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갑자기 6

백두장사 작성일 07.04.12 14:2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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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나서는데, 아직도 복도는 경찰들이 왔다갔다했어. 내가 나타나자 경찰들은 못 본 척했지만 그들 사이에 풍기는 의심의 분위기는 알아차릴 수 있었어. 나 역시 경찰들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애써 못 본 척하고 걸어나갔어. 계단으로 나가다 보니, 검붉은 피가 사방으로 튄 채 말라붙은 엘리베티터 안이 보였어. 어제의 그 참혹했던 경비 아저씨의 시체가 연상되어 나도 모르게 온몸이 부르르 떨렸어.

오피스텔을 나서는데 기분이 묘하더라. 한편으로는 한승이 형이 나의 모든 의문을 풀어 줄것에 기대가 되기도 했지만, 그 답을 아는 것이 두렵기도 했어. 어떤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될지....


지하철을 타고 한승이 형의 스튜디오로 가는데 자꾸 이상한 느낌이 드는 거야.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따라오는 듯한 기분 나쁜 느낌 말이야. 주위를 여러차례 둘러봤지만 수상한 사람은 발견할 수 없었어. 괜히 내가 과민 반응하는 것으로 생각했어.
하지만 그 기분은 한승이 형 스튜디오로 가는 동안 계속 느껴졌어. 그래서 스튜디오가 있는 건물에서 들어가다가 휙 뒤를 돌아봤어. 그때 나를 지켜보던 수상한 두 사람이 눈에 띄었어. 그들은 갑작스레 내가 돌아서자, 애써 당황함을 감추며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어.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확신했어. 그들이 어디서부터 나를 따라왔고, 대체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는 전혀 알 수 없었어. 하지만 그 사실 자체가 내게는 너무 두려웠어. 한승이 형 스튜디오로 올라가는데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더라고. 그들은 경찰일까? 아니면 누굴까?

경찰이라면, 나는 심각하게 살인범으로 의심받고 있는 것이었고, 경찰이 아니라면 더욱 일이 심각해지는 것 같았어. 복도에 난 창문으로 밖을 내다봤는데, 역시 그 사람들은 건물 입구에 있었어. 속이 답답해지며 미칠 것 같더라. 아무런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불안해지기 시작했어. 그래도 내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한승이 형이 밝혀줄 수도 있는 진실이었어.


스튜디오 문 앞에 서서 심호흡을 하고 문을 열고 들어갔어. 한승이 형은 밤새 작업했는지 피곤한 모습으로 20인치 모니터 앞에서 먼가를 뚤어지게 바라보고 있었어.
한승이 형이 나를 보자 지친 표정으로 한마디 했어.

"너 이 기괴한 사진, 정말 어디서 구한 거야?"

"전에 말한 대로 어떤 사람이 보내준 거예요. 그런데 형, 제가 어제 드린 사진 다 가지고 있죠? 어젯밤에 정말 골 때리는 일이 있었어요. 아니, 정말 끔찍한 일이었어요."

나는 한승이 형에게 전날 밤에 있었던 것을 모두 말해주었어. 사진들이 모두 없어진 것이며, 엘리베이터에서 발견된 경비 아저씨의 끔찍한 시체며, 그 시체가 두 번째 사진과 똑같다는 걸 모두 얘기해 주었어. 한승이 형은 도저히 믿을수 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어.

"휴, 그런 일이 정말 일어났니? 믿을 수 없다. 믿을 수 없어. 하긴 이 사진도 믿을 수 없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으니까."

한승이 형이 나를 옆자리에 앉히고 그 문제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정말 믿을 수 없는 사실들을 얘기해 주었어.

"지난번에 일한이가 이상한 사진 갖다주어서 찜찜하게 하더니, 이번에는 인석이 니가 그러는구나. 이런 사진을 조사할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이 사진이 조작된 것인가 아닌가를 알아보는 거야. 그것을 알아보는 방법은 여러 가지야. 아무리 컴퓨터가 발달하고 조작기술이 발달해도, 가짜 사진을 알아낼수 있는 방법은 항상 있는 법이지. 딴 것은 몰라도 그것은 이제 내 전문분야가 되었어.

