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아버지의 한국전쟁

조스러브 작성일 08.06.26 22:3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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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제 외할아버지가 말씀해주신것을 토대로 기록문 형식으로 쓴 것입니다.

 

제가 직접 겪은 것이 아니라 사실이라고 믿으세요라고도 말 못할것 같습니다.

 

다만 아직 할아버지의 이마와 가슴에는 뚜렷한 총상이 남아있고...할아버지가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으시기에

 

여기에 써봅니다.

 

 

 

 

수십년도 더 됬으니 언제 였으니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날 내가 겪었던 일은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하다.

 

1949년 군입대를 해서 1년이 채 되지 않아 육이오가 터졌다.

 

가족들은 모두 무사히 피난 갔지만 어찌 될런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미 전선은 낙동강까지 밀린 상태이다.

 

이대로 도망갈수도 없는 상황이다.

 

말 그대로 사면 초가이다.

 

이윽고 미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했다는 얘기를 들었고.........

 

우리는 낙동강전선을 벗어나 급속도로 북진해 서울을 탈환했다.

 

나도 그 당시 서울로 같이 들어갔지만 시가지 전투에서

 

가슴에 총상을 입고 후방으로 이송되 치료받았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다.

 

나는 당연히 제대할거라 생각했지만 이듬해 국군 9사단으로 편입되어 다시 전투에

 

나가게 되었다.

 

초반 격했던 전쟁과는 다르게 전투가 있는 날은 그리많지 않았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사이 나는 하사로 진급하게 되었고 그렇게 어쩌면 다소 평화롭게 그해를 넘기게 되었다.

 

이듬해 52년 10월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중공군의 수는 상상을 초월했다.

 

무서웠다..........곧 죽게 될 거라고 머릿속에서 수천번이나 되뇌였다.

 

총알이 빗발쳤고......포탄이 바로 옆에서 터진적도 있었다.

 

눈에 보기에도 우리는 밀렸고 숫자에서도 압도적 열세를 띄었다.

 

그날이 언제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우리는 잠도 제대로 못잤기 때문에 하루가 1년 처럼 느껴지기도 하였다.

 

어쨌든 그날도 치열한 전투가 있었고 전우들은 하나하나 쓰러져 갔다.

 

그때였다.

 

세상이 조용해졌다.

 

모든 것은 정지해버린듯한 느낌이었다.

 

공황장애일까?

 

날아가는 총알이 육안으로 구분될 정도로 느렸다.

 

모든 것이 다 크게 보였다.

 

그곳은 너무나 치열하고 잔혹한 곳이었지만 그때만큼은 모든게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내 앞으로 오는 총알이 보였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급히 몸을 숙이긴 했지만 내 머리통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윽고 그 정지되었던 시간이 정상으로 돌아온듯한 느낌이었다.

 

10월 15일 결국 우리의 승리로 막을 내렸지만...........

 

그것은 너무나 큰 슬픔이었고 아픔이었다.

 

내가 아는 전우는 이미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에와서야 겨우 국군 묘지를 찾았다.

 

너무 많은 탓인지 아니면 늙은 탓인지 전우들 이름도 찾기 힘들다.

 

그저 전우들에게 미안한 생각뿐이다.

 

그저 하염없이 눈물만 흘릴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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