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잠을 자고 있다. 자신의 침대 위에서 이불을 감아 안고 편안하게 잔다. 조금 더
가까이에서 살펴보자. 그는 깊은 잠에 빠진 것은 아닌 듯하다. 분명 잘 때는 반듯한 자세로
이불을 덮고서 잠이 들었을 것이다. 그 남자의 눈을 들여다보면 감긴 눈 속의 눈동자가
움직이고 있다. 좌우로 일정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돼지들이 많이 보인다. 돼지들은 늘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살찐 몸덩이,
지저분한 몸, 그리고 그 특유의 돼지코도. 남자는 그 돼지들을 지켜보고 있다. 이 많은
돼지들이 어디서 왔을까하고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순간 돼지들이 자신을 향해 달려
온다. 멧돼지는 아니지만 많은 돼지들이 자신을 향해 온다고 생각해 본다면 그리 정겨운
모습은 아닐 것이다. 남자는 돼지들에게서 도망을 치려 해 보지만 이내 돼지들에게 묻혀
버리고 만다.
‘헉!’
생생한 꿈이다. 평소에는 꿈을 잘 꾸지도 않거니와 꿈을 꿔도 항상 개꿈만 꾸었는데
이번 꿈은 실제로 일어난 일처럼 생생히 머릿속에 남아있다.
“휴, 꿈이었구나.”
남자는 꿈이라는 것을 알고는 머리맡에 놓여있는 시계부터 바라본다. 7시 5분전.
자명종 시계가 울리기 딱 5분 전이다. 남자는 늘 아침의 자명종 소리를 싫어했다.
자신의 단잠을 늘 방해하는 소리.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해서라도 일어나는 것이
이 각박한 세상을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렇게 아침에 깨는 것도 나쁘지 않네.’
회사 일에 스트레스를 받고 늦은 업무까지 해야 하는 처지의 사원인지라 피곤함은
늘 그를 따라 다녔고 자명종소리가 늘 그를 깨웠었다. 꿈 때문이라지만 이렇게 깨어지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스스로 일어나니 왠지 몸도 가볍고 기분도 좋았다.
평소 같았으면 졸린 눈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샤워하러 갔겠지만 오늘만은 다르다.
몸도 가볍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샤워로 하루를 시작한다.
‘내가 돼지꿈을 꾸다니.’
샤워를 하면서도 생생히 남아 있는 꿈 생각을 한다. 그 남자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는
돼지는 재물을 의미한다. 돼지꿈을 꾼 사람이 복권에 당첨 되었다는 소식도 종종 들려온다.
‘이왕 꿈도 꿨으니 복권이나 한 번 사봐?’
남자는 살아오면서 당첨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다못해 작은 경품도 타 본 적이 없었다.
그런 그는 복권을 사봐야 담배 값만 버린다고 생각하고 한 번도 사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가 꾼 꿈은 돼지꿈이 아닌가. 한 번 도전해볼 가치가 있어 보였다.
혼자 사는 그는 간단히 토스트와 우유로 아침을 때우고 옷을 차려입고 거리로 나섰다.
화요일 아침의 출근길은 사람들로 붐빈다. 하지만 밝지 않은 표정들이 더 많다.
‘그냥 먼저 보이는 복권집에 가서 몇 장 사봐야겠어.’
복권을 사 본 적이 없는 그는 무얼 어떻게 사야 할 지 몰랐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고 평소에는 신경도 안 쓰던 복권을 파는 가게가 왜 이렇게 안 보이는지.
그의 눈에는 복권집은 눈에 안 들어오고 허름한 차림의 남자가 눈에 들어온다.
분명 사람이 많은 출근시간에 잔돈이라도 구걸하려는 남자임이 분명하다.
얼굴은 꾀죄죄하고 수염은 아무렇게나 자라있다. 옷 역시 때가 타서 새카맣고 지저분하다.
그냥 지나가려는데 그 중년의 남자가 올려보는 바람에 둘은 눈을 마주친다.