여하튼 이 사진은 진짜였어. 몇 가지 방법으로 테스트 해봐도 이 사즌은 가짜가 아니었어. 그러고 나서 이 사잔의 시체 부분을 선명하게 확대해서 법의학 전공하는 친구에게 이메일로 보냈지. 시체가 진짜인지를 알아봐 달라고 했어. 다행이 그 자식이 별로 안 바쁜지, 오늘 아침에 답신이 왔어.

사진 만으로 사실 유무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사진에 찍힌 시체는 마네킹이 아니라 진짜 사람일 확률이 높다는 거야.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사진은 진짜고, 진짜 시체를 찍은 것 같다는 것이지.

그리고 내 나름대로 네가 부탁한 분석을 해봤어. 자, 이 부분을 잘 봐. 네가 발견한 그 거울 부분이야. 거울에 비친 것을 확대하고 선명하게 하는 작업은 별로 힘든 일이 아니었어. 시간이 좀 걸려서 그렇지. 잘 봐, 이것이 네가 보고 싶은 것이었니?"

한승이 형이 확대시켜 준 것을 처음 봤을 때는 무엇인지 잘 알수가 없었지만 형의 설명을 듣고 보니 뭔지 알 수 있었어.

"여기를 잘 봐. 이 부분이 사람의 코야. 나도 처음에는 분간이 잘 안가더라. 피범벅이 되어 있는 바람에"

한승이 형 말대로 그것은 사람 얼굴의 일부분이었어. 하지만 얼굴 전체가 피범벅이 되어 있거, 코와 입 부분만 드러나있어서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었어. 갑자기 온몸의 힘이 쫙 빠지고, 실망감이 몰려오더라. 여기서도 아무것도 알 수 없다니.....
하지만 이상한 것은,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상태였는데도 왠지 모르게 눈에 익었어. 그러자 또 소름이 끼치더라.

한승이 형은 나의 실망스러운 표정을 읽었는지, 다시 한번 모니터를 보라며 얘기를 계속했어.

"인석아, 나도 이 부분을 보고 좀 실망했어. 이 부분에 뭔가 있을 것 같았거든. 그래서 사진의 다른 부분도 내 나름대로 꼼꼼히 살폈어. 한두 시간 정도 살폈지. 특별히 이상한 것이 눈에 띄지 않아 포기하려 했어. 그러다 이 부분을 발견했지. 자 봐."

한승이 형이 확대해 준 부분은 사진의 윗부분이었어. 그리니까 시체의 천장부분이었어. 하지만 내 눈에는 특별한 것이 하나도 안 보였어.

"별로 이상한 것이 눈에 띄지 않지? 하지만 이렇게 사진에서 색깔을 빼고 명음을 좀 넣어봤어. 그러니까 좀 선명하게 보이더라. 자 보이지?"

한승이 형이 조작을 하자, 그 천장 부분에서 뭔가 시커먼 것이 희미하게나마 보이기 시작하는 거야.

"흔히 이런 부위는 사진 찍을 때 플래시가 터지면 나오는 그림지일 경우가 많거든. 그런데 이 경우는 사진을 찍은 방향과 천장의 전등 방향을 보면, 그림자일 리가 없어. 그림자가 생길 방향이 아니거든. 그래서 뭔가가 있다는 것을 확신했어. 다음에는 사진의 선명도를 극도로 높이고 부분부분 확대해 봤어. 그러니까 이런 모습이 나왔어. 휴........"

한승이 형이 보여준 사진을 보고, 나는 충격으로 움직일 수가 없었어. 그 검은 부위가 사람의 형체를 하고 있는거야. 피투성이가 되어 있는 시체위로, 사람 모양의 검은 형체가 떠있는 거야. 얼마나 무섭던지.....
그런데 한승이 형의 작업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어.

