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낡은 대형마트 뒤편.
큰 화물 엘리베이터 안에는 노숙자 같은 두 명이 게으른 자세로 누워서 올라 탈것을 권하는데
그 둘은 서로 옥신각신하고 있었고, 난 왠지 거리낌이 생겨 타기를 망설였다.
문이 열린 상태인데 천천히 엘리베이터가 올라간다.
그중 연장자로 보이는 사람이 손을 내미는데 그땐 왠지 꼭 타야만 할 것 같아서 아슬아슬하게 올랐다.
웬일인지 이 사람들은 말이 없다.
매우 낡은 건물이다. 아주 느리게 2층을 지나 3층에 왔는데 거기는 옥상이다.
그곳은 연극 극장으로 보인다. 들어가는 현관이 있고, 그 앞마당에는 백여 명 사람들이 모여 앉아있다.
낯익지만 기억나지 않는 군복 입은 청년은 자신을 모르겠냐며 아는 척을 하는데 전혀 모르겠다.
어리둥절한 사이 그 청년 손길에 따라 일행 속 한쪽에 걸터앉았다.
어? 뒷자리에는 수년간 소원했던 후배 한 명도 앉아 있네?
어색하게 인사를 해온다.
여긴 어딘가!
앉아 있는 군중 앞에는 극단 단원으로 보이는 남자 두 명이 분주히 떠들고 다닌다.
'아아 단원을 뽑는 오디션 보는 곳이구나!'
배우로 보였지만 입은 옷이 세련되지 못했는데 연극은 배고픈 직업이란 걸 짐작케 했다.
부르는 순서에 맞춰 현관에 들어갔다.
어둡고 좁은데 무대만 조명으로 약간 밝다.
나름 유명해 보이는 배우들 셋이 할머니, 엄마, 아버지 역할에 몰입하고 있다.
분위기는 마치 사이코 드라마와 비슷한 느낌이다.
우리는 한 명씩 올라가서 그들과 직접 연극을 해야만 했는데 그것이 오디션인 것이다.
할머니 역할 배우가 인상적인데 다양한 표정과 듣기 좋은 억양으로 관객을 휘어잡는다.
'역시 프로는 다르구나'
어떤 참가자는 잘해서 합격을 받았고, 긴장으로 뻣뻣했던 이는 떨어졌다.
'아! 여기 단원이 된다면 일에 구애 없이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든다.
내가 무대에 오르자 몇 마디도 못하고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다행을 느끼면서도 섭섭한 감정이 드는 건 뭔지..
오늘 아침 있었던 꿈 이야기다.
어렸을 때 울렁증이 매우 심한 학생이었다. 친구들이라도 앞에만 서면 말을 잘 하지 못했다.
그땐 거의 다 그럴 때지만 그래도 난 조금 더 그런 거 같다.
고교 ymca라는 서클을 하고 있었는데..
방학 때면 축제를 열어 준비한 노래며 콩트, 모의법정과 사물놀이 등 다양한 무대를 만들었다.
행사 이름은 지금 들어도 멋진 [전통과 현대의 만남].
알 수 없는 선배부터 내려온 이름이라 누가 지었는지는 모른다.
당시 선배들이 이끄는 대로 연극에 참여했던 경험은 너무도 소중하다.
울렁증이 있던 나는 당일이 되니 너무 떨었다.
정작 무대는 오르니 밝은 조명 바깥 객석이 잘 보이지 않았다.
사실 볼 여유도 없었지만.. 연습해온 대로 잘 외운 대사를 시작하면서 떨림은 점차 사라졌다.
연극 시간은 길지 않았고 내용도 유치했을 법하며 배우도 부족했지만
초청되었던 또래 학생 관객들 반응은 매우 뜨거웠다.
난 조연이다.
'부사장 승진에 떨어져 술 먹는 아버지', '껌팔이' 역같은 걸로 1인 3역을 맡았다.
역할상 퇴장과 재등장을 하는데 마치 우주의 시간에 빠졌던 것처럼 찰나같이 연극은 끝났다.
'울렁증은 어디 갔었을까? 수 없이 반복한 연습대로 흘러간 것일까?'
다 끝나고 모두 나와 손 잡고 인사를 하는데..
정말이지 가슴 벅차오르는 기분을 맛보았다.
30년 지나서 중년이 된 내가 기억할 정도니 무대의 맛은 아주 짜릿했겠지.
얼마 전부터 아마추어 연극배우에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기회가 된다면. 아니 누군가 구체적으로 손을 잡아 준다면 한 번쯤 해보고 싶다.
당연히 불가능하겠지만...
여건이 아쉽지만 지금 나이에 맞는 책임을 외면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고 하고 싶은 것을 못한다는 그 생각은 미련으로 남는 건가 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지..
오늘 비록 꿈이였지만 오디션에 도전을 했고, 또 떨어지니까
그 미련이 깨끗이 사라졌다는 거야!
뭔가를 하고싶고, 사고싶고, 이루고 싶다고 내 뜻대로 되는 게 몇 가지나 있을까?
미련으로 남는 이런것은 평소에 얌전히 침전돼 있지만 면역력이 약해지면 여러번 재발한다.
연극배우의 미련? 그런 것 중 하나였는지는 모르겠다.
내 속에 또 어떤 미련이 남아 있어서 마음이 약해지면 뚫고 올라올지 모르겠지만
주어진 현실이 감사하다는 걸 늘 품고 산다면 예방주사를 맞은것 처럼 찌꺼기 미련 따위는 버릴 수 있지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