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그러진 조각 퍼즐

맥클로린 작성일 06.12.19 11:5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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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말씀드린대로 제 아내가 10년째 애를 낳지 못해요. 그래서 생각다
못해 남자 아이 한명을 입양할까 하고요..."

담배 연기가 자욱한 고아원 원장실에서 책상을 마주하고 원장과 형민이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시군요. 전화로 연락은 받았습니다만..."
"적당한 남자아이 한명 없을까요? 저희 집사람도 애들을 워낙 좋아하니
우리집에 들어오는 아이는 행복할 겁니다. 저도 사회적으로 자리를 잡을
만큼 잡았구요."
"참, 신문사 편집부장님이시라고요?"
"예... 그리 큰 신문사는 아니지만... 어쨌든..."

원장은 피던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며 일어섰다.

"자, 김형민씨. 그럼 일단 아이들 방으로 가서 한번 둘러보시고요..."

형민은 자리에 앉은 채로 원장을 쳐다보았다.

"아이들이 뭐 물건도 아니고... 원장선생님이 적당한 아이를 골라주시죠.
전화로 말씀드린대로 나이가 한 열살 정도되는 남자 아이면 됩니다. 저
희 부부의 나이도 있고하니 너무 어린 아이는 키우기가 좀 뭣하거든요?
그리고 되도록이면 부모가 확실히 없는 아이로요... 미아들은 언제 친부
모가 나타날지 모르니..."

원장은 제자리에 선 채로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예... 그건 저도 들어 알고 있습니다만... 우리 고아원에는 미아가 아닌
열살 정도 되는 아이가..."
"없나요? 그렇다면... 뭐 할 수 없지만... 아쉽네요... 전 아는 분 소개로
일부러 이곳에 온 건데... "

형민이 실망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문쪽으로 발길을 돌리는데 원장
이 조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말씀하신 조건에 맞는 아이가 한명 있기는 한데... 좀..."

문을 열고 나가려던 형민은 원장의 말에 멈춰섰다.

"예? 그런 아이가 있어요? 그러면 제게 소개시켜 주시죠. 그런데... 뭐
걸리는 점이라도 있나요?"
"그게요... 그 아이의 아버지가... 아직..."

원장은 말끝을 흐리며 책상으로 다가가 산처럼 쌓인 서류 중에 하나를
꺼내 형민에게 건넸다. 형민은 의아스러운 눈으로 서류를 펼쳐 보았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예요? 아이 아버지가 사형수라고요?"
"예. 거기 씌어 있다시피... 그래서 그 점이 좀... 아직 사형이 집행되
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그러셨군요."

형민이 쓴 웃음을 짓자 원장이 다소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할 수 없죠. 우선 다른데를 알아보시죠. 아직 아버지가 살아 있는 아이
를 입양시킨다는 것이 저로서도 좀..."

원장이 담배를 한대 꺼내 형민에게 권했다.

"흠... 그런데요... 아시다시피 지금 전쟁 후도 아니고... 고아라 해봤자
어릴때 미아가 된 애가 대부분이고... 또 정말 고아라해도 나이들이 너무
어려서... 열살 정도의 아이를 만나는게 그리 쉽지가 않더라구요... 더구
나 그런 애들은 대부분 몸이 장애자인 경우가 허다하구요."

원장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좋은 생각이 난 듯 얘기했다.

"자, 그럼 이렇게 하도록 하죠. 그 아이 아버지의 사형집행이 이번달 안에
하도록 되어 있으니까... 형집행이 되면 그때 입양하는 걸로 하시고...
조금만 기다려보시죠..."
"기다리는 건 뭐 어려운 일이 아닌데... 그 아이가 좀 불쌍하군요. 아버지
가 사형수라니..."
"예... 참 여린 애인데..."

형민은 씁쓸한 표정으로 원장과 악수를 한 후 고아원 원장실을 나섰다.

*************

"여보. 전화왔어요. 고아원이라는데요?"
"그래?"

늦은 저녁식사를 하던 형민은 거실로 나가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아, 원장 선생님."

전화속에서 약간은 우울한 원장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예. 김형민씨... 저... 일전에 제가 말씀드린... 그 아이 아버지의 사
형이 어제 집행됐어요. 아직 입양할 의사가 계시면 내일이라도 오시죠."

형민은 잠시 말이 없다가 천천히 얘기했다.

