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플루가 유행하던 해 가을, 감기로 동네 병원에 들렀다가 출입문과 창구에 붙은 메모를 발견했다.
그달 말일까지 진료하고 문을 닫는다는 내용이었다.
메모를 읽는 순간,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갓난아기 때부터 병원에 다닌 내가 어느새 서른일곱이니 [김○○소아과]가 참 오래되긴 했다.
모델 하우스 같이 세련된 인테리어로 환자를 맞는 여느 병원들 틈에서 지금껏 컴퓨터 없이 손으로 진료 카드를 쓰니 말이다.
병원 간판이 사십 년을 넘기는 사이 잔병치레로 병원을 내 집처럼 드나들던 아기는 유치원에 입학하고, 생리를 시작하고, 글
을 써서 밥벌이를 하게 되었다.
더 이상 소아과에 갈 나이는 아니지만, 앙앙 울어 대는 아기들로 시끄러운 대기실에서 차례를 기다렸다.
그날 저녁, 나는 병원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전했다.
부모님과 아흔넷의 할머니 역시 '소아'가 아니지만 여전히 [김○○소아과]에 다니고, 고혈압 약을 처방 받으셨다.
“그 양반이 일을 그만두시면, 우린 어느 병원으로 가냐.”
할머니는 한숨을 쉬셨다.
동네에 내과와 가정의학과만 해도 여러 곳인데 그랬다.
“말일께 병원에 인사라도 다녀와야겠네요.”
엄마 말씀대로 말일 무렵 외출하면서 병원에 들렀다.
부모님과 할머니는 다음 날 가시겠다고 했다.
십여 년 전부터 환자가 급격히 줄어 간호사가 한 명밖에 없는 병원 대기실은 그날도 텅 비었다.
“오늘은 어디가 아파?”
책상 앞에 구부정하게 앉은 의사 선생님에게, 나는 그냥 감사 인사를 드리러 왔다고, 오늘은 아픈 데가 없다고 했다.
실력은 알아줘도 말수 없기로 동네에 소문난 의사 선생님은 삼십 년 전과 똑같이
“키가 아주 컸어. 미스 코리아 대회 나가도 되겠어.”
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 나이에 무슨 수로 미스 코리아 대회에 나가느냐고 말대꾸하지 않았다.
“시집은 안 가?”, “글 쓴다고 했나?”
의사 선생님의 짧은 질문에 또박또박 답하지도 못했다.
돋보기를 쓴 의사 선생님 눈에 눈물이 맺힌 것처럼 보인 건
어쩌면 내 눈에서 자꾸만 눈물이 흘러내렸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