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갑자기 2

백두장사 작성일 07.04.12 14: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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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지났는지,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창밖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눈부신 햇빛을 받으며 책상위에 엎드려 있는 거야.

지끈거리는 머리를 어루만지며 몸을 일으켰어. 전날 밤에 내가 경험했던 것이 꿈이었는지 사실이었는지 도무지 알수가 없었어. 더구나 내가 하던 일이 좀 이상한 것이어서 더 알수 없는거야.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냥 작업하다가 쓰러져 잔 것인지, 아니면 정말 그 섬뜩한 여자를 본 것인지 구분이 안가는 거야.


불편하게 밤을 보내서 그런지 머리가 좀 지끈거렸지만, 나가봐야 될 일이 있어서 오피스텔을 나왔어. 하루종일 돌아다니면서도, 전날 밤 있었던 일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어. 특히 그 섬뜩했던 여자의 시선은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거야. 그 여자의 파리했던 얼굴이 생각날 때마다 나도 모르게 몸서리가 쳐졌어.

그 일이 꿈이었는지 아니었는지 확신할 순 없었지만, 그날은 오피스텔에 제정신으로 들어가기 싫었어. 그래서 선배를 만나 술을 마셧어. 그것도 많이.

늦게까지 마시게 되어, 밤 한시쯤 술이 좀 취한 상태에서 오피스텔로 향했어. 술기운 때문인지 하루 종일 나를 괴롭히던 그 여자에 대한 두려움은 싹 가시고, 하찮은 꿈 때문에 벌벌떨던 내 모습이 오히려 하찮게 느껴졌어.
당당하게 내 방으로 들어갔지. 전날 밤에 그 여자가 서 있던 창밖에는 물론 아무거도 없었어. 술이 핑 돌아, 옷도 벗지 않은채 침대에 쓰러지듯이 누었어. 술기운 때문인지 눕자마자 잠든것 같아.


잠이 깬 것은 목이 말라서인지, 그 소리 때문인지 기억이 잘 안나. 여하튼 눈을 떴을때는 아직도 사방이 깜깜했어. 창밖으로 새어 들어오는 달빛때문에 희미하게 방안의 모습이 보였지. 과음을 해서 그런지 목도 마르고 머리도 좀 아픈것 같았어.

물을 마시러 몸을 일으키려 할 때였어. 어디선가 아스라하게 흐느낌 소리 같은 것이 들리는 것 같았어. 옆방에서 나는 소리려니 했어.하지만 주위 방에 아무도 입주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오르자 등골이 오싹해지는 거야. 처음에는 희미했는데 점점 또렷이 들리는 거야.

들리면 들릴수록 그 소리는 소름끼칠 정도로 기분 나빴어. 여자가 고통스럽게 우는 소리 같기도 하고, 비명소리 같기도 하고, 그 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갑자기 전날 밤 있었던 일까지 다시 생각나 무서워 죽겠는 거야. 그 소리를 안 들으려고 베개로 귀를 감쌌지만, 파고들 듯이 소리는 계속되었어.


무서워서 눈도 뜰 수 없었어. 눈을 뜨면 또 그여자가 나를 뚫어지게 내려다보고 있을 것 같았어. 태어나서 그렇게 무서운 적은 아마 처음이었을 거야. 몇 번을 뒤척이며 그 소리를 안 들으려고 애썼지만, 소용없었어. 그 괴기한 소리에 무서워서 미칠 것 같더라.

그러더니 어느 순간 갑자기 그 소리가 딱 그치는 거야. 좀 이상했어. 나는 용기를 내어, 누운 채로 눈을 떴어. 불꺼진 방안에는 희미하게 가구와 책상들이 보였어. 다행히 걱정하던 그 여자의 모습은 안 보였어.

안심이 되어 한숨을 내쉬며, 물을 마시려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어. 술 때문에 좀 비틀거리며 일어났어. 창문 반대쪽에 있는 냉장고로 걸어가 물을 꺼냈어.

