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내려앉는 시

킥오프넘 작성일 11.02.12 21:2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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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법 고백/박상천

 

사랑 고백을
해 본 사람은 안다.
그 한마디를 입에서 꺼내기가 얼마나 어려운 지를.

 

사랑 고백을 해 본 사람은 안다.
김승옥이 무진기행에서

 

<'사랑한다'라는 그 국어의 어색함>
이라고 했던 의미를.

 

고등학교 시절

 

나는 그녀에게 고백하고 싶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가슴에 눌러둔 그 한마디를 하지 못하면
말 그대로 죽어버릴 것 같았다.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 주며
그 한마디를 하고 싶었지만
입 안의 침만 마를 뿐,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

 

얼굴이 희미하게 보이는
어두운 골목길에 이르러
그녀에게 고백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면 어쩌겠니.'

 

오, 어리석었던
가정법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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