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희생은 필요한거 아닌가요?

휴대호빵 작성일 18.12.21 23: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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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좋아하는 스님 말씀입니다^^

 


 

 

 

 

“스님께서 정*회와 시민단체 활동의 차이는 활동하는 과정에 활동가가 늘 행복한 것이라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위해 아무리 큰 일을 해도 그것이 누군가의 희생 위에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불교가 추구하는 바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반면 아무리 힘들어도 활동하는 사람에게 보람이 있다면 그 일은 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세상에 필요한 큰 일이나 어려운 일은 늘 누군가의 희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혹시 제가 ‘희생’이라는 것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 질문드립니다.

 

덧붙여서 아침 기도를 시작했는데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이 힘듭니다. 

 

스님께서는 전국을 다니시면서 강연과 강의를 하시는데, 특별히 건강 관리 비법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모두 웃음)”

 

 

 

  

 

 

두 번째 질문부터 대답을 할게요. 

 

서암 큰 스님께서 살아계실 때 여든이 넘으셔도 늘 건강하게 지내시니까 

 

어느 건강 잡지 기자가 찾아와서 건강의 비결이 무엇인지 여쭤본 적이 있어요. 

 

그때 서암 큰 스님께서 ‘건강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이렇게 대답하셨어요. 

 

이것으로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대신할게요. (모두 웃음)

 

희생에 대해서는, 나라를 잃었을 때 독립을 위해 희생하신 분들이 있어요, 없어요?”

 

“있어요.”

 

“민주화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 있어요, 없어요?”

 

“있어요.”

 

“또 부모가 자식을 위해 희생을 해요, 안 해요?”

 

“해요.”

 

“네. 다들 희생하셨습니다. 이러한 희생은 세상에서는 칭송하고 존경할만한 일입니다.

 

어떤 부모가 희생하면서 자식을 키웠는데, 그 자식이 사고만 치고 부모 속을 썩여요. 

 

부모가 그런 자식을 보고 ‘아이고, 내가 저런 자식을 왜 낳았나’ 이런 생각이 든다면, 

 

자기가 희생한 것에 대한 보람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없어요.”

 

“그럴 때 괴로울까요 안 괴로울까요?”

 

“괴로워요.”

 

“이렇게 괴로우면 수행이 아닙니다.

 

어떤 농부가 봄에 꽃놀이를 가느라 밭도 안 갈고 씨도 안 뿌려놓고, 

 

여름에는 수영 가느라 김도 안 메고 거름도 안 주면, 가을에 다른 사람들이 추수할 때 그 농부는 추수할 게 없어요.

 

이때, 하늘에 빌면서 ‘저도 추수할 곡식을 주세요’라고 한다고 곡식이 생기는 게 아니에요. 

 

이러한 사람을 범부 중생이라고 합니다. 

 

복을 짓지 않았으니 복 받을 일이 안 생깁니다.

 

여러분도 복을 안 지어놓고 복을 달라고 하잖아요. 이건 이치에 안 맞아요.

 

이치에 맞지 않으니 그런 기복은 허황된 일입니다.

 

이러한 것은 가만히 세상을 보면 그 이치를 알 수 있습니다. 

 

밭도 갈지 않고, 씨도 뿌리지 않고, 김도 메지 않고, 거름도 주지 않는데 어떻게 가을에 추수할 곡식이 있겠어요. 

 

그런데도 가을에 추수할 것이 있기를 바라면 괴로움이 생깁니다.

 

그런데 놀러 가고 싶더라도 참고, 봄에 밭 갈고 씨부리고, 여름에 김 메고 거름을 주면 가을에 추수할 게 있겠죠. 

 

이게 복을 짓고 복을 받는 거예요. 즉, 복을 받으려면 복을 지어야 하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가을에 추수를 하려면 빌게 아니라, 봄에 밭을 갈고 씨를 뿌려야 하는 거예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홍수가 나서 논밭에 작물들이 다 떠내려 가버린다면, 

 

밭도 안 갈고 씨도 안 뿌린 범부 중생이 더 괴로울까요, 

 

밭 갈고 씨 뿌리고 김 메고 거름을 열심히 준 사람이 더 괴로울까요?”

 

 

 

 

 

  

“열심히 준 사람이요.”

 

 

  

 

 

 

“이건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그러니 복을 짓고 복을 받는 것도 해탈의 길은 아닙니다. 

 

즉, 복을 짓고 복을 받는 것은 괴로움이 없는 경지로 나아가는 길은 아닙니다. 

 

다만 씨를 안 뿌리고 추수하기를 기대하는 사람보다 씨를 뿌리고 

 

추수하기를 기대하는 사람이 통상 덜 괴롭다고 말할 수는 있습니다. 

 

이건 좋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 좋은 일이 생길 확률이 높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긴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그럼 괴롭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봄에 밖에 나가서 노는 것보다 밭 갈고 씨 뿌리는 게 더 재미가 있고, 

 

여름에 수영을 하는 것보다 땀을 흘리면서 김 메고 거름 주는 게 더 재미가 있으면, 

 

이미 봄, 여름을 지나는 동안 재미는 다 본 거예요.

 

그리고 가을에 추수를 해도 거의 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줄 생각을 하고 있다면 어떨까요? 