고개를 들어 물을 마시는데, 창문쪽에 뭔가가 있는 것 같은거야. 나는 물을 마시던 채로, 곁눈질로 창문 쪽을 쳐다보았어. 그 순간, 충격으로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어. 창밖에서 전날 밤 그 여자가 똑같은 모습으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거야. 는 또 정신을 잃었어. 다음날 정신을 차려보니, 침대위였어. 전날 밤 본것이 또 꿈인지 사실인지 헷갈리는 거야. 그래도 그 찜찜한 느낌은 지울수 없더라고. 더욱이 그 여자의 그 무표정한 얼굴은 꿈이 아닌 현실처럼 뇌리 속에서 생생하게 떠올랐어.

하지만 난 귀신을 보았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던 것 같아. 자꾸 악몽을 꾼 것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합리화시켰어. 요즘 일 때문에 피곤하고, 하고 있는 일이 그런 쪽이니 이상한 꿈을 꿀수도 있을 것이라고. 무섭긴 했지만, 부모님 반대를 무릅쓰로 간신히 독립한지 며칠만에 다시 집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잖아. 아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기로 했어.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는지.

그날이 일이 있어 밖에 나가게 되었어. 생각보다 일이 늦어져 오피스텔로 돌아올 때는 밤 열두시 정도 되었지. 밤에 돌아오게 되자, 아무리 생각을 안 하려고 해도 그 여자의 얼굴이 떠오르는 거야. 더구나 불도 몇개 안 켜진 오피스텔 빌딩을 바라보니 더욱 으스스해지더라고. 남자가 꿈에서 본 것으로 떨고 있다는 것이 너무 한심하게 생각되기도 했어. 에라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오피스텔로 걸어 들어갔어. 현관앞에 있던 경비 아저씨는 텔레비젼을 보고 있다가 내가 들어오는 모습을 힐끗 쳐다봤어.


그런데 갑자기 그 아저씨가 겁에 질린 표정을 짓는 거야. 가뜩이나 긴장되어 있던 내게 경비 아저씨의 이상한 모습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이었어. 무슨 일이냐고 묻는 내 질문에, 경비 아저씨는 당황한 듯이 아무것도 아니라며 자기가 잘못 봤다고 하는 거야.
더욱 이상해진 나는 도대체 뭐를 잘못 봤냐고 물었지. 그러자 그 아저씨는 어색한 변명만 늘어놓았어.

"예..... 내가 졸다가 잠깐 헛것을 봤나봐요. 신경 쓰지 마시고 들어가세요."

이상했지만 별수 없이 엘리베이터로 향했지. 엘리베이트는 짜증나게도 십오층에 서 있었어. 버튼을 누르고 한참을 기다렸지. 어둠침침한 복도에 서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려니 괜히 누구 내 뒤에 서 있는 것 같고, 기분이 이상했어.


이윽고 엘리베이터는 도착했고, 나는 재빨리 올라탔어. 하지만 전기를 절약하려고 닫힘버튼을 막아놨기 때문에, 문이 닫힐 때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했어. 문이 닫히기를 기다리는 몇 초 사이에도 괜히 기분이 이상해지더라.

문히 닫히고, 나는 엘리베이터 벽에 기대어 층수가 올라가가는 것을 보고 있었어. 그런데 누르지도 않은 사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추는 거야. 누가 타려니 했는데, 엘리베이터 문 밖에는 아무도 없는 거야. 문이 열러 있는 몇 초 동안 어두컴컴한 복도를 보고 있으려니 괜히 겁이 나는 거야. 더구나 누가 타는 듯한 느낌까지 들고. 닫힘버튼이 안 되는것이 그때는 그렇게 답답하더라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러 있는 시간은 실제로 몇 초밖에 안 되지만 늦은 시간, 그것도 기괴한 악몽에 시달리고 있던 나에게는 정말 무섭도록 길게 느껴졌어.

