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6000년전 신석기시대... 대한민국은 뭘하고 있었나요?
서울 암사동 신석기 유적입니다.
짚으로 만든 움집에서 ~~
이게 6000년전 대한민국의 삶이라면 ....인류최초의 문명이라고 알려진 6000년전 수메르에서는? 어떻게 살았을까요?
궁금하지 않으세요?
아니면 말던가...(ㅡㅡ)
현재 우리에게 알려진 인류 문명의 발상지중 가장 그 기원이 오래된 곳은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사이의 메소포타미아
문명이죠.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곧 고대 바벨론과 아시리아 문명을 떠올리게 하는데 그들보다 앞서 존재했다는, 인류 최초의 문명으로
밝혀진, 수메르의 유적 발견은 인류 역사 기록의 새로운 정립과 더불어 수많은 의문점을 동반하고 있죠잉~
1830년경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고대인들의 유적이 처음 발견된 이래 많은 학자들이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데 1849년 이들
이 남긴 고대문서 (설형문자 점토판)들이 무더기로 발굴되면서 수메르 문명의 실체가 오늘날 우리에게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
했어요!
수메르(Shumer)'라는 호칭은 원래 후대의 아카드인들이 남부 메소포타미아의 고대거주민들을 일컫는 이름이었고, 수메르인
은 스스로를 '검은 머리의 사람들'이라는 뜻의'ùĝ saĝ gíg-ga'로 부르고 자신들의 땅은 '신의 땅'이란 뜻인 'ki'engir'라 칭하
였어요. (성경의 Shinar, 이집트의 Sngr, 히타이트의 Šanhar(a) 등은 바로 이 'Shumer'의 별칭이다.)
기원전 5천녕경의 하라프(Tell Halaf)의 농경민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나게 발달된 문명을 가진 수메르인들은 고대 수메
르문명을 건립해요. 기원전 4천5백년 경 (학계 추측) 고도화된 지능과 함께 메소포타미아 (지금의 이라크)에 나타난 수메르인
들은 그 지역을 생활터전으로 삼고 그들만의 문명 제국을 쌓아올리죠. 천문학, 달력, 문자, 기호, 도시건설 등 그들의 지능은
당시 원시적 생활을 했던 농경민들에겐 상상도 할 수 없는 과학지능이었으며 인간이 수십 세기에 걸쳐 이룩했다고 믿어온 그
런 인류의 고도문명을 이들은 일순간 시행해낸 것이에요. 놀랍지 않나요? 네? 왜 지럴이나구요? 아 네..(ㅡㅡ;;)
수메르인들은 사실상 기원이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신비의 민족이에요. 그들의 기원은 대홍수 전부터라는 것이 일부 학자
들의 주장이지만 홍수 연대도 확실하지 않고 또한 그들이 홍수전부터 존재했던 민족이었는지 확신을 가질만한 증거는 아직
없어요. 대홍수 연대는 학자들 사이에서 끝없는 논쟁을 부르고 있죠. 일부 학자는 홍수의 연대를 B.C.7000년에서 6000년 사이
라고 보고 있으며 B.C.2500년경 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어요. 성경연대표에 의하면 대홍수는 B.C.3500년경이에요.
현재 기록된 인류 역사에 의하면 수메르인들은 대략 기원전 4500-4000년경에 지금의 이라크 땅에 나타나 약 2천년 동안 이 지
역을 지배하다가 바빌론인들에 의해 멸망된 민족으로 알려져 있어요. 현존하는 세계의 민족 가운데 이들의 공식적인 후예는
없지만 그들이 쌓아올린 문명은 주위의 민족들이 흡수하고 각색하여 현재 수많은 문화 속에서 그 위상을 찾아 볼 수 있습니
더. 수메르인들은 인류의 뿌리에 대한 비밀을 간직한 채 사라져버린 수수께끼 민족인 것이에요. 그들이 인류의 문명사에 남
긴 족적은 그들의 유적 발견과 함께 모든 분야에서 뚜렷하게 밝혀지고 있으며 그들의 문자 발명과 도시 건설은 인류 성장에
가장 큰 기여라고 할 수 있죠. 오메나!!
