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갑자기 8(마지막)

백두장사 작성일 07.04.12 14:2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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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갑자기 (마지막)

 

 

"조인석 씨죠? 경찰서에서 나왔습니다. 같이 가시죠. 이유는 아시죠?"

인석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혈질인 성준은 그 분위기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항의조로 경찰에게 맞섰다.

"아니, 무슨 이유로 이 친구를 연행하는 거죠? 체포영장이 라도 가져온 거에요?"

성준의 질문에 형사 중 한 사람이 품에서 뭔가를 꺼내며 차가운 어조로 대답했다.

"여기, 체포영장입니다. 조인석 씨는 김철수, 장석원, 박지석의 살인 용의자로 검거되는 것입니다. 자, 수갑을 차시죠."

인석이는 정말 범인인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 없이 수갑을 찼다. 그리고는 우리 쪽을 돌아보지도 않고 형사들에게 끌려갔다.
나와 성준이는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난 상황에 당황해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술집을 나가기 직전, 인석이는 우리를 돌아다봤다. 인석이의 눈을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의 눈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때 왠지 모르지만 인석의 무죄를 확신했다.
성준이는 성이 안 차는지, 아까 체포영장을 들이대던 그 형사를 붙잡고 따져 물었다.


"도대체 무슨 증거가 있는 거예요? 저 친구가 살인을 했다는!"

그 형사는 기가 차다는 듯이 우리를 돌아보더니 싸늘한 어조로 대답해 주었다.

"증거가 있냐고요? 이봐요. 당신 친구는 살인 현장에 온갖 증거를 남겼소. 마치 내가 범인이니 잡아가시오, 하는 것 같았소. 자세한 것은 나중에 법정에서 들어보세요. 아마 사형선고 받을 거요. 세상에 사람을 그렇게 죽이다니......그것도 경찰까지....."

그렇게 말하고 나서 그 형사는 더 이상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이 휙 돌아서 멍하는 있는 우리를 남겨두고 술집을 나갔다.
나와 성준이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성준이가 내게 물었다.

"그 자식, 정말이었을까?"

"나도 솔직히 모르겠다. 하지만 인석이 그 자식이 살인을 저질렀을 리가 있냐?"

"그래도..... 그 자식 좀 이상해 보였잖아? 그런 사진들 취급하는 것 봐도...."

성준이는 인석이가 무죄라는 것에 대해 확신이 없는 것 같았다. 나도 겉으로는 인석이가 무죄하고 얘기는 했지만, 상식적으로 귀신이 그 사람들을 다 죽였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었다. 내가 이 정도니, 경철이 믿어줄리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한승이 형에게 전화를 했다.
인석이 얘기를 꺼내자, 한승이 형은 기다렸다는 듯이 내게 충격적인 얘기를 해주었다.


"인석이랑 전화하다가 갑자기 끊긴 이후로 연락이 안 되더라. 걱정 했는데.....결국은 그렇게 되었구나. 다른것은 모르겠지만, 인석이가 맡긴 사진들은 진짜였어. 그 여자 모양의 괴기한 형상도 정말로 나타났어. 그리고 인석이에게 얘기해 줄 것이 있었는데.....
인석이 부탁대로 거울에 비친 그 얼굴 주변을 더 확대해 봤어. 인석이 추측이 들어맞았어. 수십 배 확대하고 선명하게 하니, 거울에 비친 것은 그 시체의 얼굴뿐 아니라 다른 것도 있었어. 바로 그 사진을 찍은 사람의 얼굴이지. 카메라에 가려져 전체 얼굴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얼굴의 부분만으로도 그 사람이 누군인지를 짐작할 수 있겠더라....."