‘잔돈도 없는데.’
분명 자신에게 돈을 바라는 눈빛일거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잔돈은 없고 그냥
지나가려는데 앉아있던 남자가 입을 연다.
“저기...”
“아, 죄송한데 제가 잔돈이 없어서요.”
“그게 아니라...”
“예?”
보통은 잔돈이 없다고 하면 그냥 말없이 바닥을 바라보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그들은
강도가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이 남자는 무언가 할 말이 남은 듯하다.
“혹시 복권에 관심 있으세요?”
“뭐라고요?”
남자는 분명 복권이라고 했다. 걸음을 멈춘 남자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막상 자신이 사려고 하는 것이 복권인데 처음 본 걸인이 그 얘기를 하니 말이다.
“제가 복권을 두 장 가지고 있거든요. 혹시 살 생각 있습니까?”
우두커니 서있던 남자는 막상 ‘네’라는 대답을 선뜻 할 수가 없었다. 분명 자신이
사고 싶어 하는 것은 복권이 맞지만 상황이 우습지 않은가. 걸인에게 복권을 사다니.
“그걸 왜 팔려고 하는 거죠?”
“생각해 보세요. 제가 이 복권을 긁어서 당첨이 안 되면 쓰레기가 되겠죠. 하지만
이것을 팔면 그 돈으로 며칠 동안 끼니를 떼울 수 있으니까요.”
“그 복권을 긁어서 당첨 될 수도 있잖아요.”
“복권에 당첨될 확률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세요? 벼락 맞을 확률이나 될까요?
복권이란 참 우스운 겁니다. 나라에서 서민을 피를 빨아먹는 하나의 방법이죠.
복권을 사는 사람들은 사면서 세금도 같이 내겠죠. 마치 담배값에 세금이 포함된 것처럼요.
복권은 누가 삽니까? 삼성그룹 회장이? 연봉 몇 억 되는 운동선수가? 아니죠. 돈 없는
서민들이 대박을 노리고 복권을 사겠죠. 이 나라는 이렇게 밑바닥에서도 세금을 거두죠.
저는 단지 낮은 확률의 대박보다는 확실한 끼니 값이 더 좋습니다.”
“그럼 왜 산거죠?”
“산 게 아니라 생긴 거죠.”
그 말을 들으면서 서 있던 남자는 당황스러웠다. 이건 마치 ‘도를 믿으십니까?’를 말하는
사람과 마주한 것 같았다. 혹은 하다못해 특정종교의 전도자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그것도 길거리에서 만난 걸인에게 이런 얘기를 들을 줄이야. 게다가 그는 복권을 팔
태도가 안 되어 있었다. 그런 말을 듣고는 누가 복권을 사고 싶겠는가.
“그 복권, 제가 살게요. 얼마를 드리면 돼죠?”
하지만 남자는 복권을 사겠다고 제안했다. 시계를 본 그는 출근 시간이 가까워져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 전에 복권을 살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이 복권을
사줌으로 인해서 남자가 끼니를 떼울 수 있으니 좋은 일도 하는 겸.
“장당 만원해서 이만원이요.”
즉석복권이 비싸봐야 몇 천원하겠냐마는 잠깐 얘기를 나누고 좋은 일 하자는 생각에
지갑에서 이만원을 꺼내서 건네준다.
“그럼 전 출근해야 돼서.”
“잠깐만요.”
몸을 돌리려는데 다시 말을 걸어온다.
“더 하실 얘기라도?”
“복권은 긁기 전에 복권이지 긁고 나면 되돌릴 수 없어요. 그리고 혹시 긁는다면 한 장만
긁으세요. 마지막으로 덕분에 아침밥 잘 먹겠네요”
“아, 뭘요. 그럼.”
걸인은 아침식사를 하러가는 듯 일어섰고 복권을 손에 쥔 남자도 발길을 옮기기 시작했다.