이윽고 문이 닫혔지. 그제야 좀 마음이 놓이더라. 엘리베이터가 천천히 다음 층으로 올라가느데, 오층이라는 불빛이 깜빡거리기가 무섭게 '땡'하는 소리와 함께 멈추는 거야. 엘리베이터가 멈추자마자 이상할 정도로 두려움이 느껴졌어. 설마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문이 열렸어. 아니나다를까 역시 문앞에는 아무도 서 있지 않았어. 또 저절로 열린 것이었지.
열려진 엘리베이터 문을 통해 본 어두운 복도의 모습이 왜 그렇게 무섭게 느껴지는지....죽을 것만 같았어. 황급히 닫힘버튼을 눌렀지만, 문은 한참있다 천천히 닫히는 거야. 엘리베이터는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어. 다음 층으로 올라가는 동안, 불길한 예감이 느껴지기 시작했어. 솔직히 무서웠어.

너희들은 웃겠지만, 밤에 혼자 엘리베이터 타면서 나 같은 경험을 해보면 그 웃음이 사라질걸. 엘리베이터는 나의 희망을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다음 층인 육층에서도 섰어. 나도 모르게 문 반대편으로 뒷걸음질쳤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죽음과 같은 적막이 잠시 흐른뒤 문이 열렀어. 숨을 들이키고, 열리는 문을 노려보고 있었어.
제기랄! 역시 아무도 없는거야.

어둠만 보일 뿐이였어. 물론 그 어둠 속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었고, 박동수가 빨라지는 것이 느껴졌지만, 내 힘으로는 진정시킬 수 없었어. 그냥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계단으로 올라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두운 복도로 선뜻 나갈 용기가 나지 않아, 좀 망설였지. 하지만 삼 층 정도야 뛰어가면 얼마 안걸릴 것 같아., 계단으로 올라가기로 마음을 먹었어. 그런데 엘리베이터가 나를 내보내지 않기로 마음을 먹은 것처음 순식간에 문이 닫히는 거야. 아무것도 아닌 우연이었지만, 그때만은 엄청 섬뜩하더라. 처음에는 엘리베이터 고장이나 누군가의 장난으로 생깍했어. 하지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릴때마다 어둠 속에서 뭔가 튀어나올 것 같은 두려움은 견디기 어려웠어. 더구나 엘리베이터가 멈출 때마다 누군가가 올라타는 느낌도 들고. 여하튼 무서웠어.


그러고 보니 어느 순간부터, 엘리베이터 안에 나 말고 누구 있는 것 같은 느낌자더 들기 시작하는 거야. 자꾸 누군가가 내 주변에 서 있는 것 같은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는 거야. 그래서 벽에 등을 붙인 채 엘리베이터 안을 둘러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어. 하지만 누군가가 같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은 지울수 없었어.


칠층에서도 역시 엘리베이터는 멈추었어. 이번에야말로 내려서 계단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엘리베이터에서 내렸어. 그런데 내려서 복도 저쪽 끝에 있는 계단을 보니, 전등이 나갔느지 완전히 암흑 그 자체였어. 아직 칠층에는 입주자가 하나도 없는지, 복도에는 불빛 한점 없는거야. 단지 복도 끝의 비상구라고 쓰여있는 파란불만 보일뿐, 바로 앞도 안 보일 정도로 깜깜한거야.


에라 모르겠다 하고 가볼까 했지만, 역시 아무것도 안 보일 정도로 깜깜한 곳을 지날 때에는 극도의 공포심이 유발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더라. 도저히 그 어둠 속으로 발을 떼어놓을 수가 없더라고. 어쩔수 없이 그 기분 나쁜 엘리베이터에 다시 올라탔어. 엘리베이터는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듯이 올라가지 않고 있었어.

내가 엘리베이터를 타자 괴물이 자기 입안으로 들어온 먹이를 삼키듯이 문이 닫혔어. 엘리베이터 안에는 분명 나 혼자였는데, 숨이 답답한 것이 마치 사람들로 꽉 찬 엘리베이터를 탄 기분이었어.

