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갑자기 7

백두장사 작성일 07.04.12 14:2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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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비명 지르는 모습을 기분나쁜 비웃음을 머금은 채로 바라보던 그 형사는 천천히 말문을 열었어.

"아무리 소리쳐도 소용없을걸. 알다시피 입주자도 없잖아? 그러보면 세상에는 참 이상한 우연도 많아. 네놈이 Enjoy Killing의 운영자였다니.....언젠가 그 운영자 놈을 잡아 손볼까 했는데, 이렇게 만나게 되네. 미안하네. 내가 결정적으로 착각을 한 것에 대해.....우리는 네놈이 우리를 노리고 있는줄 알았어. 그 사이코 컴퓨터 프로그래머하고 그 멍청한 경비놈도 네가 손 봤는 줄 알았는데.... 괜히 엉뚱한 놈 붙잡고 지랄한 셈이네."

"도대체 무슨 얘기 하는 거예요? 이거나 풀어줘요! 경찰이 무슨 짓 하는 거죠!"

"이 아저씨 아직 아무것도 눈치 못 채고 있는 거 아냐? 나, 네 말대로 경찰맞지. 하지만 지금은 퇴근하고 취미 생활을 즐기는 중이지"

그 말과 함께 그 형사는 징그럽게 웃는거야. 그 웃음을 보니 소름이 쫙 끼치더라.
결국 그 처참한 시체로 발견된 그 두 사람은 이 형사 놈과 같이 난도질당한 그 여자의 사신을 찍었다는 거야.
그럼 이 연쇄 살인은 정말 악귀의 복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하지만 동시에 나는 그 형사가 그 끔찍한 사진들을 보낸 KillYou라는 생각을 하니, 그 놈이 나에게 어떤짓을 할까 무서웠어.

"당신이 KillYou라면 그 사진들은?"

나는 조금이라도 말을 시켜 시간을 끌 생각으로 그놈에게 물어보았어. 그놈은 금방 나를 어떻게 할 생각은 아닌지, 담배를 하나 빼어물면서 자랑스럽다는 듯이 얘기를 했어.

"어땠어? 그 사진들? 죽여줬지? 내가 생각해도 그 사진들은 작품이었어. 걸작! 마스터 피스! 우리도 그 작품을 만들어놓고 감동했어. 벤헌가 뭔가 하는 영화를 만든 감독 놈이 그런 말을 했다며....신이여 우리가 진정 이 작품을 만들었습니까? 바로 그런 기분이었어!"

그 형사놈은 미친놈처럼 지껄여댔어. 그 광기 어린 눈빛을 보니 미친놈 그 자체였어.
나는 계속해서 그놈을 치켜세우면서 시간을 끌 생각을 했어. 의문도 풀고.....

"그래요. 그 사진을 게시판테 올리니 사람들이 난리가 났어요. 다들 다음 사진을 기대하고, 어떤 천재가 그걸 만들었냐고 물어보고 그랬어요. 정말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렇지? 내 그럴 줄 알았어. 네 사이트에 보내자고 한 것은 그 프로그래머 아이디어였지만, 그 사진을 만든 것은 거의 내가 한 일이었지. 그 여자를 우리 것으로 만든 것도 나였고, 그런 식으로 난도질하자고 한 것도 내 아이디어였어. 경비놈은 그냥 보고 즐기기만 했어. 소심한 놈.....그렇게 될 줄 알았지."

그 형사 놈은 좀만 구슬리면 자기 자랑하는 데 장신이 팔릴것 같았어.

"나도 그런 사진을 많이 봤지만, 당신네들이 만든 작품이 최고였던 것 같아요. 어떻게 그런 작품을 만들게 되었어요?"


질문을 던지면서, 나는 내 상황이 정말 황당하게 느껴졌어. 그런 미친놈 앞에 묶인 채로, 기자가 무슨 예술가를 인터뷰하는 것 같았거든. 하지만 그놈은 자기가 정말 어떤 위대한 예술가라도 된 것처럼 신이 나서 떠들어댔어.