수천 년 전 이들이 남긴 고대문서 점토판에는 이들이 법률을 만들어 체계적인 조직을 구성하여 사회를 형성했고 주석과 동을
섞어 청동을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었으며, 인체의 내부구조의 이해와 백내장을 제거하는 고도의 의학 시술, 그리고
천문에 밝아 태양계를 꿰뚫고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요! 무엇보다 놀라운 사실은 그들이 사용했던 달력과 천문에
대한 기록이에요!
수메르인들은 일식, 월식의 기록은 물론이거니와 행성들의 공전주기, 자전주기 등 움직임도 정확히 알고 있었죠. 또한 2만 59
20년을 주기로 하는 지구 축의 세차운동 마져 정확하게 표시했다는 점은 단순히 놀랍다라는 말 외에는 설명이 되지 않아요.
메소포타미아에 정착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기간에 그것도 미개 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주어진 환경 속에서 이런 고난
도 지식을 발휘했다는 사실은 실로 믿기 어려울 뿐이죠. 6000년전 암사동 유적만 봐도 짐작이 되나요?
수메르인들의 도시 발명이 인류에 가져다 준 혜택은 매우 커요. 지금 세계사 책에 보면 인류 문명의 최초의 문명으로 갈대아
우르 지역의 수메르문명이라는 것이 나오는데요
최초의 문명임에도 불구하고 건물 하나가 많게는 수백개의 방이 있는 건물을 비롯해 굉장한 주거지역을 이루며 살았다는 사
실이 증명되었어요!! 허걱!
갈대아 우르 유적들 (요런곳을 미국놈덜이 파괴하고 그랬겠죠? 이라크전쟁시에..ㅜㅜ)
더욱 놀라운 것은 그당시에 이미 완벽한 상하수도 시설이 완비되어 있었다는 사실입니더!!
상수도시설이라 함은 기존 자연 상태의 물을 물지게 등으로 운반하여 사용하거나 직접 취수하는 방식이 아닌 일련의 과
정 즉 정수, 송-배수 등을 거쳐서 물을 공급하는 것을 말하는데요.
이렇게 상수도와 하수도를 만들었답니다. PVC나 스텐파이프는 아니고요, 도자기를 구워 상하수도 시설을 한 거래요.
우리나라 조차도 상하수도 시설을 제대로 갖춘 것이 이제 몇 년 되었나요?
한국의 상수도 시설은 불과 백 년 전인 1908년 9월에 완공되었으나 수메르인들은 수천 년 전 이미 상수도 시설을 완벽하게 구
현해 냈거죠. 인류 최초의 문명이, 그저 원숭이 비슷한 존재들이 아니고 고도로 발달된 문명을 가지고 살았던 거에요.
물론 학교도 있었죠
학교가 있었다닛...!! 어우...보기만 해도 싫다..
학교에서는요 언어와 문자뿐만 아니라 식물학,동물학,지리학,수학, 신학 등의 학문도 가르쳤다네요. 또 이전 시대의 문학 작
품을 베끼고 연구했고 새로운 작품을 창작 하기도 했다네요. 학교는 움미아(전문교수) 가 이끌었으며 "그림을 가르치는 선생"
"수메르어를 가르치는 선생" 들뿐만 아니라 "채찍을 담당하는 선생"도 있었다고 하네요 (채찍!!!!) 학교의 규율은 아주 엄격했
답니다. 한 학생이 점토판에 기록한 내용에 따르면 학교에 출석하지 않거나, 정결하지 못하거나, 게으름을 피우거나, 떠들거
나, 비행을 저지르거나, 심지어는 글씨가 깨끗하지 못할 경우 매를 맞았다고 ...(ㅜㅜ)
잠깐 학교에서 글을 가르쳤다고? 글?? 6000년전 글이 있었다니!!!
