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준님단편#1] 그들의 생존게임

헬리코박터쏭 작성일 06.09.02 23:3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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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언더프리 작가로 활동하신 김민준님의 글임을 밝힘니다.
하나같이 글들이 완성도가 높아서 텍스트문서로 김민준님의 글들을
40여편 간직하고 있었는데 기회가되서 여기다 올려봅니다
다소 길더라도 완성도가높은 이야기니 끝까지 보세요^^
참고로 출처만 정확히 표기하면 퍼가도 상관없다고 하셨습니다.





오늘도 컴컴한 감방에 갇힌 채 옹기 종기 모여 서로들의 얼굴만 쳐다보
고 있었다. 그래도 전쟁 포로라는 명목이 있어 다른 방의 죄수들 보다
조금은 자유스러웠지만, 그들 보다 견디기 힘든 것은 언제 죽음이 다가
올 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후~~.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될 것 같냐? 벌써 그들에게 포로가 된지
2주가 지났어."

나는 무심코 곁에 있는 상규에게 말을 건냈다. 상규는 금방이라도 허물
어질 듯한 감방의 천장을 바라보며 누워 있다가 천천히 일어나 앉았다.

"형민아... 내가 듣기로는..."
"듣기로는?"
"우리들은 어차피... 죽은 목숨이나 다름 없어..."
깜짝 놀라 상규에게 바싹 다가 앉으며 물었다.

"뭐야? 너 어디서 그런 소리를... 들었어?"
"훗... 내가 누구냐... 다 알 수 있는 곳이 있지. 그래도 한때는 내가
몇명을 거느렸었는데..."

왠지 모를 서글픔이 북받쳐 올라 왔다.

'제길... 난 옳은 일을 한거야... 그런데... 왜 내가 죽어야만 하지?
이런... 젠장...'

상규는 그런 나의 표정을 물끄러미 바라 보다가 내 어깨를 한번
치더니 '씨익' 웃었다.

"하지만 모두 다 그렇다는 뜻은 아니지... 음... 잘 하면 살아서 풀려
날지도 몰라. 내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갑자기 '희망'이라는 단어와 '삶'이라는 목표가 머리 속에 떠올랐다.

"어떻게...? 좀 자세히 얘기해봐..."

상규는 고개를 한 번 흔들더니 손을 들어 내 입에 가져다 대었다.

"쉿... 다른 사람들이 들을라. 이 얘기는 너와 나만의 비밀이야.
알겠어?"
"......"
"음... 그러니까... 저들은 우리에게 한가지 시험을 할꺼야. '생존
게임'이라는..."
"생존 게임?"
"그러니까, 여기 잡혀 있는 우리같은 포로들을 서로 싸우게 만든단
말이야. 그래서... 결국에는..."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래서...? 어서 말을 해봐..."

상규가 마저 말을 하려는데 감방 문이 '벌컥' 열리며 푸른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손에 총을 들고 들어왔다.

"자... 내가 호명하는 자들은 지체 없이 밖으로 나온다. 조금이라도
늦을 시는..."

간부급인 듯한 군인이 나를 비롯해 상규 등 30 여명을 불러 내었다.
상규는 감방 밖으로 나가면서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후. 후. 형민아... 이제 시작인 것 같구나."

상규의 말을 듣는 순간 왠지 모를 걱정과 두려움이 온몸에 퍼져 왔다.

감방을 나와서 넓다란 연병장에 도착해 보니 그곳은 그야말로 살기가
넘치고 있었다. 높은 감시탑에서는 우리를 향해 기관총을 들이 대고
있었고 도열해 있는 군인들은 눈을 부라리며 우리를 감시했다.

잠시후 군인들이 우리를 한줄로 세우고는 조금 전의 그 군인 간부가
앞에 서서 얘기하기 시작했다.

"다들 잘 들어라. 너희들은 우리 군의 포로다. 그러니... 모두를
총살시켜도 할 말은 없겠지?"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인지 여기 저기서 '훌쩍'거리는 흐느낌이 들려
왔다. 나도 코 끝이 찡해 왔다. 그런데 군인 간부는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한 번 '휘' 둘러 본 후 말을 이었다.