"나에게 그런 재능이 있는지 나도 몰랐어. 이 년 됐나? 그때 어떤 용의자 놈을 심문하다가 화가 나서 족쳤지. 처음에는 그저 위협하는 정도로 몇 대 때렸는데, 그놈의 얼굴에서 피가 튀자 흥분되기 시작하는 거야. 피와 함께 살점이 튀고 그놈의 얼굴이 뭉개지는 것을 보니 쾌감도 느껴지는 거야. 그때까지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느낌이었지. 정말 짜릿했어. 휴......."

거기까지 얘기하던 그 형사 놈은 그때의 느낌이 다시 떠오르는지 몸을 부르르 떨면서 얼굴까지 상기되는 거야. 그리고 묻지도 않은 얘기를 꺼내는 거야.

"그 쾌감을 찾기 위해 나는 뭔가 대상을 찾아야 했어. 그래서 찾아간 것이 병원 시체실이었어. 거기는 생각보다 시체를 들고 나오기가 쉽거든. 몇 번 시체를 가지고 나와 마음대로 난도질하고 때리고 잘라봤어. 재미있더구만.


그러다 보니 그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더라고. 사진을 찍었지. 찍어놓은 사진들을 들고 다니며 시간 날 때마다 봤어. 그 사진을 볼 때마다 온몸이 쾌감에 휩싸이는 것 같았어. 내가 만든 그 훌륭한 사진들을 혼자만 즐기기에는 아까웠어. 그래서 남몰래 인터넷에 올리고, 그런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지.
그러다 같이 한번 해보자고 모인 것이 우리들이었어. 마음에 드는 놈은 한 놈도 없었지만, 그래도 같이 하는 것이 더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있기에 같이 작업했지. 시체보다는 진짜 살아있는 사람을 가지고 즐기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은 그 분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거야.


역시 죽은 것보다는 팔팔한 놈들이 최고였어. 꿈틀거리며 싱싱한 피를 쏟아내고, 겁에 가득찬 그 얼굴들.....정말 한단계 높은 쾌감이었어. 한 명씩 돌아가며 작품의 소재가 될 사람을 구해오기로 했어. 프로그래머 놈은 그래도 순서에 맍게 지켰는데, 그 경비놈은 한 번도 제대로 지킨적이 없었어. 그래서 거의 내가 구했지.

그 여자는 경비 놈이 쩍어놨지만, 아무 짓도 못하고 있던 년 이었어. 그걸 내가 착 채왔지. 그런데 그년은 그때부터 좀 싹수가 이상햇어. 처음에는 보통 놈들처럼 겁에 질려 정신을 못차리더구만. 헌데 칼로 몸을 그어대기 시작하자, 고개를 숙이고 모든것을 체념하는 것 같더라. 우리는 아무런 반응이 없어 기절한 줄 알고 실망했어. 좀 비명을 지르고 무서워하는 모습을 봐야 더 흥분이 되거든.


그런데 갑자기 고개를 든 그년의 얼굴은 예상밖이었어. 무서워 하기는 커녕 우리 모두를 싸늘하게 노려보는 거야. 눈빛으로도 우리를 죽일 듯했어. 그 살기 도는 눈빛에 우리는 잠시 멈칫했어. 그것도 잠시뿐이있고, 우리는 쾌감을 쫗아 그년을 난도질했어.
그년은 끝까지 저주하듯이 우리를 노려봤어. 하지만 그럴수록 좀 색다른 쾌감이 느껴졌어. 아마 그년이 보통년이 아니어서 그런 훌륭한 작품이 나온 걸 거야. 앞으로도 그런년 구하기는 쉽지 않을 거야.

그런데 너 이거 알아? 그년을 죽일 때 좀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 누군가가 천장에서 우리를 지켜보는 듯한 기분이었어. 좀 으스스하기는 했지만, 우리들 작품을 보여준다는 기분도 들어서 흐뭇하기도 했지."

그 얘기를 듣자, 나는 한승이 형과 같이 본 사진이 떠올라서 머리끝까지 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 피를 뒤집어쓴 것 같은 그 여자의 끔찍한 모습이 생각이 나자 몸이 부르르 떨리기까지 했어. 하지만 더 심한 것은 그런 기분나쁜 시선을 느끼면서 더 쾌감을 느겼다는 그 형사놈 패거리였어. 나는 그 형사 놈의 눈치를 살피면서 몇 가지 더 물어보았어.

