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에 대한 이해는 우리에게 삶에 대한 진실만을 전해주는 것이 아니다. 뇌는 삶의 정반대 쪽에 있는 죽음에 대한 진실을 함께 전해준다. 살아가는 이유뿐 아니라 살지 않아야 할 이유까지도 사실은 뇌에 이미 만들어진 프로세스에 의한 것이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삶의 의미를 잃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지난해 자살은 우리나라에서 7번째 사망원인으로 기록되었으며, 교통사고 사망자수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전세계적으로는 40초마다 한 명씩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심리적으로 자살을 시도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는 우울증이 꼽힌다. 자살자의 80%가 심각한 우울증 끝에 목숨을 끊는다. 우울증과 자살의 관계가 밝혀진 것은 최근의 일이다. 우울한 기분은 인간의 감정 중 하나이고, 이것이 어떠한 이유로 통제가 불가능 상황으로 발전하면 우울증이 된다. 그리고 우울증은 삶의 의미와 의욕을 스스로 잃게 만들고 마지막으로 심한 경우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들어 버린다.
삶의 의미를 잃고 자살을 감행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에 의해 그런 선택을 한다는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지만, 사실은 그것 역시 뇌에 이미 만들어져 있는 프로세스에 의한 것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과정이 완전히 자유로운 활동이라고 간주하는 것은 너무나 순진한 생각이다. 논리적인 이성은 단계 단계의 좁은 영역에 국한 될 뿐 좀더 큰 규모의 사고의 방향은 감정과 가치관에 의해서 지배당한다.
사랑에 빠지게 되면 상대방과 가까워지기 위한 방향이 이미 정해지고 그 방향대로 모든 사고가 진행된다. 미워하고 싫어하는 것에 대해서는 사람의 사고는 그것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한 방향으로 이뤄진다. 감정은 대상에 대한 가치판단을 유발하고 인간의 사고와 생각의 방향이 어디로 갈 것인가를 결정된다. 감정이 이미 답을 정해 놓고 그 답을 향해 논리적인 생각들을 만들어가며 짜맞추는 것이다.
우울증도 최종적으로 자살을 향에 달려가는 뇌의 프로세스 중 하나이다. 우울증에 의한 프로세스가 작동되게 되면, 최종적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과정을 향해 모든 생각과 사고가 강제된다. 삶의 의욕이 없어지게 되고 자신의 존재에 대해 스스로 비하하는 자학증세를 나타낸다. 과거에 전혀 어려움이 없었던 작은 일 하나 하는 것도 힘들게 느껴진다. 심지어는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조차도 그렇게 힘들 수가 없다. 하루하루를 사는 것이 고통스럽고, 심리적인 고통이 점차 커지면서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프로세스가 적절한 단계에서 중단되지 않는다면, 결국 자살을 감행한다.
이런 자살 프로세스는 유전적인 영향이 매우 크다는 것이 이미 연구된 바 있다. 죽고 싶다는 생각조차도 어떠한 경우에 하게 될지 이미 만들어진 회로에 의한 것이다. 그리고 그 회로는 태어나면서 유전자에 써있는 명령에 따라 발달되어 뇌 속에 심어진다. 우리 뇌 속에는 무시무시하게도 이렇게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회로가 심어져 있는 것이다. 그것이 작동되고 제대로 진행된다면 누구든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다.
이렇게 끔찍한 회로는 어떤 이유로 우리의 뇌 속에 자리잡게 되었을까? 이 의문은 아주 길고 긴 오랜 세월 속의 현상을 설명해주는 진화의 관점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자살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집단생활을 하는 많은 생물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성이다.
우리의 몸 안의 세포 스스로도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치유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자살하는 프로세스를 가동시켜 자신을 파괴한다. 세포의 자살은 자신을 희생시킴으로써 병원균이 널리 퍼지는 것을 막고 전체 개체를 온전히 보호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집단생활을 하는 곤충들 역시 자살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다. 꿀벌들의 경우 침입자를 공격하기 위해서 침을 쏘는데, 침의 끝에는 내장까지 함께 딸려 나와 치명적인 독소를 침입자 몸 안에 펌프질 한다. 그리고 내장이 뽑혀나간 벌은 곧 숨을 거두게 된다. 꿀벌에게는 공격자체가 자살인 셈이다. 이들의 자살역시 그 집단의 생존에 큰 이득이 되어 진화적으로 발전된 것이다.
