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올해로 22살입니다. 다른 때는 안 그랬었는데 유난히도 중학교 2학년때는
귀신같은걸 많이 봤었어요. (대부분은 그냥 스쳐지나가는 거였지만.) 하지만 딱 한번
지금도 회상하면 닭살이 돋는 경험이 있었습니다.
저희 중학교는 기숙사 학교였거든요. 기숙사는 산 중턱에(도로는 뚫려 있어요.)
만들어져 있어서 한밤중에는 어두컴컴해요. 또, 기숙사에서 학교 가는 길목은
대낮에도 어두컴컴하고 싸늘한 느낌이 들기도 했구요.
그런데 2학년 1학기에 그 기숙사에 인원이 너무 많아서 몇 명 정도는 밖에서 생활을 하게
된 거에요. 선배 5명이 아는 선배 집으로, 그리고 저랑 제 친구 3명이 산 속에 있는 집에 세를
들게 됐어요.
일단 기숙사 생활이 정말 싫기도 했고 선생님들이랑 같이 지내는거긴 해도 친한 친구들이랑
같이 가는 거였기 때문에 전 두근두근 하는 마음으로 앞으로 살게 될 집으로 가게 됐습니다.
처음 가 본 집은 약간 낡기도 했고 스산한 기분도 들어서 썩 내키진 않았지만 답답한 기숙사보다
친한 친구들과의 생활에 더 매리트를 느꼈던 저는 그 집에서 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집을 풀게 되었는데, 화장실 쪽에 있는 옆쪽 출입구에서 뭔가 하얀게 샥~ 하고 지나가는거에요.
정말 순식간에 지나간거라 잘은 못 봤지만 무섭다는 생각이 들어서 친구한테 얘기를 했더니
헛걸 봤다면서 놀리더군요. 일단 짐을 풀기도 했고 친구 말도 맞는 것 같아서 저는 그냥 그날 일을 무시했습니다.
그리고 한동안은 별 일 없이 잘 지냈습니다. (수도관이 얼어서 물이 안나오는 바람에 기숙사까지 걸어가서
씻어야 한다거나 하는 작은 일은 있었지만..)
하지만 제가 집으로 외박을 갔다 온 저녁에 친구들이 무척 무서운 일이 있었다면서 얘기를 해주더군요.
저희는 세를 들어 살고 있는 집을 빨간 집이라고 불렀는데(벽돌이 빨간 색이었거든요.) 아까 얘기했던
낮에도 스산한 기운이 도는 길에서 기숙사 반대쪽으로 가면 나오는 집입니다. 그 주변에는 정말
집이 별로 없습니다. 바로 위에 집이 하나 있긴 한데 사람이 산다는 느낌은 없었고 그 외에는 30여 미터 근처에
망해서 문을 닫은 교회 하나만 있었거든요. 솔직히 말해서 약간 꺼림칙한 느낌이 들기도 하죠. 거기다
전쟁중에 빨치산들의 활동 무대였다는 소리를 듣고 꽤나 많이 무서웠습니다. 그 덕분에 선배들도 종종 귀신체험에
대한 얘기들을 해줬고 그런 이야기에 어느 정도는 내성이 생겨 있었습니다.
그런데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니, 새벽 2시쯤 되었을 때, 컴컴한 옆집에서 몇 시간동안 여자가 *듯이 엉엉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고 하더군요. 그 목소리 사이로는 여러 목소리가 섞여 들리면서 괴상한 소리가 되어서
친구들은 그야말로 공포에 질렸었다고..
저는 그 자리에 제가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솔직히 제가 겁이 좀 많거든요.
그 일이 있고 며칠 뒤에 저는 한참 잠을 자다가 새벽에 잠을 깼습니다. 조금 일찍 잤나 보다.. 하고 생각하고는
약간 몸을 뒤척이는데 왠지 기분이 나쁜거에요. 평소 잠꼬대가 심한 친구는 아무런 소리도 없고, 코를 많이 골던
친구는 숨소리도 잘 안들리고.. 은은하게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달빛으로만 방 안이 보이는데
뭔가 날 쳐다보는 느낌이 들어서 슬며시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마침 잠꼬대쟁이 친구의 책상 쪽이었는데, 그 친구 책상 바로 옆에 한국식 미닫이 문이 있거든요.
그 문을 책상이 막고 있는 형상입니다.
그런데 그 책상 위에 누가 앉아서 절 쳐다보고 있는겁니다.
머리는 어깨까지 기르고, 눈과 코라고 생각되는 부분은 시커멓게 되어서 움푹 파여있고, 그 외의 부분은
새 하얗게 되어있는 여자 한명이요.
아까 달빛에 대해서 얘기를 했었는데 새벽쯤에 달빛에 반사되면 약간 푸른 빛을 띄기 마련인데
그 형상은 정말이지 새하얬습니다. 저는 부들부들 떨면서 아무것도 못 본척 이불을 뒤집어 썼습니다.
그 당시에 본 만화책에서 귀신은 아는척 하지 않으면 아무 짓도 하지 않는다 라는 식의 이야기를 읽은 터라
그걸 철썩같이 믿고는 두 눈을 꼭 감고 알고 있는 기도를 좔좔좔좔 외었습니다.
정말, 몇 분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미칠듯이 잠이 안 오더군요. 평소에는 그렇게 짜증이 나던
친구의 코고는 소리와 잠꼬대 소리가 너무나 그립게 느껴졌습니다.
제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기상시간이 지난 시간. 땀으로 흠뻑 젖어서 파리한 인상이 된 저를 보고는
친구가 왜 그러냐고 묻더군요.
제 경험담을 얘기해줬더니 친구는 무서워 하면서도 잘못 본거라며 믿어주질 않더라구요.
아직도 종종 친구나 후배들에게 이 얘기를 해주곤 하는데.. 제 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 얘기가 더 재밌는 모양입니다.
재미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