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미스테리에대한글.. no 2

whcjfgh 작성일 07.01.17 11:3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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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후예라면서 일제시대에 왜 그렇게 한민족을 탄압했나???

침략의 정통성을 세워야 했기 때문입니다

원래 일본 고유정착 민족은 아이누 족으로 이들은 동양인의 특성보다는 유럽인종의 특성을 더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호랑이가 담배피던 시절, 현재로 따지면 약 1만년 전 쯤에 지구에는 빙하기가 찾아 왔었습니다.



이때 육지로 연결된 일본열도로 건너간 이들이 현재의 일본인의 조상들이죠.



질문을 하신분도 잘알고 계시다시피 일본이라는 나라는 옛날부터 뛰어난 문화를 발전시켜온 한국인들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고구려 광개토태왕때 태왕의 대대적인 침공으로 백제의 수도였던 위례성이 함락되었고 당시 백제의 지배자였던 응신 천황은 십제의 아신왕에게 뒷일을 맡기고 일본으로 도망쳤지요.



이 사람이 바로 일본서기에 기록된 바로는 15대 천황인 응신천황입니다.(실제로는 응신천황이 일본으로 건너감으로써 일본천황가가 시작되었다 합니다.)



물론 일본서기다 뭐다해서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보면 일본은 거의 한국의 속국이었습니다.



이런 자료로 인해 일본은 한국에 상당한 역사적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한국을 합병한 당시 가장 먼저 한일이 한국의 사서(史書)들을 모아 불지르는 것이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단고기, 제왕운기등은 남았지만 그당시에 소실된 책들이 무사히 남아있었다면 현재 우리나라가 동북공정이라는 얼토당토 않은 프로젝트에 우리역사를 빼앗길 위기에 처하지는 않았을거라고 봅니다.



이야기가 잠시 다른 곳으로 샜는데 이유는 앞서 말했듯이 역사적 콤플렉스 때문입니다.



그래서 임나일본부설이라는 일본 학자들도 믿지 않는 학설을 앞세우고 친일파들은 대거 사학계로 진출시켜 한국 고대사를 말살시키려 했습니다.



친일사학의 거장인 故이병도는 그나마 죽기전에 단군의 건국 전설이 진실이라는 양심적인 논문을 발표하고 죽었습니다만, 아직도 한국 사학계는 친일파들이 잡고 있습니다.(전설이라고 표현한 것은 신화라고 하기엔 너무도 진실성이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일본인들의 역사 콤플렉스 때문에 우리나라는 36년간 역사와 민족과 문화를 잃어야 했다는 것을 기억하시면 되는 겁니다.



일본은 백제의 속국 또는 위성국가(독립적인 속국) 였습니다.

즉 백제와 일본의 관계는 군신관계 였습니다.

그 증거가 바로 님이 말하신대로 백제가 일본에 많은 문물을 가져다 주었다는데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에 있는 유적을 보면 대부분 백제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아무리 국가관계가 친밀하더라도 한 국가가 다른 국가에게 자신의 문화를 그렇게나 많이 전파할까요?

그리고 6~7세기 백제의 정계를 지배한 귀족이 있엇는데 그 귀족은 소아씨 가문입니다. 그런데 이 소아씨

는 백제계 사람이라고 합니다. 만약 일본이 백제의 속국이 아닌 자주국이었다면 다른 나라 출신의 사람

이 일본의 정계를 잡을 수 있었을까요?

그 뿐만 아니라 백제가 일본에 주었다는 칠지도를 보면 일본이 백제의 속국이었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칠지도에 새겨진 명문을 보면

"백제왕이 왜 후왕에게 준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왜 후왕은 왜 즉 일본의 왕을 말하는 것인데 여기서 후왕이란 단어에 주목을 해야합니다.

후왕이란 제후의 의미입니다.

그런데 백제가 왜왕을 후왕이라고 한 것은 왜 즉 일본이 백제의 제후국이었다는 말입니다.