엘리베이터는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고, 나는 거의 체념한 상태로 벽에 기대고 있었어. 역시 엘리베이터는 팔층에도 섰어. 그때는 이미 진이 빠질 대로 빠졌고, 두려움에 머리가 멍해져 있을 때였어. 그러니 문이 열리는 것을 우두커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어.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문을 열렸다가 한참 있다 닫혔어. 이제 다음이 내리면 되겠구나 생각하니 그래도 좀 안삼이 되는 순간이었어. 갑자기 닫히던 문이 다시 열리면서 엘리베이터에서 '삐'소리가 나는 거야. 나는 처음에 이게 무슨 소린지 알수가 없었어. 영문을 몰라 주위를 둘러보는데, 엘리베이터 계기판에 뭔가 빨간 글자가 보이는거야. 처음에는 무심코 지나갔지만, 자세히 보니 바로 그것 때문에 소리가 나는 것이었어. 소리나는 원인을 이해했지만, 처음에는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정말 무엇인지를 깨닫지 몼했어. 그 글자의 의미를 깨닫는 순간, 나는 충격으로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어. 소름이 쫙 끼치고 몸을 움직일수가 없었어.

그 계기판에는 바로, '정원초과'라는 글자에 빨간불이 들어와 있는 것이었어. 혼자 탄 엘리베이터에 정원초과라는 거야! 너무 무서워서 주위를 둘러보았어. 분명히 아무도 안 보였지만. 내 느낌에는 뭔가가 타고 있는 듯했어. 엘리베이터에서 뛰쳐나가려는데 갑자기 문히 닫혔어. 정원초과라는 불빛이 켜진 채 문이 닫힌거야.

열림버튼을 누르고 문을 두들겼지만, 닫힌 문은 꼼짝도 안했어. 나는 미친듯이 발버둥쳤지만, 엘리베이터는 아랑곳하지 않고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어. 아무도 안 보였지만, 그때 나는 확신했어. 무언가가 분명히 이 엘리베이터 안에 있다는것을.....


공포에 짓눌려 있던 그때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어. 단지 이 지옥같은 엘리베이터에서 빨리 나가야 된다는 것밖에. 무서워서 기절할 것 같아 엘리베이터가 어디로 움직이는지도 알수 없었어. 그냥 벽에 붙어, 이 안 어디선가 나를 노려보고 있을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찾아보는 것이 전부였어.


그런데 갑자기 엘리베이터가 서는 것이었어. 층수를 보니 구층이었어. 겨우 한 층 올라왔는데 십년은 걸린 것 같았어. 제발 문이 열리기를 바랐어. 다행히 엘리베이터 문은 열렸어.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튕겨 나가듯이 뛰쳐나왔어. 얼마나 급하게 뛰어나왔는지 엘리베이터 앞에서 중심을 잃고 쓰러졌지. 그 무서운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니까 좀 살 것 같더라. 쓰러진 채로 문히 닫히는 엘리베이터를 돌아봤어.

엘리베이터를 돌아본 순간, 나는 내 눈을 믿을 수 없었어. 온몸에 소름이 쫙 끼치고, 전신의 맥이 풀릴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지. 문명히 아무도 없던 그 엘리베이터 안에 그 여자가 보이는 거야. 그여자 뒤로는 형체가 뚜렷하진 않지만, 사람 모양의 희미한 것들이 가득차 보였어. 문히 닫히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퀭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은 바로 그 여자였어. 그 여자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나는 온몸이 얼어붙는 듯한 두려움을 느꼇고, 무서움으로 정신이 희미해지는 것 같았어. 그러고는 복도에 넘어진 채로 정신을 잃어갔어.


내가 정신을 잃기 전에 마지막으로 본것은, 닫히던 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열리고, 기괴한 웃음을 짓던 그여자의 얼굴이 점점 내게로 다기오는 것이였어.
성준이는 인석의 말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을 막았다.

"너 이 자식, 무슨 거짓말을 그렇게 하니? 그 정원초과 얘기. 들어도 수백 번 들었던 얘기다. 좀 지어내려면 잘 지어내지, 그걸 우리보고 믿으란 말야? 응?"

성준이가 추궁을 하는데도 인석이는 무슨 생각에선지 아무 대답도 안 하고 가만히 있었다. 나도 인석의 말이 너무 빤해 보여서 한미다 거들었다.

"그 얘기, 나도 여러번 들었어. 어떻게 된 게 이번에 네가 들려주는 얘기는 다 빤한 얘기냐? 새로 이사간 방에 나타나는 귀신이며, 한밤중에 혼자 탄 엘리베이터가 정원초과를 울리는 것하며.... 아무리 믿으려 해도, 너무 흔한 얘기 아니냐?"

