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가이야기 4

0225 작성일 07.06.29 14: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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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죽음의 마을(1)

마침내 촬영일이 내일로 다가왔다. 해일은 자신의 아파트 거실에서 이번
촬영에 투입될 스텝과 장비들을 최종적으로 점검해 보았다.

스텝은 조연출, 스크립터, 촬영감독과 보조, 적외선 카메라맨, 스틸 사진
기사 그리고 출연진으로 그간 계속 자문 역할을 해온 한국 기공 협회 회
장 오윤창씨, 무속인 이정란씨등 무속 전문가 2명과 자신을 포함하여 총
9명으로 확정지었다.

촬영 스케쥴은 일단 내일 목촌리 흉가에서 하룻밤을 지내며 밤샘 촬영을
한 다음 모레 서울로 올라와 촬영 테잎을 분석하고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다시 이틀 더 촬영하는 것으로 일정을 잡았다.

하지만 이번 촬영에 임하는 그의 마음가짐은 분명 여느 때와 달랐다. 특
히 이창수의 사망과 김한수의 괴이한 행동에 이은 실종은 그를 알 수 없
는 긴장속으로 몰아넣었다.

잠을 자려고 벌써 2시간째 눈을 붙이고 있었지만 그럴수록 의식은 더욱
또렷해져 엉뚱한 상상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하는 것이었다. 그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방에 불을 밝혔다.

시간은 이미 새벽 3시를 넘어 가고 있었다. 어차피 잠자긴 틀린 것 같았
다. 그는 침대에 걸터앉아 무엇을 하며 이 시간을 보낼 것인가를 궁리했
다. 그러나 잠시후 그를 더욱 궁지로 몰아넣은 것은 허탈한 공허감이었다.

이럴때 따스한 말 한마디 같이 나눌 사람이 곁에 있다면. 그는 비로소 혼
자 산다는 것이 얼마나 적막하고 고독한 일인가를 새삼 실감하고 있었다.

이번 촬영이 끝나면 시골 부모님의 말대로 선이라도 봐서 결혼이라는 것
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때 날카로
운 비수처럼 전화벨이 울렸다.

해일은 전화를 받으려다 잠시 멈칫했다. 아무래도 불길한 예감을 떨쳐 버
릴 수 없었다. 그는 그것이 김한수의 전화일 것이라는 막연한 확신을 가
졌다. 그는 잠시 전화를 노려보다 거칠게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여보세요?"

그러나 뜻밖에도 수화기 건너편에서 들려온 것은 섬뜩한 울음소리였다.
뭔가에 쫓기는 듯 다급하고 날카로운 울음소리.

"여보세요? 한수냐? 너 한수 맞지?"

"살..... 려...... 줘, 제발!"

흐느낌 속에서 간신히 짜내는듯한 목소리. 극도의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
잡힌 그 목소리는 분명 김한수의 목소리였다. 해일의 가슴이 심하게 요동
치기 시작했다.

"한수야, 임마! 거기 어디야? 내가 갈께,거기 어디야?"

대답 대신 흐느낌이 이어지던 수화기 건너편에서 다시 부들 부들 떨리는
김한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난 살고 싶어, 금방 놈들이 쫓아 올거야. 믿을 수가 없어, 세상에 어
떻게..... 어떻게 이런 일이 나한테?"

"누가, 대체 누가 쫓아 온다는 거야?"

"끔찍한 괴물들..... 어디에도 숨을 곳이 없어..... 어디에도..... 나.... 난....

망갈 수 없다구"

"진정하고 차근 차근 말해봐, 알아 듣게"

"해.... 해일아, 그.... 그 곳에 가지마. 흉가에 가선 안돼!"

"한수야! 이러지 말고 우리 만나서 얘기 하자. 도대체 어디 있는거야?"

"와.... 왔어..... 무.... 무서워, 놈들이야! 안개가 보이면..... 알 수 있어. 해일

아..... 난 살고 싶어, 해일아..... 아악!"

"한수야, 무슨 일이야? 한수야! 한수야!"

그러나 김한수는 이미 수화기를 놓쳐버린 모양이었다. 대신 수화기 먼 곳
으로부터 낯설고 끔찍한 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수화기를 든 해일
의 손이 부들 부들 떨리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심장이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김한수의 소름 끼치는 절규가
해일의 의식을 찢으며 날카롭게 파고 들었다.

"더.... 덤벼봐, 이 더러운 새끼들아, 어서..... 어서 덤비란 말얏! 내가 네놈
들을 겁내는 것 같애? 뭘 기다리는 거야? 어서 덤비란...... 악.... 아악!"

수화기를 움켜진채 해일은 고개를 파묻었다. 그의 어깨가 무섭도록 떨리
고 있었다. 해일은 울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울고 있다는 사실조
차 느낄 수 없었다.