"그러면 그 시체들은 다 어떻게 처리했어요? 한두 구도 아니고 수십구의 시체인데 어떻게 감췄어요? 모두 한강에 버렸어요?"

형사는 가소롭다는 듯이 보면서 얘기했어.

"이봐 이봐, 그래도 내가 명색이 경찰인데, 그런 식으로 멍청하게 처리하겠어? 이 동네가 좋은 게 뭔 줄 알아? 개발이 한참 되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항상 공사로 붐비지. 사방에 공사장도 널려있고. 그냥 콘크리트에 집어넣어 버리면 끝이야. 몇십 년 뒤에 그 아파트나 건물들을 허물기 전에는 아무도 못찾지. 이름하여 완전 범죄지. 안 그래?"

그놈이 그 모든 것을 그렇게 자세히 얘기해 주자, 나는 다시 겁이 나지 시작했어. 자기의 범죄 사실을 그렇게 다 털어놓는 다는 것은 나를 살려둘 생각이 없다는 것 같이 느껴졌어.
점점 절박해졌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야만 했어.

"그럼 그 동료 분들을 죽인 살인범은 누구예요?"

그 질문을 하는 순간, 나는 내 실수를 깨달았어. 그 놈은 내 질문을 듣는 순간, 자만심 가득 찼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지더니 뭔가를 두려워하는 모습이었어. 흥분되었는지 말을 더듬기까지 했어.

"그런.......나도.......모르겠어. 난......넌.....줄.....알았는데....... 그 사진과 똑같이 살인을 저지른 것을 보니, 범인은 그 사진을 본 놈이 확실해. 너를 통해 그 사진을 본 사람이 많다고 하더라도 우리들 관계를 아는 놈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거든. 그런데 너는 살인현장마다 나타났고, 거기다 우리의 작품을 가지고 있었으니.....아무리 뭐라고 하더라도 내 생각에는 너야!"

"몇 번을 말해야 나를 믿어주겠어요? 나는 아니라니까요! 설사 내가 사진을 봤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당신들의 관계를 알 수 있느냔 말이에요! 난 아니예요!"

내 항변에 그놈은 잠시 혼란스러운 표정이었어. 자기도 생각해 보니, 범인이 나라는 것을 입증할 수 없었나 봐.
갑자기 그 형사 놈은 고개를 들더니 뭔가를 깨달은 것 같았어. 그러고는 흥분된 목소리로 중얼거렸어.

"사진을 알고 있고, 우리 관계를 아는 놈이 범인이라면...... 설마 그 분이....."

거기까지 중얼거리던 형사는 두려워하는 무십이 역력했졌어. 그런 잔혹산 살인을 저지르던 그 형사 놈도 범인에 대해서는 무서워하는 것 같았어. 뭔가 범인에 대해 의심이 가는 것이 있는지 고개를 숙이고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했어.
나는 눈치를 보면서, 온 힘을 다해 결박을 풀고 있었어. 다행히 오른손을 묶은 결박이 좀 헐렁해지기 시작했어.

그때까지 가만히 있던 그 형사놈이 뭔가 결심한 듯한 표정을 한채 갑자기 고개를 들었어. 나는 그놈의 얼굴을 보자 가슴이 덜컥 내려않는 느낌이었어. 그놈의 눈에는 다시 끔찍한 살기가 감돌고 있었고,천천히 나를 향해 다가왔어.

"이제 남은 일을 할 시간이야. Party Time이지......어서 끝내고 진짜 살인범을 찾아가야겠어. 내가 당하기 전에...... 너도 자랑스러울거야. 내 훌륭한 작품이 되는 것이...."

그러더니 탐욕스런 표정을 하고 날카롭게 빛나는 사냥칼을 드는 거야. 나는 필사적으로 몸을 비틀고 결박을 풀려고 했지만 줄만 헐거워질 뿐 여전히 움직일 수 없었어.
그 형사 놈은 나의 필사적인 움직임을 즐기듯이 바라보면서 소름끼치는 말을 했어.

"어떻게 잘라줄까? 이번 작품의 주제를 피로 할까 내장으로 할까 고민이야. 네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주지. 각오는 되었겠지? 훌륭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리거든. 그 동안 숨이 끊어지면 재미가 없거든. 아무리 괴로워도 자살 같은것은 안 해주었으면 해.."