"그러나 우리 군은 너희들에게 살아날 수 있는 기회를 한번 주기로
했다. 자, 지금부터 나눠 주는 칼을 하나씩 받아라. 이 칼로 너희들
끼리 저기 보이는 야산에서 '생존 게임'을 하는 거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는 너희들이 알아서 하고.... '생존 게임'이 끝난 후 우리
의 판단하에 몇 명을 살려 주도록 하겠다. 또 하나... 게임의 종료
시간은 22시 까지이다."

우리들은 칼을 하나씩 들고서 서로 마주보며 수군대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걸로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그런데 문득 상규의 얼굴을 쳐다보니 그는 그윽한 미소를 지으며
반짝이는 칼을 바라보고 있었다. 왠지 모를 살기가 그의 표정에서
느껴지자 이상하게 내 다리가 후들거렸다.
"아, 그리고 저 야산에는 곳곳에 지뢰가 매설되어 있으니, 우리가
'생존 게임'을 위해 정해 준 장소를 이탈할 생각은 하지 말기 바란다.
더우기 어딘가에서 우리 군의 감시병들은 너희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다가 달아나는 즉시 사살을 할테니까... 그러니 도망갈
생각은 꿈도 꾸지 말아라. 다시 한번 명심해라 22시 까지다. 그럼...
다들 건투를 빈다."

그의 말이 끝나자 나는 상규에게 자그마한 소리로 물었다.

"상규야... 대체... 어떻게 해야...?"

상규는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하더니 말했다.

"다... 죽여버리는 거야."
나는 놀라며 되물었다.

"다... 죽이다니... 누굴?"
"여기서... 우리와 함께 포로로 있던 사람들... 너 못들었어? 이건
'생존 게임' 이야. 남을 죽여야 내가 사는..."

나는 상규의 진지하다 못해 일그러진 얼굴을 바라보며 더듬거렸다.

"상... 상규야. 우리와 서로... '생존 게임' 이라는 걸 할 사람들은
저들에 대항에 함꼐 싸우던... 다 같은 편이라고. 포로가 되기 전...
아니, 저들의 이런 무시무시한 계획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전우
였던... 그런데 어떻게 서로 죽이고..."
"훗... 김형민... 넌 살고 싶지 않니? 난 꼭 살아야만 한다. 무슨
짓을 하더라도..."
머리가 혼란해져 왔다. 내가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을... 아니 그것도
서로 의지하며 적과 싸우던... 전우들을 죽여야 내가 산다니...

"어쨌든... 너도 몸 조심해라. 지금 포로들이 끼리, 끼리 모여 수군
대는 거 보이지? 저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거야. 이미 같은 편이
라든가 아군이라는 개념은 없는 거고... 다만 각자 목숨의 생존만이
중요할 뿐이지..."
"어떻게... 어떻게 이런 일이..."

상규는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쨌든... 건투를 빈다. 그럼..."

내가 잠시 멍해 있는 사이에 푸른 제복의 군인들은 우리를 트럭에
태우더니 그들이 정해 놓았다는 야산으로 향했다.

도착해 보니 무척이나 수풀이 우거지고, 아직 낮인데도 앞이 잘
분간도 되지 않는... 그런 음침한 곳이었다. 그들은 우리를 조금
넓은 공터에 내려 놓더니 일렬로 세우고 다시 얘기했다.

"자. 지금이 정각 16시다. 그럼... 게임의 시작은 너희들이 여기서
흩어진 뒤, 1시간 후에 시작하도록 하고 22시까지는 다시 이 곳으로
오기 바란다. 자... 모두들 해산!!!"

일부는 쭈뼛거리며 일부는 얼굴에 살기를 띤 채 날이 시퍼렇게 선
칼을 소중히 품에 안고 어두운 숲사이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나는 어쩔 줄 몰라 가만히 서 있는데 상규가 내 곁을 지나가며 비웃
듯 얘기했다.
"김형민... 이젠 너도 나와 서로 적이군... 그럼... 나 먼저 간다.."

상규의 말에 온 몸의 맥이 풀렸다. 그래도 군에 와서 가장 친했던
사람이었는데... 내게 그런 말을 할 정도로 변해 버리다니...