한승이 형이 얘기해 준 범인의 정체는 정말 믿을 수 없었다. 정말 믿어지지 않았다.
나는 멍하니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한승이 형은 필요하다면 법정에 출두해 증언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한승이 형의 증언이 인석이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 확신할 수 없었다. 잘못하다가는 인석이가 그런 참혹한 사진에 광적인 취미를 가진 사람으로 비칠 위험도 있는데다가, 아무리 귀신 같은 것이 보인다 하더라도 판사가 그것을 조작되지 않는 실제 사건으로 받아들일지도 의문이었다.


도무지 방법이 없어 보였다. 더구나 인석이가 잡혀가는 모습을 보니, 스스로가 무죄를 항변하는 것을 포기한 사람으로 보여 가망은 더욱 없어 보였다.
자리에 돌아와 보니 성준이가 심각한 표정으로 연신 담배를 태워댔다. 성준이의 표정도 밝지 않았다.

"야, 일한아, 난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자식 좀 이상해.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났겠어? 귀신이 사람을 죽이고 다니고.....너 전화하는 동안, 인석이가 했던 얘기들을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대충 이렇게 추려볼 수 있었어.

우선 범인이 인석이라는 가정을 해보자. 인석이는 그런 사진을 취급하다가 그런 사진에 대해 병적으로 집착하게 되었어. 그러다 살인을 하게 되었어. 그 대상이 KillYou가 보내왔다고 얘기한 사진 속의 여자야. 그러니깐 애초부터 KillYou라는 놈은 없었던 거야. 인석이 혼자 살인하고 사진을 찍은 것이지. 공범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리고 어떤 이유에선가 그 같은 층에 사는 컴퓨터 프로그래머를 죽였어. 자기가 만든 두 번째 작품이지. 그렇다면 왜 이미 자기가 만든 사진과 똑같은 사진을 찍냐고? 이렇게 이해해 보면 돼. 원래 예술가나 뭔가 만드는 사람들은 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똑같이 생긴것을 여러번에 걸쳐 만들잔항. 자기 마음에 드는 것이 만들어질 때까지.... 인석이 그 놈도 그런 심리상태였다고 생각해 보자. 그러다가 경비 아저씨가 인석이에게 뭔가 석연치 않는 점을 발견했을 거야. 인석이도 그랬잖아. 그 경비 아저씨와 같이 시체를 목격했다고. 그때 뭔가 의심받을 짓이나 물건이 경비 눈에 띄었을거야. 그러다가 그 경비가 경찰의 심문을 받는것을 보고 위기감을 느껴 살해한 거야.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형사. 인석이 말에 따르면 그 형사는 글자 그대로 살인범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이었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 형사는 유력한 살인 용의자로 생각되는 인석이를 가만 놔두었겠니? 몇 대 때리고 윽박질렀겠지. 그러니 그 형사가 자기를 의심한다고 생각한 인석이가 네 번째 살인을 저지른 거고,,,,,,,어때? 이 정도면 그럴듯한 추리 아니냐?"

나는 성준의 말을 듣고 내심 놀랐다. 솔직히 나도 비슷하게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설마하며 부정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면, 인석이가 봤다던 그 여자 원귀는 어떻게 된 거야?"

"그건....사람을 그렇게 죽였으니 일말의 양심의 가책을 느겼을 거 아니니? 그 가책에 시달리다 환영을 본 것을 수도 있잖아. 아니면, 그 귀신을 목격한 얘기는 진짜일 수도 있고....."

"그렇다고 해도 한승이 형이 검증한 사진은 진짜라는데...... 그런 것은 인석이가 조작할 수 없을걸."


"그게 있었구나. 그것도 그래. 인석이가 그 여자를 죽여놓고 사진을 찍었는데, 거기서 이상한 것을 발견한 거야. 그래서 한승이 형에게 분석을 의뢰한 것일 거야. 생각을 봐. 자기가 죽인 사람의 사진에 이상한 것이 보인다면 얼마나 겁이 나겠냐? 그걸 알아보려고 맡긴 거 아닐까?"

