 내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오 팀장이 방점을 찍는 것은 ‘내가 이렇게 될 줄 몰랐다’는 출연자의 말. 어느 특별한 사람의 얘기가 아닌, 우리 모두에게 닥칠 수 있는 고통에 대한 얘기가 바로 였던 것이다.


다시 방송될 수 있을까

는 이 프로그램의 제작사인 JRN이 KBS에서 퇴출되면서 종영했다. JRN이 지난 6월 에 내보낸 '자동차, 반란을 꿈꾸다‘에서 소개한 회사가 제작사 대표의 친척이 운영하는 회사란 사실이 밝혀지면서 KBS가 JRN 프로그램의 전격 퇴출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JRN이 프로그램 형식에 대한 일부 저작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KBS가 를 자체 제작하긴 힘들다.

하지만 희귀병을 앓는 환아를 소개하고 지속적인 지원을 하는 SBS 처럼 프로그램 형식을 살짝 바꾸면 어떤 식으로든 비슷한 형식의 프로그램 방송이 가능하다. 또 KBS가 JRN 쪽으로부터 저작권을 사서 제작하는 것도 한 방안이다.

가 다시 방송되길 기대하는 시청자들의 바람을 KBS가 어떻게 받아들일 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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