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어느날 갑자기 1(강추입니다)

백두장사 작성일 07.04.12 14: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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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갑자기 1.

 


"야! 그 책장은 여기야, 여기!"

나와 성준이는 인석이가 가리키는 곳에 간신히 책장을 내려 놓았다.

고등학교 동창인 인석이가 이삿짐을 날라달라고 전화한 것은 며칠 전이었다. 군대를

면제받아 동기들보다 먼저 취직한 인석이는 꽤 괜찮은 대기업에 다니고 있었는데, 회사를

그만두고 오피스텔을 얻어 사업을 시작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제일 시간이 많아 보이는 나와 성준이에게 이삿짐이나 날라달라고 부탁했다.

특별한 일이 없던 나는 성준이와 함께 인석이를 도와주기로 했다.

오피스텔로 이사하는 것이라서 별 짐이 없을 줄 았았는데, 이것저것 챙기다보니 꽤 짐이

많아 세 시간 정도 땀흘린 끝에 간신히 다 옮겼다
.
고생했다며 인석이가 시켜준 짜장면을 기다리며 담배를 하나 빼물고 오피스텔 안을 둘러보았다. 새로 지은 오피스텔이어서 그런지 깨끗하고 현대적이었다.
특히 시원할 정도로 확 트인 유리창은 기분마저 상쾌하게 만들 정도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구층에서 내다보이는 뒷산의 모습이 기분나빠 보였다. 곧 아파트 공사를 시작하려고 그러는 것이지만 산이 깍여지는 모습은 그리 좋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인석이 말로는 신도시의 이런 새 오피스텔치고는 참 싼 가격에 얻었다고 한다.

"그래, 너 한번 얘기해 봐라. 도대체 어떤 사업을 하겠다는 거야? 이런 어려운 시기에....."

인석이는 그 질문에 픽 웃으며 반 농담조로 얘기했다.

"임마, 난세는 영웅을 만드는 거야. IMF라고 직장에서 눈치보면서 불안하게 살기보다는, 과감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게 진리야. 이럴때일수록 아이템만 잘 잡으면 성공은 쉬울거야."

그런 인석이의 말에 성준이 놀려대듯이 대꾸했다.

"벤츠 벤츠 하니 너도 거기에 눈이 멀었구나. 되지도 않는거 언론에서 떠드니까 덥석 달려들었군. 배가 불러서 그래. 나나 일한이는 취직 생각에 머리 터질 것 같은데, 그런 자리 차고 나오다니....그러나 저러나 도대체 뭐해서 돈 벌 생각이야?"

"글쎄....그건 아직 비밀이야. 나중에 얘기해 줄게. 조금 구체화되면...."

평소 같으면 이런 일은 먼저 떠벌릴 놈인데. 이번만큼은 이상할 정도로 신중하게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었다.
몇 번을 채근했지만 완전히 소 귀에 경 읽기였다.
나와 성준이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인석이는 워낙 괴짜라

또 이상한 일 벌인 다음에 우리를 놀라게 할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입이 결코 무겁지 않는 놈이라 며칠뒤면 스스로 얘기할 것 같기도 했다.

마침 배달온 짜장면 때문에 우리의 대화는 중단되었다.

남들보다 음식 먹는 속도가 빠른 나는 먼지 먹고 일어나서 오피스텔 안에 어지럽게 쌓인 인석이의 짐들을 대충 훓어봤다. 혹시나 인석이가 그렇게 비밀로 하고 싶은 사업의 단서라도 발견할까 해서였다.

박스를 정리하는 척하면서 짐을 뒤적이다가 밑에 깔린 찌그러진 박스에 뭔가 특이해 보이는 책자들이 들어 있는 것을 보았다.

어떤 책들인지 궁금해 한 권을 집어들었다. 조잡해 보이는 컬러에 영어로 써 있는 그 책은 무슨 잡지였다.

표지에는 조잡한 칼라와 이상한 사진들이 엉켜있어 무슨 그림인지 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 그림이 무엇인지 알아차리는 순간, 나는 들어 있던 그 잡지를 놓칠 뻔했다.

피를 튀기며 토막내는 사람 사진과 온갖 잔인한 장면들이 엉켜있는 사진이었다. 제목은 핏빚글자로 'World Most Scary Pictures'라고 쓰여 있었다. 그 잡지가 발견된 박스를 들여다보니 비슷한 잡지들이 여러 권 있있다.