"그... 래요? 아직 적당한 아이를 입양하진 못했지만... 좀 그렇네요.
기분이... 그 아이는 그 사실을 아나요? 아버지가 죽었다는걸?"
"오늘 제가 얘기했어요. 그 아이는 나이보다 조숙한 구석이 있으니 잘
견뎌내겠죠."
"그렇군요...."

형민은 갑자기 아버지가 사형됐다는 그 아이가 한없이 불쌍하게 생각되
었다.

"음... 그렇다면 내일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나요? 제가 지금 당장 갈테
니... 아이 짐이나 싸두시고요..."
"그러실래요? 잘됐네요. 저는 혹시라도 김형민씨께서 거절하시면 어떡하
나 했는데... 사실 그 애는 지금 몹시 충격을 받은 것 같아요. 막상
아버지가 죽었다고 하니까..."

원장은 그 아이에 대해 몇마디 더 얘기를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형민의
집사람은 통화 내용을 유심히 듣다가 전화를 끊자 마자 다급히 물었다.

"일전에 말씀하신 그 고아원이예요?"
"응."
"어떻게 됐데요?"
"그 아이 아버지가 어제 사형됐다는구만. 내가 지금 가서 데리고 올테니
방이나 잘 치워 놓고 맛있는 것 좀 해놔요. 당신도 그 아이 입양하는 걸
이미 허락했으니..."

형민의 집사람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소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쯧쯧... 그 아이 아버지는 무슨 죄를 지어 사형까지 당하게 됐는지...
불쌍하네요. 하지만... 어찌보면 우리로서는 잘 된 셈이네요. 원하던
아들이 생기게 되었으니..."
"그건 그런데... 어쨌든 다녀올께."

*************

"어서 오세요, 김형민씨. 생각보다 빨리 오셨네요?"
"예. 밤이라 길이 많이 안 막히던데요?"

원장은 얼굴에 웃음을 가득 띠며 반갑게 맞이했다. 형민은 방안을 둘러
보다가 물었다.

"저... 그 아이는..."
"아, 지금 자기 방에서 짐을 싸고 있어요. 같이 가실까요?"
"예. 그러죠..."

원장이 안내하는 대로 건물 2층으로 올라가니 작고 조용한 방에 한 아
이가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머리를 다리 사이에 푹 파묻고 있었다. 형민
은 너그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 아이를 바라보았다.

"상규야. 내가 얘기한 그 아저씨가 오셨다. 일어나서 인사해야지?"

원장의 따뜻한 말에 상규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안녕. 내 이름은 김 형민이라고 하고..."
"원장선생님. 도대체 얼마를 받고 저를 저 아저씨에게 파시는 거죠?"

나지막한 목소리로 상규가 형민의 말을 가로막았다. 형민과 원장은 조금
놀란 얼굴로 상규를 바라보았다.

"너... 그게 무슨 말버릇이니? 돈을 받다니..."
"됐어요. 쫓아내면 나가야죠."

상규는 벌떡 일어나더니 방밖으로 '휙' 나가버렸다. 원장은 한동안 어이
없다는 듯 서있다가 형민을 쳐다보았다.

"상규가... 충격을 많이 받은 것 같군요. 평소에 그렇게도 착한 아이가.."

형민은 이해한다는 듯 침착하게 말했다.

"뭐... 며칠 지나면 나아 지겠죠. 오히려, 저 아이가 저렇게 나오니 불쌍
해 보여 더 잘 키워야 겠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렇게 생각하신다니 다행이구요... 어쨌든 저 아이를 잘 부탁 드릴께요.
참 이거는..."

원장은 주머니에서 편지봉투를 하나 꺼내더니 형민에게 주었다.

"뭐예요? 이게?"
"아, 오늘 교도소에세 온건데요... 제가 며칠 전에 교도소로 가서 상규 아
버지를 만나 얘기를 했었거든요? 상규를 입양할 분이 계신다고... 그랬더
니 형이 집행되기 전에 유서 비슷하게 김형민씨에게 편지를 쓰신 모양
이예요. 아침에 상규에게 보내 온 작은 상자 하나 하고 같이 왔더라구요."

형민은 무심코 편지를 주머니 속에 집어 넣으며 물었다.

"상자요?"
"아, 예... 상규 아버지는 원래 조각가였어요. 아마 교도소에서 마지막 선
물로 뭘 만들어서 상규에게 보낸 것 같은데..."
"아, 예..."

원장은 형민의 어깨를 친근하게 두드리더니 말했다.