나도 어쩔 수 없이 포로들이 많이 가지 않은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상규의 말대로 이제부터 서로 적이 되는 셈이라면 내가 그들을 죽이지
못할 바에야 몸이라도 숨겨야 되겠다는 생각에...

어찌보면 순진할지 모르는 내 생각으로는 앞으로 6시간... 그러니까
그들과의 약속 시간인 22시 까지만 잘 도망다니며 살아 남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큰 오산이었다. 게임의 시작을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가 멀리서
들려오자 갑자기 포로들의 비명소리와 신음소리가 온 산에 메아리
치기 시작한 것이었다.

마치 그 생존 게임을 기다렸다는 듯이... 여기, 저기서 같은 편을
도륙하고 있는 그 섬뜩한 소리들이...

나는 설마, 설마하며 수풀 속에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눈을 꼭 감았다.

'제발... 제발... 이 모든 일들이 한낱 악몽이기를...'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서로 의지해 살아 나자고 약속한 사람들이 어떻
게 저리도 변할 수 있는 것일까... 도대체 뭐가 저들을 그리도 변하게
만든 것일까...

그때였다. 내 앞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느닷없이 칼이 날라왔다. 엉겁
결에 피하고 바라보니 포로 중에 가장 말이 없고 겁이 많아 보였던
진한이었다. 그는 이미 많은 사람들을 살인한 듯 온 몸에 피가 튀겨
얼룩져 있었고 칼을 든 그의 손은 겉잡을 수 없이 떨리고 있었다.

"진... 진한아... 나야... 나 형민이..."

그러나 진한이의 눈동자는 이미 돌아가 있었다. 그의 두 눈에서는
내가 오직 한마리 짐승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듯 했다.

"시끄러...! 난 이미 세명을 죽였어. 바로 이 칼로..."
"어... 떻게 네가... 그런... 짓을..."
"난 살아야 해. 살아나야만 해. 저들이 시키는 건 무슨 짓이든 해서
살아나야만 해..."
"지... 진정해..."

진한이가 커다랗게 소리를 지르며 나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내가
두눈을 꼭 감으며 '이젠 죽었구나.'란 생각을 하는 순간 진한의
'허억!'하는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덜덜 떨며 조금 눈을 뜨고
바라보았다. 진한이는 이미 땅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그의 곁에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칼을 든 상규가 서 있었다.

"사... 상규야... 네가 누굴 죽였는지 알아? 지... 진한이라고...
너와 같은 고향이라고... 너를 그렇게도 따르던..."

그러나 이미 상규는 제 정신이 아니었다. 상규는 쓰러져 신음하는
진한의 등을 다시 한번 칼로 내리 찍더니 진한의 피가 묻은 칼을
자신의 바지에 닦았다.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아 두 손을
늘어 뜨린 채 상규를 쳐다 보았다.

"김. 형. 민. 흐흐흐. 넌 나중에 죽여주지... 아니지... 다른 사람
에게 죽어주면 더욱 좋겠고... 흐흐흐."
상규는 말을 마치자 재빨리 숲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나는 손에 힘이
빠지며 나도 모르게 칼을 땅바닥에 '털썩'하고 떨어 뜨렸다.

그리고... 계속해서...
내 귀에는 전우들의 비명소리와 아우성만이 들려 오고 있었다.

게임의 종료 시간이 다가 올 수록 포로들의 비명 소리가 간혈적으로
들려왔다. 아마도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로 죽이고 죽는 사이 몇명
남지 않은 것 같았다.

문득 시계를 보니 21시 30분이었다. 그러나 나는 살아 있었다. 요행히
내 몸을 숨기기에 꼭 알맞는 동굴을 찾아 이곳에서 4시간을 버텼던 것
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들킬까봐 숨도 크게 못 쉬면서...
나는 용기를 내어 동굴 밖으로 나왔다. 이제 집합 장소까지 천천히
걸어 가면 그들과의 약속시간인 22시가 될 것 같았다. 잔뜩 긴장을
하고 걸어 내려가는 길가에는 여기 저기 처참하게 죽어 널부러진 포로
들의 시체가 눈에 띄었고 피 비린내가 온 산에 진동했다.