성준이의 논리는 한편으로는 황당한 것 같지만, 다른 한편 으로는 나름대로 타당해 보였다.
나는 성준이와 헤어지면서 한마디했다.

"나도 솔직히 인석이가 그런 짓을 했는지 확신할 수는 없어. 그래도 친구인데, 한번 알아볼 생각이다. 우리가 모르는 진실에 대해. 만약 인석이가 정말 무죄라면, 내가 진실을 밝힌다면 자연히 인석이는 풀려날 것 아니니."


성준이는 내 말을 듣고 잠시 묘한 표정을 짓더니 잘 해보라며 돌아섰다. 나는 성준의 뒷모습에서 야릇한 서운함을 느꼈다.

 

나는 잡혀가던 인석의 얼굴이 며칠 동안 계속 머리속에 감돌아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인석이는 살인범으로 기소되어 법정에 서게 되었다. 나는 혹시나 하고 인석이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를 찾아갔다. 유능해 보이는 변호사였지만, 인석이에 대해서는 별로 자신이 없어보였다.


"저도 간신히 인석 씨에게 모든 얘기를 들었습니다. 솔직히 믿을 수 없더군요. 하지만 변호사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백방으로 알아봤습니다. 우선 한승 씨라는 사진 작가에서 받은 그 사진 속 여자의 신원을 파악해 봤습니다. 간신히 찾아내긴 했지만, 그리 도움은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 여자는 인석씨가 살던 오피스텔 삼층에 입주해 있던 김주영이라는 여자였는데, 실종신고가 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소설가라고 하더군요. 이 개월 전에 실종신고를 받았지만 아직 못 찾고 있답니다. 시체라도 발견되었다면 모르겠지만, 지금 상태에서는 법정에서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그 여자의 종적을 찾고 있지만, 가망 없습니다.


아, 그 여자 쌍둥이 동생이 있던데, 그 동생 말로는 김주영이라는 여자는 소설 쓴다고 가끔씩 연락도 없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종신고는 해놨지만, 곧 돌아올 것이라며 걱정도 안 하고 있더라고요.

인석 씨 말대로 그 지역에는 병원에서 시체가 없어지고 실종자들이 급증하는 일이 있었지만, 그 사건들이 이 살인사건과 연관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증명할수 있더라도, 잘못하면 인석씨가 그 죄까지 뒤집어쓸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그렇다고 인석씨 말만 듣고, 그 지역에 세워진 수십개의 빌딩들을 모조리 부숴서 그 시체들을 찾을 수도 없는 거고, 또 아무리 찾아 봐도 그 살해당한 세 명이 서로 모여서 그런 끔찍한 일을 했다는 증거는 찾을 수도 없고요.


힘든 사건이네요. 사진 작가가 보내준 그 사진들을 봤지만, 도저히 믿을 수 없네요. 그냥 사진이면 모를까, 우리가 제시할수 있는 것은 한승씨가 컴퓨터를 통해 걸러 낸 것이라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될지 의문입니다. 채택된다 하더라도, 판사가 그 황당한 얘기를 믿어줄리 없습니다.그러니 한승씨가 밝혀 냈다는 범인의 모습 역시 공개했다가는 사건을 악화시키고 무고죄까지 뒤집어쓸 수 있습니다.


게다가 검찰이 제시할 증거들이 너무 명백합니다. 살해 현장마다 인석씨의 지문이 발견되었고, 가지고 있던 사진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시체들이 발견되었으니까요. 더욱 결정적인것은 죽은 박형사의 증언과 박 형사를 살해할 때 쓰인것으로 보이는 칼에서 인석씨의 지문이 발견되었습니다.


솔직히 말해 이 사건은 가망이 없습니다. 인석씨가 사형을 면하기 위해서는 살인을 인정하고, 정신감정을 받아 금치산자 판정을 받는 길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 방법은 인석씨 본인이 강력하게 거절하고 있어서요. 친구분이 한번 설득해 보세요. 사실 제정신으로 그런 살인은 못하거든요. 잘만 하면 정신질환자 판정을 받을 수 있을것 같습니다. 벙법은 그것밖에 없네요. 죄송합니다."


