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 라마는 라마교 4대 종파의 하나인 게룩파(Dge-lugs-pa:14세기말에 계율이 엄격한 카담파[敎誡派]의 일원인
'총카파'가 창립한 종파로 '미덕의 본보기'를 뜻하며 엄격한 금욕적 계율을 가진것이 특징입니다)
의 종주이며 티벳의 국왕 이기도 합니다..
11세기에 총카파[宗喀巴]는 반야중관(般若中觀)사상을 기초로 하여 게륵파와 밀교를 융화시킴으로써
티베트 불교의 기초를 확립했는데
게륵파는 특이하게 문서로만 내려오는 전생활불제도(轉生活佛制度)를 받아들이고,
이것을 전대 법왕이 환생을 한다는
달라이 라마 라는 독특한 제도로 결부시켜 명실공히 티베트 사회의 최대 불교종파가 되죠..
달라이는 몽골어로 바다를 뜻하며, 라마는 덕이 높은 스승을 가리킵니다.
티베트인은 자신의 국가를 관음(觀音)의 정토(淨土)라 생각하며, 그 통치자인 달라이라마를 관음(觀音)의 화신으로
생각 합니다..
최초의 달라이 라마는 '총카파'의 제자인 '걀와 겐둔 둡(Gyalwa Gendun Drub, 1391∼1474-본명은 텐진감쵸)'
로 시작 됬으며
작게는 한 종파의 수장이자 크게는 국왕으로 많은 업적을 남기며 환생이라는 독톡한 계승 의식을
자금까지 가지고 있죠..
전대 달라이 라마가 입적을 하면 라마승들은 그의 환생체를 찾아 다니는데 14대 달라이 라마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제13대 달라이 라마는 1933년 58세의 나이로 입적을 했는데 그의 죽음에 티베트 사람들은 깊은 슬픔에 잠겼지만,
그가 환생하리라는 믿음에 그 슬픔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제13대 달라이 라마의 유해는 가부좌를 튼 자세로 남쪽을 향하도록 그의 여름 궁전인 노르불링카에 안치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시종들은 그의 유해가 동북쪽을 향해 조금 돌아갔다는 사실을 눈치챘습니다.
그들은 시신을 원 위치로 돌려놓고 장례식을 계속했으나 그 다음날에도 유해는 동북쪽을 향해 다시 돌아가 있었습니다.
이를 동북부 지방에서 자신의 환생을 찾으라는 계시로 본 라마승들은 환생한 달라이 라마를 찾기로 하는데
제14대 달라이 라마를 찾는 일은 제13대 달라이 라마가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채 안 되어 시작 되었습니다
달라이 라마의 환생을 찾는 일은 경우마다 다르지만 보통 입적한뒤 2~3년 안에 찾기 시작하는데
그에 비하면 상당히 빠른 편이죠.
1934년, 티베트 정부는 각 지방에 서한을 보내 제13대 달라이 라마와 비슷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
사내아이를 찾아보라고 지시했습니다.
“다리에 호랑이처럼 줄무늬가 있으며 커다란 눈동자와 활처럼 휘어진 눈썹, 그리고 커다란 귀,
어깨에 두 개의 사마귀가 나 있으며, 마치 관세음보살처럼 기다란 두 팔과
손바닥에 조개 모양의 손금이 있는 사내아이를 찾아라!”
1935년 여름, 섭정관으로 선출된 레팅 린포체는 고위 승려들에게 지시를 내렸습니다.
티베트의 수도 라사에서 동남쪽에 있는 신성한 호수‘라모이 라초(Lhamoi Lhatso)’로
환생자를 찾기 위한 순례를 떠나라는 지시였습니다.
라모이 라초 호수는 2대 달라이 라마‘걀와 겐둔 갸초(Gyalwa Gendun Gyatso, 1475∼1542)’의 환생을 알린 곳으로
이후부터 달라이 라마의 환생자를 찾는 곳으로 유명 합니다..
사절단은 푸른 호수를 바라보며 깊은 명상에 잠기며 수면에 비치는 영상을 잃는 투라점을 시도 했습니다.