그렇죠 문자가 있었죠!
수메르 사람들이 인류의 문명사에 남긴 족적은 모든 분야에서 뚜렷하지만, 그 중에 가장 중요하고 큰 의미를 지닌 것으
로는 문자의 발명과 도시건설을 들 수 있어요.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 인류가 사용한 최초의 문자는 기원전 3500년경 메소포
타미아 남부 지방의 우루크(Uruk)에서 수메르인들이 사용했던 것으로 밝혀지고 있죠. 처음에는 사물의 모양을 본
뜬 기호로 뜻을 나타낸 상형문자였으나, 이것이 점차 간결화되고 개량되어서 나중에는 쐐기 모양의 부호로 뜻을 나타내
는 이른 바 설형(楔形)문자가 되었답니다. 수메르인들은 진흙을 빚어서 말린 점토판을 굵은 갈대펜(stylus)으로 긁어
서 문자를 기록했어요. 문자의 발명은 인류사를 선사(先史)시대와 역사(歷史)시대로 구분짓게 하는 획기적인 사건이에
요. 이 사건과 더불어 인류는 역사시대로 들어서게 되는 것이며, 이점에서 본다면 수메르인들은 인간에게 처음으로 역
사라는 것을 가져다 준 민족이라 할 수 있겠죠..대단허네..
수메르 문자
또한 이들은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하기 훠얼씬 전에 다양한 상형문자의 "활자"를 사용했으며 오늘날 우리가
고무도장을 사용하듯이 그 활자들을 젖은 진흙에 찍어 문장을 만들어냈어요. 또 오늘날 사용하는 윤전기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원통형 인장도 만들어냈죠.
저 원통의 돌을 진흙에 대고 굴리면!!! 짜짠!
수메르와 메소포티미아의 기록은 성스럽거나 영적인 것들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였어요. 곡식의 수확량, 농지의 측량
가격계산 등의 일상사도 많이 포함되어 있어요. 인류가 동물을 사냥하고 과일을 따먹으며 살던 원시시대에서 지금과 같
이 농사를 지으면서 문명생활을 하게 되고 자기의 생각을 글로 써서 남에게 전달하고 후대에까지 남길 수 있게 된 거
죠.
그리고 또한! 수학을 사용 했다는거죠!!(전 수학을 진짜 저주합니다.ㅜㅜ)
60진법이라 불리는 수메르의 수 체계가 있었는데요 현대의 10진법보다 그리스나 로마의 숫자 체계와 비교해 봐도 우수하답니
다. 60진법을 사용해 아주 작은 수까지 나누거나 수백만 단위까지 곱하는 계산을 할 수 있었죠. 또한 근을 구하거나 배수를
구하는 계산도 해냈다고 하는데...후덜덜이네..최초의 자릿수의 개념도 사용했다네요.
예를 들어 10진법에서 2가 위치에 따라 2나 20 또는 200이 될 수 있듯이 수메르인들이 사용하던 2도 위치에 따라 2나 120
(2x60) 등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더! 원의 360도, 피트, 인치, 다스 와 같은 단위들도 수메르 수학 체계의 산물이라죠.
그리고 현대인들이 문서를 종이에 의존하듯이, 수메르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기록을 진흙에 의존하고 있었답니다.
그 밖에도 진흙은 생활용품에도 이용이 되었구요 (진흙이 아주 중요했네요 ㅎ) 최초의 물건인 벽돌을 만드는데도 진흙이 사용
되었는데 진흙을 보강재를 사용하는 방법과 불로 굽는 방법이라는 두 가지 아주 중요한 기술을 사용해 진흙이 지닌 가벼운
성질과 잘 늘어나는 성질을 결합 시켰답니다.
