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이라는 이름의 민들레 홀씨 -펌-
#1 <프롤로그>
7월의 시골길을 걸어 갑니다.
천지간의 모든 만물이 푸르른 생명감으로 가득합니다.
울퉁 불퉁한 신작로 길을 따라
이렇게도 한가로운 시골길을 걸어 갑니다.
길 섶에는 수 많은 야생화들이 앞 다투어 피어 있습니다.
흰 색, 노랑 색, 그리고 빨강과 보랏 빛 등,
저마다의 고운 빛깔과 예쁜 자태를 뽐 내듯
흐드러지게 피어 난 들꽃들을
이리도 한가로운 시골길에서 마주 합니다.
그러다가 문득 어느 한 곳에 눈길을 보내 봅니다.
가녀린 줄기끝에 동그마하니 예쁜 모습을 한
하얀 민들레 홀씨를 바라 봅니다.
#2 <탄생>
지난 겨울, 꽁꽁 얼어 붙었던 그 땅 속에서도
모진 생명의 끈을 놓지 않은 채
잘도 견디어 준 민들레 뿌리였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성 스럽기까지 한 생명의 원천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나 혹독한 동토에서도
끈질긴 생명의 호흡을 가다듬던 민들레는
계절이 바뀌면서 얼었던 땅이 녹음에
그 단단하던 대지의 표피를 뚫고
연 녹색 가녀린 싹을 틔웠습니다.
#3 <성장>
땅 위의 세상은 아름다웠습니다.
푸른 하늘과,
그 아래로 불어오는 봄 바람은 싱그러웠습니다.
온갖 새들의 지저귐 따라 벌과 나비는 춤을 추었습니다.
민들레 어린 싹은 이리도 황홀한 세상을 바라봄에
그 겨울 혹독했던 시련을 잘도 참아 낸 자신의 인내에
무한 한 감사를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
그리도 어렵사리 싹을 틔운 민들레에게
땅 위의 아름답기만 하던 세상은
때때로 사납고 무서운 모습으로
자신의 여리고 약한 몸뚱아리를 거세게 휘둘러 짓이겼습니다.
남녘에서 불어오는 빗기 머금은 거센 바람은
연약한 자신의 작은 몸뚱아리를 사납고 거칠게 흔들어 대었고,
온 세상을 집어 삼킬듯한 천둥의 굉음과
번쩍이는 번개 불빛을 따라
장대처럼 쏟아져 내리는 빗줄기 앞에서는
차라리 자신의 약한 몸뚱아리가
갈갈이 찢기워 지는듯한 아픔도 느꼈습니다.
너무도 큰 고통에
때로는 자신의 삶 자체를 포기하고도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는 없었습니다.
주어진 자신의 삶에 감사하고,
주어진 자신의 삶에 충실하고저
민들레는 그 모진 세파에도 아랑곳 없이
꿋꿋이, 그리고 조용히 견뎌내고 있었습니다.
#4 <양육>
몇 차롄지 모를 혹독한 시련을 거치는 사이
민들레는 자신의 가지끝에 조그만 꽃을 피웠습니다.
어느 듯 민들레는,
조그맣지만
예쁘기 그지없는 꽃을 피울만큼 성숙되어 있었습니다.
민들레는,
자신의 몸에서 피어 난 꽃을 위하여 온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땅 속에 깊이 박힌 튼튼한 뿌리를 통하여
달콤하고 맛있는 영양분을 끊임없이 빨아 들이고,
그렇게 빨아올린 영양분은 아낌없이 꽃에게 먹였습니다.
꽃은 그렇게,
끝없이 올려주는 대궁이의 영양분을 받아 먹으며
무럭 무럭 자랄 수 있었습니다.
#5 <황혼>
수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민들레 대궁이도
흐르는 세월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나 봅니다.
푸르고 싱싱하던 대궁이가
어느 듯 누르스름하게 물 들어 갑니다.
탄력있던 겉 껍질에도
드문 드문 깊은 주름이 보입니다.
민들레는 문득
자신의 가지끝에 매달렸던 꽃잎을 바라 봅니다.
그러나 어느샌가 그 예쁘던 꽃잎은 떨어지고,
꽃잎이 머물렀던 그 자리에는
하아얀 홀씨만이 동그마니 모여 있습니다.