우리의 미심쩍은 어조에 인석이는 맥주 한잔을 단숨에 들이키더니, 갑자기 눈에 광기를 띠며 언성을 높였다.

"믿고 안 믿고는 너희들 자유야! 나도 잘 알아! 내가 보고 경험한 것이 얼마나 흔하고 빤한 얘기인지! 그런데 어떡하니? 나는 정말 경험 한 것인데..... 너희들, 잘 생각해봐. 그런 떠도는 무서운 얘기들이 다 지어낸 것일까? 혹시 누군가가 경험한 얘기가 퍼지고 퍼져 사람들이 흔히 알게되는 얘기가 될수도 있잖아.
나도 처음에는 고민을 많이 했어. 너희들과 똑같은 생각을 했지. 내가 생각해도 너무 빤한 귀신 얘기를 경험하고 있는거야. 마치 무슨 얘기속의 주인공처럼 관습적인 귀신 얘기를 경험해 나가고 있었던 거야. 그래서 미칠 것 같았어."

소리를 높이며 얘기를 시작했던 인석의 목소리는 얘기를 마치면서 힘없이 작아졌다. 마치 뭔가를 체념한 사람의 모습처럼...
그런 인석이를 보고 있으려니 조금은 딱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인석이가 하는 빤한 얘기를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치미는 화는 어쩔수 없었다. 어떻게 생각해 보면 흔하디흔한 얘기를 마치 자기 얘기처럼 떠벌리고 있는 것이었다. 성준이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인석이를 더욱 물아붙였자.


"야! 더 이상 쓸데없는 뻥치지 말고 솔직히 얘기해봐! 뭐가 문제인지. 너, 우리에게 비밀스런 벤처기업인가 뭔가 하다가 사고 낸거 아냐? 그래서 맛이 갔는데, 우리가 자꾸 물어보니까 엉뚱한 귀신 얘기를 지어낸 것이고......그렇지?"

"하긴 그래, 너 우리에게 아직 말 안 하고 있는데, 도대체 어떤 사업을 시작한거야? 그럿과 관련있는 일 아냐? 애기 좀 해봐, 응?"

우리가 계속 다그치자, 고개를 숙이고 있던 인석은 담배를 하나 뺴물며 불을 붙였다. 고민있는 사람처럼 담배를 깊게 들이마신 다음 내뱉은 인석은 천천히 입을 뗐다.

"너희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나도 다 알아. 그래, 난 좀 이상한 일을 시작했어. 어쩌면..... 이렇게 된 것도 그것 때문일 거야. 어차피 너희들도 믿지 않겠지만, 다 얘기해 줄께. 얘기하다 보면 내가 어떤 일로 돈을 벌어볼까 했는지도 알수 있을 테니. 처음에는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는데....."

그렇게 인석이의 얘기는 다시 이어졌다.


휴, 그날 그렇게 엘리베이터 앞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진 나를 발견 사람은, 다음날 아침 경비 아저씨였어. 누가 나늘 흔들어 깨웠어.눈을 떠보니, 이미 아침이 왔는지 환한 엘리베이터 앞 복도가 눈에 들어오고 경비 아저씨의 걱정스런 얼굴이 보이는 거야. 한동안 내가 왜 여기 있는지 몰라 멍해 있었지만, 곧 기억이 났어. 경비 아저씨는 무슨일 있냐고 내게 물었어.


나는 간신히 몸을 일으키며, 술알 많이 마셔 그냥 여기서 쓰러져 잤다고 얼버무리고 말았어. 그런데 웬일인지 경비아저씨는 내 대답을 좀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어. 나는 옷을 털며 자연스럽게, 어젯밤에 혹시 엘리베이터가 고장나지 않았냐고 물어보았어.

경비 아저씨 말로는 아무런 고장도 없었다는 거야. 그 말을 들으니, 내가 어제 경험한 그 기괴한 일이 진짜였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라. 갑자기 그 창백한 여자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오싹하고 소름이 쫙 끼치는 거야.