도대체 어떤 내용이 들어 있는 잡지인가 펼쳐보려는 순간, 인석이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말하며 내 손에서 그 잡지를 낚아챘다.

"야, 왜 남의 물건을 막 뒤지는 거야?"

의외의 반응에 당황해 있는 사이, 인석이는 그 잡지들을 챙겨서 박스에 닷 넣었다.

"뭔데 그러는 거야? 좀 보자"

하지만 인석이는 이상할 정도로 얼굴을 굳히고 그 잡지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나와 성준이 한참을 졸랐지만, 인석이가 정도 이상으로 신경질적으로 나와 포기하고 말았다.
성준이와 나중에도 얘기했지만, 그날 인석이의 모습은 너무 이상했다. 평소와는 달리 많은 것을 숨기고 있었다. 더구나 내가 봤던 그 잡지는 표지 자체도 끔찍한 모습들을 담고 있어서 내용이 의심스러웠다. 인석이가 그런 면에 관심이 있었는지도 전혀 몰랐고, 그것을 숨긴다는 것이 더욱 이상하게 느껴졌다.

결국 본인이 싫다는 것을 굳이 강요하고 싶지 않아, 나와 성준이는 그 잡지에 대해서는 더 묻지 않기로 했다.

어색한 분위기에서 짐 정리를 끝낸 우리는 오피스텔을 떠날 채비를 했다.
인석이는 지나치게 과민한 반응을 보여서 미안했는지, 오피스텔을 나서는 우리들에게 계속 미안하다고 했다.

"야, 오늘 너무 고마웠다. 나중에 내가 술 한잔 거하게 살게. 오늘 내가 얘기 안 해준 것들은, 때가 되면 꼭 얘기해 줄게. 기분 상했다면 미안하다. 나도 사정이 있어."

미안해하는 인석이를 두고 오피스텔을 나서는 순간이었다. 성준이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잠깐 조용히 해봐! 무슨 소리 들리지 않니?"

"무슨 소리?"

"쉿! 잠깐!"

성준이의 갑작스런 말에 우리는 모두 숨을 죽이고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무 소리도 안들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 성준은 분명히 무슨 소리를 들은 것처럼 다시 오피스텔안으로 들어갔다. 오피스텔 한가운데 서서 성준은 어리둥절해 있는 우리들에게 손짓을 했다.

따라 들어간 나와 인석은 성준이가 가리키는 쪽에 서서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뭔가 희미한 소리가 들리긴 들렸다.

너무 작아서 잘 들을수 없었지만, 언뜻 듣기로는 흐느끼는 소리 같았다. 듣는 순간 나도 무르게 소름이 쫙 끼치고 머리털이 곤두서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이상한 소리였다. 하지만 그 작은 소리도 금세 그쳐 무슨 소리인지 잘 알수 없었다.
인석이가 궁금한 듯 물어봤다.

"무슨 소리를 들었다는 거야?"

성준이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확신을 못하는 표정으로 얘기했다.

"잘 모르겠어. 처음에는 분명히 들렸는데. 나중에는 소리가 너무 작아져서 ..... 누군가 흐느끼는 것 같은 소리였난데, 그 게 동물 소리인지 사람 소리인지 구분이 잘 안가. 남자 소리 같지는 않고, 여자아이 소리 같기도 하고.....여하튼 기분나쁜 소리였어"

"옆방에서 나는 소리 아냐? TV나 라디오 소리겠지뭐"

나는 가볍게 생각하고 말했다. 하지만 인석이의 말로는 새 오피스텔이기 때문에 아직 입주자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인석이의 방 근처에는 아직 아무도 이사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 말에 나는 좀 불길한 생각이 들었지만 인석이는 성준이가 농담한다고 생각했는지 그냥 가볍게 대꾸했다.

"짜식, 내가 좀 안 보여줬다고 장난치는군. 혼자 있을때 겁 좀 먹으라고 이상한 소리 들린다고 뻥치고 말야/"

성준이는 진짜로 이상한 소리 들었다고 하며 여전히 미심쩍은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나는 거기에 대해 별 생각 안하고 그만 가자고 하며 성준이를 끌고 나왔다.
인석이의 오피스텔을 나와 버스를 기다리면서, 나는 성준이게게 정말 이상한 소릴르 들었냐고 물었다. 성준이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얘기했다.