수메르토기
현대 건축가들은 철근이 들어 있는 틀에 시멘트를 부어 아주 강력한 강화 시멘트 만드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데 아주 오래
전에 수메르인은 젖은 진흙에 곱게 자른 갈대나 짚을 섞어 강한 벽돌을 만들었던 거죠 또한 진흙으로 만든 물건을 가마에
넣고 불을 때면 인장력이 높아지고 내구성도 좋아진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세계 최초의 고층 건물이나 아치형 길, 그리고 도
자기 등은 이런 기술적 발전 덕분에 가능했건 겁니다.
지구라트
수메르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유적! 지구라트 입니다!
당시 쐐기문자의 해독자로 유명한 영국의 롤린슨(H.Rawlinson)의 부탁을 받은 주이라크 영국 영사인 테일러는 1856년
텔 엘-무카야르의 지구라트를 조사하다가 서기전 6세기 바빌로니아의 마지막 왕 나보니두스의 기록을 확인했다.이 기록에서 나보니두스는 자신이 우르의 지구라트를 보수하고 증축했다고 언급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서 이곳이 그 유명한 아브라함의 고향 갈대아 우르라는 사실이 처음으로 밝혀진 것이다.하지만 메소포타미아 북부의 앗시리아 궁전들의 발굴에 치중한 영국은 더 이상 우르를 발굴할 수 없었다.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이 남부 메소포타미아를 장악하면서 비로소 1922년부터 발굴을 시도할 수 있었다.
크기가 짐작이 가시나요?
서기전 2100년경 건설된 우르의 지구라트는 지금까지 발견된 메소포타미아의 지구라트 중에서 가장 완벽하게 보전된 것이다.당시 우르 제III 왕조의 왕 우르-남무는 이 도시의 수호신 난나(Nanna)를 모신 신전을 좀더 높은 곳에 세워 도시의 중심적인 상징으로 만들고자 했다.창세기에 등장하는 바벨탑의 원형이기도 한 지구라트는 원래 꼭대기의 신전을 받치기 위한 받침대에 불과하다.따라서 비록 지구라트가 이집트의 피라미드로부터 그 건축적인 아이디어를 빌려왔지만 이곳에서는 무덤이 아닌 신전 받침대로 활용됐다.재질이 약한 흙벽돌을 주로 건축자재로 사용했기 때문에 강도를 높이기 위해 역청을 사이사이에 깔았고 어떤 경우에는 갈대로 엮은 매트리스를 일정한 간격으로 흙벽돌 사이에 끼워넣기도 했다.
이것은 신이 있는 곳(높은 곳의 신전)과 인간이 예배를 드리기 위한 장소(낮은 곳의 신전)라는 종교개념의 확립을 나타내고 있으며, 그 뒤의 지구라트 양식에 큰 영향을 미쳤다. 아시리아 시대(BC 1365∼BC 609), 북메소포타미아의 각 도시에 조영(造營)된 지구라트에는 계단 대신에 경사로(傾斜路)가 설치되었다. 6개의 신전에 부속되어 있는 코르사바드의 지구라트는 4층만 남아 있는데 그 당시는 7층으로 채색되어 있었다고 한다. <바벨탑>으로 유명한 바빌론의 지구라트는 신바빌로니아시대(BC 625∼BC 538)에 속한다. 주신 마르두크의 신전에 이르려면 계단과 경사로를 지나가야 하는데, 여기에도 채색이 되어 있었다고 하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 밖에 엘람에서도 초가잔빌에 BC 13세기에 5층의 기단이 있는 인슈시나크신(神)의 지구라트가 건조되었다. 이와 같은 지구라트를 축조할 때에는 속에는 햇볕에 말린 벽돌을, 겉마무리 쌓기에는 구운 벽돌을 쓰고, 역청(瀝靑) 등을 모르타르로 사용하였다. 또한 표면의 채색은 채유(彩釉) 벽돌로 하였다
우르의 대표적인 유적은 유네스코 지정문화재이기도 한 지구라트이다. 우르의 지구라트는 전형적인 고대의 탑신전으로 현재 가장 높은 언덕이 되었으며,아브라함 시대에는 이 성에서 가장 큰 건물이었을 것이다. 이 신전은 벽돌로 만든 축대가 층을 이루고 축대에는 나무를 심고 맨 꼭대기에는 달신의 성역이 있었다. 원래는 3단으로 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맨 밑의 기저층만 남아 있다. 우르의 지구라트에서 불과 100여m 정도에는 아브라함의 집터가 있고 그 옆에는 왕들의 무덤이 있다.