"이렇게 반투명으로 찍힌 피사체는 선명하게 그 모양을 알아보기 힘들어. 그래서 좀 편법을 썼어. 그 반투명 피사체를 불투명 피사체로 전환시키는 작업을 했지. 쉽게 얘기하면, 빛이 투과되어 선명하지 못한 피사체를 불투명하게 하고 마치 실체가 있는 것처럼 만들어 더 뚜렷이 보이게 하는 것이지. 쉽지 않은 노가다였어.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바로 이 모습이야. 나도 처음에는 내 눈을 의심했어. 그것의 모습을 알아보는 순간, 온갖 사진을 봐왔다고 자부하던 나 역시 소름이 쫙 끼쳤어. 그 섬뜩한 모습에....."

나도 한승이 형이 보여준 그 사진을 보고 온몸이 얼어붙는 듯한 전율이 느껴졌어. 그 시체 위 천장에 어떤 여자가 떠 있는거야. 한승이 형이 집어넣은 색깔이 붉은 색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원래 색깔이 빨간지, 머리에서 발끝까지 핏빛을 띤 여자가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천장에 둥둥 떠 있는거야.
얼마나 소름끼치는 사진이던지 숨쉬기가 힘들었어.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한승이 형에게 물어봤어.

"한승이 형, 도대체 .....이게 뭐죠? 이것이......"

"휴.....나도 잘 모르겠어. 어떤 사람들은 이런 것을 보고 심령사진이라고 하지. 나는 꼭 그렇다고 하지는 못하겠지만 정말 유령이나 귀신이 찍힌 것일지도 몰라. 지번번 일한이가 가져온 스티커 사진 중에도 이런 불가사의한 것이 찍힌 것이 있었거든. 그때도 그 정체를 밝혀내지 못한 채 어느 순간 사진만 사라져 버렸지. 일한이 그 자식 말로는 원한을 품은 원귀의 모습이 찍힌 거라고 하지만.......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는데 사람이 억울한 죽임을 당하면 그 원혼이 자기 몸에서 빠져나와, 시체인 자기 모습을 보고 악귀로 변한대. 네 얘기를 들어보고 이 사진을 보니, 이 사진속의 시체도 꽤나 고통스럽게 억울한 죽임을 당한 것 같아. 그렇다면 이 허공에 떠 있는 것은 시체의 원귀라 할 수 있지. 나도 원래 이런 얘기 믿는 사람이 아닌데, 내 눈으로, 그것도 사진으로 보니 다른 말을 할 수가 없다. 너도 이런것이 찍혔는줄 알았니?"

나는 고개를 저으며 모니터에 보이는 그 오싹한 모습을 뚫어지게 보았어. 자세히 보니,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어.

"형, 이것의 얼굴 좀 확대해 주시겠어요?"

한승이 형은 내 말대로 그것의 얼굴 부위를 확대해 주었어. 점점 확대되는 사진을 보니, 그 소름끼치는 얼굴이 드러날수록 등골이 오싹해졌어. 이윽고 얼굴이 알아볼 크기로 확대되자. 나는 그 핏빛 얼굴이 익숙해 보였던 이유를 알아차릴 수 있었어. 그 사진 속 얼굴은 내 주변을 맴돌던 그 여자 귀신의 얼굴이었어. 충격으로 숨을 쉴수가 없더라. 한승이 형이 어깨를 잡아 흔들때까지, 아무 생각없이 멍하니 있었어.
나는 쉰 목소리로 한승이 형에게 물어봤어.

"형......이 사진에 찍힌 것은 정말 뭐죠?"

"그걸 나한테 물어보면 어떡하냐?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이 사진에는 분명히 그 무엇인가가 찍혀있다는 거야. 그것이 뭔지는 몰라도.."

나는 그 사진을 보고 뭔가 생각나는 것이 있어서 한승이 형에게 한 가지 더 부탁했어. 어떻기 보면 좀 무례한 부탁일수 있었지만, 그때 나로서는 한승이 형이 단 하나의 희망이었어. 그리고 한승이 형에게 KillYou가 보내왔던 나머지 사진들을 프린트해 달라고 부탁했어. 내가 가지고 있던 사진들은 다 없어졌지만, KillYou가 보내왔던 사진들은 다행이 한승이형이 가지고 있었거든.


나머지 사진은 두 장이었어. 하나는 엘리베이터에서 발견된 시체와 똑같은 사진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KillYou라는 미친놈이 제일 먼저 보내온 사진이었어. 이미 두장의 사진은 실제의 살인사건으로 나타났고, 남은 것은 한 장 뿐이었어.

