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따라 진눈깨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시계를 보니 오후 다섯 시, 날씨도 시각도 술맛 당기게 했다. 아내와 골목 시장의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서니 늙은 주모가 눈웃음으로 맞이했다. 의자에 걸터앉자 술청 위에 막걸리 주전자가 놓였다.
벽에는 돼지 국밥, 술국, 파전, 두부 김치라고 갈겨쓴 차림표가 걸렸다. 다른 집보다 값이 쌌다. 아내가 술국과 파전을 주문했다.
옆자리에는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들이 시래기를 넣고 푹 끓인 돼지 국밥에 막걸리 잔을 기울였다. 한 대여섯 분 됐다. 입성이 추레했다. 이 추운 겨울에 얇고 해진 잠바를 입었다. 후후 불며 국물을 떠먹는 어르신들 콧잔등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다. 보글보글 끓는 국 한 사발이 꽁꽁 언 어르신들 마음을 확 풀어 주리라.
식당 한가운데에는 시커먼 화목(火木) 난로가 놓였다. 요즈음 세상에 전기나 기름 난로가 아닌 장작 난로라니……. 떡 벌어진 난로 아가리에 장작불이 활활 타올랐다.
유년 시절, 전깃불도 들어오지 않는 산골 마을에서 겨울철 새벽을 맞노라면 추위에 온몸이 옹동고라졌다. 방구들의 온기는 금세 사그라지고 없었다.
그 시각 아버지는 쇠죽을 끓이러, 어머니는 아침밥을 지으러 나갔다. 마려운 오줌을 참으며 아랫목 이불 속으로 파고드는 그때, 부엌 창호 틈 사이로 매캐한 연기가 들어왔다.
이어 “캑캑!” 어머니 기침 소리도 들려왔다. 포슬눈에 젖은 솔가리에 성냥불을 긋고 입을 동그랗게 모아 훅훅 불다 사레들린 것이었다.
눈 덮인 지붕 위 굴뚝 연기가 너울거리면 어머니는 아궁이 앞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어린 자식들 추위에 떨지 않게 하려고 밤늦도록 해진 옷을 꿰매다 새벽녘에 잠깐 눈을 붙였기 때문이다.
구수한 밥 냄새가 날 즈음이면 장작불은 사위어 가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광에 있는 고구마를 꺼내 잉걸불에 집어넣었다. 속이 노랗게 익은 군고구마를 뚝 잘라 자식들 입에 넣어 주던 어머니 가슴에서는 늘 향긋한 솔가지 냄새가 났다.
“마, 그냥 가이소!”
“그러면 미안해서 안 돼. 천 원짜리 한 장이라도 주고 가야지.”
갑자기 식당 안이 시끌벅적했다. 옆자리 어르신들의 식사가 끝난 모양이었다. 작대기를 짚은 어르신이 천 원을 건넸다. 다른 사람들도 줄줄이 천 원을 냈다. 벽에는 “돼지 국밥 오천 원, 막걸리 이천 원.”이라고 적혔는데 천 원이라니.
“그냥 가시라 캐도, 고집은.”
돈을 받아 헐렁한 고무줄 바지 주머니에 넣는 할머니 얼굴에 애처로움이 가득 담겼다.
“설움 중에 가장 큰 설움은 배고픈 설움이지…….”
활활 타오르던 장작불이 사그라졌다. 장작불도 ‘할머니표 국밥’으로 속을 채운 어르신들을 따라가 버린 모양이었다. 빨간 잉걸불만 남았다.
할머니가 고구마 서너 개를 잉걸불 속에 넣었다. 바깥을 보니 진눈깨비가 그쳤다. 땅거미가 시장 골목에 깔리기 시작했다. 아내가 이제 그만 가자며 일어섰다. 그때 할머니가 군고구마 두 개를 우리 손에 쥐어 줬다. 갑자기 울컥! 목울대가 치솟았다. 그 옛날 잉걸불에 구운 고구마를 뚝 잘라 입에 넣어 주던 어머니가 생각나서 눈물이 핑 돌았다.
<좋은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