한번 올라가보고 싶어요 천국으로 가는길? ㅋ (지옥인가..)
우르 주랑신전
갈대아 우르의 N층에서는 주랑신전, 赤신전, A신전, B신전, C신전, D신전이 출토되었다. 이 주랑신전은 직경 2.6m의 원주가 늘어서 있으며, 그 전면은 모자이크로 덮여있다. 이 시대의 모자이크 장식은 색점토를 7∼8㎝의 원추로 구워서 벽과 기둥에 박아 넣어 아름다운 기하학 문양을 만들어 냈다.
또 있어요. ㅎ 수메르 기술 발전을 가져다준 것은 메소포타미아의 많은 지역에서 지표면에 자연적으로 나타나는 역청,아스팔
트,석유같은 연료였죠. 아직까지 연료때문에 참..많은 문제가 일어나는게 안타깝기도 하고 뭐... 잡소리구요.
포보스 ["고대의 역청과 석유" ]는 석유 연료가 수메르에서 사용되었으며 석유에 대한 지식과 그 사용법이 다른 후대의
문명보다 수메르 시대에 훨씬 더 앞섰다고 밝혔대요.
수메르인들은 석유로 만든 제품을 단순히 연료로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길을 만들고, 방수를 하고, 이음새를
메우고, 그림을 그리고, 접합을 하고, 틀을 만드는 데에도 사용했답니다. 고고학자들이 고대 수메르
도시인 우르를 찾았을 때 그 도시는 지역 사람들이 "역청의 언덕"이라고 부르는 구릉 아래 묻혀 있을 정도였대요.
역청을 사용한 우르 유적 저 까먼거 보이시죠?
그리고 포브스씨는 수메르어에 메소포타미아에서 발견되는 모든 종류의 역청 물질을 부르는 전문 용어가 있었다는 사실도
밝혀냈답니다. 실제로 아카드,히브리,이집트,콥트,그리스,라틴,산스크리트 말에서 발견되는 역청이나 석유 관련 용어들은
모두 수메르어에 그 기원을 두고 있어요. 예를 들어 석유를 부르는 가장 흔한 이름인 나프타(naphta)는 "불타는 돌"이라는 뜻
의 수메르어 나파투(napatu)에서 유래된 거에요.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에요 이놈의 수메르인들은 역청 갔다가 의학 분야에도 사용을 했답니다.(대단한놈덜)
아카드 문서를 보면 수메르인이 의학 용어들을 많이 사용했음을 알 수 있는데 음.... 볼까요?
수메르 법전을 보면 치료에 성공한의사에게 주어야 할 요금과 실패한 의사가 받아야 할 처벌 내용 등이 명시되어 있어요. 예
를 들어 랜싯(lancet)으로 환자의 관자놀이를 절개한 의사가 실수로 환자를 실명하게 하면 의사의 손을 자른다는 내용도 있어
요. 허걱!
부분적으로 파손된 한 의학 기록을 보면 "눈을 덮고 있는 그림자"를 제거한다는 내용이 있는데 아마도 백내장을 제거하는 수
술을 했던 것으로 보여요. 또다른 문서에는 절개용 기구의 사용에 대해 언급하면서 '만약 병이 뼈 안으로 침투하면 도려내야
한다"고 적고 있어요.
오늘날까지 의학의 상징으로 사용되는 나무를 감고 있는 뱀의 모양이 그려져 있다.