한승이 형이 내가 부탁한 작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나는 그 사진들을 들고 스튜디오를 나섰어. 스튜디오를 나서는 순간, 이제까지 잊어버리고 있던, 나를 미행하던 수상한 사람들이 생각났어. 하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았어. 아니, 솔직히 신경쓸 여유가 없었어. 그때 내 모리속은 그 여자 악귀의 모습과 이 모든 사건이 어떤 연관이 있냐는 해답을 찾는 것에만 집중되어 있었어.

지하철 안에서도 오직 그 생각만 했어. 쉽게 생각할수도 있는 문제였어. 그 여자가 진짜 그런 식으로 끔찍하게 살해되고, 원한을 품은 악귀가 되어서 자기가 죽은 방식으로 잔인하게 사람을 죽여가는거야.

그런데 희생자들이 왜 내 오피스텔에 있는 사람들에서 나오는 거냔 말이다. 그리고 그 여자는 왜 내 주변에 나타나는 것이고.... 또 KillYou라는 놈의 정체는?
한승이 형은 조십스럽게 내 의문에 대해 이런 얘기도 해주었어.

"어쩌면 어쩌면 말야, 네가 본 그 여자 원기는 네 환각속에 존재하는 것인지도 몰라. 너는 이 사진을 이미 여러번 봤어. 하지만 이렇게 감춰진 여자의 모습은 못봤겠지. 그런데 네가 의식은 못했지만, 잠재의식 중에 그 여자의 모습을 인식했을 수도 있어. 그 희미한 의식 속에서 그 여자의 모습을 계속 봐온거야. 실제로 그런 일은 발생하거든. 볼때는 인식하지 못한 모습이, 데자부처럼 인식이 희미해질때 보이는 경우가. 흔히들 꿈이나 잠들기 직전에 그런 모습을 볼 수가 있대. 너도 그런 경우에 해당하는지도 몰라."


물론 한승이 형의 말이 일리가 있을지도 몰라. 그 여자의 모습은 항상 내가 피곤할 때 나타났고, 그 모습을 보고 정신을 잃은 적도 여러번 있었거든. 그렇지만 내가 환각을 봤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
지하철 안에서도 그 수상한 사람들이 나를 따라오는 것 같았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어. 나를 의심하는 경찰이나 형사라고 생각했어.

살인이 계속 일어나는 오피스텔로 들어가기는 죽어도 싫었지만, 이 모든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시 돌아가야 할것같은 행각이 들었어. 그리고 한승이 형의 전화를 기다려야 하는 입장이니 들어갈 수밖에 없었지.

주인 잃은 경비실은 덩그러니 비어 있었고, 엘리베이터는 작동이 중단되어 걸어서 올라가야만 했어. 뒤를 돌아보니, 나를 따라오던 사람들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어.
수사가 대충 진행되었는지, 전날까지만 해도 북적거리던 경찰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출입금지를 표시하는 테이프만 붙여져 있었어. 어두컴컴하고 아무도 없는 곳에 테이프만 덩그러니 붙여져 있는 것은 글자 그대로의 음산함이었어. 당장이라도 어둠 속에서 뭔가가 튀어나올 것만 같은 불길함이 느껴졌어.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어. 불꺼지 내 방으로 들어와 불을 켰어. 방안은 난장판 그대로였어. 대충 자리를 잡고 스탠드를 켠 다음, 떨리는 손으로 가져온 사진을 꺼냈어. 처음 봤을 때도 그 끔찍함에 전율을 느꼈지만, 그때는 또 느낌이 달랐어. 어쩌면 이 사진 그대로의 살인이 또 발생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더 무서워지는거야.

그 사진의 모습은 다시 보기가 꺼려졌어. 사진에는 얼굴은 나오지 않고, 대상의 상체와 하체만 찍혔어. 벽에 세워놓고 찍은 사진 같았어. 얼마나 많은 곳을 찔렸는지, 온몸에 수십개의 구멍이 나 있었고 피가 분수처럼 쏟아지고 있는 장면이었어. 찌르고 나자마자 찍은 사진인지, 피가 쏟아지는 것이 적나라하게 사진에 찍혔어. 얼마나 잔인한 미친놈이 저지른 일인지 몰라도 사람을 아주 난도질해 놓은거야. 그리고 사진을 찍고......