그 말과 함께, 그 형사놈은 광기 어린 눈을 빛내며 칼을 번쩍 들었어. 나는 이제 죽었다는 생각이 덜더라.
그때였어. 나는 형사 놈 뒤편으로 뭔가를 언뜻 보았어. 그 무엇을 처음 봤을때는 정말 내 눈을 믿을 수 없었어. 그것이 뭔가를 깨닫는 순간, 죽음의 공포보다 그것의 모습이 더 무서웠어.

형사뒤에 서 있는 것은 나를 그렇게 따라다니며 이 악몽으로 몰아넣은 사진 속의 그 여자였어. 온몸에 시뻘건 피를 뒤집어쓴 채 머리를 풀어헤친 모습은 정말 충격적이었어.
더 무서웠던 것은 그 여자의 섬뜩한 눈빛이었어. 그 눈빛으로 우리 쪽을 무시무시하게 노려보고 있는 거야.
형사놈은 나의 공포에 질린 눈이, 자기 때문인 줄 아는지 더욱 황홀해하는 표정을 하고 손에 든 칼을 높이 치켜드는 거야.
나는 공포로 떨어지지 않는 입을 간신히 뗐어.

"저 뒤에.......그 여자가......"

그 형사놈은 내가 무슨 얘길 하는지 처음에는 잘 못 알아듣는 것 같았어. 그러더가 자기도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는지 뒤로 휙 돌아봐었어. 그러고는 그 여자의 섬뜩한 모습을 보고, '악!'하는 비명을 질렀어.
그 여자는 순식간에 그 형사 놈 앞으로 다가와 뭔가로 목을 그었어. 형사의 목이 갈라지고 피가 분수처럼 튀기 시작했어. 형사는 피가 나오는 자기 목을 붙잡고 비틀거리며 그 여자로 부터 필사적으로 멀어지려고 애를 썼어.

그 순간 나는 그 형사의 눈과 마주쳤어. 그때 본 극도의 공포에 질린 형사 놈의 눈빛을 나는 팽생 잊을 수 없을 거야.
그 형사의 비틀거림도 잠시뿐, 그 여자가 앞에 서자 뭔가에 홀린 것 처럼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어. 그 여자는 형사의 손에서 사냥칼을 빼더니 저쪽 어두운 구석 쪽으로 형사를 이끌고 사라졌어.
잠시 죽음과 같은 적막이 흘렀어. 나는 계속되는 심한 충격으로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어. 다음 순간, '푹! 푹!'하는 기분나쁜 소리가 계속해서 수십 번 들리는 거야. 그 소리는 무슨 고깃덩이를 칼질하는 듯한 소리였어.

나는 그 소리만 듣고 있어도 온몸에 소름이 쫙 끼치며 꼼짝 할 수가 없었어. 하지만 그때는 정말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 다음 차례는 나일지도 몰랐기 때문이야.

 

온몸을 비틀며 결박을 풀려고 했어. 느슨해진 결박 사이로 오른손이 자유스러졌어. 오른손으로 나머지 결박을 풀고 있는데, 그 '퍽퍽'하는 소리가 멈추었어.
나는 두려운 마음으로 시선을 그 벽 쪽으로 향했어. 이상할 정도로 어두어졌던 그 구석자리는 다시 밝아져 있더라고.

그런데 그거에 있는 것을 보고 나는 심장이 얼어붙는 줄 알았어. 거기에는 그 형사놈이 몸에 수십개의 칼자국이 난 채 피투성이가 되어 혀를 빼물고 죽어 있는 거야. 퀭한 눈에는 지옥을 본 것처럼 두려움이 가득 담겨 있었어. 세번째 사진과 똑같은 모습이었어.
결박을 풀다만 나는, 갑자기 사라진 그 여자 악귀가 어디 있는지 주위를 둘러봤어. 그 여자는 형사의 참혹한 시체를 남겨두고 감쪽같이 사리진 것이었어. 정말 감쪽같이 없어졌어.


나는 딴 생각 할 겨를도 없이 허겁지겁 결박을 풀었어. 그러다 나를 향해 뚫어지게 쏟아지는 섬뜩한 시건이 느껴졌어. 그 느낌만으로도 나는 뼛속 깊은 곳까지 두려움 느껴졌어.
나는 다리 쪽 결박을 풀고 있는 것을 멈추고, 그 시선이 느껴지는 천장을 향해 고개를 들어썽. 거기에 있는 것을 본 나는 공포로 심장이 멎는 것 같았어.