"너 정말 아무것도 듣지 못했니? 난 정말 들었어. 뭐랄까 정확히 무슨 소리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도 모르게 온몸에 소름이 쫙 끼칠정도로 기분 나쁜 소리였어. 분명히 인석이 방안에서 들렸고....뭘까, 그 소리......"

나도 짧은 순간이나마 그 소리를 듣고 성준이와 같은 느낌을 받았던 것이 생각났지만 그런 하찮은 얘기는 버스를 타면서부터 새카맣게 잊어 버렸다.

그 소리가 그런 무시무시한 일의 시작이었다는 것을 깨들은 것은 한참뒤의 일이었다.
인석으로부터 전화가 온 것은 그로부터 이 주일이 지난 뒤였다. 이사할때 도와준 것에 대한 답례로 나와 성준이에게 술을 한잔 사겠다는 것이었다. 전화 건 인석이의 목소리가 좀 어두워 보였지만, 별로 신경쓰지 않고 약속 장소에 나갔다.

성준이는 자기 말대로 아무 할일이 없는지 약속장소에 먼저 나와 있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는데 인석이가 나타났다.
그런데 인석이의 얼굴은 한눈에 봐도 무슨 심한 일을 겪은 사람처럼 초췌하고 말이 아니었다.
인석이는 자리에 앉자마자 목이 탄지 맥주 한 잔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나는 그 동안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았다.

"그래, 네가 그렇게 비밀로 하던 벤처기없은 잘 되어가고 있냐.?"

인석이는 내 질문에는 대답도 안 하고, 다짜고짜 성준이에게 엉뚱한 질문을 했다.

"야! 성준아, 니가 지난번 이사하던 날 내 방에서 들었다는 그 이상한 소리, 혹시 여자 목소리 같지 않았니?"

성준이는 처음에는 인석이의 질문을 잘못 알아들은 것처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잠시 후 대답했다.

"갑자기 그 얘기는 왜? 그때 내가 그랬잖아? 소리가 너무 희미해 잘 모르겠다고. 어떻게 들으면 여자의 흐느낌 소리 같기도 했지만...그런데 무슨 일이야? 옆방 여자가 밤마다 이상한 소리를 내며 너를 유혹하기라도 하니?"

인석이는 아무 말 없이 맥주를 다시 한 잔 들이키더니, 두려움에 가득 찬 눈빛을 번뜩이며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내 방 주변에는 웬일인지 아직까지 아무도 입주하지 않었어. 혹지 모르지. 입주했는데 나문 모르고 있는 건지도. 벌써 사흘째 오피스텔에 못 들어갔거든. 그 방에 혼자 있긱가 너무 무서워.
너희들은 제발 내 얘기 좀 믿어줘. 지금까지 아무도 안 믿고 있지만....
이사온지 이틀째 되는 밤이었어. 그날 밤 그 일이 시작되었어. 그 무시무시한 일이. 집에서 나와 혼자 생활하며 내 사업을 시작한다고 하니 좀 설레기도 했어. 이사하고 짐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어 그날 밤에야 처음 일을 할수 있었어.

방 배치는 지난번에 너희들이 짐을 날라준 대로 창 옆에 잭상과 참대를 놓았어. 책상앞에 앉아서 왼쪽으로 돌아보면. 그 리 좋은 풍경은 아니지만 밖을 내다볼 수 있어 좋았어. 책상앞에 앉아 창문을 열어놓고 담배 피기도 좋고, 그래서 그날 밤 처음으로 책상앞에 앉아 컴퓨터를 두드리며 일을하고 있었어.

아직 주변 방에 아무도 입주하지 않아서 그런지 쥐죽은 듯 고요했어. 사실 낮에는 오피스텔 앞에서 산을 깍는 그 공사 때문에 좀 시끄러운데, 밤이라 공사하는 것도 멈추었는지 더욱 조용했지. 너무 조용해서 라디오라도 켜놓으려고 했지만, 그놈의 라디오는 이사오다가 떨어뜨려서 그런지 안 나오는 거야. 어쩔 수 없이 쥐죽은 듯한 적막 속에서 일을 했어.
한참을 일하다 보니 어느새 밤 한시가 넘었어. 그때 갑자기 성준이 네가 들었다는 이상한 소리가 생각났어. 그 이상한 소리에 대한 생각과 아무도 없는 방안에 혼자 있다는 사실이 머리에 떠오르자 좀 겁이 났어, 그래서 괜히 귀를 기울려봤지만, 역시 아무런 소리도 안 들렸어. 쓸데없는 소리를 한 성준이 널 원망하고는 기지개를 한번 켜고 다시 일을 시작했어.