이 사진을 찍을 때의 모습을 상상해 보니, 온몸이 부르르 떨리더라. 광기 어린 얼굴로 희생자를 사정없이 찔러놓고, 자신의 범죄를 음미하듯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자랑스럽게 공개하는 그 놈의 광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어. 그러다가 그 희생자가 그 여자라는 생각이 들자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었어. 어디서 뭐하다 희생된 여자인지는 모르지만, 난데없이 이런 처참한 일을 당한것이.....

나는 그 끔찍함에 구토를 느꼈지만, 꾹 참고 사진을 보면서 생각했어. 뭔가가 떠오를 듯했어. 모든 퍼즐을 맞출수있는 단서가....
그 순간, 전화벨이 울렸어. 깜짝 놀라며 전화를 받았더니 한승이 형의 흥분된 목소리가 흘러나왔어.


"인석이니? 네가 부탁한 것 해봤더니, 휴.....세 사진 모두에서 그 여자의 모습을 발견했어. 하나같이 증오와 분노로 가득찬 무시무시한 모습이었어. 어쩌면 세 사진의 희생자는 그 여자 하나일지도 몰라. 잔인한 놈! 한 희생자를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그런 식으로 훼손하고 사진까지 찍어내다니..... 그런데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을 사진에서 알아냈어. 이 사진을 찍은 범인의 모습인데....."

한승이 형이 결정적인 얘기를 하려는 그때, 나는 등뒤에서 싸늘한 살기와 불길한 시선을 느꼈어. 한승이 형의 얘기를 들으며, 등뒤에 있을 것 같은 그 무엇의 정체를 보기위해 몸을 돌렸어.

뒤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는 사람은 바로 전날 나를 폭행하려고 했던 형사였어. 그는 미친 사람처럼 광기로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는거야.
귀에 대고 있던 수화기 너머로 한승이 형의 얘기가 계속 들렸어.

"사진들을 정밀하게 조사하다 보니, 그 끔찍한 일을 저지른 놈의 단서를 찾아낼수 었었어. 그놈은....."

중요한 얘기를 하는 때였지만, 형사는 나를 가만두지 않았어. 다짜고짜 내게로 달려와 나를 쓰러뜨렸어. 들고 있던 수화기는 저쪽으로 내던져지고, 한승이 형의 '여보세요! 여보세요!'라고 외치는 소리만 들렸어.
그 형사는 내가 뭐라고 말을 꺼내기도 전에 품에서 권총을 꺼내 나를 겨누는 거야. 그러고는 한승이 형이 뭐라고 소리치는 전화기 선을 뽑아버렸어.
나는 갑작스런 그 형사의 발작에 화가 났어.

"뭐하는 거예요? 당신!"

몸을 일으키며 소리쳤지만, 돌아선 그 형사의 눈을 보고는 그에게서 풍겨나오는 살기에 등골이 오싹해졌어. 그의 그 광기어린 차가운 눈빛은 어디선가 자주 접했던 익숙한 두려움 이었어. 그 형사에게 화를 내려고 했던 나는, 그의 그 무시무시한 모습에 주춤할 수 밖에 없었어.

그 형사는 다시 한 번 권총을 든 채 나늘 무지막지하게 때렸어. 나는 저항을 하려 했지만, 상대방이 권총을 들고 있어서 그냥 맞을 수 밖에 없었어. 간신히 그 형사를 밀쳐내고 정신을 차렸지만, 그 형사는 씩씩거리며 총을 겨눈 채 아직도 나를 노려보고 있는거야.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형사의 눈빛에 두려움이 담겨 있는 거야. 곧 그가 흥분된 목소리로 소리쳤어.

" 이 개새끼야! 오늘은 네가 죽을 차례야! 내가 그렇게 앉아서 당살 줄 알았어! 이 살인마 새끼!"

