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법 고백/박상천
사랑 고백을
해 본 사람은 안다.
그 한마디를 입에서 꺼내기가 얼마나 어려운 지를.
사랑 고백을 해 본 사람은 안다.
김승옥이 무진기행에서
<'사랑한다'라는 그 국어의 어색함>
이라고 했던 의미를.
고등학교 시절
나는 그녀에게 고백하고 싶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가슴에 눌러둔 그 한마디를 하지 못하면
말 그대로 죽어버릴 것 같았다.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 주며
그 한마디를 하고 싶었지만
입 안의 침만 마를 뿐,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
얼굴이 희미하게 보이는
어두운 골목길에 이르러
그녀에게 고백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면 어쩌겠니.'
오, 어리석었던
가정법 고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