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좀 들었나 보다. 신체검사가 잦아진다. 고혈압이라고, 당뇨증세가 있다고, 심근경색기가 있다고.
점점 약 보따리가 늘어간다. 때로는 어떤 약을 먹었는지, 약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헷갈리고 어떤 때는 약을 하루에 두
차례나 먹기도 한다. 아무래도 나이가 들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하나 보다. 분리수거처럼. 이유는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니까 말이다.
이럴 때는 다시 옛날로 나를 되돌려 보낸다. 길고 긴 필름을 되돌려 본다. 가난한 어린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마냥 그립기만 하다. 6남매가 조그만 쪽방에서 청하던 잠. " 킥킥~ 쿡쿡~ 까르르~ " 베개가 여기저기로
날아다니고 다듬어 지지 않은 웃음들이 피아노 건반처럼 옮겨 다니던 유년. 아 그때가 그립다.
그러고 보면 늙어가는
맛도 제법 있다. 옛날 필름들을 돌려보는 재미는 물론 그것으로 행복을 느끼니 말이다. 늙음은 가끔 쓸쓸해도 이렇게 웃으며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