나는 그 형사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수 없었어. 단지 짐작할 수 있는 거라곤, 그 형사가 나를 살인범으로 알고 죽이려 한다는 거야. 전날 들은 것처럼, 용의지만 보면 이성을 잃고 폭력을 행사하는 열혈 형사라는 생각이 들었어.
처음에는 황당한 생각이 들어 어찌할 줄 모르다가, 거미 미친 것 같은 그 형사에게 간신히 말했어.

"무슨 얘기예요? 난 죽이지 않았다니까요! 도대체 무얼 가지고 이런 불법 행위를 하는 거예요!"

내가 절규하듯이 소리쳤지만, 그 형사는 내 말을 무시하고 다시 나를 덮치듯이 다가왔어. 다시 한 번 나는 이번 살인과 아무 관계도 없다고 소리쳤어.
그 형사는 나를 다시 공격하려다가, 발악하는 듯한 내 목리를 듣더니 지에 멈춰 서서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어. 그러더니 품에서 뭔가를 꺼내 바닥에 던지면서 나를 보고 광기어린 얼굴로 소리쳤어.

"이걸 보고도 그래, 이 새끼야! 네가 두명을 죽였지만 우리는 그렇게 만만하지 않아!"

나는 그 형사가 던진 것이 뭔가 봤어. 그것은 바로 전날 내 방에서 없어진 잔혹사진 자료들이었어. 그 중에서도 KillYou가 보낸 사진들이었어. 나는 더욱 혼란스러워졌어. 도대체 이 사람이 왜 그렇게 훙분하는 것인지, 이 사람이 어떻게 이 사진들을 가지고 있는지, 진짜 형사인지 상황파악을 할 수가 없었어.
그 형사는 총을 들어 정말 나를 쏠 자세를 취하고는 내게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봤어.

"죽기 전에 솔직히 털이봐! 어떻게 우린지 알았어? 엉?"

더 황당해지더라.
그 형사는 흥분해서 얼굴이 거의 시뻘개 졌고, 권총을 든 손이 바들바들 떨리기까지 했어. 언제라도 총알이 튀어나올것같아, 나도 모르게 온몸이 덜덜 떨렸어.

"아까부터 도대......체.....무순.....얘길 하는......거예요....나는......안......죽였.......다니까요!"

그 형사는 권총을 내 목에 더 바싹 들이댔어. 권총의 차가운 감촉은 정말 소름끼치더라. 그러고는 흥분된 목소리로 소리쳤어.

"그러면 이사진들은 어디서 구만 거야! 엉!"

"그것들......은....메일로......받은.....거예요"

"메일? 누구한테서?"

"KillYou라는 사라.......람.....으로부터요......"

KillYou라는 대답을 듣자, 갑자기 그 형사는 내 목에 들이댔던 권총을 빼더니 놀란 표정을 짓더라. 그러고는 확인하듯이 다시 묻는거야.

"KillYou라고 했나?"

"그렇다니까요! KillYou라는 미친놈이 보낸 거예요! 이번 사건의 범인은 아마 KillYou라는 놈일 거예요! 그놈이 보낸 사진대로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있다는 거예요!"

나는 그 형사의 분위기가 좀 바뀐 것을 알아채고 필사적으로 얘기했어. 그런데 내 대답을 들은 그 형사의 표정이 좀 표하게 바뀌었어. 그러더니 정말 의외의 질문을 하는거야.

"그러면....혹시 너 Enjoy Killing과 관계 있어?"

이번에는 내가 황당해지더라. Enjoy Killing이라는 것은 내가 운영하던 그 잔혹사진 사이트 이름이었거든. 그 형사가 그걸 아는 것이 이상했어.
내가 그 사이트를 운영한다고 하자, 그 형사의 표정은 이상하게 일그러졌어. 나는 긴장을 풀지 않은 채 그 형사가 갑자기 왜 그렇게 이상해지는지 살펴봤어. 뭔가를 생각하는 듯한 얼굴이었어. 그러더니 곧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차가운 미소를 띠는 거야!
나는 영문을 알 수가 없었어. 그 형사는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한 펴정으로 다시 한 번 물어봤어.

"야! 너 정말 안 죽였어?"

"그렇다니까요! 나는 단지 그 사진을 받았을 뿐이라니까요!"