또한 일본을 다스린 왕 중 계체천황이 있는데 이 사람은 무령왕의 도움으로 천황위에 올랐습니다.

계체천황이 천황위에 오를 수 있도록 백제가 지원한 것을 보면 백제가 왜의 상국임을 알 수 있지요

그리고 백제 멸망 후 왜가 백제의 부흥운동을 강력하게 지원을 했습니다.

특히 주류성의 함락으로 백제부흥운동이 막을 내리자 후퇴하는 왜군들이

"아!아! 주류성이 함락되엇구나, 조상의 땅을 잃엇으니 어찌 다시 찾아 뵈리오" 하며 통곡을 하엿는데

이를 보면 왜가 백제의 속국임을 알 수 있지요

그리고 현 일본에는 백제와 관련된 지명과 명칭이 많이 남아 있는데 이를 보면 백제가 일본을 지배한 상

국이었고 백제와 일본의 관계가 군신관계 임을 알 수 있지요

2.백제는일본의영토를왜안뺏었나???

백제가 일본의 영토를 빼앗지 않은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몇 가지를 추려 생각해보면,



1. 일본의 전략적 가치를 낮게 보았다.

백제의 주요 정책은 중국으로의 진출입니다. 교과서에 근거하여 생각해보면 근초고왕 대에는 요서, 산동 지역에 세력을 두었다고 했지만, 실은 그 전부터(고이왕 대부터) 중국으로의 진출이 활발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광대한 영토인 중국 쪽이 발전 가능성이 더 높았기 때문입니다. 일본 지역은 그 때 당시 미지의 지역이 대부분이었고, 나름대로 선진 문화를 이끌어 간다는 중국보다 훨씬 미개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그 쪽으로 진출했을 경우 발전 가능성이 낮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2. 왜구

삼국사기 등 여러 사서를 보면 자주 왜구의 침입에 대한 기사가 나옵니다. 이 왜구는 수백에서 수천에 이르는 군사들로 우리나라의 해변을 노략했었고, 때문에 신라는 여러 번 국난을 맞이해야 했던 경우도 있었습니다. 만약에 백제가 일본의 영토를 적극적으로 차지하려 했었다면 이 왜구와의 결전도 피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만약 일본에 영토를 두었다 하더라도 지속적인 왜구의 침입에는 그리 오래 버틸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백제는 해외의 영토 뿐만 아니라 내부의 문제나 한반도 내에서의 외교적 문제에도 많은 신경을 써야 했기 때문에, 당시 분열 상태에 있던 중국이 왜구에 들끓는 일본보다 더 안정적이라고 생각됐을 거라 생각합니다.



3. 당시의 정세(외교)

백제는 초기부터 신라와 크고 작은 마찰을 벌이고 있었고, 국력을 확장하면서부터는 고구려와의 충돌도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합집산의 세태에서 백제는 확실한 동맹국과, 신라나 고구려의 영향에서 벗어나 있는 나라를 찾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일본인데, 백제는 당시의 일본은 일본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하나의 통일세력이 없었지만 신라, 고구려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기에 백제의 동맹국으로서 적합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동맹의 증거로 일본과의 무역을 시작한 것이지요. 백제가 선진 문물과 식량을 주는 대가로 일본은 백제와의 동맹을 지켜나간다, 이것이 백제와 왜 사이 동맹의 핵심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만약 백제가 일본을 정벌하려 했거나 영토를 빼앗으려 했다면 시간과 물자 뿐 아니라 신라와 고구려의 배후 기습을 걱정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손해보는 장사였죠. 전쟁보다야 (문물 전파 형식의)무역이 싸게 먹혀든다는 계산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백제의 국력이 쇠한다 하더라도 영향이 거의 없는 왜는 든든한 배후 세력이 돼 줄 것이므로 여러모로 백제에게는 이익이라 할 수 있죠



사진 1.

당시 신라와 백제에 온 일본사신 복원

2. 일본 ad 7세기경 마을

3.일본 ad 3~5세기경 평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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