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친구를 만나면 더욱 친밀하게 대하여 우정을 새롭게 하여야 하고, 비밀스런 일일수록 마음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야 한다. 그리고 불운한 사람을 만났을 때에는 온정과 예절을 더욱 정성스럽게 가져야 한다.
조선 순조 때에 영의정을 지낸 서매수(徐邁修)는 나라의 기강과 법을 바로잡고 청렴결백한 정승으로 이름이 높았다.
그가 판서로 있을 때였는데 어느 날 옛 글방 친구가 찾아와 벼슬자리를 하나 주선해 주기를 간청했다.
그러나 서매수는 그를 친구로서는 극진히 대접했으나 친구의 벼슬자리 요청만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 친구는 뒤에도 몇 번 더 찾아와서 같은 부탁을 하며 행패마저 부리다가
그래도 서매수가 부탁을 들어주지 않자 아예 절교를 선언하고 나왔다.
"아무리 지금 내 꼴이 이렇지만 이래 봬도 나는 자네의 어렸을 적 친구가 아닌가?
친구를 이렇게 함부로 대하는 자네에게 실망했네, 이제부터 절교일세, 다시는 자네를 찾지 않겠네,"
"나도 자네에게 할 말이 있네, 내가 자네의 청을 선뜻 들어줄 수 없는 데에는 나름대로 까닭이 있네, 지금부터 20년 전일세,"
그러면서 서매수는 20년 전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20년 전 그들은 글방 동기생으로서 고향 근처의 어느 절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 친구 말고도 다른 한 친구와 셋이서 함께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 절 주지 스님이 서매수에게 잘 익은 홍시 세 개를 주었다.
서매수는 자기 몫으로 하나를 남기고 두 개를 그 친구에게 넘겨주었는데,
그 친구는 두 개를 제가 다 먹어버리고 다른 친구에게는 주지 않았다.
서매수는 그 일에 대해 매우 분개하여 마음속 깊이 접어두었다.
그때 그 일로 해서 그 친구의 청을 번번이 거절했던 것이었다.
당시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서매수는 이렇게 덧붙였다.
"내 생각이 옳고 그른 것은 자네 판단에 맡기겠네만,
내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것은 꼭 한 가지 자네의 욕심 많은 점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네,
자네도 그 일을 기억 못 한다고는 못할 것일세,"
"자네 같은 재주로 하자고 하면 적어도 한 고을의 수령쯤은 넉넉히 해내겠지만,
그렇게 되어 자칫 백성들을 괴롭힌다면 그 재앙을 어떻게 할 것인가?
난들 자네와의 우정이 왜 귀하지 않겠는가마는 자네가 이해하고,
대신 내 녹봉 중에서 얼마쯤 떼어 모은 돈이 좀 있으니 그거나마 받아주면 고맙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