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갈타 내부까지 생생히 살아있는 생명체 지구
(지구 공동설과 지저왕국에 얽힌 세계각지의 신앙)
*출저: [북극 너머 지구 속 비행일지](대원출판)
지구는 죽어있는가? 만일 지구 자체가 우리의 몸과 같이 하나의 살아있는 생명체라면 우리의 몸 속이 살아서 5장 6부가 살아 움직이듯 지구내부도 살아서 순환할 것이다. 동양의 우주관은 우주자체가 하나의 살아있는 생명체이며 길가의 돌멩이 하나에도 하나의 생명체로 신(神)이 깃들어 있다고 본다.
그러나 서양의 학문체계에서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었다. 영국의 생물학자 중에 제임스 러브록(James Lovelock)이라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1988년 『가이아의 시대(The Ages of Gaia)』란 책에서 지구에게 희랍의 여신 가이아(Gaia)의 이름을 붙여 지구는 지성과 목적을 가진 행성크기의 초대형 유기체라 정의한 바 있다.
이것이 바로 가이아의 가설로 생태학자들이 즐겨 인용해서 쓰는 가이아 이론의 기초가설이다. 즉 지구의 각 부분이 다른 모든 부분과 상호간 생명의 지속과 진화를 증진하기 위해 단일 생명체를 이루면서 서로의 개별 유기체와 환경이 상호작용하며, 공생적으로 진화하는 생명의 모체망(母體 網)으로 통합된 하나의 행성이 바로 지구라는 것이다.
이 이론은 학계의 중심무대에 서지는 못했는데 1990년 루퍼트 셸드레이크(Rupert Sheldrake)라는 학자가 ‘지구는 스스로 자율성을 지닌 생명체’라는 가설의 선도자가 바로 러브록이라 언급하면서 정설로 자리잡았다. 그 뒤 1996년 돈 마이클(Don Michael)은 이 이론을 계승해 더욱 세련되게 가다듬었다.
즉 지구 가이아는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행동하며 스스로 안정성을 추구하고(따라서 하나의 정향성(定向性)을 가지고 있으므로 환경 파괴가 한계점을 넘으면 인류를 재앙으로 거세시키고 자신의 길을 간다), 계속 존재하려 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의도적인 몇몇 지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System)의 특성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것이다.
고대 카발라(히브리 신비철학) 연금술 전통에 충실한 귀에농(Guenon)은 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지구는 살아있을 뿐 아니라 사람과 같은 영적인 존재라 주장한다. 일찍이 중세의 연금술사 바실리우스 발렌티누스(Vasilius Valentinus)는 지구는 죽은 몸이 아니라 그 자신의 생명과 정기를 지닌 영혼이며 이 생명의 영혼은 별들에 의해 영양공급을 받으며 지구 자궁 안의 거주지(shelter)에 있는 모든 것들에게 그것을 나누어준다고 했다.
뉴 에이지(New Age) 운동의 기수 존 미첼(John Michell)은 이와 비슷하게 고대 철학자들의 견지에서 지구는 모든 다른 생명체들과 마찬가지로 살아있는 생명체로 지구 곳곳에 흐르고 있는 자기장으로 연관되는 내부 신경조직을 가지고 있음을 말한 바 있다. 지구가 살았는지 죽어있는지는 올랍 얀센과 버드 제독이 경험한 지구 내부의 문명세계와 생태계로 사실상 그 대답이 내려졌다. 지구는 분명히 속 내부의 생태계까지 생생히 살아있는 것이다.
니콜라이 로에리치(Nicholas Roerich 18741947)는 그의 저서 『샴발라』의 ‘땅 밑에 사는 사람들’이란 장(章)에서 지구 공동설과 지저왕국에 얽힌 세계각지의 신앙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인류역사상 가장 흥미로운 문제는 민족대이동에 대한 문제다. 모든 국가 모든 민족이라는 거대 집단이 통째로 정든 땅을 뒤로하고 푸른 안개 자욱한 사막의 지평선 저 너머로 어떤 새로운 행복과 은혜를 기대하면서 정처 없이 이동해 갔다. 세계도처에 헤아릴 수 없이 퍼져있는 그 많은 전설이나 고담들 중에서 우리는 사라진 민족이나 땅 속 주민 등의 이야기를 건져낼 수 있다.
