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還生)을 거듭하며-대를 이어가는 달라이 라마

강동호 작성일 05.07.15 17:4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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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還生)을 거듭하며
 대를 이어가는 달라이 라마
 
 
 하루는 신경수가 돼지 한 마리를 기르다가 도둑 맞고 와서 아뢰니,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돼지를 찾지 말라. 네가 전생에 남의 눈을 속여서 손해를 끼쳤으므로 이제 금세(今世)에 그 보복을 받은 것이니 분해하지도 말고 아까워하지도 말라. (道典 9:126:1∼4)
 
 그대(박금곡)는 전생이 월광대사(月光大師)인 바 그 후신(後身)으로 대원사에 오게 되었느니라. 그대가 할 일은 이 절을 중수하는 것이니라. (2:10:3)
 
 
 단서를 쫓아서
 제13대 달라이 라마는 1933년 5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에 티베트 사람들은 깊은 슬픔에 잠겼지만, 그가 환생하리라는 믿음에 그 슬픔을 이겨낼 수 있었다.
 
 제13대 달라이 라마의 유해는 가부좌를 튼 자세로 남쪽을 향하도록 그의 여름 궁전인 노르불링카에 안치되었다. 다음날 아침, 시종들은 그의 유해가 동북쪽을 향해 조금 돌아갔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원 위치로 돌려놓고 장례식을 계속했으나 그 다음날에도 유해는 동북쪽을 향해 다시 돌아가 있었다. 동북부 지방에서 자신의 환생을 찾으라는 계시였을까?
 
 제14대 달라이 라마를 찾는 일은 제13대 달라이 라마가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채 안 되어 시작되었다. 1934년, 티베트 정부는 각 지방에 서한을 보내 제13대 달라이 라마와 비슷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 사내아이를 찾아보라고 지시했다.
 
 “다리에 호랑이처럼 줄무늬가 있으며 커다란 눈동자와 활처럼 휘어진 눈썹, 그리고 커다란 귀, 어깨에 두 개의 사마귀가 나 있으며, 마치 관세음보살처럼 기다란 두 팔과 손바닥에 조개 모양의 손금이 있는 사내아이를 찾아라!”
 
 1935년 여름, 섭정관으로 선출된 레팅 린포체는 고위 승려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티베트의 수도 라사에서 동남쪽에 있는 신성한 호수 ‘라모이 라초’로 환생자를 찾기 위한 순례를 떠나라는 지시였다. 사절단은 푸른 호수를 바라보며 깊은 명상에 잠겼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바로 그때, 섭정관 레팅 린포체가 친히 호수를 방문했다. 그러나 그는 다음해까지 침묵했다. 1년이 지난 후, 자신이 호수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털어놓았다.
 
 의회를 소집한 레팅 린포체는 티베트어 아(ah)·카(ka)·마(ma) 세 글자를 보았고, 지붕이 비취색과 황금색으로 뒤덮인 탑 모양의 건물을 보았으며, 그 사원 언덕 아래에 동쪽으로 난 꼬불꼬불한 길을 보았다고 했다. 또 이상하게 생긴 빗물받이 홈통과 터키 옥으로 만든 타일이 깔려 있는 작은 집을 보았다고 했다. 섭정관은 ‘아’라는 글자가 티베트 동북부의 ‘암도 지방’을 뜻한다는 걸 깨달았노라고 밝혔다.
 
 마침내 1936년 가을, 세 그룹으로 나뉜 사절단이 티베트 동북부 지방을 향해 떠났다. 한 그룹은 티베트 고원을 넘어 동북부의 암도로, 다른 한 그룹은 동쪽으로, 마지막 한 그룹은 동남쪽을 향해 떠났다. 사절단은 각기 후보자 서너 명을 데리고 라사로 돌아올 계획이었다. 몇 년이 걸릴지 알 수 없는 여행이었다.
 
 *달라이 라마
 티베트인들에게는 살아있는 부처로 숭앙받는 절대적인 신앙의 대상이며 또한 정치적인 최고 결정권을 갖는 국가 통치권자이다.
 ‘달라이’는 몽골어로 ‘큰 바다’라는 뜻이고, ‘라마’는 티베트어로 ‘스승’을 의미한다.
 티베트를 위한 영원한 헌신을 서원한 제1대 달라이 라마(14세기) 이래로 지금까지 달라이 라마는 계속 환생을 거듭하며 그 대를 이어가는 것으로 티베트인들은 굳게 믿고 있다.
 
 
 유력한 환생자를 찾아서
 1936년 겨울, 암도 지방에 도착한 사절단은 유력한 아이가 서너 명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중 한 명이 암도 지방의 탁세르 마을에 사는 쵸꽁 체링이라는 농부의 두 살짜리 아들, 라모 돈둡(Lhamo Dhondup)*이었다.
 (*라모 돈둡 제14대 달라이 라마 ‘텐진 갸초’의 어릴 적 본래 이름)
 
 1937년 케상 린포체와 그 수행원들은 상인으로 가장하고 아이들이 살고 있는 농가를 방문해 환생을 찾기로 했다. 케상 린포체의 하인이 주인 행세를 하고, 린포체 자신은 아이들과 접촉하기 쉽도록 하인으로 행세했다.
 
