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경제활동이라고 할 만한 일을 어쩌다 공장 2교대로 시작했다. 자동차 부품 도색 공장에서 아침 여덟 시부터 저녁 여덟 시까지 지게차가 파레트 채로 자동차 부품들을 실어오면 그것들의 포장을 뜯고 나르는 일이었다. 시간이 정말 이렇게 하염없이 느리게 갈 수도 있구나, 싶은 나날이었다.
공장에서 매일 내 눈길을 끄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바로 부품을 도색하고 검수를 하는 아주머니들이었다. 아주머니들은 공장일이 어쩜 그리도 재밌는지, 나와 같이 2교대로 출퇴근을 하는 ‘하드워커’임에도 불구하고 근무 중에도 웃음을 잃는 법이 없었고, 퇴근을 하면 아주머니들은 그제야 몸에 기운이 빠진 듯 통근버스 안에서 단체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는 했다. 퇴근하는 버스에 오르고 나서야 생기를 보이는 나와는 정반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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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강신주는 언젠가 강연에서 말했다. 자신이 하는 일에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일의 가치를 느낄 수 있다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몸을 기꺼이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어서 그는 젊은 청중들에게 돌직구를 던진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비로소 일을 하는 의미가 생길 텐데,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사랑을 쟁취할 수 있다는 식으로 거꾸로 생각하는 청년이 많은 것 같다고.
돌이켜 보면 공장의 아주머니들은 일의 가치를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아주머니들은 일을 하면서 자신의 아들딸, 부모님,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떠올렸을 것이다. 일이란 누군가를 위해 움직이는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남들이 손사래 칠만한 힘든 일을 하면서도 하루를 웃음 속에서 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일을 하는 이유를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짐짓 있어 보이는 표정을 지으며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답하고 싶지만, 사랑과 일의 숭고한 관계를 마음으로 이해할 만한 지혜가 아직 내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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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하면서 비로소 나는 누군가를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흘러가는 대로 살아왔던 인생에서 처음으로 누군가 보기에 멋진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공장에서 근무하던 이십대 초반에만 해도 통근버스를 밥 먹듯이 놓쳐서 부랴부랴 택시를 잡아타고 출근을 하던 철없는 청년이었다. 지금의 아내를 만나고부터 나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일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행복해지고 싶기 때문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행복해지기를 원한다. 그다지 행복하지는 않은 어린 시절을 보낸 나 역시 행복해지고 싶었고, 때문에 미술과 디자인과 글쓰기에 매달렸다. 아니, 매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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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으면 행복해진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어렸을 때부터 좋아한 미술과 디자인을 하면서, 그리고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깨달았다.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으면 행복해진다는 말은 거짓이라는 것을. 행복해진다기보다는 ‘덜 불행해진다고’ 표현하는 게 맞는 것 같다.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좋아하는(좋아했던) 일을 하는 게 괴로울 때 위안으로 삼기에는 더 나으니까.
행복은 거창한 게 아니다. 행복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데서 나온다. 흔히들 말하는 소확행은 지금 당장 느낄 수 있는 행복이지만,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데서 나오는 행복은 고통이 먼저 따른다.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당장의 행복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고 나서는 소확행과는 다른 차원의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므로 고통은 역설적이게도 행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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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일에 의미를 갖기 위해 사랑을 해야 한다는 말은 누군가를 사랑하기 때문에 일한다는 말도 되지만,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일한다는 말도 된다. 아직 일이라는 행위의 숭고함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무얼 위해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하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후회 없이 살기 위해서라고 답하고 싶다. 나는 후회 없이 살기 위해 오늘도 부단히 움직인다.
현재를 인내하면 미래에 더 큰 보상이 찾아온다는 마시멜로 이야기에 코웃음 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래도 나는 파도처럼 밀려올 행복을 위해 현재를 견디며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들을 응원하고 싶다.
글을 마치면서 생각나는 격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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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우리 마음속에 괴로움이 없으면, 비료를 만드는 데 쓸 재료가 아무것도 없게 된다. 비료가 없으면 우리 안의 꽃을 기를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고난이 필요하다.”
- Thich Nhat Han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