내 대답을 듣자, 그 형사는 허탈한 웃음을 터트리는 거야. 그러자 나도 조금 안심이 되더라고. 그 형사가 오해를 푸는것 같아서.... 하지만 그것은 나의 착각일 뿐이었어. 다음 순간 그 형사는 권총을 겨누며 아무 말없이 천천히 내게 다가왔어. 얼굴에는 미소를 띠고.
나는 와락 겁이 났어. 그 형사의 미소 띤 얼굴을 보니, 이상할 정도로 소름이 끼쳤어. 아무말도 하지 않고 웃은 얼굴이었지만 정말 무서웠어. 그가 권총을 겨눈 채 다가오자,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렸어.

"권총.....내려.....놓고.....뭐.....를 원.......하는.....거예요? 말......좀 해봐요......."

내가 겁에 떠는 것을 보자, 그 형사는 싸늘한 미소를 지었어. 얼마나 섬뜩한 미소였는지, 그 웃음을 보니 온몸에 소름이 쫙 끼치더라. 미소 끝에 그 형사는 나지막이 한마디 내뱉었어.

"그랬구나. 재미있는 우연이야. 니가 Enjoy Killing의 운영자라니..."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들을 수 없었어. 아무튼 그 사람의 모습에서 나를 어떻게 할 것같은 생각이 들었어. 하지만 내 가슴을 겨누고 있는 권총 때문에 어떻게 할 도리가 없는 거야.
그 사람은 다시 한 번 권총을 내 머리에 겨누고 기분나쁜 미소를 띤 채 얘기하는 것이었어. 난 그 얘기를 듣고 충격으로 몸을 가눌 수 없었어.

"우리가 그 KillYou였거든. 우리가 보낸 사진을 받은 게 바로 네놈이었구나. 하하!"

그러더니 갑자기 권총으로 내 뒤통수를 내리쳤어. 충격으로 머리가 멍해지더니, 다리의 힘이 풀리며 자리에 쓰러졌어. 희미해지는 의식속에 그 형사의 소름끼치는 웃음 모습이 보였어. 그 순간 그 형사에게서 느꼈던 두려임이 익숙했던 이유를 깨달았어. 그 형사의 얼굴에서 풍기는 음산함은 바로 내가 수없이 많이 봐왔던 사이코 연쇄 살인자들의 미소에서 느꼈던 거야.


그 형사의 기분 나쁜 미소가 시선에서 흐릿해지며, 주위는 어두워졌어. 의식을 잃기 전에 마지막으로 본 것은 그 형사의 입가에 흐르는 이유모를 탐욕스런 미소였어.
갑자기 코에 역한 냄새가 나면서 정신을 차리게 되었어.
눈을 떠보니 내 방이었어.

몸을 움직이려다가. 내 몸에 자유스럽지 못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 주위를 들러보니, 어느새 내가 결박당한 채 의자에 앉아 있는 거야.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두려움이 몰려왔어.
그때 음산한 목소리가 들려왔어.

"정신 차렸나......."

목소리가 들린 쪽을 쳐다보니, 그 형사기 기분나쁜 미소를 띠고 나를 쏘아보고 있었어. 나는 고개를 흔들며 정신을 차리려고 노렦했어. 몸을 뒤틀며 움직이려 했지만, 온몸이 꽁꽁 묶여 고개만 흔들수 있었어.

"무슨 짓이예요!"

내 소리에 형사는 대답 대신 빙그레 웃었어. 그 웃음은 지옥에서 나온 악마의 웃음처럼 음산했어.
그리고 말없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을 들어올렸어. 그 형사의 손에는 날카로운 사냥칼이 들려 있었어.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꼇어. 그리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두려움이 느껴졌어. 짧은 순간, 내가 이제까지 생각없이 봐오고 취급했던 잔혹사진들이 떠올랐어. 산 채로 팔다리가 잘려나가고, 내장이 튀어나오고, 사방으로 피가 튀는 시체들.....

그런 사진들이 현실의 공포로 다가왔어. 움직일 수 없으니, 도와달라는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어. 하지만 덩그러니 메아리만 울릴뿐이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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