방향이 서로 다른 그 넓은 범위에 걸쳐 사람들은 모두 공통적인 내용들을 전해주고 있는데 이것들을 비교, 대조해 보면 비록 천태만상의 변화된 양상이긴 하지만 하나의 이야기를 뿌리로 해서 모두 갈려 나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구 최고의 산악지대로부터 가장 깊은 바다에 이르기까지 거기에 전하는 민화, 설화 등은 한결같은 연관성이 나타나 있다. 그들은 한결같이 어떤 거룩한 민족이 있었는데 폭군에게 박해받게 되자 그 잔학성에 굴복치 않고 지하로 통하는 산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1879년 신지학회(神知學會)를 창시한 러시아의 헬레나 블라바트스키(Helena Blavatsky)가 30년에 걸쳐 세계각국을 여행하고 1891년 61세로 사망하기 전 집필한 『비밀교의(The Secret Doctrine)』속에는 에리히 폰 대니켄(E. V. Daniken)의 주장과 동일하게 고대 지하도, 땅속도시, 고대 비밀 보관소 등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곤륜산맥 첩첩산중에 수많은 비밀장소가 있으며 초라한 한 라마 사원 지하에는 대영 박물관으로도 못다 수용할 비밀 문서들이 들어있으며 투르끼스탄(타림분지)의 티민지방의 황무지 사막 아래에도 광대한 지하도시가 있다는 것이다.
폰 대니켄은 자신이 실제 목격한 사실을 증거하고 있다. 즉 남아메리카 대륙의 깊은 지하에 미지의 시대에 미지의 건설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수천 마일에 달하는 거대한 지하터널과 고속도로가 존재하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이다. 이 중 수백 마일은 이미 에콰도르와 페루정부에 의해 측량되고 탐사되어졌지만, 이들 정부는 더 이상 고고학자들의 탐사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 페루와 에콰도르의 경제수준이 너무 낙후되어 고고학적인 학술문제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것이 대니켄의 주장이다.
아르헨티나에 귀화한 헝가리 출신의 후앙 모리츠는 1965년 6월 탐사활동 중 우연히 지하터널 망을 발견하고 3년간의 침묵을 지키다 1968년 봄, 벨라스코 이바라 대통령에게 면담신청을 했다가 거절당한 뒤 1972년 3월 4일 에리히 폰 대니켄을 만나 공동탐사에 나서 이를 사실로 확인했다. 또 그는 1961년 베이징대학교 고고학 교수 치 펜 라오 교수가 동정호 남쪽 호남산맥 지하의 105피트 아래에 지하 동굴망이 호수 밑으로 연결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소개한다(『신들의 비밀』 참조. E. V. 대니켄 저, 최한식 역. 정음문화사).
뿐만 아니라 대니켄은 다음과 같은 수수께끼의 유물을, 타이뻬이 박물관에 찾아가면서 소개한 일화를 통해 위에 소개한 모든 지하도시, 지하 고속도로가 실은 1만 2천년 전 아틀란티스 시대에 외계문명과 교류하던 시대의 고대문명의 흔적이라 말하고 있다. 즉 1938년 중국과 티벳의 한 접경지대 ‘바이안 카라 울라’에서 중국의 고고학자 ‘치 푸 테이’가 716개의 화강암으로 된 레코드판을 닮은 문자판을 발견했다. 수많은 석학들이 이 석판의 비밀을 풀려고 노력하던 중 1962년에 글의 일부를 해독하는데 성공했다.
지질학적 분석의 결과 석판에서 상당한 양의 코발트와 금속이 검출되었다. 물리학자들은 모든 석판에서 높은 진동리듬을 발견했는데 이는 그것들이 한때 고도의 전압에 노출되었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당시 소련 언어학자 비아체슬라프 사이제프 박사가 석판의 일부를 해독한 결과를 발표하자 이 유물은 일약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것들은 1만 2천년 전에 어떤 외계종족의 성원들이 제 3의 행성에 착륙했는데, 타고 온 항공기의 연료가 부족해서 다시 이륙할 수 없었다는 내용이었다(『신들의 비밀』 99쪽, 대니켄 저).
