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가이야기 2-(2)

0225 작성일 07.06.28 15: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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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귀신이 찍힌 테잎(2)

사건 현장은 경찰서에서도 1시간이상 떨어져 있었다. 목촌리 321번지에서
332번지까지가 사건 현장 부근이었고 332번지가 바로 그 흉가라 불리는
기와집이었다.

번지수로 보면 총 13가구가 살고 있어야 하지만 그 곳에 실제로 사람이
거주하는 가구는 단 세가구 뿐이었다. 이미 사건현장에서 그들을 모두 보
긴 했지만 그녀가 직접 얘기를 나눠볼 기회는 없었다.

그들에 대한 조사는 구반장이 했었다. 그녀는 이미 그 세가구에 사는 주
민들의 인적사항들을 파악하고 있었다.

어느 산골에서나 그렇듯이 그들 중 오십대 이하의 젊은 사람은 단 한 사
람도 없었다. 그녀가 주민들을 탐문 수사해야 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한가
지였다.

사망자들의 시신이나 정황으로 미루어 상당한 반항의 흔적이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불과 500여미터 떨어진 마을에서 목격자나 이상한 소리조차 들
은 사람이 전혀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사건 현장은 강원도에서도 찾아 보기 힘들만큼 산골이었기 때문에 한번
걸음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낮이라 해도 사람 구경조차 할 수 없
는 울창한 숲을 30여분을 들어가야 마을에 닿을 수 있었다.

그녀가 만약 이곳 출신이 아니었다면 결코 엄두조차 못 낼 일이었다. 그
녀가 마을에 도착한 것은 오후 4시를 조금 넘겨서였다. 마을이라곤 하지
만 사람이 살지 않는 보기 흉한 폐가가 대부분이었다.

마을 어느 구석에도 사람이 산다고 믿겨질만한 생기같은 것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죽은 마을. 그 곳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그녀는 생각
했다.

321번지. 김명신(남자, 57세). 그녀는 자신이 적어 온 자료를 다시 읽고서
집으로 들어 섰지만 아무도 없었다. 주민 모두가 약초를 캐서 생계를 유
지하기 때문에 낮엔 집에 없는 것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325번지. 321번지와는 약 50여미터 떨어져 있었다. 한만수(남자, 65세), 한
정우(남자, 72세). 그들은 형제였다. 역시 그들도 집에 없었다. 남은 한 집
은 329번지였다.

사건 현장과 가장 가까이 위치한 집이었다. 권향미(여자, 92세), 김운기(남
자, 69세). 그들은 모자였다. 집의 뒷쪽으론 고개가 있었다. 그 고개만 넘
으면 기와집이 있는 사건 현장이었다.

마당에는 각종 약초를 다듬은 듯 한 흔적과 뗄 나무들이 한켠에 쌓여 있
었다. 그녀는 마당으로 들어섰다.

"실례합니다. 계세요? 아무도 안 계세요?"

마지막 집마저 아무도 없다면 어려운 걸음을 헛탕칠 것 같아 내심 초조하
던 혜경이었다. 대답이 없어 그녀가 조심스럽게 방문 앞으로 다가가 방문
손잡이를 잡으려는 찰나 방문이 왈칵 열렸다.

그녀는 얼떨결에 두어걸음 물러섰다. 방에서 고개를 내민 노인이 권향미
라는 것을 그녀는 금새 짐작할 수 있었다.

팔다리가 꼬챙이처럼 앙상한 뼈만 남은 노인. 눈밑에는 이미 죽음의 그림
자가 완연한 노인이 쿨럭거리며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할머니. 아무도 안 계신줄 알고..... 저 아시죠? 몇 일전 고개
넘어 기와집에서 보셨잖아요. 전 횡성에서 온 경찰이예요"

그러나 노인은 아무런 대꾸도 없이 무서운 눈으로 그녀를 노려볼 뿐이었
다. 그녀는 혹시 할머니가 귀가 들리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두어 발자욱 다가가서 좀 더 큰소리로 소리치려할 때였다. 갑자기
노인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벽력같은 소리를 질렀다.

"어딜 다가와!"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다시 두어 발자욱 물러났다. 노인은 더욱 적대적인
눈길로 그녀를 노려 보았다.

"할머니, 뭔가 오해를 하셨나본데 전 수상한 사람이 아니라 이번 살인사
건 조사차 나온 경찰이예요.제 말 잘 들리세요?"

"그럼, 내가 귀머거린줄 알았어?"

"그런 뜻이 아니구요. 그럼, 제가 그냥 여기 서서 몇가지만 물어 볼께요.
아시는대로 대답을 좀 해주세요"

"난 아무것도 몰라, 아무것도 모른다구!"

"할머니 그러지 마시고 협조를 좀....."

그때였다. 전혀 예측하지 못한 일이 벌어진건. 갑자기 노인이 소리를 지르
면서 방안의 물건들을 닥치는대로 집어 던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모른다고 했잖아, 어서 꺼져버려, 망할 것! 괜히 이 근처에서 얼쩡거리다
간 너도 무서운 일을 당할 줄 알아. 어서 꺼져!"