 

어차피 추수를 해도 내가 가질 게 아니라 나누어 줄 것이니까 

 

중간에 홍수가 나서 추수할 게 사라져도 괴롭지 않습니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재미도 다 봤으니 괴로울 일이 없어요. 

 

이번에 제가 2,400평 농사를 지어서 모두 정토회 회원들에게 나누어줬어요. 

 

그런데 배달료 때문에 돈이 더 많이 들었어요. (모두 웃음) 

 

이런 관점을 가지면 홍수가 나서 농작물이 없어지더라도 괴로울 일이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괴로워할 일이 없는, 괴로움이 없는 경지입니다. 

 

이렇게 알아도 실제로 닥치면 다 되는 건 아니에요. 

 

그래도 우선 무슨 말인지 이해는 할 수 있어야 해요. (모두 웃음)

 

불법(佛法)을 공부하는 것은 해탈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즉, 괴로움이 없는 경지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고 온갖 일이 다 생겨요. 

 

해탈이란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게 아니라 어떤 일이 일어나도 그 속에서 괴로움이 없는 것이 해탈입니다.

 

그러니 농사를 짓다가 홍수가 나도 괴롭지 않아야 해탈이고, 

 

아이를 키웠는데 그 아이가 망나니가 되어도 괴롭지가 않아야 해탈이에요. 

 

왜냐하면 나는 이미 아이를 키울 때 보람을 느꼈기 때문에 괴롭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민주화 운동도 운동하는 과정에 보람을 느꼈다면, 

 

민주화가 이루어진 다음 포상이 주어지지 않아도 괴롭지 않습니다. 

 

독립운동도 운동을 하는 과정에 인생의 보람을 느꼈다면, 훗날 유공자로 표창되지 않아도 괴롭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면 그 사람은 희생을 한 거예요, 안 한 거예요?

 

 

 

 

 

  

“안 한 거예요.”

 

 

  

 

 

 

“훗날 어떻게 되어도 괴롭지 않다면 희생하지 않은 거예요. 

 

본인이 희생했다면 나중에 그걸 알아주지 않으면 괴로움이 생깁니다.

 

수행이란 그런 좋은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비단 좋은 일을 할 때도 그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거예요. 

 

삶은 하루하루의 과정이에요. 

 

오늘 일은 오늘로서 끝난 것입니다.

 

정*회도 처음에는 작은 움막부터 시작해서 땅을 파고 조금 확장해서 오늘에 이르렀어요. 

 

정*회가 꼭 큰 건물을 짓고 규모가 커져야 보람을 느낄까요?

 

이미 그 과정에서 재미를 봤기 때문에 건물은 안 지어져도 그만이에요.

 

말이 쉽지 어려운 것 같나요? 여러분도 어떤 측면에서는 이미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한 예를 들어볼게요. 

 

여러분 똥은 어떻게 만들어요? 음식을 구해서, 입으로 먹고, 

 

그걸 꼭꼭 씹어서 소화를 다 시킨 다음에 따끈따끈한 똥을 만들잖아요. (모두 웃음) 

 

이 전체 과정을 보면 똥이 참 귀합니다. 

 

그러면 똥을 버려야 돼요, 귀하게 모셔야 돼요? (모두 웃음)

 

그 과정을 보면 똥을 귀하게 모셔야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똥 누고 뒤도 안 돌아본다’는 말도 있잖아요? 

 

그건 똥에 대해 집착하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똥은 개가 먹든지 물에 떠내려가든지 상관하지 않잖아요. 

 

왜냐하면 똥을 만드는 과정 속에서 음식을 만드는 재미, 먹는 재미, 소화하는 재미를 다 봤기 때문이에요.

 

결과에 집착한다는 것은 정작 음식을 만들고, 먹고, 

 

소화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똥에만 관심이 갖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토기 공예 작품을 만들었는데 홍수가 나는 바람에 작품들이 모두 다 망가져버렸어요.

 

어느 날 저를 찾아와서 울고 불고, 지난 20년 동안 공들여서 만든 작품들인데 삶이 너무 허무해졌다고 하소연을 했어요. 

 

그래서 제가 지금과 똑같은 이야기를 해줬어요. 

 

제가 봤을 때 과정에 중점을 두면 그 예술작품들은 똥과 같아요. 

 

우리가 똥이 떠내려갔다고 그렇게 울지 않잖아요. (모두 웃음)

 

여러분도 인생을 한 번 보세요.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데, 우리는 모두 언젠가 죽잖아요. 

 

어찌 보면 모두가 죽으려고 80 평생을 사는 거예요. 

 

즉, 80 평생을 사는 목적이 죽는 거예요. 

 

그러면 평생을 죽는 목표를 향해 열심히 살았으니까 죽은 시신을 귀하게 모시고 무덤도 크게 써야 되겠죠. 

 

그런데 사실은 시신은 불에 태우나 수장을 하나 크게 상관없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은 늘 그런 것에 집착하잖아요.

 

그러니 수행적 관점을 가지면 수행자에게는 자기희생이 없습니다. 

 

자기희생이 없다는 말은 남을 위해서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남을 위한 일이면 남을 위한 일을 하는 보람으로 그 일을 하고, 

 

나라를 위한 일이면 나라를 위한 일을 하는 보람으로 그냥 하는 거예요.”

 

 

 

 

 

 

 

 

“네, 잘 알겠습니다.” (모두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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