변호사의 얘기를 듣고 돌아서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나 역시 이제는 인석이에 대한 믿음이 줄어들고 있었다.
면회로 만난 인석이는 모든 것을 체념한 상태였다.

"내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여기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 같아. 그 여자의 저주를 받은 것 같아. 내가 그런 끔찍한 사진들을 통해 돈을 벌려고 한 것에 대한 천벌이지. 아냐, 어떻게 보면 나도 그런 사진들을 보고 쾌감을 느꼇는지도 몰라. 이제 다 정리했어. 어떻게 보면 별거 아닌 잘못이었지만, 그 사진 속의 피해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나 역시 천벌 받아 마땅할 놈이지. 상상할 수 없는 고통과 공포속에 죽어간 사람들의 사진을 보고 즐거워했으니 죄갑을 받아야지......하지만 일한아, 나는 안 죽였어."


인석이를 면회하고 돌아오면서 내내 인석이를 구할 수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 변호사 말대로,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인석이는 영락없는 잔인한 살인자였다.
힘없이 집에 들어오다가, 길거리에 날라다니는 신문지들이 눈에 띄었다. 그때 갑자기 잊어버리고 있던 사실이 생각났다.

이 사건이 언론에 알려지지 않은 이유, 인석이 말에 따르면 그 형사가 '그 분' 이라고 부르던 인물, 그리고 한승이 형이 사진을 통해 범인이라고 한 사람..... 그 사람이 진짜 범인이라면, 그 사람만이 인석이를 구해낼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이 범인이라는 것을 밝혀낼 방법은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그는 쉽게 다가갈 수도 없는 사람이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그 사람을 통해 인석이의 결백을 증명할 방법을 생각해 봤다. 밤늦게까지 한참을 생각해 보다가 습관적으로 틀어본 텔레비전에서 정말 충격적은 뉴스가 들렸다.

"...오늘 오후 서울시 00동에 있는 신축건물이 집중호우로 붕괴되면서 수십구의 시체가 발견되어 경찰이 수사에 나섰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발견된 시체들이 모두 형체를 알아볼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훼손되어 있는 것으로 봐서 살해된뒤 유기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시체들과 함께 잔혹한 살인 장면을 찍은 사진들을 모아둔 World Most Scary Picures라는 잡지가 발견되어 더욱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그 시체들이 바로 인석이가 얘기했던 그놈들이 유기했다던 희생자들 같았다. 하지만 나는 텔레비전에서 보여준 그 잡지에서 눈을 뗄수가 없었다. 그 잡지는 인석이 이사를 도와줄때 그 집에서 우연히 본 그 잡지였던 것이다.
나는 혼란에 빠졌다. 그럼 진짜 인석이가........
하지만 곧이어 나온 뉴스 속보는 나에게 더욱 큰 충격을 주었다.


"..오늘밤 현직 경찰청장이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최두석 경찰청장은 오늘밤 자택에서 상체와 하체가 잘려나간 채 시페로 발견되었습니다. 소식통에 따르면, 경찰청장의 시체는 손에 잔혹한 살해 장면을 찍은 사진을 든 채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바로 그 경찰청장이 인석이의 결백을 밝혀줄지도 모르는 제 4의 범인이었다. 한승이 형이 발견한 것도 경찰청장의 얼굴이었고, 그 사건들이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인 것 같았다.


그런데 그 경찰청장이 살해당한 것이다. 이제 인석이를 사형에서 구해줄 방법은 이 세상에 남지 않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내게는 풀 수 없는 또 하나의 의문이 남게되었다.
경찰청장을 또 그런 식으로 죽인 범인은 과연 누구란 말인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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