천장에는 한승이 형과 봤던 사진과 똑같이 끔찍한 모습으로 그 여자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거야. 너무나 무서웠어.
그 여자는 움직임도 없이 원한 서린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어. 그 시선으로도 심장이 멈출 것 같은 공포를 느꼈어. 그 섬뜩한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손가락 하나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어. 단지 바들바들 떨고만 있었어.


천장에 떠 있는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던 그 여자는 천천히 내 쪽으로 내려오는 거야.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도망가야겠다는 생각을 간절히 했지만, 몸이 말을 안 들었어. 아직도 내가 묶여 있는 것처럼 느껴졌어.

그 여자의 끔찍한 얼굴은 점점 내게로 다가왔고, 나는 정말 미칠 것 같았어. 거의 내 얼굴에 닿을 것 만큼 다가왔을때, 간신히 의자에서 일어날 수 있었어.
나는 미친듯이 문 쪽으로 달려갔어. 하지만 문은 웬일인지 꿈쩍도 안 하는 거야. 잠겨 있지도 않은데 열리지 않는거야! 뒤를 돌아보니, 그 여자가 그 형사 놈을 갈기갈기 찢을 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서서 나를 노려보고 있는 거야.


그 눈은 '다음 차례는 바로 너야'라고 말하고 있는것 같았어.
그 여자 옆에는 온몸에 난 수십개의 구멍에서 피를 흘리는 형사의 시체가 정말 글자 그대로 참혹하게 서 있었어.
나는 그 여자를 보고 미친 듯이 소리쳤어.

"나는 아니야! 나는 당신 죽음에 아무런 책임이 없단 말야! 나를 가만 놔줘!"

정말 나도 미치는 줄 알았어. 목이 터져라 외쳤지만, 그 여자는 미동하 안하고 나에게 똑같은 시선을 보내고 있었어.
그 순간, 갑자기 내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어. 그 여자가 처음부터 내 주변을 맴돈 이유가 뭘까. 그리고 한승이 형이 그 여자가 나온 사진들을 보면서 내게 해주었던 얘기가 생각났어.


"너 왜 심령사진이라는 것이 생기는 줄 알아? 영혼이나 귀신 같은 것은 무슨 매개체에 달라붙는다고 하더라. 사진이 그 대표적인 에이지. 쉽게 말하면, 사진에 찍힌 그 귀신은 그 사진 주변에 맴도는 거야. 그래서 귀신 사진을 찍은 사람들은 항상 그런 귀신들을 목격하고, 악마 사진을 찍은 사람달은 해를 입기도 한다고 하잖아. 마치 무서운 얘기를 많이 하는 사람이나 공포소설을 쓰는 사람 주변에 귀신이 모여든다는 애기처럼.

예전에 날 가르치던 교수님 동생이 신부였는데, 그 신부님을 찍은 사진에 악마의 눈동자들이 보였대. 그리고 다음날 이유도 없이 죽었고. 그런 불가사의한 일들은 정말 알게 모르게 발생하고 있거든. 그런 귀신이나 악귀가 찍힌 사진을 보면, 수집하거나 보관하기보다는 그냥 태워버리는 것이 최고야.

이런 턔기 하는 것은 좀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도 직업상 그런 사진을 보게 되면 일만 마치고 없애버려. 무섭잖아? 하긴... 일한이가 가져온 그 섬뜩했던 스티커 사진들은 자기 스스로 불타서 없어졌지만... 아마 네게 가져온 그 사진들도 그 여자의 원혼을 끌어들이는 작용을 하는 지도 몰라."

한승이 형의 얘기가 생각남과 동시에, 그 형사 놈이 바닥에 내던진 그 여자에 관한 엽기적이 사진들이 눈에 띄였어. 내가 여기서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어떡해서든지 그 사진을 없애야 할 것 같았어. 말도 안되는 생각 같지만 그떄는 정말 절박했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무시무시한 곳에서 빠져나오고 싶었거든.
주머니에 손을 넣어 라이터를 꺼냈어. 그러고는 바닥에 떨어진 그 사진들을 들어 불을 붙이려 했어.