<참고>지하문명과 현대문명은 뿌리가 천상문명 - '선천에는 천지의 신이 각기 제 경역(境域)을 굳게 지켜 서로 왕래하지 못하였으나 이마두가 이를 개방한 뒤부터 지하신(地下神)이 천상에 올라가서 천국의 문명을 본떠 사람들의 지혜를 열어 주었나니 이것이 오늘의 서양 문명이니라.' [道典4:11]
헬레나 블라바트스키(Helena Blavatsky)는 남미 각지를 돌아다니며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지하세계를 다녀온 모험가들은 그들이 만난 연로한 주술사라든가 잉카의 신관들의 말을 빌어, 그 터널은 이미 잉카의 옛 조상들이 그 곳에 정착하기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그 속은 마치 알라딘의 램프 속의 나라처럼 신비한 것이었다는 말을 전해주었다.”
헬레나는 보다 정확한 자료를 수집하고자 페루 각지를 두루 답사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아직 동굴입구는 발견되어 있지 않다는 것, 아무래도 고대 페루의 수도였던 쿠스코 근방에 입구가 있는 것 같다는 것, 이 지하도는 남쪽으로 6백여 킬로미터나 뻗어있고, 다시 볼리비아로 지하 1,400여 킬로미터나 더 나가 있다는 것, 그리하여 신비주의자들은 볼리비아에서 터널은 지하인간들이 사는 대륙과 연결되는 지하미궁과 통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는 것 등을 들추어냈다.지구 공동 협회장 앨버트 맥도날드(Albert Macdonald)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전설에 따르면 남미의 지하도에는 왕묘가 들어있다고 들었다. 이같은 지하 고속도로를 건설한 사람들이야말로 실로 뛰어난 기술을 지닌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한다. 고대 이집트의 건축가나 기사들처럼 그들은 왕묘 도굴자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교묘한 설계를 해 놓았다. 그 한 예로, 잉카인들은 교묘하게 조각된 돌문을 고안해 냈다. 육중하고 어마어마하게 큰 석판을 회전시키면 이 돌문들은 이은 자국이나 틈새 하나 없이 감쪽같이 닫혀지고 만다. 따라서 능묘의 진짜 소재 장소는 터널 벽에 조각해 놓은 심벌을 해독하지 못하고서는 절대로 찾아낼 수 없을 것으로 안다.”
대부분의 신비주의자나 보물 탐색가들은 남미의 지하터널이야말로 세계 최대의 보물창고라고 굳게 믿고 있다. 지구 공동설 신봉자들 역시 많은 잉카인들이 대부분의 보물을 가지고 지구내부의 터널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고 믿고 있다. 이들은 스페인으로부터 정복당할 무렵 페루에는 1천만명 이상의 잉카인들이 살고 있었는데 침략자가 페루땅을 밟은지 불과 40년밖에 안되는 1571년에는 이미 9백만에 달하는 잉카인들이 죽거나 사라졌다고 말한다.
1530년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2백 명의 부하를 데리고 에콰도르 북부해안에 도착하자마자 닥치는 대로 약탈하며 수도 쿠스코까지 쳐들어가 황제를 사로잡았다. 피사로는 전설적인 잉카의 황금을 거두기 위해 황제가 감금된 방을 황금으로 가득 채우면 황제를 석방해 주겠노라고 제안했다. 순식간에 황제를 구하기 위한 황금이 가득히 쌓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만일의 사태를 두려워한 피사로는 비밀리에 황제를 처형했고 계속 쇄도하던 황금은 분노와 적개심에 불탄 황족들의 명에 의해 지하도시로 숨겨졌다. 지금도 페루의 쿠스코에 보관되어 있는 고대의 양피지 기록 중에는 쿠스코 성벽이나 그 외 어느 지하터널 속에 잉카의 보물들이 숨겨져 있다는 글귀가 아주 흔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