투라점은 라마승이 거울이나 수면위에 비치는 영상을 잃어 점을 치는걸 얘기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바로 그때, 섭정관 레팅 린포체가 친히 호수를 방문했고 투라점을 시도 했습니다..
그는 점의 결과를 알리지 않은체 침묵했고,
1년이 지난 후, 라마승들을 불러 자신이 호수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털어놓았습니다.
레팅 린포체는 수면에서 티베트어 아(ah)·카(ka)·마(ma) 세 글자를 보았고,
지붕이 비취색과 황금색으로 뒤덮인 탑 모양의 건물을 보았으며,
그 사원 언덕 아래에 동쪽으로 난 꼬불꼬불한 길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또 이상하게 생긴 빗물받이 홈통과 터키 옥으로 만든 타일이 깔려 있는 작은 집을 보았다고 하며
섭정관은 ‘아’라는 글자가 티베트 동북부의 ‘암도 지방’을 뜻한다는 걸 깨달았노라고 밝혔습니다.
또는 ‘카’와 ‘마’가 함께 ‘호랑이가 포효하는 마을’을 지켜 주는
‘하늘을 찌르는 산’에 있는 ‘카르마 돌파 다르체’
사원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었습니다.
마침내 1936년 가을, 세 그룹으로 나뉜 사절단이 티베트 동북부 지방을 향해 떠났습니다.
한 그룹은 티베트 고원을 넘어 동북부의 암도로, 다른 한 그룹은 동쪽으로,
마지막 한 그룹은 동남쪽을 향해 떠났습니다.
사절단은 각기 후보자 서너 명을 데리고 라사로 돌아올 계획이었습니다..
이중 동남쪽의 작은 마을로 향한 사절단은 암도 지방의 조그만 마을 ‘탁체르(Taktser : 포효하는 호랑이)를
방문 했고 마을 사람들에게 태어날때 이상한 징조가 있었다는 ‘라모 톤둡(Lhamo Thondup)이라는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 아이를 찾아 가기로 했습니다..
라모 톤둡은 다른 아이들과 달리 눈을 뜬 채로 태어났는데 2살이 되자 가르쳐주지도 않은 범어를 경전을
줄줄 외웠다고 합니다..
사절단의 단장이자 세라’라는 사원의 책임자였었던 퀴창 린포체(Kyitsang Rinpoche)는 하인으로 변장해서
라모 톤둡을 찾아 갔습니다..
이제 3살인 라모 톤둡은 하인으로 변장한 그를 알아보았는지 그를 보자마자
“세라의 라마시여”라고 외쳤습니다.
이틀 뒤 사절단은 13대 달라이 라마의 유품을 가지고 다시 찾아왔는데,
라모 톤둡은 여러 가지 물건 가운데 정확하게 전생의 자기가 쓰던 물건들을 찾아내었습니다.
사절단은 마침내 14대 달라이 라마를 찾았다고 라사에 보고했습니다..
이렇듯 달라이 라마의 환생이나 그걸 찾는 의식은 일반 사람은 이해하기 힘든 신비한
의식 이였습니다..
달라이 라마는 성자로서의 깨달음과 술자 로서의 능력도 탁월 했다고 합니다..
게룩파가 본파가 된뒤론 승려들은 마법적 주술에 대해서 공부를 하는건 일체 금지가 됬지만
단 달라이 라마만이 그 능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역대 달라이 라마중 가장 강한 능력을 지녔던 사람은 5대 달라이 라마인
'걀와 나왕 롭상 갸초(Ngawang Lobzang Gyatso)로 그는 뛰어난 주술가로..
달라이 라마를 굳건한 권력의 반석 위에 올려놓은 인물 입니다..
그래서 ‘위대한 달라이 라마'로 불리죠..
그는 9세기이후 지방으로 나누어져 있던 티베트의 권력을 중앙으로 집중시키며
정신적이고도 세속적인 군주의 자리에 오릅니다.
