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에 한두 번, 내가 교직에 몸담을 때 모셨던 세 분의 선생님과 산행하고 밥 먹는 시간을 갖는다.
그분들이 정년퇴직하면서부터 시작해 지금 칠십 대 중반이 되셨으니 십 년이 넘은 모임이다.
등산이나 식사할 때, 혹은 술을 마실 적에 가장 많이 입에 오르는 화제는 자식이야기다.
자식의 승진, 그들로부터 받은 선물, 용돈, 그리고 외식, 함께한 여행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하도 들어서인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들을 옆에서 지켜보며 산 것처럼 꿰뚫을 정도다.
원래 모임은 네 분의 선생님과 시작했다.
그런데 한 분은 칠 년 전부터 함께하지 못 하신다.
네 분 중 체구도 가장 좋고, 목소리도 쩌렁쩌렁하셨다.
산에 오를 때는 항상 앞장서 훨훨 날다시피 하고, 음식을 왕성하게 드시고 술도 고래 급이었다.
그분은 유난히 자식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
뒷바라지도 제대로 못 해줬는데 명문대학에 입학한 뒤 대기업에 입사했다.
동료 중 가장 먼저 승진하고 중요한 부서 책임자가 되었다.
이 같은 이야기를 하실 때면 목소리가 한 옥타브(음정) 높아지고, 오직 자신만 훌륭한 아들을 둔 것처럼 어깨에 힘이 한껏 들어갔다.
그분의 모습은 마치 뿌리를 깊이 내린 거대한 나무 같았다.
폭풍우가 휘몰아쳐도 끄떡하지 않을.
칠 년 전이었다.
그분의 아들에게 일이 생겼다.
회사의 핵심 기술 자료를 빼내 해외에 유출시킨 것이었다.
너무나 큰 비리라서 구속 수감되었다.
아들만이 삶의 희망인 선생님에게 그 사건은 청천벽력이었을 것이다.
선생님은 무너져 내렸고 회복하지 못한 채 저세상으로 떠나시고 말았다.
그렇게 당당하고 뿌리 깊은 나무 같던 분이…….
아들은 몰랐을까?
아버지는 자신의 뿌리라는 것을.
자신의 잘못이 뿌리를 흔들고, 병들게 하고, 생명을 다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주위를 둘러보면 많은 사람이 자식 때문에 온 세상을 얻은 것처럼 어깨를 펴기도, 온갖 고통을 짊어진 것처럼 풀이 죽어 살기도 한다.
나는 안다.
모임을 함께하는 세 분의 선생님이 연세에 걸맞지 않게 건강하고 넉넉한 마음을 지니신 것은 전적으로 자식들이 좋은 생각을 지니고 열심히 살아가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그분들이 오래오래 뿌리 깊은 나무로 있어 주시길 염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