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전의 일입니다. 저희집은 부업으로 시골에서 밤나무와 밭을 조금 일구고 있습니다.
김장을 마지막으로 모든 농사일이 끝나면 다음해 봄이 될때까지 시골집은 가지않기때문에
마지막날은 시골집의 보일러와 수도 등등이 동파되지 않게 방한대책을 하고 집에 옵니다.
그런데 그날은 제가 깜빡하고 경운기의 냉각수를 배출하지 않고 그냥 집에 온겁니다. 오랜된 경운기라
부동액을 쓰지 않고 지하수를 사용하는데 날씨가 추워지면 동파될것을 걱정하신 부모님이 시골집에 다녀오라고 했습니다.
그때 시간이 저녁 9시쯤 되었는데 시골집이 차타고 20분정도만 가면 되었기에 금방 갔다와서 드라마를 보기로 했습니다.
시골집에 도착하니 비도 조금씩 오고 어두컴컴한것이 낮의 느낌이랑은 너무 틀렸습니다.
시골의 구석진곳에 사람이 살지않은 외딴집...다른사람이 보면 흉가지요.
멀리 떨어진곳에 가로등불빛만이 희미하게 보였습니다. 저는 애써 무서운 기분을 지우고 경운기로 가서
물을 빼기 위해 핸드폰 플래쉬로 비쳐가며 배수밸브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집옆에 나있는 오솔길에
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이 시간에 여길 찾아올 사람이 없는데...라는 생각이 들고, 순간 번뜩하는게 추수가 끝난 시
골을 돌아다니며 농작물을 훔쳐가는 도둑이 떠올랐습니다.
군대도 갔다오고 혈기왕성한 20대라지만 솔직히 무서웠습니다.
전 경운기 뒤에 숨어서 숨도 제대로 못쉬고 그쪽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머리속에서는 이 난국을 어떻게 해쳐나가야할지 고
민을 했습니다. 이대로 튈까.. 아니면 도둑하고 한판 붙을까.. 아니야..그냥 조용히 짱박혀 있는게 낳을지도...
마음은 도망가는 쪽으로 기울고 있었지만 그럴수 없는게 마당에 떡하니 서있는 차가 문제였습니다.
마당이 좁아 차를 돌려서 나갈려면 몇번을 후진해야 되는데...시간이 부족하고... 그냥 도망가자니 잡힐것 같고.
그러는 사이 희끄므레 한것이 집쪽으로 다가오고있었습니다. 한사람이였습니다. 등치는 매우 왜소해보이고..무엇을 찾는
듯 두리번거리고 있었습니다. 도둑은 곳 제 차를 발견하고 차쪽으로 걸어왔습니다.
그러더니 창문에 얼굴을 대고 안을 쳐다보는겁니다. 뭔가 이상했습니다. 도둑의 행동으로는 보이질 않았습니다.
한참을 들여다보던 도둑이 뒤돌아서는데...맙소사 웬 할머니인것입니다. 너무 놀라서 주저 앉았는데
그소릴 듣고 제쪽으로 다가오더군요. 그 짧은 시간동안 너무나 무서웠습니다. 눈을 질끈 감았다 떠도 계속 다가오는겁니다.
아주 미쳐버리겠더군요. 점점 다가오는 모습을 보니 옷에 진흙이 잔뜩 묻어있고 머리는 헝클어져있고....
이상황이 현실이라는게 너무나 믿겨지지 않았습니다.
제 앞에선 할머니는 알수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손을 내밀었습니다.
"내가 주웠어. 맛있는거야. 어서 받아."
저는 얼떨결에 손을 내밀었고 제손에는 조그만 돌과 밤이 쥐어졌습니다.
할머니는 밤을 쥐어주고는 다시 마을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분명 사람이였습니다.
그것도 어디서 본듯한... 그분은 이 마을에 사시는 치매에 걸린 할머니였습니다.
낮에도 가끔 밤나무산에 밤을 주으러 오시곤 했었는데 이 어두운 밤에 날씨도 춥고 비도 오는데
헤메고 계신걸 보니 가슴이 너무 아프더군요. 할머니를 집에 모셔다 드리고 오는데
참 스펙타클한 경험을 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처음엔 액션스릴러 중반엔 공포, 마지막엔 휴먼드라마.ㅋ
하루빨리 치매 치료제가 나와서 가슴아파하는 가족들이 없었으면 좋겠네요.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