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X-FILE 1987 대한항공 KAL 858 폭파사건

bangman 작성일 07.11.13 16:4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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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개요, 쟁점

승객과 승무원 115명을 태우고 이라크 바그다드를 출발해 서울로 향하던 대한항공(kal) 858기가 1987년 11월 29일 미얀마 안다만상공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당시 정부는 이 사건을 북한의 지령을 받은 특수 공작원 김현희와 공범 김승일에 의한 `폭탄 테러'로 kal 858기가 공중 폭파된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의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바그다드에서 탑승한 김현희 등이 기내에 시한장치를 한 `라디오 폭탄'을 두고아부다비에서 내려 858기가 폭파, 탑승자 115명 전원이 사망했다는 것이다.

당시 발표에 따르면 아부다비에서 내려 바레인으로 도주한 김승일은 위조여권으로 로마를 거쳐 오스트리아 빈으로 달아나려다 바레인 공항에서 적발돼 체포직전 독약이 든 앰풀을 깨물어 자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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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희도 음독자살을 시도했지만 실패(이후 위검사에서 어떤한 독극물도 나오지 않았다)하고 현지 경찰에 체포돼 같은 해 12월 15일 국내로 압송됐다.

안기부의 강도 높은 수사가 진행된지 한 달 만인 88년 1월 중순 김현희는 tv에나타나 "북한의 지령을 받고 88올림픽을 방해하고 남한내 계급투쟁을 촉발할 목적으로 kal 858기를 폭파했다"고 주장했다.

사건 발생 3년만인 90년 3월 27일 대법원은 사형을 선고했지만 115명의 목숨을앗아간 김현희는 `의아스럽게도' 대법원 판결 보름만에 특별사면으로 풀려난다 (전두환은 특별사면을 너무 사랑하는듯...).

"사건이 날조됐다는 사실을 반박할 유일한 생존자인 만큼 살려두는 것이 국익을위해 유익하다"는 이유에서다.

`kal기 폭파사건'을 둘러싼 일부 의혹에도 불구, 유가족들은 처음에는 정부의발표를 신뢰한 채 858기에 탑승했던 가족들의 사망을 인정하고 그에 따른 보상에 합의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전 감사원 직원이었던 현준희씨가 모 잡지에 `대한항공 폭파사건의 12가지 의혹'이란 글을 기고하면서 의혹제기와 함께 진상규명 요구에 본격적인 불을 댕겼다.

그는 사고기 잔해에서 화약 잔재 등 폭발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고 국가정보원이 관련 증거를 400여점이나 보관하고 있으면서도 사고기 잔해는 행방조차 묘연하다며 정부 발표에 강한 의혹을 제기했다.

유가족들도 "유품하나, 시신 한구도 발견되지 않은 항공기 사고는 역사상 단 한건도 없었고 모든 수사결과는 김현희의 자백에 의해 이뤄졌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또 사고 원인을 밝혀줄 결정적 단서인 블랙박스가 발견되지 않은 점, 폭발지점과 잔해발견 지점이 200㎞ 이상 떨어져 있고, 김현희가 어릴적 북한에서 찍었다고공개한 사진에 나온 중학생의 귀 모양이 김씨의 실제 귀 모양과 차이가 있는 점 등에 대한 의혹도 제기됐다(김현희는 처음 안기부가 입수한 자신의 중학교때 사진을 알아*도 못했다).

김현희가 쓴 자술서에 `경찰관' 등 북한에서 사용하지 않는 용어가 등장하고 사고 발생 하루만에 한국 정부가 김현희와 김승일을 범인으로 지목한 점(미국 cia도 놀라 자빠질 수사력) 등도 풀리지않는 의혹으로 거론됐다.

이에 가족들은 자신들은 `유가족'이 아닌 `실종자 가족'이라며 사건 발생 18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당시 수사자료 공개를 요청하는 행정소송을 청구하는 등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수사진은 "김현희의 진술로 일본어 교사였던 일본인 이은혜 납치사건이 확인됐고 북일간에 논란이 되고 있는 납북자 문제도 불거지게 됐다.

사건 조작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조작설을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한편 김현희는 지난해 국회의 kal기 폭파사건 입법추진 및 올해 국정원 과거사위원회의 조사 움직임 등으로 부담을 느껴 가족(김현희는 전 국정원 직원과 결혼했음-감시인가?)과 함께 외부출입을 삼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관계 당국 관계자는 "김씨 가족이 얼마전까지 서울 안전가옥과 시댁이 있는 경북 일원을 오갔으나 최근엔 외부 노출을 피하기 위해 일절 바깥 출입을 삼가고 있는것으로 알고 있다"며 "경북에서도 단일 장소가 아닌 여러 곳을 전전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국정원은 이날 김현희 소재와 관련, "소재는 모르고 있고 관리도 하지 않고 있다"면서도 "필요하면 수소문해 위치를 파악, 필요한 진술에 응할 수 있도록 (과거사 진실위원회에) 협조해 나갈 계획"이라고 했다(많은 의문들 결국 밝히지 않았음).