민들레는 생각합니다.
지난 날 자신이 그러했듯이
이 홀씨들도
언젠가는 역시 그렇게 자신의 곁을 떠나 가겠지.
저들이 가고픈 곳,
저들이 원하는 새로운 삶을 찾아
또 그렇게 떠나 가겠지.
#6 <이별의 서곡>
나뭇잎을 간지럽히는 바람이 불어 옵니다.
그 바람은 어디에서 오는지,
또한 어디메로 가는지조차 알 수가 없습니다.
그 바람은 ....
나뭇잎 사이를 지나고 골짜기를 내려와 물을 건너서
어느 듯 민들레 홀씨에게도 찾아 왔습니다.
민들레 홀씨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이 바람은 자신을 데리러 왔다는것을....
자신의 운명은 이 바람이 가는대로
이 바람을 따라
떠날 수 밖에 없도록 정해져 있다는것을....
한 평생을 자신만을 위하며 살아 준
대궁이와의 이별이 한 없이 슬플지라도,
오로지 자신만을 위하며 한 평생을 살아 준 대궁이 역시
자신과의 이별에 한 없이 슬픈 울음을 울 지라도,
자신은 이 바람을 따라,
어딘지 알수없는 미지의 땅을 찾아가기 위하여,
아프지만 모진 마음으로
대궁이와의 이별을 거부할 수 없다는것을 ....
#7 <이별, 그리고 희망>
다시 또 바람이 불어옵니다.
민들레 홀씨는 이 바람을 따르기로 결심을 합니다.
바람의 손길은 따뜻합니다.
바람의 품 속은 아늑합니다.
민들레 홀씨는 바람의 품 속에다
자신의 작은 몸을 가만히 맡겨 봅니다.
이제는 정말 대궁이를 떠나야 할 시간입니다.
자신의 몸에서 떠나 갈 준비를 하는 홀씨를 보며
대궁이는 여지껏 잡고있던 자신의 손에서 홀씨를 놓아줍니다.
이별은 슬프지만
그 또한 참아야만 합니다.
자신이 그토록이나 사랑했던 홀씨는,
그래서 자신의 온 생애를 다 바쳐 키워왔던 홀씨는,
그에게 다가올 새로운 미래의 삶과 희망을 찾아,
저 바람을 따라 떠나가야 함을
대궁이는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민들레 홀씨는 대궁이와의 이별에 너무 서러워
대궁이를 다시 한번 보려 하지만
바람은 어느 새 하늘높이 먼 곳으로 날아 오릅니다.
홀씨는 바람을 타고 날아 갑니다.
어딘지 모를 미지의 땅을 찾아서,
새로운 자신을 가꾸어 나갈 무언지 모를,
아직은 정립조차 되지 아니한
또 다른 자신의 희망을 찾아서,
둥 둥 두둥실....
이미 늙어버린 가엾은 대궁이는
그런 홀씨를 하염없이 바라 봅니다.
바람이 가는대로,
바람을 따라,
바람과 함께 떠나가는,
자식이라는 이름의 민들레 홀씨가
그 모습이 보이지 않을때까지.
늙은 대궁이는 조용히 눈을 감습니다.
그리고는 혼잣말처럼 중얼댑니다.
"그래, 가거라.
사랑하는 내 아가야 부디 잘 가거라."
눈을 감고 기도하는 늙은 대궁이의 야윈 어깨위로
'사르락 사르락'
한 움큼의 찬 이슬이
새벽 별빛을 따라 조용히 내려앉고 있습니다.
#8 <에필로그>
제게도 두개의 민들레 홀씨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하나는 이미 삼년전에
아버지라는 이름의 이 대궁이를 떠나 갔습니다.
어딘지 예측할 수 없는 미지의 땅으로....
또 다른 자신의 삶을 꾸려나갈 새로운 희망의 땅을찾아....
이제 제게는 단 하나의 민들레 홀씨만이 남아 있습니다.
그 홀씨도 언젠가는 제 곁을 떠나겠지요.
자신의 미래를 찾아,
자신의 꿈을 좇아.
그다지 멀지 않은 장래에 말입니다.
아니 어쩌면 이미 오래 전,
아버지라는 이름의 이 슬픈 대궁이를 떠날 준비가
이미 마쳐 졌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