인간은 집단생활을 하는 대표적인 동물이다. 전쟁상황에서 국가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식의 이타적인 자살은 집단생활을 하고 전투를 치루는 곤충이나 동물들과 유사하다.
하지만 인간의 경우에는 다른 동물과는 다르게 우울증을 자살과 연결시키는 독특한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평상시에는 이러한 우울증에 의한 자살이 80%를 넘게 차지한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울증의 진화상의 이유를 이해해야 한다.
우울한 기분은 왜 진화되었을까? 이 독특한 감정은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서 끝없이 싸워야 하는 권력형 집단 생활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인간과 비슷한 권력형 집단 생활을 하는 원숭이의 예를 살펴보자.
침팬지는 우리의 상식과는 다르게 끝없는 전쟁을 벌이고 집단간 학살을 저지르는 동물이다. 침팬지 집단 내부에서는 우두머리가 모든 암컷과 교미할 권력을 갖게 되고 다른 수컷들은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권력다툼을 한다. 그 집단 내의 수컷들은 항시 일어나는 싸움 때문에 육체적인 상해를 쉽게 입게 되고, 그것이 심해지는 경우 다른 집단과의 전쟁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불리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래서 그 집단내 개체들의 육체적인 상해를 줄이면서 싸움이 가능하도록 발전된 것이 바로 감정이다. 무서운 얼굴들 들이대고 위협하고 기싸움을 벌여서 승패를 정함으로써 서로의 육체적인 상해를 피하는 것이다. 승자에게는 승리의 기쁨이라는 보상을 주고 패자에게는 우울함이라는 패배감을 줘서 더 이상의 물리적 싸움을 방지한다.
우울하다는 감정은 패자에게는 더 이상 승산없는 싸움을 벌여 상해를 입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승자에게도 예기치 않은 순간에 패자들로부터의 불공정한 보복으로부터 당하는 것을 막는 역할도 한다. 우울함이라는 감정이 패자에게 주어지지 않는다면 잠든 사이 몰래 기습공격으로 복수당하는 것을 피할 수 있는 승자는 없었을 것이다. 그를 막기 위해서 우울함이라는 감정은 한번 시작되면 굉장히 오랫동안 지속되는 특성이 있다. 패자의 의지를 완전히 꺾어 승자와의 싸움으로부터 완전히 갈라 놓는 것이다. 권좌에서 밀려난 수컷 침팬지는 무리에서 쫓겨나 홀로 밀림을 헤매다 굶어 죽을 때까지 무리로 돌아갈 의지를 완전히 잃게 된다. 이 퇴역 침팬지에게 우울함이라는 감정은 완전한 지배력을 행사하여 집단으로부터 분리시켜 버리는 역할을 한다. 인간은 이것이 더 발달하여 자살까지 이어진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집단생활은 훨씬 정교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감정도 그에 따라 더 발전된 형태를 띠고 있다. 우울한 기분은 사회적으로 자신이 기대하는 어떤 목적에 도달하지 못하거나 좌절했을 때 찾아온다. 싸움과 전쟁을 통해 진화된 우리의 뇌는 사회적인 성취도 일종의 싸움과 권력다툼의 연장선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회적인 성취는 최종적으로 주변사람들이 인정을 해주는 것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에 그 사람의 주위사람들에 큰 영향을 받는다. 이것의 극단적인 예로 집단적인 이지매가 있다. 이지매는 집단적으로 힘없는 한 명을 괴롭히는 문화적인 현상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괴롭힘을 당한 사람은 우울증에 빠져 자살을 시도하거나 죽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 일반적인 심리 반응이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는 그런 경우 오히려 반항과 반발심으로 저항하려는 반응이 당연할 것 같은데도, 정반대로 우울증에 의해서 스스로를 패자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이지매와 그에 의한 자살은 이 자살프로세스가 주변 사람들로부터 결정되도록 만들어져 있는 사회적인 프로세스라는 것을 말해준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한 명을 공격하면 그 사람에게는 우울증이라는 심리반응이 일어나고 그 심리반응은 자살을 유도한다. 다수의 사람이 모여서 그 집단으로부터 제거해버릴 소수의 패자를 골라내고 그 패자는 스스로 제거되어 나가는 것이다.