수메르 의학은 진단과 처방도 다루고 있는데요 환자들에게 위생과 세탁,더운물이나 소금물 목욕,식물성 약제의 사용
석유 화합물로 하는 마찰등을 권하고 있답니다.
식물이나 광물로 만들어진 약제들은 사용 방법에 적합한 용해제와 섞어 사용되었대요. 입으로 먹는 경우에는 포도주나 맥주
꿀과 함께 타서 먹었고, "직장으로 부어지는" 경우에는 (관장) 식물성 기름과 함꼐 사용되었다고 ㅋㅋㅋ
수메르에서 소독용이나 약재로 사용되었던 알코올(Alcohol)이라는 말도 아카드어의 쿨루(Kuhlu)를 거치고 아랍어의
콜(Kohl)을 거쳐 우리에게 전해진 거에요.
이게 진짠지 진짜루 의심이 가네요 점점...;;;
수메르인들은 옷도 만들어 입었습니더! 가장 기본적인 옷은 투(TUG)라고 불렀다고 하고요 투그쿠셰라고 "둘러 입는 옷"이라
는 옷도 있었답니다.
옷도 만들어 입는 수준이라니...
장식도 다는거냣?
이 고대 문명은 농업분야도 후덜덜이에요. 관개운하를 건설해 일년 내내 농지에 물을 댔다고 하고요.
식량 창고였대요 종자와 향신료 많은 다른 식물과 과일들이 있었다고 해요.
당연히 식량이 많다면 조리법과 음식의 종류도 많았겠죠? 빵 죽 과자 케이크? 이것덜이 맥주를 만들어 먹었다네요.
기록이 있답니다 포도와 대추야자로는 술을 만들었대요. 에잇 내눈으로 보기전엔 안믿을 테닷!
근데 이렇게 풍요롭게 생활을 했다면...노는 문화도 있었겠죠?
바로 음악이죠.
최초의 악기 하프 이게 발견이 많이 됬습니다 우르에서요...ㅡㅡ;;이건 벽화구요.
또한 지상 교통을 위해서 바퀴가 처음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바퀴가 보인다~~워워워 다 최초네...
이 외에도 무지 많지만 아휴 힘드네요. 거의다가 최초에요...그것만 알아두시면 많은 도움이 되지 않나요?
갈대아 우르
마지막으로 소개해봐요 법률제도!! 사회에 꼭 필요하죠 ...
수메르인들이 만든 사회제도와 관료제도, 법률 등도 후대의 제국들에 그대로 차용되었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왕정(王政)을 이룩한 민족이 수메르 민족인데, 이것이 주위의 민족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는 훨씬 후대에 이르러 유태인들이 사울을 최초의 왕으로 추대하는 성서 속의 이야기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왕이 있어야 강력한 민족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을 유태인들이 갖게 된 것은 수메르인들이 이미 소멸하고 난 이후에도 천년 이상이나 지난 시기였던 것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 기록된 인류 최초의 법률 역시 수메르인들이 만든 것이다. 우르남무라는 수메르왕이 반포한 이 법률은 유명한 바빌론의 함무라비법전에 큰 영향을 남겼으며, 먼 훗날 모세의 법률을 특징짓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유명한 표현이 이 함무라비 법전에 정확히 들어있는 말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것이다.
에고 에고 힘드네요
아무튼 수메르 문명은 아주 짧은 기간 동안에 모든 고등 문명이 필요로 하는 "최초의 것"들을 인간에게 선물했어요.
바퀴,고층건물,음악과 악기,야금술,의학,조각,보석,도시,왕조,법률,사원,기사도,수학,천문학,달력, 등 무려 100가지가
넘고, 그중에서 가중 중요한 문자를 만들어 냈죠!!!