이상할 정도로 나를 유심히 살펴보던 경비 아저씨는, 괜찮다며 방으로 향하는 나에게 충격적인 얘기를 했어.

"이봐요, 그런데 어젯밤에 같이 들어가던 그 아가씨는 어디 갔소? 오늘 아침까지 나가는 걸 못 봤는데."

처음에는 그 아저씨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치릴 수 없었어, 그런데 나의 멍한 표정을 보고 경비 아저씨가 한마디 덧 붙이는거야.

"왜 어젯밤 늦게 같이 엘리베이터에 올라탔잖소? 그 얼굴이 기분 나쁠 정도로 창백했던 여자. 당신 뒤에 바로 붙어 있던데, 일행 아니었소? 나도 어젯밤에 그 여자 얼굴보고 깜짝 놀랐소. 산 사람의 얼굴이 그렇게 하얗다니...."

그제서야 그 경비 아저씨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아차릴수 있었어. 전날 밤 그 경비 아저씨 눈에는 내가 그 여자와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이 보였던 거야! 경비 아저씨 말대로라면 내가 경험한 것이 바로 사실이라는 거야. 갑자기 몸이 덜덜 떨리며 무서워졌어.


나는 경비 아저씨의 걱정스러운 말에는 대답도 하지 않고 내 방으로 뛰어들어갔어.
방에 들어가자마자 문을 걸어잠그고 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상한 사건에 대해 생각해봤어. 도대체 그 여자가 누구일까, 왜 내 주변에 나타나는 것일까. 그 여자가 귀신이라면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 이런저런 생각이 얽힌 실타래 처럼 머릿속에 엉켜 있었지만, 어니 하나 답을 찾아낼 수 없었어.


그러다가 소름끼치는 그 여자의 얼굴이 떠올랐어. 생각만 해도 무서웠지. 그런데 이번에는 떠오른 그 여자의 얼굴이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거야. 생각하면 할수록 분명히 어디선가 본 얼굴이었어. 필사적으로 생각해봤지. 하지만 어디서 봤으며, 누구였지는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거야.

왜 있잖아? 입에서 맴돌며 나오지 않는 이름처럼, 알 것도 같으면서 생각이 나지 않는 거야. 이번엔 무섭기보다는 답답해 죽겠더라고. 단지 그 여자가 내게 인상적으로 기억되었는 것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어. 한참을 고민했지만 젼혀 감을 잡을수 없는거야.

침대에 누워서 생각을 해봤어. 천장을 보니 그 여자가 나를 내려다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으스스했어. 사실 그 소름끼치는 얼굴을 필사적으로 떠올리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냐. 그리고 바로 얼마 전까자만해도 기억에서 지워버리려고 애쓰던 그 얼굴을 좀더 선명하게 떠올리려는 내 모습이 갑자기 우습게 느껴지기도 했어.


그 여자의 얼굴을 정확히 떠올리려 애쓰다가 어느새 잠이 들었어. 꿈에서도 그 여자의 모리가 수십 개나 내 주위를 맴돌다가 다가가면 연기처럼 사라지는 모습이 보였어. 그러더가 그 여자의 얼굴을 두 손으로 잡았더니 빠지직 터지면서 새빨간 피가 사방으로 튀는 거야. 너무 끔직한 모습이었어.


놀라서 비명을 지르고 보니, 꿈이었어. 온몸은 식은땀으로 완전히 젖어 있었어. 몇 시간이나 잤는지 밖은 벌써 깜깜해져 있었어. 시계를 보니 벌써 밤 열시가 다 된거야. 어떻게 된건지 수면제를 먹은 것처럼 거의 열두시간을 내처 잔 셈이야.

침대에서 일어나니 주위가 어지럽게 느껴질 정도였어. 방의불을 켜고 책상을 보니 밀린 일거리들이 보이는 거야. 일 좀 열심히 해보겠다고 집을 나왔지만, 여기 들어온 뒤로 일을 전혀 진행시키지 못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니 한심해졌어.