그때 였어. 누군가가 오피스텔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린거야. 이 늦은 시간에 누군가 하고 나가봤어. 문 열기 전에 어안렌즈로 내다봤는데, 복도에는 아무도 안 보이는 것이였어. 좀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별 생각없이 문을 열었어. 그런데 정말 문 앞에는 아무도 없는거야. 복도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드문드문 켜져 있는 실내등과 인적없는 복도만 덩그러니 보였어.

내가 잘못 들었나보다 생각하며 문을 닫고 다시 자리에 앉았어. 너무 조용하다 보니 내가 헛길을 다 듣는다는 생각마저 들었어.
다시 키보드를 두들기기 시작했어. 그런데 또 '똑똑'하며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어. 두 번째 노크소리를 듣자, 괜히 오싹해지며 무섭더라고, 그래도 무슨 일이야 있겠어 생각하며 '누구세요?'라고 외치며 문으로 갔어. 하지만 역시 아무런 대답도 없는 거야. 누가 장난치는 것 같아 재빨리 뛰어가서 문을 신경질적으로 열었어.

그런데 이번에도 아무도 없는 거야. 아무리 복도를 둘러봐도 안 보이는 거야. 신경질도 나고, 좀 겁도 났지만, 혹시 누가 장난치는가 싶어 엘리베이터 있는 곳까지 가봤지. 역시 아무도 없었어. 더구나 엘리베이터는 일층에 서 있는 거야. 누군가 장난을 치고 나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도망쳤다 하더라도 그 짧은 시간 동안 엘리베티터가 일층에 가 있는 것은 불가능했거든.

혹시나하고 비상계단까지 가봤어. 역시 아무도 없고, 인기척도 없었어. 누구 없내고 소리쳐봤지만, 들려오는 것은 으스스한 내 목소리의 메아리뿐이었지. 이번에도 잘못 들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방으로 돌아왔어. 방안으로 들어가는데, 등뒤의 느낌이 이상한거야. 꼭 누가 등위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 이었어.

그러자 머리털이 쭈뼛 서고 무서워지더라고. 확 돌아보았어. 아무도 안보였어. 그런데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저 복도 끝에 누군가가 서 있는것이 언뜻보인것도 같았어. 하지만 다시 정신 차리고 보니 아무도 없는거야. 실내등 때문에 생간 그림자를 착각했나 봐.

찜찜한 기분으로 방에 들어와 문을 꼭 잠그고 책상앞에 앉았어. 하지만 똑같은 일을 두 번이나 생기니 잠도 확 달아나고 일도 손에 잡히지 않더라고. 잠이나 잘까 했지만 잠도 안올것 같았어.

책상앞에 앉아 양쪽 귀를 바짝 세우고 사방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려 했어. 혹시 누구의 장난이라면 다가오는 발소리라도 들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지. 그러다 키보드가 눈에 들어왔어. 아마 키보드 소리를 노크하는 소리로 잘못 들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 그렇게 생각하니 좀 안심이 되는 거야. 별 쓸데없는 착각을 했구나 생각하며, 다시 일을 하려고 컴퓨터 앞에 다가앉았어.

그런데 바로 그때 다시 '똑똑' 하고 노크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야. 이번에는 키보드에 손도 올려놓지 않았을 때였단 말야. 그 노크하는 소리를 듣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쫙 끼치고 덜컥 겁이 났어. w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무서웠어. 그것도 많이 무섭더라고.
이번에는 문 쪽으로 안 나가고 가만히 책상앞에 앉아 있었어. 솔직히 문 앞에 무엇이 있을지 무섭더라고. 죽음과 같은 적막이 잠시 흘렀어.

그 적막을 깬 것은 또 한 번의 노크 소리였어. 너무 무서워서 나는 일부러 큰 소리로 '도대체 누구야?' 하고 소리쳤어. 하지만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어.

