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26살의 대졸자입니다. 백수는 아니구요. 공무원 합격해서 다음달 발령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제 한달간 아르바이트 해서 퇴근하고 가려는데 사장님이 부르시더군요. 월급날짜가 됐다고 하시면서 열심히 일해줘서 고맙다는 말씀과 함께 하얀 봉투를 내미시더군요.
110만원.... 하루에 12시간씩 물류센터에서 일하면서 땀흘려 일하는 보람과 가치를 배우고 그러기엔 너무나 많은 돈이었습니다 결코 반어법이 아닌...정말로 제가 벌어본 돈 중에서 가장 많은 돈이었습니다.
학생시절에도 빠뜻한 등록금과 그 얼마 안되는 용돈을 벌기 위해서 편의점과 노가다 판을 전전했지만 편의점 같은 경우 월급이란 기분이 안 들 정도로 적은 돈(시급 2100원이라면 믿으시겠습니까. 05년도 이야기입니다) 과 노가다 특성상 주말에만 반짝 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월급이란 기분이 들지 않았던 게 솔직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110만원이라는 돈은 정말 소중하고도 값진 것이었어요. 100만원은 월급이었고 10만원은 옷이라도 사 입으라는 사장님의 성의...
요즘은 부모님 잘 만나는 것도 능력이라고 하던데 그런 측면에서 저는 참 무능력한 사람입니다.
사업실패와 보증으로 인해 집안은 고등학교 때부터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동창들이 서울권으로 대학을 갔을 때 집과 가까운 곳의 국립대학을 장학생으로 들어갔지만,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장학금 박탈당하고 결국 졸업은 했습니다만 안 내도 될 등록금을 제 스스로가 자초해서 내고 다녔지요.
지방대 문과생의 한계로 졸업이 가까워서 할 수 있다는 건 고작 생활정보지에 나온 구인광고의 강사모집 밖에 없었습니다. 지방대라서 1학년때부터 자포자기한 내 모습을 반영한 것은 졸업평점 2.x의 초라한 성적표 뿐이더군요.
졸업하면 뭘 해야 하는 12월의 고민 속에서 공무원 말고는 할 게 없는 인생 마지노선에서 25살에 책을 잡아봤습니다. 12월 11일..아직도 안 잊혀지는 날입니다. 새벽5시에 일어나니 눈이 내리고 있더군요. 처음 인력소개소 가는 날인데.. 칼바람을 뚫고 가니 5시 15분. 가니까 저 혼자 아직 셔터도 열지 않은 인력사무소에서 혼자 담배를 피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인력소 아저씨 나오고..슬슬 저처럼 일감찾는 하루살이 고단한 삶을 사시는 분들이 오시더군요. 다들 연륜과 경력이 있어셔서 금방금방 나가시는데....25살 건장한 저를 사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더군요. 그래서 돌아가려는데 인력소 사장님이 어떤 업자분을 붙잡고 이러시더군요.
" 이 총각이 가장 먼저 나온 사람인데 일감 안주면 내가 미안할꺼 같아. 젊은 사람이 사연이 있어서 온 거 같은데...데려가주면 안되겠나?"
그렇게 해서 일당 6만원에 팔려간 저는 그날 하루종일 오함마질과 삽질에 온몸에 멍이 들었습니다. 몸의 고단함보다는 몇권의 책을 살 수있다는 희망에 힘든 줄도 몰랐습니다.
06년도 새책나왔다고 얼마 보지도 않은 후배의 05년도 책을 몇권 얻어오고 노가다 일당으로 받은 책 몇권 사서...그날부터 공부시작했습니다. 집 도서관...점심시간되면 운동삼아 집에 점심을 먹으러 다녔고 저녁도 마찬가지로...이런 식으로 공부를 하고 5개월간 책만 들이파고 시험보고...드디어 최종합격까지 나더군요. 그날 얼마나 좋았는 지 모릅니다. 부모님은 자식의 성공보다도 충분한 뒷바라지를 못했는데 원망도 하지 않고 묵묵히 공부한 아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아들은 공부를 핑계로 어려운 집안형편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못한 미안함 때문에...하지만 직장인이 되었다는 성취감 때문에 그날 저희집은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합격발표하고 나서 한달 후...만날 사람 만나고 어느 정도 안정을 취하고 발령까지 시간이 있어서 물류센터에 나가서 일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부잣집에 태어났다면, 아니 최소한 집에 빚이 없다거나 그냥 어느정도 사는 집이라면 대기발령기간에 일주일이라도 해외 여행이나 그런 걸 다녀오겠지만 벌써부터 발급된 신용카드로 집안의 공과금과 동생 고등학교 납부금 내는 게 저희집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차비가 아까워 걸어다니고 그걸 안타까워 하는 부모님에겐 운동삼아 일부러 걷는닫고 애써 말하고...같이 시켜먹는 밥 3000원이 아까워서 부모님에겐 매일매일 시켜먹는 게 지겹고 물려서 집밥이 먹고 싶다고 도시락 싸가지고 다닙니다.
어제는 110만원이란 월급을 받고 정말...집에 걸어오는 동안 눈물이 나더군요. 군대까지 갔다온 사내자식이 고작 이런 일로 울다니...하지만 진짜 겪어 보지 않으신 분들은 제 심정을 모를 겁니다. 서글픔, 기쁨, 희망, 만족 그 모든게 섞인 눈물이었으니까요.
어젠 간만에 객기를 부려 동네 순대국밥집에 갔습니다. 뜨거운 국밥에 소주 한병 마시니 6000원이 나왔더군요. 식당 주인아주머니께서 " 우리 아들 공무원 됐는데 내가 술 한병 못 주겠어?" 하시며 소주값 3000원 안받으신다는 걸 끝내 드리고 왔습니다. 그분들이나 저나 피차 어려운 건 마찬가지인데 3000원이란 돈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저는 알기 때문이죠....
그냥...잠시 쉬는 짬을 내 봐서 자랑 겸 올려봤습니다. 추운 겨울인데 다들 옷 따뜻하게 입고 다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