하지만 내가 당한 일 때문인지 그 일거리들이 보기도 싫어졌어. 이메일에 예상보다 많은 주문이 와 있었지만, 이 상태로는 아무것도 하기 싫었어. 특히 그런일은.


하루종일 아무거도 안 먹었기 때문에 배가 고팠어. 뭐 좀 먹으로 나갈 생각으로 겉옷을 걸쳤어. 아예 이 길로 나가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 무시무시한 경험을 한 이 방으로 다시 돌아오기가 싫어졌어. 게다가 밤에 또 그 악몽같은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도 싫었고.
집으로 갈까 망설이고있는데, 갑자가 복도 저편에서 찢어지는 비병 소리가 들리는 거야. 너무 처절한 비명소리여서, 듣는 손간 등골이 오싹해졌어. 처음에는 내가 잘못 들었나 했는데, 그 끔찍한 비명소리는 연이어 울려퍼졌어.


문을 열고 복도에 나와봤어. 비명 소리는 복도 반대편 끝에서 들려오는 것이였어. 무시무시한 고문이라도 당하는 것처럼 정말 고통스러운 남자의 비병소리였어. 그 소리는 계속 이어졌어. 어둠침침한 복도 저편에서 울려퍼지는 끔찍한 비명소리는 정말 섬뜩했어.


아직도 우리 층에는 아무도 입주하지 않은 건지, 아니면 그 비명소리를 못 들은 건지 복도로 나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비병 소리는 멈추지 않았어.

나는 어쩔수 없이 인터폰으로 경비 아저씨를 불렀어. 졸고 있던 것 같은 경비 아저씨는 내 얘기를 듣고 곧 올라가 보겠다고 했어. 그냥 앉아서 경비 아저씨가 올라오는것을 기다릴까 했지만, 계속되는 비명 소리는 듣기에도 고통스러웠어.

나는 그 비명 소리에 홀린 듯이 복도로 나와 그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향했어. 천천히 어두운 복도를 지나가는데, 그 소리가 나는 쪽으로 다가갈수록 그 쥐어짜는 듯한 비명 소리는 나를 미치게 하는 것 같았어.

이어졌다. 끊어졌다 하는 비명 소리는 계속 울려퍼졌어. 복도는 마치 유령의 집의 복도처럼 음산한 분위기를 퐁기고 있었어. 어떻게 보면 비명소리와 그 괴기한 분위기는 그럴듯한 조화를 이룬 것이지. 그만큼 그 복도를 걸어가는 나에게는 공포로 다가왔고.....

발걸음을 옮겨 양옆에 있는 방문들을 지날 때마다 누군가가 어둠 속에서 튀어나올 것 같아 무서웠어. 사방에서 무언가가 나를 노려보는 것 같기도 했어. 그냥 내 방으로 돌아가 경비 아저씨를 기다릴까도 했지만, 비명소리가 더욱 심해지자 마치 끌려가듯이 나는 그 비명 소리가 들리는 방 앞으로 다가갔어.


웬일인지 방의문은 잠겨 있지 않았어. 문틈 사이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고, 비명소리도 그 문틈을 타고 나와 복도 전체에 울려퍼지는 것 같았어. 내가 방앞에 서자, 그 비명 소리는 내가 다가오는 것을 알아처렸다는 듯이 갑자기 뚝 멈추었어. 죽음과 같은 적막이 흘렀어. 문을 열까 말까 망설이다가 손잡이를 향해 손을 뻗었어.


그때였어. 적말을 깨고 단말마의 처절한 비명 소리가 방안에서 짧게 울려퍼졌어. 그 비명소리는 가뜩이나 겁을 집어먹고 있던 나를 깜짝 놀라게 했어. 그 짧은 비명소리가 울려퍼진뒤, 복도 전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침묵 속에 잠겼어.

어느새 문고리를 향했던 내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어. 복도 저편 엘리베이터를 봤지만, 경비 아저씨는 아직 보이지 않았어. 인간은 정말 호기심의 동물인지, 그렇게 무서운 상황에서도 나는 그 문을 열었어. 내가 왜 그랬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어.
문을 열자마지 본 그 끔찍한 광경에 나는 큰 충격을 받도 얼이 빠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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