가만히 있을 수도 없었기에, 책상밑에 있던 빈 맥주명을 거꾸로 쥐어들고 문으로 다가갔어. 천천히 다가가는데, 별 생각이 다 들더라고. 어안렌즈에 눈을 갖다대고 복도를 내다봤어. 역시 아무도 없는 거야.

문앞에 서서 한참을 갈등하다고 문을 열어보기로 결심했어. 그런데 얼마나 겁이 나고 긴장했는지, 나도 무르게 병을 쥔 손에 땀을 너무 많이 나서 맥주병을 떨어뜨릴 뻔했어. 심호습을 하고 문을 왈칵열었어. 이번에도 아무도 없었어.

나는 겁이 나, 복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 재빨리 문을 닫아버렸어. 문을 잠그고, 문에 등을 기댄채 헉헉댔어. 도대체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어. 분명히 노크 소리를 들은것 같은데, 결과적으로는 내가 헛것을 들은 셈이잖아.

무너지듯 의자에 앉아 담배를 물었어. 담배에 불을 붙이려는데, 라이터를 든 손이 덜덜 떨려 불붙이기가 어려울 정도 였어. 담배연기를 쭉 들이키며 침착하려고 애썼어.


담배를 피면서 생각해 보니, 단지 내가 소리를 잘못 들은것 이라면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었어. 별것도 아닌 일에 괜히 겁내고 있는 내 모습이 우스꽝스럽기까지 했어. 설사 짓궂은 어떤 사람의 장난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그렇게 겁낼 이유는 없었어. 괜히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지레 질겁한 셈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런 생각이 들자, 마음도 편해지고 겁도 나지 않았어. 그동안 무서워서 과민반응을 하던 내 모습이 떠올리니 웃음까지 나왔어. 일에 너무 집중하다 보니 별 쓸데없는 헛소리가 다 들리는것 같았어. 시간은 늦었지만 이미 잠은 다 달아난 상태라 다시 일하기 위해 컴퓨터 앞에 다가앉았어. 시계를 보니 그 엉뚱한 헤프닝에 어느새 삼심분을 낭비한 거야.

빨리 한 가지만 끝내놓고 잘 생각으로 그 일에 집중적으로 매달리기 시작했어. 또 노크소리가 날 것 같은 생각이 자꾸 들어 집중이 잘되지는 않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자 않아서 일은 금방 진행되었어.

자리에 앉은지 한 이십분쯤 되었을까, 이제 그 기괴한 노크소리도 안들리고, 집중해서 일을 하고 있을 때였어. 모니터를 보고 있는데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드는 거야. 누군가가 뒤에서 나를 보고있는 듯한 기분 나쁜 느낌이.....


처음에는 개의치 않고 모니터만 들여다 보았어. 하지만 그 느낌은 점점 강하게 다가왔어. 정확히 말하면, 내 왼쪽 뒤, 그러니까 창문 쪽에서 누군가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 왜 그런 느낌 있잖아? 누군가의 시선이 자기를 향하고 있을때 느껴지는....바로 그런 느낌 이었어. 뭐야? 이느낌? 하는 생각과 동시에 시선이 느껴지는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어.


그순간 나는 충격으로 얼어붙었어. 아니 충격이라기보다는 공포라는 편이 낫겠지. 창밖에서 머리를 늘어뜨린 한 여자가 나를 뜷어지게 쳐다보고 있는거야! 너희들도 알다시피 내 방은 구층에 있어. 그리고 발코니도 없잖아. 하지만 그 여자는 내 앞 1미터도 안되는 곳에 창을 사이에 두고 분명히 있었어.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여자의 모습은 평생 잊을 수 없을 정도로 섬뜩했어.


파리한 얼굴을 하고 무표정하게 나를 헤집듯이 쳐다보는 그 눈빛..
그 여자의 눈과 마주치는 순간, 무슨 악령에 사로잡힌 것처럼 눈을 뗄 수가 없었어. 그 여자가 사람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머리털이 전부 서버리고 온몸에 소름이 돋아올랐어. 그리고 손가락 하나도 옴짝달짝할 수 없엇지.

다음 순간 숨이 갑갑해지고 눈앞이 어두워졌어. 정신을 잃어가면서도 제일 마지막까지 보인것은 그 여자의 기분 나쁜 시선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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