 탁세르 마을에 도착한 사절단은 유독 회칠을 한 특이한 집을 발견했다. 터키 옥으로 된 타일과 향나무 가지를 비틀어 만든 빗물받이를 발견한 사절단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집주인은 낯선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었다. 하인으로 변장했던 케상 린포체는 부엌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는 두 살짜리 라모 돈둡을 발견했다. 라모 돈둡은 그를 보자마자 그의 무릎 위로 뛰어올랐다.
 
 케상 린포체는 13대 달라이 라마의 유품이었던 염주를 목에 걸고 있었다. 갓 두 살 된 어린아이는 염주를 알아보기라도 한 듯 달라고 했다. 린포체는 자신이 누군지 알아맞히면 염주를 주겠다고 했다. 그러자 아이는 하인으로 변장한 린포체를 ‘세라 아가’라고 불렀다. 암도 지방의 사투리로 ‘세라 사원의 라마시여’라는 뜻이었다.
 
 몇 주 뒤, 쿰붐 사원에 머물던 사절단은 다시 탁세르로 향했다. 사절단이 탁세르에 가까이 갔을 때, 남쪽 길을 따라 마을로 가라고 충고하는 사람을 만났다. 그의 말을 따라 가던 사절단은 언덕 위에 서 있는 카르마 롤파이 돌쩨(Karma Rolpi Dorje)라는 조그만 사원을 발견했다. 제13대 달라이 라마가 4년간의 몽골 망명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던 길에 머물던 사원이었다. 당시 그를 환영하던 인파 속에는 아홉 살이던 쵸꽁 체링(제14대 달라이 라마의 아버지) 소년도 있었다. 이 곳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던 제13대 달라이 라마는 매우 아름다운 집을 발견하곤 감탄했었는데, 그 집이 제14대 달라이 라마의 생가였다. 그는 마치 돌아올 것을 예견이라도 하듯 신발을 벗어 두고 떠났었다.
 
 사절단은 문득 라사의 섭정이 보았던 ‘카’와 ‘마’ 두 글자는 쿰붐 사원이 아니라 카르마 롤파이 돌쩨 사원을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오후가 되어서야 화려한 행렬이 집 앞에 도착했다.
 
 
 라모를 시험하다
 당시 아홉 살이었던 아이의 형 걀로 톤둡은 “그들이 부엌으로 향하자 어린 남동생은 옛 친구를 다시 만났다며 몹시 좋아했다”고 기억했다. 찰스 벨은 “염주와 종, 의식에 쓰이는 도구, 하인, 생전에 타고 다니던 조랑말의 이름 등을 알아맞혀서 환생자임을 판명하는 시험을 치렀다”고 증언했다.
 
 이번에는 제13대 달라이 라마가 생전에 자주 읽던 경전의 한 구절을 암송하는 시험을 했다. 사절단은 시험을 치르기 위해 탁자 위에 두 개의 검은 염주와 두 개의 노란 염주를 올려놓았다. 아이는 전생에 자신이 사용하던 두 개의 염주를 정확하게 집어들었다.
 
 다음날, 사절단은 제13대 달라이 라마와 케상 린포체의 지팡이를 내놓았다. 아이는 주의 깊게 지팡이를 쳐다보더니 케상 린포체의 지팡이를 고르려고 했다. 그러다가 이내 마음을 바꿔 정확하게 달라이 라마의 지팡이를 골랐다. 결국 탁세르 마을의 아이는 세 가지 시험을 모두 통과할 수 있었다.
 
 마지막 시험은 제13대 달라이 라마가 하인들을 부를 때 사용했던 조그만 북이었다. 진짜 북은 평범한 모양이었으나 가짜 북은 상아와 황금, 터키 옥과 갖가지 보석으로 장식한 화려한 북이었다. 그러나 아이는 이번에도 진짜를 골라냈으며 오른손에 북을 쥐고는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라사에서 온 사람들은 그토록 애타게 찾고 있던 아이를 찾았다고 확신했다. 거기에다 아이의 다리에는 호랑이처럼 줄무늬가 있었으며, 귀 또한 엄청나게 컸다.
 
 며칠 후, 쿰붐 사원으로 돌아간 사절단은 탁세르의 아이가 달라이 라마의 환생이 틀림없으며, 곧 그를 데리고 라사에 입성할 것이라는 암호 전문을 라사에 보냈다. 그렇게 해서 아이는 1940년 생후 4년 6개월만에 제14대 달라이 라마에 즉위했다.
 
 출처: 메리 크레이그의 『쿤둔』 (인북스,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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