수화기 건너편에선 계속해서 처참한 김한수의 비명소리가 들려오고 있었
다. 그리고 얼마 후 수화기에선 더이상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러나 해일은 결코 수화기를 놓을 수 없었다. 그것이 김한수와의 마지막
인연이었다. 김한수의 시체가 발견된 건 다음날 아침이었다.

그의 시체는 두 눈을 부릅뜬 채 도심 뒷골목 쓰레기 더미속에서 처참한
몰골로 발견 되었다. 오열하는 지윤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며 해일은 가
슴팍을 파고드는 서늘한 냉기를 느껴야만 했다.

김한수의 마지막 비명이 지금도 그의 귓전을 맴도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의 비명 너머로 형체조차 알 수 없는 미지의 공포가 조금씩 해일의 심
장을 죄어 오고 있었다.

촬영일은 하루 더 연기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망설이고 있었다. 흉가에
가지 말라던 김한수의 마지막 말이 그의 마음을 붙잡고 놓지 않았던 것이
다.

* * *

혜경의 자취방엔 온갖 잡다한 서류들이 하나 가득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서류들은 제각기 일정한 규칙으로 나열되고 분류되어 있었다.

벌써 새벽 5시가 가까워 오고 있었지만 그녀의 얼굴엔 피로한 기색을 전
혀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녀는 허리를 펴고 밤새 정리한 자신의 노트를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갖가지 숫자와 도표들이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그녀는 그 숫자
와 도표들을 하나 하나 맞추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그녀의 얼굴에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녀가 지금껏 노트에 정리한 것들은 말하자면 목촌리 마을의 내력, 그
중에서도 특히 6. 25 이후 목촌리에 거주했던 주민 신상에 대한 것 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그 자료들은 목촌리 부근 지방의 역사지, 지리지, 각종 신문 자료,
서울에서 선배가 보내준 팩스 자료, 그리고 H군 경찰서 내부적으로 보관
하고 있던 비공개 문서등 다양한 자료들을 종합적으로 정리한 것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전쟁이 끝난 바로 그 해, 목촌리에선 전쟁때 보다 더 많은
주민들이 죽어 나갔다. 전쟁때 빨갱이를 도왔거나 간첩 활동을 한 혐의가
있는 주민들이 대거 처형을 당했기 때문이다.

당시 목촌리는 북측과 남측이 서로 밀고 밀리는 진퇴를 거듭하던 전쟁 기
간중 인민군과 국군이 번갈아 주둔하던 전쟁의 요충지 였다.

많은 주민들이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들의 사상을 수시로 바꿨을 것
이라는 추측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휴전이
체결되면서 그들의 위험스런 곡예는 종지부를 찍어야만 했다.

그러자 정부는 사상범 색출 작전에 박차를 가했고 목촌리 주민중 사상범
이라는 꼬리표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자발적으로 조직된 구국 결사대는 그러한 사상범
색출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들은 주로 전쟁중 인민군에 의해 공개 처형 되었던 국군과 경찰의 일부
과격한 유가족들로 구성된 민간 사조직이었다. 휴전은 되었지만 전쟁은
끝나지 않은 셈이었다.

여전히 전국의 깊은 산골에는 공비들이 은신하고 있었고 주민중에도 상당
수가 간첩활동 혐의가 짙었다.

전쟁이 끝난 직후 미처 정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국군과 경찰의 부족한
인력들을 지원한다는 미명 아래 그들은 사냥개와 죽창을앞세우고 직접
많은 사상범들과 공비를 색출하였고 때로는 현장에서 처형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얼마나 합리적인 조사와 집행이 이루어 졌는지에 대
해서는 상당한 의문점이 제기되었다.

결국 구국 결사대는 얼마 지나지 않아 강제 해산되었고 한동안 각 지방관
청에는 그들의 불법적 조사과정과 야만적 행위에 대한 고소와 탄원이 끊
이지 않았다.

그러나 정부에선 그러한 고소, 탄원에 대해 단 한번도 실질적인 조사를
벌인 적이 없었다. 당시 목촌리는 구국 결사대에 의한 피해가 가장 심한
지역중 하나였다.

전쟁전 200여 가구에 달하던 목촌리의 주민수가 전쟁후 불과 20여 가구의
작은 산골 마을로 전락한 가장 큰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점은 구국 결사대 해산 결정이 내려지기 직전인
1954년 3월 목촌리를 담당했던 H군 지부 구국 결사대 삼십여명이 갑자기
실종된 사건이었다.

4.. 죽음의 마을(2)

한꺼번에 사람 십여명이 감쪽같이 사라진 이상한 사건. 당시 정부에서는
조사단을 구성하여 약 1년여에 걸쳐 그들의 실종에 대한 수사를 벌였지만
전혀 단서조차 잡지 못한 채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이상의 자료에서 혜경의 눈길을 끈 것은 바로 구국 결사대가 사상범과 공
비를 색출할때 주로 사냥개와 죽창을 사용했다는 점이었다.

