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몽의 아내이자 고구려를 세우는데 일조한 여 군장 소서노는
주몽의 장자 유리가 나타나자
비류 ,온조 두 아들을 데리고 고구려를 떠났죠..
이후 형제는 건국을 위한 위치와 세력 다툼을 했고 결국 헤어져 각자 나라를 세우기로 했습니다..
결국 온조는 한강 유역 남쪽의 하남 위례에 자리를 잡았고
비류는 바닷가인 미추홀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형과 헤어져 산 위에 나라를 세운 온조는 동쪽으로 내려가서는
백성들에게 곡식을 키우는 방법도 가르쳐 주기도 하고 사냥을 다녔으나
밤에는 잠자리에 들어가면은 새벽까지 일체 바깥에 몸을 나타내지를 않았습니다.
그는 비류나 유리가 자신을 죽이러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고
비류와 화해 하라는 어머니 소서노도
믿지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밤마다 어머니 모르게 군사들을 키우고 있었던 것이죠..
온조는 매일 같이 이와 같은 일을 되풀이 했습니다.
그는 점점 영토를 넓히고 위례성을 건축했지만 적들이 쳐들어 올거라는 의심은 계속 더해 갔습니다..
온조의 의심병이 점점 깊어지는걸 염려한 소서노는
당시 온조가 자는 위례성에 있는 우물에 주술을 걸어 변괴가 생기면
물이 흙탕물이 될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두 아들의 화해를 위해 온조 몰래 위례성을 떠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름 세력을 확장한 온조와 달리 비류의 세력은 점점 줄어 들고 있었습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비류는 잘 사는 온조가 부러웠고 온조 역시 형이 언제 쳐들어 올까 전전긍긍 하는
갈등이 계속 됬습니다..
소서노는 둘을 화해 시키려 노력 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갈때 까지간
비류는 온조를 공격 하기로 했습니다..
비류가 전쟁 준비를 하자 그걸 알게된 소서노는 두 아들이 서로 죽이는걸 막기 위해
위례성으로 향했습니다..
소서노가 위례성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깊은 밤이 였는데
소서노가 걸어둔 주술대로 위례성 우물이 흙탕물이 되자 변괴가 생길걸
예상한 온조는 밤에 군사들을 배치해 경계를 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깜깜한 밤이라 온조를 말리러 오는 소서노의 일행을 병사들은
비류군이 쳐들어 오는 거라고 생각 했고
온조는 그들을 죽이라고 명했습니다..
소서노측도 역시 고구려가 쳐들어 온것이라 생각하고 싸움을 시작 했습니다..
이 싸움은 금방 끝나긴 했지만 엎친데 덮친격으로 쳐들어 오던 비류군이
온조군과 소서노 군을 공격 했습니다..
싸움은 다시 시작 됬고 비류는 온조를 죽이기 위해 활을 쐈지만
소서노가 몸을 던져 아들 대신
활을 맞고 죽었습니다.,
날이 밝자 자신의 활이 꽂혀 있는 소서노의 시신을 본 비류는 그야 말로 미쳐 버렸고 결국
자살을 했습니다..
온조 역시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했지만 후회해 받자 늦은 뒤였죠..
이후 소서노가 주술을 건 위례성 우물은 늘 흙탕물만 고여 있었다고 합니다..
소서노는 대단한 여인이고 주술가 였다고 하는데
소서노(召西弩)란 이름은 칼을 입에 문 무당을 뜻한다고 합니다..
소서노의 죽음에 대해선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13년 '왕모가 돌아갔다'라는 기록이 있는 것처럼
병으로 죽었다고 보는 견해가 큽니다만..
온조왕 13년에 노파가 남자로 변하고
음양이 무너지는 혼란이 있었다는 기록도 있고
소서노의 장례식이 늦게 치러졌고
수도를 하북위례에서 하남위례로 옮긴것으로 보아
소서노의 죽음에 뭔가 정치적인 혹은 찝찝한
사연이 있다는 얘기도 있죠,,
뭐 그냥 흥미 위주로 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