그 여자 원혼은 여전히 무시무시한 모습을 한 채 천천히 내게 다가왔어. 피투성이가 되어 있는 한 손에는 그 형사를 난도질한 날카로운 사냥칼이 그 형사의 피를 뚝뚝 떨어뜨리고 있는 거야.

그 모습을 보니 무서워서 사진과 라이터를 든 손이 덜덜 떨리는 거야. 손이 너무 심하게 떨려 라이터를 켤수도 없었어. 몇 번을 시도했지만 라이터는 불꽃만 튈 뿐 켜지지 않았어.
그 악귀는 점점 내게 다가왔고, 당장이라도 나의 목을 딸 기세였어. 나는 그 여자가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 불을 붙이려니 더 안되는 거야. 그 여자는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로 다가왔어. 그 끔찍한 모습을 바고 코앞에서 보니 차마 무서워서 제대로 볼 수가 없을 정도였어. 우선 머리에서 발끝까지 새빨간 피가 흐르고 있고, 빨간 피를 뒤집어쓴 그 얼굴에 원망이 서린 섬뜩한 눈빛은 정말 똑바로 쳐다보면 안 될 것같이 무시무시했어. 너무나 무서워지니까 그냥 눈을 감게 되더라.

더 이상 그 섬뜩한 모습을 보다간 무서워서 라이터를 못 켤것 같았어. 눈을 감으니까 내 심장 고동소리가 너무 크게 들리는 거야. 다시 한번 정신을 집중하고 라이터를 켜봤어.
눈을 떠보니 이번에는 불꽃이 솟아올랐어. 불꽃 너머로 그 여자 원귀의 모습이 보였어. 떨리는 손으로 사진을 라이터에 갖다댔어.
그 사진들은 순식간에 타오르기 시작했어. 나는 손이 뜨거워지는 것도 모르고 활활 타오르는 사진을 들고 있었어. 그러고는 불타는 사진을 바로 앞까지 다가온 그 악귀에게 던졌어.


그런데 이게 웬일이니. 사진과 함께 그 여자에게 불이 옮겨 붙어 삽시간에 활활 타는 거야. 그 여자 원혼의 몸에 기름이라도 발라져 있는 것처럼 순식간에 불이 붙는 거야. 나는 그 광경에 충격을 받아 멍하닌 바라보고만 있었어.
그런데 그때 내 눈은 불속에서 사그라지는 사진과 함께 서있는 그 여자의 눈과 마주쳤어. 아마 평생 그 모습을 잊을 수 없을꺼야.


불이 활활 타오르는데도 아무런 동요없이 나를 노려보고 있기만 하는 거야. 그 눈에 한없는 분노와 증오를 담고서...... 그러고는 불꼬초가 함께 그 여자 모습은 사라졌어.
그렇게 활활 타던 불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말끔히 사라졌어. 그 여자도 없어졌고......

나는 자리에 힘없이 주저앉았어. 내 건너편에는 자기 죄값을 받은 듯이 참혹하게 죽에 있는 그 형사의 시체만 덩그러니 서 있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 그때는......
내 발치에는 그 여자가 들고 있던 피묻은 사냥칼이 놓여있었어. 나도 모르게 그 칼을 들었어. 한참을 멍하게 그 피묻은 칼을 보고 있었어.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나는 그 칼을 보면서 자살을 생각하고 있었던것 같아. 그 칼로 내 목을 그어버리고 싶은 충동마저 느끼고..... 그 경험이 내게는 견딜 수 없는 충격이었던 것 같아.

하긴 너희들도 만약 그런 경험을 하게 된다면 어쩔 수 없을거야. 정말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내가 목격한 이 사건들을 과연 사람들이나 경찰이 믿어줄지 의문이었어.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 분명했거든. 사실 나라도 믿지 않을 테니.......
얼마를 우두커니 앉아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나. 단지 기억나는 것은 창밖으로 해가 뜨는 것이 보였다는 거야. 밤을 샌것 이지.