사냥개와 죽창이라면 이번 목촌리 살인사건 피살자들의 사인을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충분한 자료가 될 수 있었다.

나아가 혜경은 어제 시경 자료실 선배가 보내준 팩스 자료들에서 더욱 결
정적인 내용을 접할 수 있었다.

선배가 보내준 팩스 자료에는 지금까지 일어난 범죄들을 유형별로 분류한
방대한 자료중에서 이번 목촌리 살인사건처럼 짐승의 습격, 죽창에 의한
피살이라는 공통점을 지닌 사건들만 따로 분류한 것들이었다.

혜경의 예상대로 짐승의 습격, 죽창에 의한 피살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동일한 유형의 사건이 1955년 9월에도 일어났다.

놀랍게도 사건 발생 장소가 목촌리 흉가 부근이었으며 피살자 역시 이번
살인사건의 피살자와 같은 바로 B일보 신문 기자 2명 이었다.흉가와 신
문기자. 42년이란 세월이 지난 후에 발생한 동일한 유형의 사건.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까? 혜경은 다시 자료들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두번
째 사건이 발생한 것은 1959년 11월의 일이었다. 그러나 혜경은 적잖은
실망을 했다.

사건 발생 장소도 흉가가 아닌 서울의 평범한 주택가 였으며 피살자 역시
신문기자가 아니었다. 피살자는 모두 4명이었다. 그들은 모두 가족이었다.

서울 한복판 주택가에서 짐승의 습격과 죽창을 이용한 살인에 의해 한 가
족이 한꺼번에 살해되었다는 것이 그녀로선 도저히 믿겨지지 않았다. 그
러나 그러한 믿기지 않는 사건은 이후에도 계속해서 벌어졌다.

세번째 사건 1969년 6월, 사건 발생 장소 충남, 피살자 2명(가족). 1978년
1월, 서울, 피살자 1명, 직업 무, 1981년 11월, 서울, 피살자 3명(가족), 그
리고 1997년 10월, 이번 목촌리 사건. 총 6건의 사건에 사망자 15명.

다시 커다란 벽이 그녀의 앞을 가로 막고 나타났다. 첫번째와 마지막 사
건은 마치 동일인의 범행인 듯 모든 정황들이 완벽하게 일치하고 있었다.
단지 두 사건 사이엔 42년이란 긴 세월만이 놓여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나머지 4건의 사건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사건 발생 장소
가 목촌리도 아닐뿐더러 그들의 직업이 신문기자도 아니었다.

다만 나머지 사건들의 공통점이라면 1건을 제외하곤 가족들이 한꺼번에
살해 당했다는 점이었다. 혜경이 밝혀낸 사실은 그것들이 전부였다.

아무리 자료들을 살펴보고 머리를 쥐어짜도 그녀는 더이상 한 발자욱도
앞으로 나아가질 못했다. 갑자기 망망대해에 떠 있는듯 한 막막함이 그녀
의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의외로 쉽게 풀어질 듯 하던 수수께끼가 완고한 벽에 부딪힌 것이다. 혜
경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방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갔다. 칠흙같은 어둠
속에서 차가운 새벽 공기가 비수처럼 파고 들었다.

그녀는 마당에 내려서서 최대한 숨을 깊이 마셨다가 길게 내쉬었다. 같은
동작을 그녀는 여러번 되풀이 했다. 그러자 답답했던 가슴이 조금 뚫리는
것 같았고 추위도 한결 견딜만 했다.

그녀는 복잡한 머릿속도 깨끗이 털어 버리려고 마당에 매달아 놓은 샌드
백을 몇 번 두드려 보았다. 하지만 마음과는 달리 머릿속은 조금도 맑아
지지 않았다.

여전히 그녀의 머릿속에는 누가? 어떻게? 무엇 때문에?라는 의문 부호들
이 신기루처럼 둥둥 떠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 * *

해일을 비롯한 스텝들을 태운 9인승 봉고가 마침내 비포장 길로 들어섰
다. 한국 기공 협회 회장 오윤창과 무속인 이정란은 승용차로 뒤따르고
있었다.

저녁 나절 부터 많은 비가 이 곳 강원도 지방에 내릴 것이라는 일기예보
때문에 촬영을 늦추자는 의견이 스텝들 사이에 있었지만 해일의 강력한
주장과 귀신을 만나려면 비가 오는 습기 찬 날이 오히려 제격이라는 무속
인 이정란의 의견에 따라 촬영을 강행하기로 한 것이다.