이 과정은 그 생존욕구를 갖도록 만드는 진화의 측면에서 보면 오히려 진화의 법칙을 역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끝까지 살아남으려는 본능을 가진 유전자가 살아남는 다는 진화의 법칙을 역행하고 어떻게 스스로 자신을 제거시키는 자살 프로세스가 진화상으로 발전된 것일까? 앞서의 자살하는 세포와 곤충의 예와는 다르게 집단괴롭힘에 의한 자살은 그 집단전체를 위한 희생정신과도 관련성을 찾기 어렵다. 이 문제는 지금의 인간사회를 보기 이전에 그 자살 프로세스를 진화시킨 아주 먼 과거의 환경을 봐야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우울한 감정은 인간뿐 아니라 집단생활을 하는 여러 포유류들이 가지고 있는 감정이다. 원숭이, 침팬지뿐 아니라 늑대, 그리고 인간이 늑대를 길들여 종이 분화된 개들도 우울하다는 감정을 가지고 있다. 우울한 감정은 인간이 유인원이었던 시절 이전부터 가지고 있던 감정이었다. 이 감정이 자살과 연결되기 시작한 것은 인간으로 분화되기 이전쯤으로 추측되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우울증과 자살의 연결이 극대화되도록 진화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유인원으로서 밀림과 같은 야생에서 살았던 우리의 머나먼 조상들은 수렵과 채집으로 생명을 유지해왔다. 기후와 생태계의 변화 등의 여러가지 이유로 먹을 것이 크게 감소하는 등의 위기가 자주 닥쳐왔고 그때마다 그 집단 모두가 생존하는 것이 불가능하여 누군가는 굶어 죽어야 할 상황이 생겨났다.
초기에는 이런 상황에서는 서로 먹을 것을 차지하기 위하여 싸우는 일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서 더욱 극심한 경쟁으로 치달으며 서로 필사적으로 싸워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우울증과 자살같은 것은 오히려 퇴화되어야할 것으로 보이기 쉽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언제 굶어죽을지 모르는 이런 극단의 환경에서 우울증과 자살을 발전시켜 진화시킨 것은 집단간의 전쟁이 주 원인이었다.
전쟁이 빈번히 일어나는 상황에서는 권력서열이 낮은 소수가 우울증으로 의욕을 잃고 나아가 스스로를 제거하는 성향을 갖는 집단이 생존에 더 유리했다. 이런 성향의 집단은 먹을 것이 부족한 극단의 환경에서도 내적인 싸움이 적어 결속력이 변함없이 강하게 유지되고, 결과적으로 주위의 집단과의 전쟁에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자원이 부족한 환경에서는 집단간의 전쟁이 더욱 자주 치열하게 일어나게 되고 그 때마다 이런 성향의 집단은 전쟁에 승리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반대로 우울증을 제대로 발전시키지 못해 내분과 싸움이 끊이지 않던 집단은 결속력이 떨어져 전쟁에서 패해 몰살당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주기적으로 가혹한 환경이 찾아올 때마다 집단 내부의 결속을 강화시키는 우울증과 자살의 연결고리는 점점 더 강해졌고, 이 방향의 진화는 결과적으로 내부의 큰 싸움 없이 약자와 패자를 제거해 나가며 집단간의 전쟁에 더 유리한 상태를 차지하게 해주었다.
그리하여 자살프로세스는 진화과정을 통해 뇌 속에 심어져 현대 인간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출처 : braine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