처음에는 얼굴을 아는 시체가 보일 때마다 깜짝 깜짝 놀랐지만 집합
장소까지 거의 내려 왔을 때는 그런 것들에 대해 익숙해져 버렸다.

저만치서 푸른 제복의 군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일단은 살아 남았다는
안도감에 나도 모르게 한줄기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 내렸다.

"저게... 누구야? 음... 김형민이군... 좋아 그럼... 단, 두명만이
살아 남은 셈이야... 먼저 도착한 최상규와..."

군인 간부의 말에 고개를 돌려보니 온 몸에 피를 흠뻑 뒤집어 쓴 상규
의 얼굴이 보였다. 그는 아직도 흥분이 가라 앉지 않은 듯 '씩씩'
거리고 있었다. 군인들 몇몇이 내 팔짱을 끼고 군인 간부 앞으로 걸어
가 상규와 함께 무릎을 꿇렸다.

그리고 군인 간부는 자기들끼리 한참동안 쑥덕거리다가 권총을 천천히
빼들어 우리에게 겨누었다.

"자, 이제 풀어 줄 사람을 발표하겠다. 오늘 '생존 게임'의 결과라...
음... 최상규가 16명을 죽여 단연 돋보이는 전투 실력을 보였군....
허, 대단한데? 우리가 포로들에게 손 댈 필요도 없이 다 죽여 주었
으니... 이거, 고마워 해야 할 지경인걸? 후. 후. 후... 그리고 김형민
은 단 한사람도 못 죽였어... 후... 세상에..."

상규는 슬며시 고개를 돌리며 중얼거렸다.
"김형민... 안됐어... 이제 너는... 저들의 손에 죽겠군... 후. 후.
후. 샌님같으니라고... 그러니 내가 뭐랬어...? 키.키.키"

나는 바지가 척척해져 옴을 느꼈다. 그때 군인 간부의 권총에서 '딸깍'
하고 장전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결국은...'

정신이 아득해져 쓰러질 것만 같았다.

"음... 어쨌든... 최상규는 칭찬할만 하군... 자, 내가 얘기하는 것을
본부에 전송해라."
"예."

군인 간부 곁에 있던 푸른 제복의 군인이 그의 말을 받아 전송하기 시

작했다.

"서기 2098년 10월 26일 현재... 총통 각하의 진압군에 대항하던 반란군
포로 30명에게 본부의 지시대로 '생존 게임'을 실시한 결과...
28명 사망... 2명 생존... 간부 회의 결과 2명의 생존자 중 한명만을
살리기로 결정하였음. 본인 등의 판단에 의하면..."

나도 모르게 두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런... 잠시후면...나는...'

"전투력이 상당한 최상규는... 사형... "

깜짝 놀라 고개를 드는 순간 군인 간부의 권총이 '탕'하고 불을 뿜었다.
상규는 총알에 머리가 관통된 채 힘없이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그의 머
리에서 검붉은 피가 쉴새 없이 새어나와 땅바닥에 스며 들었다. 나의 얼
굴은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 그리고... 살려두어도 총통 각하에게 전혀 해가 없을 듯 싶은 소심
한 김형민을 풀어 주기로 결정하였음..."

나의 두 눈에서는 왠지... 뜻 모를 눈물이 샘 솟듯 흘러 나왔다.

'이런... 그럼... 여태까지 우리들은 꺼꾸로 생각한 것이었나? 다들
조용히 숨어 있었으면 모두 살아 날 수도... 제... 길... 이런... 흑.
흑. 흑...'

잠시 후 군인 간부의 목소리가 내 귀에 '윙윙'거리며 울렸다.

"금번 포로들의 '생존 게임' 계획은 아주 우수하다고 사료됨. 반란군의
진압군에 대한 경각심 고취는 물론... 이 사실을 반란군에 알릴 시....
서로 죽인 사실을 그들이 알면.... 그들의 사기 저하에도 한 몫할
것이며... 우리 진압군에 전혀 해가 없을.... 반란군의 포로들을 색출
하여... 살려 보냄으로써... 진압군의 이미지 쇄신에도... 유용하며..."



*여러모로 부족한 글을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 민 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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