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거룩한 주님의 강림절에 하나님께서는 장기려 박사님을 영원한 안식의 자리로 불러 가셨습니다.
이 땅에 남은 저희는 육의 이별을 한없이 슬퍼하고 있어 박사님의 영혼은 주님의 기뻐하심 속에 주님 품안에서 감격과 기쁨의 찬송을 부르고 계실 줄 믿습니다.
저는 15년 전에 박사님의 주옥같은 글들과 주변 명사들의 ´내가 아는 장기려 박사´라는 주제의 글을 모아 ´생명과 사랑´, ´평화와 사랑´ ´장기려 회고록´을 펴낸 바 있어서 박사님의 티 없는 인격적 삶을 나름대로 가까이 배울 수 있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오병세 고신대 총장님은 장기려 박사님을 가리켜 ´찬송의 바람´ ´겸손의 사람´ ´사랑의 사람´ 곧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일컬은 바 있는데 참으로 정확한 표현이라 생각됩니다.
장 박사님은 평생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셨기 때문에 어린아이와 같은 티 없이 맑은 마음으로 기쁨의 찬송, 감사의 찬송, 헌신의 찬송을 부르셨습니다. 또한 간증의 기회만 있으면 나는 어려서 다른 아이 팽이가 탐이 나서 훔쳤던 것을 부흥회 때 죄로 깨닫고 회개한 후 1전인가 2전을 그 아이에게 준 적이 있다는 고백이 생각납니다. 사춘기 때 친구들과 어울려 화투를 치다가 야단맞고 회개한 일, 극장에 갔다가 어른한테 야단맞고 회개한 일, 일제 때 대답을 잘 안하고 일본 간호원의 뺨을 때렸다가 그녀가 신병으로 누워서 그대로 죽은 후 크게 회개하고 평생 남을 미워하거나 욕하지 않겠다던 말씀도 기억납니다.
참으로 겸손이 몸에 밴 장로님이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분은 사랑하는 재미로 인생을 즐겁게 사셨습니다. 부산 피난 시절에 돈 없이 시작한 복음병원에서 전종휘 박사님은 내과를 맡고 장 박사님은 외과를 맡으셨는데 전 박사님은 가족이 많은데 비해 당신께서는 아드님 한 분만 데리고 남하하셨기 때문에 가족 수에 비례해서 월급을 나누어 가졌습니다.
그 후 부산 청십자병원을 운영할 때에는 환자들에게 줄 약품이 없어서 마침 스웨덴 병원에서 기증받은 비타민 정제를 무료로 주었더니 신기하게도 만병통치의 효과를 거두었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뿐만 아니라 한국의 의료보험제도가 수립되기 전에 장 박사님은 서민들에게 담배 한 갑의 회비를 받고 의료보험을 실시하여 모두가 실패할 것으로 믿었는데 기적적으로 성공하여 마침내 정부에서 의료보험을 실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유명한 것은 환자들이 돈이 없어 퇴원을 못하는 사정을 알면 원장님만 붙들고 사정하면 누구나 무료로 퇴원하는 사례가 많았다고 합니다.
마침내 담당 직원들의 간청에 못 이겨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 한 후부터는 당신의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주면서 퇴원수속을 밟게 하였습니다.
한 번은 거창에 사는 젊은이가 큰 수술을 마쳤으나 수술비가 없어 퇴원을 못하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밤중에 몰래 집으로 돌아가게.˝ ˝벼룩도 낯짝이 있지 어이 그리 하겠습니까?˝ ˝그럼 어쩌나. 자네 치료는 다 마쳤으니 몰래라도 집에 가서 일해야 자네 가족이 먹고살겠고, 돈을 벌면 그때 갚으면 될 게 아닌가.˝ 참으로 사랑의 사람이십니다.
이제 장기려 박사님은 천국에 계시지만 당신의 사랑은 우리 모두의 삶을 진실과 사랑의 삶으로 바꾸어 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아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