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족 빠지면 다시 고정시켜 뛰고 또 뛰고

맹츄 작성일 06.12.04 04:2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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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안보이고 귀가 들리지 않고, 팔과 다리 한쪽이 없는 탓에 나들이가 힘들었던 장애인들이 오랜 만에 먼 나들이에 나섰다. 영화 <말아톤>의 모델이 된 발달장애인 배형진(23)씨를 비롯해 8명의 장애인들이 3일 열린 싱가포르국제마라톤에 참가해 힘차게 달렸다.

한 두 명의 장애인이 외국에서 열린 국제마라톤대회에 참가해온 적은 있지만, 다양한 유형의 장애인들이 집단적으로 참여한 것은 처음이다. 장애인 재활병원 건립을 추진하는 푸르메재단이 에쓰오일의 후원으로, 달리기를 꿈꾸는 다양한 유형의 장애인들을 국제마라톤에 참가시키기로 해 올해 첫번째 사업이 시작된 것이다.

배씨를 비롯해 시각장애인 차승우(42) 유정하(60) 황재선(41)씨, 절단장애 천기식(47) 백남민(28)씨, 청각장애 이승찬(18) 유은경(20)씨가 한국에서 함께 온 도우미들과 함께 풀·하프·10km 등 자신과 약속한 레이스를 완주했다. 적도와 가까운 싱가포르는 고온다습한 기후로, 좋은 기록이 나오는 마라톤대회가 아니다. 싱가포르국제마라톤은 사하라·나이로비·뭄바이 등에서 열리는 대회 등과 함께 그 특별함이 매력인 대회다. 마라톤 마니아들도 높은 습도와 더위 탓에 힘들어하는 대회였지만 이날 대회에 참석한 장애인들에게 더위는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한국사회에서 온몸으로 겪어오던 각자의 장애와 사회적 편견에 비하면 열대의 더위는 힘든 게 아니었다.

사고로 다리가 절단돼 의족을 한 백남민씨는 평소 상체운동만을 해오다 이번에 10km 달리기에 참가했다. 백씨는 “뛰면 땀이 나서 의족이 빠지기 때문에 사고 이후 거의 뛰어본 적이 없다”며 “이번이 사실상 처음 먼거리를 뛰는 셈”이라고 말했다. 더운 날씨에 뛰다보니 땀이 나서 자꾸 의족이 빠졌고, 그때마다 다시 의족을 고정시키고 뛰었다. 10km를 뛰자면 백씨의 의족은 1만여번, 몸무게의 3배에 이르는 충격을 받는다. 달리기가 끝난 뒤 조심했지만 백씨의 다리 환부는 의족에 쓸려 상처가 났다. 귀국하면 의족의 이상여부도 점검해야 한다. 하지만 달리기를 마치고 난 백씨의 표정은 밝고 목소리는 자신감과 활력이 넘쳐났다. 백씨는 “의족을 하고 힘들게 뛰는 나에게 외국인 수백명이 ‘유 베스트’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렸다”며 “태어난 이후 가장 많은 사람들로부터 뜨거운 격려를 받았다”고 말했다. 배형진씨는 낯선 외국에서의 달리기에 긴장했다. 배씨의 어머니 박미경씨는 “형진이가 뛰기 전에 평소보다 불안해했지만 더위에 힘들어 한 것을 빼고는 잘 달렸다”고 말했다.

푸르메재단 최병훈 간사는 “앞으로도 장애인들의 재활의지를 돕고 꿈을 이뤄줄 수 있는 다양한 사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고, 에쓰오일쪽도 “기업의 사회공헌 차원에서 뜻깊은 행사를 지속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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