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 년의 서울생활을 접고 시골 밤골에 내려가 산적 있다.
몸과 마음이 지친 나는 그곳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하듯 살았다.
쓰러져가는 낡은 농가에서 꿈도 희망도 없이 때까우(거위)와 기러기, 토끼, 닭, 강아지를 키우며 살았다.
때때로 옆집 오리 막에 가서 오리 울음소리를 듣곤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삶의 극단이 숨통을 조여 왔다.
그럴 때마다 무작정 산과 들을 헤맸다.
그 무렵 나도 모르게 혼자 중얼거리는 습관이 생겼다.
무엇에게나 말을 거는 것이었다.
어쩌다 찾아오는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보고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런 날들이 계속되던 어느 겨울이었다.
대설을 며칠 남겨두지 않은 저녁, 나는 뜻하지 않은 손님을 맞았다.
바로 커다란 쥐 한 마리가 내 방으로 쫓기듯 들어온 것이었다.
오줌이 마려워 방문을 여는 순간 벌어진 일이었다.
그 시커먼 쥐가 방안이 아닌, 내 옷 안으로 뛰어든 것처럼 기겁했다.
쥐 생각 때문에 그날 저녁은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기 무섭게 장에 가서 쥐덫을 사왔다.
그리고 보란 듯이 쥐덫에 고구마를 미끼로 놓았다.
나는 수풀 속에 숨어 먹이를 기다리는 맹수처럼 빨리 쥐가 잡히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하루 이틀이 지나도록 쥐는 잡히지 않았다.
대신 방안 여기저기 똥을 갈기고, 사진 액자를 바닥에 떨어뜨리는가 하면, 문설주를 갉아놓기도 했다.
이상한 건, 곰팡이 없는 보송보송한 벽지만 잘게 찢어 한쪽 구석에 쌓아놓은 거였다.
나는 혹시 쥐가 고구마를 싫어하는 건 아닌가 하고 멸치 몇 마리도 쥐덫 안에 넣어 두었다.
마당에 흰 눈이 가득 쌓인 삼 일째 되던 날 아침, 나는 조바심을 내며 와락 문을 열어젖혔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환호성이 튀어나왔다.
그동안 밤잠 설치게 한 커다란 쥐가 거짓말같이 쥐덫에 갇혔던 것이다.
그런데 쥐는 내 인기척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허겁지겁 고구마를 갉아먹었다.
더욱 놀라운 건 그 쇠창살 안에서 새끼를 낳은 거였다.
나는 그제야 쥐가 왜 추위를 피해 방안으로 들어왔으며, 한쪽 구석에 벽지와 나무 부스러기를 소복이 쌓아 놓았는지 깨달았다.
어미 쥐가 쥐덫 안에서 새끼 낳은 모습을 보고, 그 시절 내가 삶의 의지를 되찾았다고 하면 터무니없는 과장일까?
두려움에 떨던 어미 쥐의 까맣고 동그란 두 눈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