티베트의 의료 체계와 국가 교육
체제를 확립한 탁월한 정치가로 활약했으며 주변국과의 갈등 관계를 해소 했기도 했습니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오늘날 달라이 라마의 상징이며 티베트의 상징이기도 한
포탈라궁을 건설한 일과 강령술을 이용해서 매장 경전을 찾은 일입니다..
매장 경전이란 밀교의 행자들에게 전해 내려오는 독특한 계승법을 얘기 합니다..
밀교 고승들은 자신의 뜻을 받을 제자들이 없으면 자신의 깨달음을 담은 경전을 숨겨 두고
자신의 타르파(분신)을 만들어 놓습니다..
후에 자신의 분신을 찾을 정도로 깨달은 자가 있으며 자신의 경전을 전수 하겠다는 뜻이죠..
5대 달라이 라마는 그간 사원에 있던 전의 법왕들의 분신을 만나 수백년전 경전을
찾아 냈고 그 경전을 체계적으로 나누어 전파 했는데 교리상 주술적인 건 제거 했다고 합니다..
그는 앉아서 입적을 했다고 하는데 그의 죽음은 즉각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강력한 군주의 사후 포탈라궁이 완성되지 못할 것을 두려워 한 그의 유언 때문이었죠..
이때문에 6대 달라이 라마‘걀와 상양 갸초(Tsang Yang Gyatso)'는
2대 판첸 라마가 직접 그를 찾아가
환생자로 확인했고 가르쳤기 때문에 역대 달라이 라마중 유일하게 사원 생활을 하지 못했습니다..
5대 달라이 라마가 입적한 지 17년이 지난 1695년에 포탈라궁이 완공되었고
1697년이 되서야 6대 달라이 라마가 제위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오랜 새월동안 밖에서 지낸 탓인지
사원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사고를 치다가 20살이 되자 자격을 박탈 당하고 쫒겨 났고
당시 티벳과 사이가 좋지 않던 몽골에 의해 납치되서 평생 몽골에 잡혀 살았습니다..
이처럼 달라이 라마중 강력한 지혜와 주술로 성자로서의 권한을 행사한 달라이 라마도 있는 반면에
아무런 능력도 보이지 못한체 죽은 달라이 라마도 있었습니다..
특히 9대 달라이 라마인 ‘걀와 룽톡 갸초(Lungtok Gyatso)’는 7살때 달라이 라마에 올랐지만
내부 권력 다툼에 의해 10살때 암살을 당하는 비운의 소년 이기도 했죠..
게다가 달라이 라마중 티벳인이 아닌 경우도 있었습니다..
4대 달라이 라마 ‘용텐 갸초(Yonten Gyatso, 1589∼1617)'는 몽골 제국의
황제 알탄 칸의 손자 였습니다..
달라이 라마가 몽골인으로 환생한 것으로 여겨진데는
3대 달라이 라마인‘소남 갸초'가 아시아와 유럽을 장악한 몽골 제국과의 외교관계에도
적극적 이었고 죽을때 다시 태어나면 평소 친하게 지내던 몽골의 왕 알탄 칸의 자손으로 태어 나겠다는
유언을 지킨 결과로 해석 되었습니다..
달라이 라마의 환생 여부에 대해서는 함부로 말을 하긴 힘들지만 (믿거나 말거나죠)
분명 달라이 라마는 티벳의 상징적 혹은 정신적인 기둥이자
게룩파 성립 이후 티벳의 유일 무이한 주술사 이기도 합니다..
현재 14대 달라이 라마 역시 세계 각지에 밀교 의식을 하고 있습니다..
불교의 이상향인 샴발라(shamballa)의 실현을 위한 카라차크라[時輪]의 관정(灌頂)을
받는다는 밀교의 카라차크라 의식이
가장 대표적인 예이죠..
카라차크라 의식은 달라이라마가 샴발라를 주제로 원래는 20년마다 한번씩 행하다가
이제는 1년에 한 번씩 이루어지는 의식으로
'시간의 수레바퀴' 라고도 불리는 여러 색깔의 모래로 만다라 형상을 만드는데 깨달음의 의식을 얘기 합니다..
여기서 샴발라가 뜻하는 것은 세계의 평화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