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입대하는 날이었어요.
가족 모두 밤잠을 설친 뒤, 아침 일찍 경주에서 춘천까지 가는 버스를 탔어요.
춘천 보충대에 도착한 우리는 디지털카메라를 꺼내 아들의 모습을 담고, 입소하기 전 가족사진도 찍었어요.
어느덧 입소식이 끝나고 안타까운 마음에 아들도, 나도, 딸도 울었습니다.
과묵한 남편도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아들을 꼭 안아주고 돌아섰습니다.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카메라를 꺼내 조금 전 찍은 아들 사진과 동영상을 보니 또다시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렇게 늦은 밤 집에 도착해서 가방을 정리하지도 못하고 곯아떨어졌습니다.
다음날 아침, 가방을 열어보니 아뿔싸! 카메라가 없었어요.
아무래도 버스에 떨어뜨린 것 같아 기사님에게 전화했지만 카메라는 없다고 하셨어요.
다시 한번 잘 찾아봐달라고 부탁드렸으나 돌아온 대답은 “없습니다.”였어요.
휴게소에서는 꺼내지도 않았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죠.
카메라를 잃어버린 것보다 아들 사진을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너무 속상했습니다.
며칠 뒤, 고등학생이던 딸이 “여름방학인데 놀러 안 가나?” 하는 거예요.
그동안 군에 간 아들에게 온통 정신이 팔려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가까운 해운대라도 다녀오자!” 하고는 단숨에 출발했습니다.
도착해서 바다를 구경하고 근처 식당에 갔습니다.
직원이 자리를 안내해 주었는데, 마침 밝은 창가 자리가 비어서 옮겨 앉았어요.
그러고는 창 밖을 무심코 쳐다보는데, 글쎄 아들이 입대할 때 탔던 버스가 도로변에 세워진 게 아니겠어요?
그날 몇 번이나 차번호를 확인하며 탔기 때문에 한눈에 알아봤죠.
경주도 아닌 부산에서 그 버스를 다시 만날 줄 몰랐습니다.
그제야 '아차! 카메라가 의자 밑으로 떨어졌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버스로 뛰어갔어요.
기사님에게 인사하고 차에 올라가서 의자를 들추니 세상에나!
카메라가 있는 거예요.
기사님은 그동안 서울도 오가고, 오늘은 유치원생들을 태웠는데 그대로 있는 게 신기하다며 크게 웃으셨어요.
카메라를 들고 식당으로 돌아와 아들 사진과 동영상을 보며 울고 웃었답니다.
내 평생 다시 경험하지 못할 우연의 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