"이제 상규를 데리고 가보세요. 아마 밖에 있을 거예요."
"예, 그럼... 이만..."

*************

형민은 자신의 승용차 뒷자리에 앉은 상규를 백밀러로 힐끔힐끔 바라보
며 조심스럽게 운전하고 있었다. 상규는 컴컴한 차안에서 조그마한 상자
를 꺼내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상규야, 그게 아버지가 보낸 선물이니? 아저씨가 보기에는 무슨 조각
퍼즐 맞추기 장난감 같은데... 아버지가 직접 나무를 깎아 만든건가 보구
나. 조각을 맞추면 무슨 그림이 되니? 아버지가 직접 그린거니? 상규야,
말 좀 해봐라... 응?"

차를 타고 오는 동안 한마디 말도 없이 묵묵히 조각 퍼즐만 맞추던 상규가
갑자기 기쁘다는 듯이 소리쳤다.

"이야 드디어 다 맞췄다. 히히히"

상규는 나무로 된 조각 퍼즐을 가슴에 꼭 안은 채 형민을 바라보았다.

"아저씨, 이게 무슨 그림인지 궁금하세요?"
"응, 궁금하지. 아저씨도 어릴때 그런거 마추는 것을 좋아했거든? 나 어
릴때는 만화 주인공이나 뭐 그런걸 그린 그림을 조각 내서 팔았는데...
요새는 주로 영화 장면 같은 것을 조각내서 팔더라? 그런데... 그거 맞추
는 거 꽤 힘들지?"

그러나 상규는 형민의 말에 대꾸도 안하고 연신 싱글거리며 조각 퍼즐
을 바라보며 좋아했다. 간혹 조각 퍼즐을 귀에 대고는 무슨 소리를 듣는
것 같은 시늉을 하면서... 형민은 상규에게 말을 거는 것을 포기하고는
차를 운전하는데 열중했다.

*************

-따르릉-

"편집부장님, 댁에서 전화왔는데요?"

형민은 마감시간이 임박한 기사거리를 정리하다가 미스박이 건네주는
수화기를 받아들었다.

"응, 여보, 왜?"
"상규가 아무리 해도 말을 안 들어요. 하루종일 방구석에 쳐박혀서 나올
생각도 하지 않고 밥도 먹지 않고요... 방안에서 이상한 그림이 있는 조
각 퍼즐을 바라보고 중얼거리며 노는데..."

형민은 조금 짜증이 난 목소리로 대꾸했다.

"상규는 지금 신경이 날카로울 거라구 했잖아. 아이 기분 하나도 못맞
춰?"
"참나... 그 정도가 아니라니까요. 아까는 고아원 원장 선생님이 자기를
우리한테 팔았다고 욕하더니만 죽어야 한다고 그러더라구요. 애 정신이
좀 어떻게 된건지..."
"여보, 나 지금 바빠. 조금 있으면 내일 신문 기사 마감시간인데 아직
편집이 다 끝나지 않았단 말이야."

형민의 집사람은 투덜거리며 말했다.

"글쎄... 내가 혼을 내니까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나까지도 죽여 버
린 다고 협박하더라구요. 이건 뭐 애가 아니라... 어쨌든 오늘은 좀
일찍 들어오세요."
"알았어. 끊어."

형민이 전화를 끊자마자 장기자가 기다렸다는 듯이 기사뭉치를 디밀었다.

"이게 뭐야?"
"뭐긴요? 오늘 아침에 목이 잘린 채로 발견된 고아원 원장 살인 사건에
관한 기사죠."
"그런 일도 있었어?"

형민이 심드렁히 기사를 훑어 보다가 놀라 소리쳤다.

"아니... 이럴 수가..."

기사에는 고아원 원장의 살인사건에 대해 씌여 있었는데 바로 상규를
입양한 그 고아원이었다. 사건은 아침에 일어났는데 아무도 본 사람이
없고 누가 침입한 흔적도 없이 고아원 화장실에서 원장이 목이 잘려 죽은
채로 발견이 됐는데 그의 머리는 아직도 찾지 못했다는 내용이었다.
형민은 집사람의 전화내용이 머리에 스치며 어제 받은 편지가 생각났다.
형민은 다급히 안주머니를 뒤져 원장에게서 받은 편지를 꺼내어 읽었다.


[김형민이라는 사람에게....

