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겪은 이야기 두 번째 입니다.
여태까지 살면서 가위 눌린 경우를 제외하고 환영을 대 여섯 번 본 것 같은데
이때가 적어도 제 기억 속엔 가장 처음 경험 한 날이네요.
92년도 당시 저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고
제가 살던 집은 현관문이 따로 달린 양옥 2층 구조였습니다.
원래 2층에 할아버지와 부모님, 누나, 식모아줌마, 저 이렇게 살다가
제가 고등학교 들어가면서 방을 좀 넓게 쓰고 싶다고 졸라서 아랫층까지 쓰게 되었습니다.
아랫층의 다른 방들은 비워 놓고 한 방만 사용한 것이지만 결국 아랫층 전체를 혼자 사용하는 식이 되어 버린거죠
그러다보니 썰렁하고 음침한 느낌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교 시절이라는 것이 다른 가족들의 간섭이 귀찮고 괜시리 반항심만 생기기 일쑤라
혼자 독립해서 살고 있다 라는 해방감 비슷한 느낌에 텅 빈 공간들에서 오는
썰렁하고 음침한 기분들은 대수롭지 안게 여길 수 있었 던 것 같습니다.
2학기 중간고사 기간이었습니다.
감기 기운이 있었고 집에서 새벽 늦게까지 책상에서 공부를 하다 잠이 들었는데요
깨어 보니 여전히 새벽이었고 책상이 아니고 이불 속이더군요.
책상 등과 방 천정의 불은 켜진 채였던게 아마 공부하다 너무 졸려 비몽사몽간에 이불에 누운듯 했습니다.
시험에 대한 압박감이 있었는지 오래 못자고 바로 깬 듯 한데
눈을 뜬 후 바로 일어나지 않고 이불 속에 있었는데요
1분 정도 흘렀나 갑자기 앞에 벽에서 사람이 아주 천천히 걸어 나오더군요
뭐, 그 순간은 아무생각도 안들고 그냥 놀라 어리둥절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차림새를 보니 까만색 의복에 조선시대 사람들 쓰는 갓 같은 것을 쓰고 어깨에 볏짚으로 엮은 새끼줄을
매고 무언가 끌면서 걸어 나오더군요
가만보니 샛노란 새끼줄 끝에 검정색 관이 하나 묶여서 벽을 통해 끌려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황당해서 이게 뭔일인지 상황판단이 안되고 있었는데요
이 사람이 벽에서 완전히 나와서 아주 천천히 계속해서 걸어가다 갑자기 제 바로 옆에서 멈춰스네요
그때까지 이 사람 얼굴과 시선은 정확히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제 옆에 멈춰서서는
고개를 아주 천천히 돌려서 저를 한 번 노려보는 겁니다.
그 순간 숨 멎는 줄 알았네요. 숨이 안나옴.. 숨이 음식이라면 음식을 너무 먹어서 식도까지 꽉 차버린 느낌.
그런데 다행히 한 번 그렇게 노려보고서는 다시 천천히 고개를 원상태로 돌리고서 계속 걸어가더니
나온 벽의 맞은 편 벽(창문이 있는쪽)으로 통과해서 나가더군요.
그리고서는 저는 한 2, 3분 정도 될까.. 얼어서 공황 상태였다 겨우 정신을 차리려는데
그 찰나 갑자기 천장의 형광등이 딱 꺼지네요.
다시 얼고 숨이 멎음.
그런데 10초 정도 있다 다시 켜지더군요
켜짐과 동시에 저는 아무생각 안하고 떨려서 억지로 겨우 새어나오는
'으으으으으..' 이런 식의 비명 같지 않은 비명을 지르며 2층으로 미 친듯이 뛰어 올라갔습니다.
그리고는 한동안 아랫층에서 잠을 안 잤고요. 중간고사 기간 동안 정독 도서관이라고
공립도서관이 있는데 거기 가서 공부했네요.
참... 그런데 그 일이 있고 며칠 후, 오래된 일이라 정확히 며칠 후였는지는 기억이 잘 안나는데
중간고사 기간에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중풍으로 3년간 누워 계셨었는데요 그날 제가 도서실에서 공부하다 11시쯤 집에 들어갔더니 아무도 없길래
이상해서 친척 집에 전화 해 봤더니 사촌 동생이 할아버지 돌아가셨다고 서울대학병원으로 가보라고 하더군요.
제가 당시 감기 기운이 있고 시험공부로 피곤해서 환영을 본 것인지 아니면 할아버지를 데려가려고 온 저승사자 같은
존재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너무 무서웠고 신기했던 경험이었네요.
97년도 여름에 한 달 정도 귀신인지 뭔지 이상한 기운에 시달려 잠을 못자 괴로워 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두 번 정도 본 작은 괴물 같은 환영을 포함해서 여태까지 본 환영들이 모두 희미했었는데
이때는 실제 사람처럼 또렸하고 정확했으며 오히려 아주 진한 색의 모습이어서
제게 일어났던 이상한 경험들 중에 단연 가장 무서웠던 경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