일행들이 험한 비포장 길을 한시간 남짓 달려 목촌리 입구에 닿았을때는
이미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불과 오후 4시밖에 되지 않았
는데 주위엔 어느새  어둠이 밀려 들었다.

중간에 큰 비를 만나지 않으려면 서둘러야 했다. 일행들은 재빠른 손놀림
으로 장비를 챙겨들고 울창한 숲속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숲은 생각보다
훨씬 깊고 어두웠다.

해일은 스텝들에게 김한수나 이창수의 죽음에 대해 일체 언급하지 않았
다. 자칫 괜한 혼란을 야기하거나 공연한 선입견으로 객관성을 잃을지 모
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작 해일 자신은 김한수나 이창수의 죽음에 대한 강한 의혹에 사
로잡혀 있었다. 해일이 하루라도 빨리 촬영을 강행하려 한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

언론뿐만 아니라 경찰까지도 그들의 죽음을 단순한 살인사건으로 보지 않
았다. 도심 한복판에서 짐승의 습격을 받았다는 점이나 그토록 처참한 죽
음에 이르기까지 목격자 한사람 없었다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해일은 그들의 죽음을 설명해 줄 실마리가 바로 흉가에 있을 것이라는 믿
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해일의 마음을 강하게 잡아
끌었던 것은 흉가에 가지 말라던 김한수의 마지막 충고였다.

"김감독님! 오늘은 웬일로 그렇게 조용 하세요? 오늘 무슨 기분 나쁜 일
이라도 있었어요?"

조연출 이영우의 말이었다. 평소 같으면 벌써 한창 너스레를 떨어가며 스
텝들을 웃음 바다로 만들었을 김감독이 웬일인지 말 한마디 없이 묵묵히
걷기만 하자 이영우는 맥이 빠지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김감독은 대답 대신 여전히 앞만 보고 묵묵히 걸을 따름이었다.
이창수의 죽음에 대해 알고난 후 그는 이번 촬영길이 영 마음에 내키지
않는 모양이었다.

"오늘은 정말 귀신 한번 만나 봤으면 좋겠다. 이왕이면 근사한 총각 귀신
으로....."

프리랜서 사진기사인 강은영이었다. 그녀는 일행의 맨 뒤에서 적외선 카
메라맨 배영환과 나란히 걷고 있었다. 그녀의 화사한 얼굴이나 밝고 세련
된 옷차림은 다른 스텝들의 분위기와는 확연하게 달랐다.

특히 그녀의 바로 곁에서 걷고 있는 배영환과는 마치 한 50년전과 50년후
의 사람이 동시대에 나란히 걷고 있는 것처럼 우스꽝스런 분위기를 자아
내고 있었다. 그녀의 말에 배영환이 그녀를 돌아보며 빈정거리듯 말했다.

"강은영, 너 그러다 진짜 귀신 만나면 제일 먼저 도망가는거 아냐?"

배영환의말에 강은영이 눈을 흘겼다.

"걱정마세요, 저는 총각이라면 귀신이라도 환장하는 여자니까...."

"여자가 말투가 그게 뭐야? 정숙하지 못하게, 총각이라면 환장 하다니....
쯧쯧.... 누가 데려갈지 걱정된다. 걱정 돼!"

"나참 기가 막혀! 절 누가 데려가든 배선배가 왜 걱정을 해요? 배선배보
고 저 데려가 달란 소리 하지 않을테니 걱정말아요"

"걱정은 누가 한다고 그래? 그냥 한심해서 그래, 한심해서.... 도대체 요즘
여자들은 창피한걸 모른다니까!"

"배선배!"

강은영이 날카로운 소프라노 목소리로 소릴 질렀다.

"관두자, 관둬! 내가 참고 말지...."

최근 두사람은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거렸다. 그리고 먼저 시비를 거는 쪽
은 번번히 배영환이었다. 이후로도 내내 두사람은 말다툼을 벌였지만 두
사람 모두 따로 떨어져 걷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약 30여분 숲으로 들어가자 빗줄기는 눈에 뛸 만큼 굵어져 있었다. 울창
한 숲도 빗줄기를 막는데는 한계가 있었다. 부랴 부랴 스텝들이 비닐을
꺼내 장비를 싸느라 한바탕 부산을 떨었다.

비 때문에 날씨도 제법 쌀쌀해 졌고 질퍽거리는 산길은 처음부터 이번 촬
영이 그리 순탄치 않을 것 임을 예고하는 것만 같아해일의 마음은 여간
무거운 것이 아니었다.

스텝들이 흉가에 도착한 것은 오후 5시 20분경 이었다. 근처에 마을이 있
어서 주민들 인터뷰를 따려고 했지만 어찌된 셈인지 집은 하나같이 비어
있었다.

마침내 테잎으로만 보던 흉가가 눈앞에 나타났을때 해일의 가슴은 까닭없
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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