당신이 내 아이를 입양한다는 소리를 들었어. 처음에는 무척이나 고맙다
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지금은 기분이 좀 그렇군. 왠줄 알아? 내가 사
형까지 당하게 된 것도 사실 따지고 보면 상규때문이야. 그 애는 이세상
에 단 하나밖에 없는 나의 소중한 혈육인데......

...... 어릴때 그 애를 버리고 도망간 그 아이 엄마를 죽인 것을 시작으
로 그놈의 새 남편하고 또.... 어쨌든 난 상규에게 조금이라도 해를 끼
치는 사람들은 다 죽여버렸지. 심지어 상규를 아무 이유없이 채벌했다는
것 때문에 그 아이 담임 선생까지도......

훗... 앞으로도 그 애에게 조금이라도 섭섭하게 하는 자식들은 다 죽여
버리겠어. 내가 비록 조만간 죽게 되겠지만 어떤 식으로라도 그 아이는
내가 지켜줄거야. 그 아이가 원하는 건 무엇이든지 들어 줄거고... 또...
그러니 알아서 해. 상규에게 손가락 하나라도 허투루 댔다가는.... ]


형민은 읽고 있던 편지를 떨어뜨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설마...?"

귀신이라던가 혼령의 존재는 애당초 믿지 않는 형민도 왠지 불길한 예
감에 겉옷을 걸치고 황급히 집으로 향했다.

*************

"여보, 나왔어. 어딨어?"

형민이 다급히 집으로 들어서서 집사람을 불렀지만 아무 인기척이 없었
다. 형민은 곧장 상규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그러나 방문은 안으로 굳
게 잠겨 있었다.

"상규야, 아저씨다. 문열어."

몇번을 소리치고 문을 두드려도 방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쩔줄 몰라 잠시 서있는데 방안에서 상규의 웃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려
왔다. 형민은 섬뜩한 기분이 들어 방문에 귀를 가져다 대었다.

"히. 히. 히. 아빠. 고마워. 저 아줌마가 아까 나를 혼냈었는데... 언제
나 내 곁에 있을 거지? 히. 히. 히."

형민은 이것저것 생각할 틈도 없이 발로 문을 부수고 안으로 뛰어 들어
갔다.

"엇? 아~~~ 악!!!"

방안 한쪽 구석에 형민의 집사람이 목이 잘린 채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있었고 방바닥은 피로 흥건했다. 그리고 여기저기에 피에 묻은 어른의
발자국이 있었다. 형민은 턱을 덜덜 떨며 피발자국이 나있는 곳으로 따라
가보니 벽장 앞에서 끝이나 있었다. 형민이 조심스럽게 벽장 문을 여니
상규가 품에 피묻은 조각 퍼즐을 소중히 껴안은 채로 만면에 미소를 띄고
형민을 노려보고 있었다.

"너... 너... 뭐하는거야... 이게... 도대체..."

형민은 상규가 들고 있던 조각 퍼즐을 나꿔챘다.

"이... 이런..."

조각 퍼즐에는 한 남자가 교수형을 당하는 장면이 연필로 적나라 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 남자는 혓바닥을 길게 내밀고 두 눈을 꼭 감은 채로
교수대 밧줄에 목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는데 자세히 바라보니 그림
속의 그 남자의 발에는 검붉은 피가 묻어 있었고 두손에는 형민의 집사
람의 머리와 원장의 머리가 들려 있었다. 역시 그곳에서도 연신 피가 뚝
뚝 흘러 내리며...

"사... 상규야... 어떻게.. 이런 일이..."

상규는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형민을 바라보며 얘기했다.

"거기 매달려 있는 사람이 우리 아버지야. 어제 그 조각 퍼즐을 다 맞추
고 나니 그림 속의 아버지가 눈을 뜨며 내게 얘기하더군. 보기 싫은 사람
을 얘기하면 언제라도 그 속에서 나와서 죽여 버린다고... 그래서 내가
원장 선생님과 아줌마를 죽여달라고 했더니..."

형민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신음소리를 냈다.

"마... 말도 안돼... 그... 그런..."

상규는 두 손을 턱에 괴며 재미있다는 듯이 형민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아저씨 차례야... 알겠어? 후. 후. 후..."
"아... 안돼... 엇... 아악~~"

그때 형민이 들고 있던 조각 퍼즐의 그림속, 교수대에 매달려 있던 그
남자가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는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밧줄을
풀고는 조각 퍼즐 밖으로 천천히 손을 내밀며 형민의 머리를 부여 잡고
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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