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관련 시 2

녹조라떼 작성일 15.09.04 13:4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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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 들녘에 서서 

 



눈멀면
아름답지 않은 것 없고

귀먹으면
황홀치 않은 소리 있으랴

마음 버리면
모든 것이 가득하니

다 주어버리고
텅 빈 들녘에 서면

눈물겨운 마음자리도
스스로 빛이 나네.


(홍해리·시인, 1942-)

 

 

 




+ 가을이 오면



나무야
너처럼 가벼워지면

나무야
너처럼 헐벗겨지면

덕지덕지 자라난
슬픔의 비늘

쓰디쓰게
온통 떨구고 나면

이 세상 
넓은 캔버스 위에

단풍 빛으로 붉게
물감을 개어

내 님 얼굴 고스란히
그려보겠네

나무야
너처럼만 투명해지면 
(홍수희·시인)

 

 

 

 




+ 가을편지·1



하늘 향한 그리움에
눈이 맑아지고
사람 향한 그리움에
마음이 깊어지는 계절

순하고도 단호한
바람의 말에 귀 기울이며
삶을 사랑하고
사람을 용서하며
산길을 걷다 보면

톡, 하고 떨어지는
조그만 도토리 하나

내 안에 조심스레 익어가는
참회의 기도를 닮았네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가을에는



가을에는 잠시 여행을 떠날 일이다
그리 수선스러운 준비는 하지 말고
그리 가깝지도 그리 멀지도 않은 아무 데라도

가을은 스스로 높고 푸른 하늘
가을은 비움으로써 그윽한 산
가을은 침묵하여 깊은 바다

우리 모두의 마음도 그러하길

가을엔 혼자서 여행을 떠날 일이다
그리하여 찬찬히 가을을 들여다볼 일이다


(박제영·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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