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내는 정신 병원에 있다. 아내는 지금 정신 질환과 알콜 중독치료를
받고있는데 모두들 내게 아내를 포기하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없다. 오히려 아내가 얼른 치료를 마치고 내게로 돌아오기를 바란다. 결혼할
무렵만 해도 아내는 지극히 정상적인 여자였다. 아내의 부모님이 살해된 후
아내는 술을 마시기 시작했으나 나는 이기기 어려운 고통을 견뎌내기 위해
그러는 줄 알고 내버려두었다. 하지만 증세는 심해져 갔고 나중에는 부모님
뒤에 있는 하얀 손을 보았느니 하며 헛소리를 시작했다. 그 하얀 손 타령은 끝내
아내를 내 곁에서 빼앗아 가고 말았다.
아내의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다는 말을 듣자 마자 나는 퇴원 준비를 했다.
그리고 아내의 부모님이 남겨주신 돈으로 조금이라도 아내가 편히 지낼 만한
좋은 집을 샀다. 또 아내를 돌봐줄 아주머니도 구했다.
퇴원한 아내는 조금 여위고 파리했으나 정상처럼 보였다. 그리고 현실에도
적응하는 듯 보였다. 나는 만족스러웠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아내는 나
몰래 아주머니에게 돈을 주고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내가 알았을 때
는 이미 상태는 악화되었다. 나는 매우 화를 내며 아주머니를 내쫓고 내가 몸
소 아내를 돌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회사에서 중대한 일로 출장을 떠나야했다. 나는 난처했다. 아내를
데려 갈 수도 그렇다고 아내 혼자 두고 갈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때 나는
좋은 생각이 났다. 아내에겐 친척이라고는 단 한 분 숙모님이 계시는 데
미망인으로 어린 외동딸과 함께 살고 있었다. 아내를 귀여워하시기에
부탁하면 잠시 맡아 주실 것 같았다. 숙모 님은 예상대로 흔쾌히 승낙하셨고
나는 아내의 짐을 꾸려 숙모님 댁으로 향했다.
숙모 님께 아내를 부탁하고 뒤돌아 나오는 데 갑자기 아내가 쫓아 나왔다.
숙모님과 딸이 아내를 말리려고 달려나왔는데도 불구하고 아내는 내게 매달
리더니 귀에 대고 속삭였다.
"여보. 여보. 나 봤다. 숙모 님 등뒤에 하얀 손이 보였어.... 정말이야....."
또 하얀 손 타령이야? 나는 짜증이 났으나 숙모 님이 계셔 아무 말 없이 인
사를 하고 길을 떠났다,,..
일을 마치고 아내를 데려오기 위해 숙모 님 댁으로 간 나는 깜짝 놀랐다.
숙모님이 강도에게 끔찍하게 살해되어 경찰들로 와글와글했던 것이다. 한 경
찰관에게 물으니 아내와 아내의 사촌 동생은 경찰서에서 보호중이라고 했다.
나는 아내가 걱정되어 한달음에 경찰서로 향했다.
"여보 괜찮아?"
아내는 반가운 듯 안기며 말했다.
"응. 그 봐 내가 하얀 손을 봤다고 했지?"
나는 그만 아내에게 화를 내고 말았다.
"내가 그 얘기좀 그만 하라고 했잖아"
그러자 한 경찰이 웃으며 말했다.
"그만 하세요. 여기 와서도 계속 그 타령인데..... 우린 진짜로 뭐라도 본줄
알고 열심히 물었었는데 부인이 정신 질환을 앓은 기록이 있더라구요..."
아내의 사촌 동생도 잠이 들어 아무 것도 보지 못했고 아내는 말도 안 되는
소리만 계속한다며 아무래도 금품을 노린 강도의 우발적인 범행 같다고 말
했다. 나는 아내는 환자이고 사촌 동생은 어리니 집으로 데려가도 좋은 지를
물었다. 경찰은 그러라고 하며 뭐라도 사건에 도움이 되는 것이 있으면 언제
라도 연락하라고 했다.
새로운 아주머니를 구하고 그럭저럭 평화로운 생활이 이어졌다. 갈 때가
없어진 아내의 사촌동생도 내가 부양하기로 하고 아내도 얌전해져서
만족스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 사촌 동생은 내게 경찰서로 데려다 달라고 했다.
"왜, 무슨 일이니?"
"별건 아닌데요.. 엄마가 죽던 날 일 중에 뭔가 좀 이상한 게 있어서요"
"그래? 그치만 오늘은 곤란하구나. 오늘 내가 중요한 볼일이 있어서 좀 멀리
갔다와야 하거든. 내일 데려다 주마."
그때 갑자기 아내가 달려와 말했다.
"여보, 여보. 나 유나(사촌동생의 이름) 등뒤에서 하얀 손을
보았어... 정말이야."
"당신 또 왜 이래? 다시 병원으로 가고 싶어?"
"형부 화내지 마세요. 언니야 나랑 방으로 가자."
아내의 병이 재발한 걸까? 어쩌면 다시 병원으로 아내가 떠나버릴지도 모른
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슬펐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저녁이었다. 벨을 누르자, 아주머니가 사색이 된 얼굴로
뛰쳐나왔다.
"이를 어쩌면 좋아요... 유나 아가씨가 많이 아파서 지금 병원에 계셔요.
...아저씨에게 연락이 안돼서 제가 오시면 알려드리려고 남아있었어요...
세상에.. 독극물을 먹었대요..."
나는 병원으로 달려갔다. 왜 자꾸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의아해하
면서... 내가 도착한 후에는 이미 유나는 죽어있었다. 간호사에게 그 사실
을 확인받는 순간 나는 맥이 빠져 잠시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그때 아내는 웃으면 다가와 또 그 얘기를 했다.
"여보, 여보. 나 유나 등 뒤에서 하얀손을 보았어... 정말이야.."
나는 너무나 화가 나서 아내를 후려쳤다.
"한 번만 더 그 소리하면 병원에 쳐 넣고 다시는 못나오게 할 테다."
유나의 장례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숙모 님이 많은 돈을 남겨 주셔서
어린아이의 장례지만 섭섭지 않게 치를 수 있었다. 아내는 나에게 맞은 이후
많이 얌전해져서 오히려 풀죽은 모습이 안타까울 정도였다. 아주머니에게
수고 비를 주고 돌려 보낸 후 나는 잠을 좀 자 볼 요량으로 침대에 누워
잡지를 뒤적이며 잠을 청했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나는 아내의 방으로 갔다.
아내는 화장대에 앉아 긴 머리를 빗어 내리고 있었다. 나는 아내의 어깨를
부드럽게 안았다. 아내는 갑자기 창백한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여보, 여보 내 등뒤에서 하얀 손을 보았어... 정말이야"
정말이다. 내 하얀 손에 쥔 칼은 어느 때보다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