과거사 진실위원회는  당시 전두환 정부나 안기부가 이 사건에 개입됐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지만 당시 전두환 대통령 정권이 집권당의 노태우 후보를 대통령(그때 노태우가 당선 안됐으면 백담사가서 몇년 쉬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을 텐데)에 당선시키기 위해 정략적으로 이용했음을 확인했습니다

진실위원회는 당시 안기부가 국민들의 대북 경각심과 안보 의식을 고취함으로써 정권에 유리한 대선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계획 문건을 작성함과 동시에 투표 전날인 12월 15일까지 김현희를 국내로 송환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그해 폭파범 인수 시점에 맞춰 전국적인 집회를 개최하고 언론 매체를 총동원해 홍보하기 위해 ‘kal기 폭파사건 관련 북괴 만행 규탄 궐기대회 개최 계획’ 문건도 만들었다고 밝혔습니다.

 

과거 김현희씨의 체포, 수사, 재판, 사면과 관련해 일정한 역할을 맡았던 인물들이 그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그 중 핵심적으로 거론되고 있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다.


● 전두환

kal858기 사건이 발생했던 1987년 당시 최고권력자. 그 해 4월 13일 호헌발표를 했다가 직선제를 
요구하는 국민적 저항에 부닥치자 한때 계엄령 선포를 고려하는 등 배수진을 치다가 미국의 압력 등에 
밀려 결국은 자신의 의지를 꺾어야 했다. 민주화 열기를 등에 업은 민간정부에 권력을 넘겨줄 경우 
자칫하면 목숨까지 잃을 수 있다는 위기감에 빠져 있었다. 공교롭게도 정권 마지막 해인 1987년 
초에는 수지김 사건이, 말에는 김현희 사건이 발생했다.

● 노태우
kal858기 사건이 발생한 덕분에 손쉽게 대통령에 당선된 인물. 바레인에서 생포된 
김현희가 절묘하게도 투표일 하루 전날인 1987년 12월 15일 김포공항을 통해 압송되면서 대통령 
선거는 이미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다음날 모든 신문은 큼지막한 활자로 
’노태우 대통령 당선’ 소식을 전하기에 바빴다. 대통령 당선의 ’일등공신’에 대한 특별배려(?)였을까. 
노태우 정부는 1990년 4월 12일 사형수 김현희에게 사형선고 이후 보름뒤에 특별사면이라는 
선물을 안겨줬다.

● 정형근
자신이 김현희 수사를 담당, 관리했다고 자처하는 인물. "kal기 사건 조작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친북 주사파"라는 발언 때문에 kal기 사건 희생자의 가족들에게 가장 큰 원한을 사고 있다. 
지난 7월 9일에는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고영구 국정원장에게 소설 <배후>가 kal기 사건 조작설을 
제기하는 것에 대한 대응책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 소설의 작가인 서현우씨는 이 소식을 듣고 7월 22일 
각 언론사에 공개질의서와 보도자료를 돌렸으나, 통일뉴스를 제외하고 어떤 언론도 다루어주지 않았다.

● 이회창
대법원이 1990년 3월 27일 . 당시 
재판에는 배석, 이회창, 김상원, 김주한 등 4명의 대법관이 참여했다. 앞에서 설명한 김현희에게 
최종적으로 사형선고를 확정할 당시 4명의 대법관 중 한 명.
앞에서 설명한 대로 이 사건의 수사는 거의 전적으로 김현희의 자백과 진술에 의존한 것이다. 
실제로 비행기 폭파로 희생됐다는 피해자들의 사체나 유품 하나 발견되지 않은 상황에서 
재판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선진국의 법정이었다면 피고인의 자백만으로 이 엄청난 사건의 전모를 
그대로 사실로 받아들이고 사형선고를 내리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 최병렬
노태우 정부의 김현희 특별사면을 발표했던 당사자. 노태우 정부의 공보처장관으로 
정부 대변인을 겸직했던 최병렬 현 한나라당 대표는 사형선고가 내려진 지 보름밖에 지나지 않은 
1990년 4월 12일 김현희에 대한  특별사면을 발표하며 "김양이 자신의 죄를 깊이 뉘우치고 있고, 
조국의 평화적 통일대열에 동참시키는 사면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 바 있다. 
당시 그는 "김현희는 이 범행사건에 투입된 한낱 꼭두각시에 불과할 뿐 실질적인 주범은 김일성 부자"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115명의 대한민국 국민을 죽였다고 자백한 김현희에겐 관용을 베풀자고 호소했던 
최 대표였지만 대한민국 국민을 단 한 명도 죽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죄를 깊이 뉘우친다’고 
고백한 송두율 교수에 대해서는 절대 용서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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