햇살이 얼굴에 비치자,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아무 생각 없이 방을 나섰지. 그리고 하루 종일 길거리를 아무 생각없이 돌아다녔어. 그런데 돌아다니면서 보이는 모든 사람들이 다 무섭게 보이는 거야.
다들 가슴 속 깊은 곳에 그 형사 놈같은 잔혹하고 악마적인 본성을 숨기고 있는 것 같아 보였어. 나 역시 그들과 똑같아 보였고..... 모든걸 잊고 싶었어. 정말....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너희들이 떠올랐어. 너희들이라면 내 얘기를 믿어주진 않아도 들어줄 수는 있을 것 같았어. 그래서 너희들에게 만나자고 한거야. 그게 어제 일이야.

 

긴 얘기를 마친 인석은 목이 마른지 맥주를 들이켰다. 나와 성준이는 충격에 멍해 있었다.
나는 쉰 소리로 인석이에게 물어봤어.

"그럼 넌 어제 이후로 그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는 거야?"

인석이는 모든 것을 체념한 표정을 하며 힘없이 대답했어.

"그래, 어제 아침에 뛰쳐나온 뒤 뭐가 어떻게 돌아갔는지 아무것도 몰라. 한승이 형에게는 한 번 전화를 해봤지만, 밖에 나갔는지 전화를 안 받더라."

성준이는 못 믿겠다는 어조로 인석이에게 얘기했다.

"그런데 난 좀 못 믿겠어. 왜냐하면 그 정도의 엽기적인 연쇄 살인사건이 정말 일어났다면, 신문이나 방송에 난리가 났을 텐데, 거기에 대해선 한 줄도 안 났거든. 그거 좀 이상하지 않니?"

성준의의 말을 들으니 나도 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진짜 인석이의 말이 모두 사실아리면 사건도 보통 큰 사건이 아닌데, 그렇게 잠잠한 것이었다.
인석이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거리며 대답했다.

"그래, 그것은 나도 이상했어. 살인사건이 발생했을 때부터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방송이나 신문에 아무 얘기도 없는거야. 안 그래도 한승이 형도 그 얘기를 하는 거야. 그런데 솔직히 나도 그 이유를 모르겠어. 하지만 확실한 것은 내가 본 것은 정말 사실이라는 거야. 하늘에 대고 맹세할 수 있어."

인석이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우리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나는 심정적으로 인석이를 믿고 싶었다. 사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고, 인석이가 이런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할 놈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황당해서 믿기가 힘들었다. 실제로 그런 참혹한 사진들을 올려놓은 사이트들이 있다는 것을 들었고, 일부 호기심 많은 청소년들이 그런 사이트를 찾아다닌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런 사진들과 얘기들은 전부 먼 나라 얘기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정말 공포영화에서나 나올만한 얘기처럼 들렸다.

성준이 표정으로 봐서 인석이의 말을 전혀 안 믿는 것처럼 보였다. 인석이는 그런 우리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체념조로 얘기했다.

"휴.....너희들도 잘 믿지 않는구나. 하긴 나라도 그런 얘기를 들었다면 잘 믿지 않았을 거야. 그래도 고맙다. 너희들에게 다 얘기하고 나니 한결 기분이 나아지는 것 같다."

인석이의 초췌한 얼굴을 보니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걱정도 되었다.

"그러면 이제부터는 어떻게 할 생각이니? 그래도 경찰서에 찾아가 네가 목격한 얘기를 해줘야 할 거 아냐. 안 그러다간 정말 살인범으로 몰리겠다. 지금 당장이라도 경찰서에 가서 믿든 안 믿든 모흔것을 털어놓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인석이는 내 말을 듣고 땅이 꺼질 듯한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경찰이라면 이 말을 믿어주겠니? 사진속의 귀신이 나와 사람을 죽이고 형사까지 죽였다는.....휴.......그리고 이제 더 이상 내가 경찰을 찾아갈 필요가 없겠다. 저기 나를 데리러 온 것 같네."

인석이는 문 쪽을 보면서 담담하게 말했다. 문 쪽에는 인석이가 말한 것처럼 형사로 보이는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와 우리 쪽으로 걸어오는 것이었다.
인석이는 도망칠 생각도 없는지, 그냥 앉아서 맥주를 들이켰다.
그 사람들은 우리 테이블을 둘러싸더니, 인석이를 보고 말했다. 그 사람들은 무슨 이유에선지 인석이를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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