말을 마친 노인은 쾅 소리가 나도록 문을 닫아 버렸다. 혜경으로선 여간
남감한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노인을 상대로 더이상 뭔가를 물어 본
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녀는 이왕 온 김에 현장을 한번 더 둘러 봐야 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
녀는 천천히 집 뒷쪽으로 난 고갯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양 옆으로 수 백년은 된 듯한 소나무들이 빽빽히 들어서 있었고 가끔씩
들려오는 산새 소리들은 평화롭게만 여겨졌다. 그녀가 고개 정상에 닿았
을때 아래로 기와집이 눈에 들어왔다.

332번지. 그 집의 소유는 김학봉(59세, 남자)이라는 사람의 소유로 되어
있었다. 집을 비운지가 얼마나 되었는진 알 수 없었지만 최소한 수십년
이상을 비워둔 것처럼 집은 앙상한 뼈대만 흉물스럽게 남아 있었다.

마을에서 현장까지 그녀가 재어본 시간으로는 느린 걸음으로도 6, 7분이
면 충분이 닿을만한 거리였다. 집앞 마당엔 무수한 이름모를 들꽃과 잡초
들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몇일이 지나긴 했지만 아직도 시체가 놓여 있던 자리엔 핏빛이 남아 있어
당시의 참혹하던 광경이 되살아 나는 듯 해서 그녀는 약간의 섬뜩함을 느
꼈다.

그녀는 천천히 집 주위를 돌면서 사망자들의 시신이 놓여 있던 곳을 둘러
보았다. 국과수에서 보내온 피해자들의 사망 추정 시간은 새벽 5시경. 그
녀는 다시 집의 앞마당으로 돌아와 집앞에 주저앉듯 앉았다.

그리곤 집을 올려 다 보았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바로 그 집이 그녀
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바람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정적. 순간 그녀는 등
골이 서늘해지는 냉기를 느꼈다.

집은 이미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 그녀를 노려 보고 있었다. 왼편
부엌의 반쯤 떨어져 나간 문짝이 이따금씩 기분나쁜 소리를 내고 있었다.
도대체 그날밤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그녀가 눈을 감자 참혹하게 죽은 시신들의 끔직한 모습들이 떠올랐다. 그
공포에 질린 눈동자들. 그들이 질러대던 끔찍한 비명소리가 금방이라도
들려올 것 같았다.

살려 달라는 그들의 찢어지는듯한 비명소리가. 그때 누군가가 그녀의 어
깨를 꽉 잡았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악'하는 비명을 지르며 손을 뿌리
쳤다.

그녀가 눈을 뜨고 올려다 본 곳엔 어디선가 본 듯한 한 사내가 서 있었
다. 왼쪽 뺨엔 칼자욱이 선명하고 눈자위는 움푹하게 들어가 마치 유령을
보는 듯한 느낌. 한만수. 325번지에 사는 형제중 동생되는 자였다.

그는 어깨에 망을 메고 있었고 그 망 사이로 삐죽 삐죽 약초처럼 보이는
풀뿌리들이 삐져 나와 있었다. 그의 입에서 쇳소리가 나왔다.

"여기서 뭐하는 거야?"

그리고 그의 눈동자는 시종 불안한듯 좌우로 굴러 다녔다.

"한만수씨, 맞죠?"

그녀는 아직도 떨리는 가슴을 가까스로 진정시키며 간신히 물었다. 그는
대꾸없이 여전히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저 알아 보시겠죠? 이번 살인사건 때문에 수사차 나왔습니다. 댁에 들렸
는데 안 계시더군요"

자신의 집에 들렸다는 혜경의 말에 사내는 다소 놀라는 기색이었다.

"그 날밤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하셨다고 했는데 사실인가요?"

"그 일이라면 난 더이상 할 말이 없어. 여긴 너같은 계집이 올 데가 못
돼. 쓸데없는 짓 말고 어서 돌아가!"

사내는 마치 그녀를 동네 여자애 다루듯 거칠게 말했다.

"이봐요, 한만수씨! 전 지금 공무를 수행하는 형삽니다. 당신은 제게 협조
를 해야 할 의무가 있어요"

"의무? 난 그런거 모르니까 잡아가던지 말던지 마음대로 해! 그리고 경고
하지만 이곳에 함부로 오지 않는게 좋을거야"

사내는 마치 위협하듯 재빠르게 말하곤 무엇에 쫓기듯 동을 돌려 고개를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봐요, 한만수씨!"

그녀가 소리쳐 불러 보았지만 그는 더이상 뒤돌아 보지 않았다. 사내의
표정은 뭔가에 잔뜩 겁을 먹고 있는듯한 모습이었다.

아까 그녀가 만났던 권향미 할머니, 그리고 이번엔 한만수라는 사내. 그녀
는 그들이 분명 뭔가를 알고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이 쥐죽은듯 고요한 산골에서 그 끔찍한 비명소리를 한 사람도 듣
지 못했다는 것은 그녀로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그리고 또 한가지, 그녀가 만난 두사람 모두에게서 그녀는 죽음의 냄새를
맡았다. 두사람과 얘기하는 동안 그녀의 뇌리에는 이상하게도 줄곧 죽음
이라는 단어가 맴돌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그들만이 아니었다. 그녀가 죽음의 냄새를 맡은 것은 이 기와집을
비롯한 마을 전체로 부터 였다. 그녀는 다시 한번 서늘한 냉기에 몸을 떨
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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