수메르 민족은 오늘날의 인류에게 최초로 빛을 가져다 준 그야말로 전설 속의 영웅과 같은 사람들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대문명 박물관 (바그다드)
수메르인들이 살던 지역은 지금의 이라크 지역을 의미한다. 바그다드 시내에 있는 고대문명 박물관이란 지금으로부터 7000년 된 수메르의 유적들이 전시되어 있는 곳이다. 그런데 이 박물관이 이번 전쟁으로 약탈자들에 의해 모두 털렸다고 한다. 이 박물관의 나브할 아민 부소장은 "우리의 유산은 끝났다"고 말할 정도다. 초등학교 교과서에서부터 배우는 인류문명의 4대 발상지 가운데 하나인 메소포타문명은 말 그대로 'meso-potamia'로 양강(兩江) 사이란 뜻이다. 양강이란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을 두고 하는 말이다. 성서에 나오는 '에덴'동산으로 불리는 딜문동산도 바로 이 양강 사이에 있는 지역이며, 이 동산마저 이번 폭격으로 폐허가 되고 말았다고 한다.
미국놈들이...망할놈덜....
미국놈들은 왜 이러나 모르겠어요 아무튼 이상 끝!!!!!!!!
p.s [모르고스님의 글을 퍼왔어요!!!무단으로;;;ㅋㅋ;;]
모든 인류의 역사가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거나, 인류 최초의 문명이
수메르에서 처음 시작되었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되었다. 그러나 수메르문명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는 그것이 최초의 것이라는데 있지 않다.
수메르 문명은 인류 최초의 것일 뿐만 아니라, 아직까지도 인류가 해결하지 못하는
많은 어려운 문제들에 대하여 이미 명확한 해답을 제시한 문명이기도 했다.
그들은 태양계가 어떻게 형성 되었는지 이미 알고 있었고, 지구와 인간이 어떻게
태어낳는지 알고 있었으며, 신과 인간의 관계가 정확이 어떤 것인지도 알고 있었다,
신들이 어디에서 언제 지구로 왔고, 왜 인간을 창조했으며, 어떻게 지구를 왕래하며
인간을 지배 했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 모든 내용들이 수메르 점토판에 소상하게 기록되어 남아있으며, 구약성서의
이야기나 각국의 신화들은 수메르의 이 고대 기록들을 나중에 각색하고,
번안한것들에 불과하다. 과연 그들이 알고 있던 창조의 비밀과, 과학기술의
수준은 어느 정도 일까.
-수메르,혹은 신들의 고향-에서 발췌
...아쉽게도 시친의 이러한 주장은 지난30년간 학계나 종교계 모두 인정할수도,반박할수도
없었죠..그의 책들은 SF소설보다 더욱 흥미로운 허구,,또는 모든 지구의 역사의 의문점들을
일거에 해소할수 있는 역사 이론이라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정말이지..반박 할수도 없는게..
수메르의 점토판에 상세히 설명되어져 있는 신화들,,,너무나 자세하고 명확하게 제시되어 있어
서 반문을 허용치 않는것이죠. 예를들어 그들은 태양계의 모든 행성들을 알고 있었습니다.
18세기 이후에나 토성 뒤쪽의 행성들을 발견 했는데 말이죠. 그리고 태초엔 행성의
배치가 지금과는 달랐다는것도 말해주고 있습니다. 달은 행성이었으며. 원래는 거대했던
지구가(초기 유동상태) 대충돌로 인해 깨어졌다는것, 그리고 큰 조각은 태양계밖으로
튕겨져 나갔지만 여전히 태양계 주위를 3600년을 주기로 돌고 있다는것, 그리고 그것이
신들의 원래 고향이라는것,,,지금도 그 대충돌의 흔적이 남아있죠...화성과 목성사이에
거대한 소행성대가 있습니다..학자들은 소행성대가 무슨 이유로 생성되었는지
의아해했지만 수메르 신화에서는 명확히 말해주고 있죠, 수메르 신화..알면 알수록
신기하고도 미스테리하고 재미있는 면이 많습니다.
마지막은 보너스짤~~
모르간 듀블레드...혹시나 이름 물어보실까봐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