‘요게 과연 당첨이 될까?’
당장은 동전이 없어서 복권을 일단 지갑에 넣으며 회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회사 업무를 보면서도 복권 생각이 자꾸 났다. 동전이야 서랍을 뒤져서 찾거나 언제든지
빌려서라도 복권을 긁을 수 있겠지만 복권을 건네주던 아저씨의 말이 생각이 났다.
‘복권은 긁기 전에 복권이지 긁고 나면 되돌릴 수 없어요.’
“긁으란 거야 말라는 거야.”
자꾸 지갑만 만지작 거리냐는 상사의 말에 다시 업무를 보기 시작했다.
오전 업무를 끝낸 그는 점심을 먹고서 혼자서 휴게실에서 다시 복권을 꺼내어 살펴본다.
복권 판매기에서 보던 여느 복권과 똑같이 생겼다. 최대 당첨금 1억이라는 문구가 있고
회색의 긁는 부분이 있다.
‘에라이 긁어보자.’
아까 서랍에서 찾은 동전으로 회색의 긁는 부분을 긁기 시작한다.
제일 윗부분을 긁으니 당첨숫자 3이라는 숫자가 드러난다. 이제까지 참은 것도 많이
참았다고 생각하면서 남은 부분을 한꺼번에 긁어서 벗겨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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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첨이다.’
분명 당첨숫자 3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당첨금액 1억원이라는 글자도 또렷이 보였다.
뒷면의 복권 설명서에 10만원이상 지급은행명이 적혀있었다. 그것도 사내에 있는 은행.
시간을 보니 12시 40분이 다되어 가고 있었다. 1시에 업무를 시작하니 은행에 갔다 오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는 떨리는 마음으로 은행으로 향했다.
‘1억이라니.’
그는 복권에 당첨 된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그의 연봉이 2000만원이 채 못 되니
5년을 돈 안 쓰고 모아도 1억을 모을 수는 없었다.
3분 정도 지나서 은행에 도착했지만 번호표를 뽑아서 순서를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을
깜빡하고 있었다.
‘안되겠다.’
그는 사무실로 돌아가 조퇴를 허락 맡았다. 일이 있다는 핑계를 대고 욕을 먹기는 했지만.
흥분된 마음으로 도저히 손에 일이 잡힐 것 같지 않았다. 1억이 적은 돈은 아니니까.
은행에서 계좌로 당첨금을 입금하고는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이런 행운이 올 줄이야.
하지만 막상 큰돈이 생겼는데 당장 할 일은 없었다. 10억 정도 당첨 되었으면 회사를
그만둘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저녁에 친구놈들 나이트로 불러서 방 잡아서 실컷 놀아야겠군.’
시간을 보니 이제 2시였다. 친구들 일마치기에는 한창 이른 시간인 것이다.
‘아 그때까지 뭐하지.’
당장 푼돈이나 쓰고 돌아다니려고 현금인출기로 100만원을 뽑았다. 지갑에 들어가기에는
많은 양이었다. 자신의 지갑은 그 돈은 담기에는 작았다.
‘지갑이나 새로 사자.’
백화점에 들러서 50만원짜리 지갑을 사고 거기에 나머지 50만원을 넣었다. 그리고 그 전
지갑에 있던 것을 새 지갑으로 옮기다가 남은 복권 한 장을 발견했다.
‘아 복권 한 장이 더 있었지.’
생각을 안 하고 있다가 문득 복권을 보니 이것도 당첨될까하는 생각과 호기심으로 긁어보고
싶은 마음이 요동을 쳤다. 그리고는 또 다시 그 아저씨의 말이 생각났다.
‘혹시 긁는다면 한 장만 긁으세요.’
‘왜 한 장만 긁으라는 거야. 그 아저씨도 참 바보같애. 이거 긁었으면 거지 생활 끝인데.’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법. 이 복권도 왠지 당첨 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돈이라면 아무리 많아도 더 가지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심. 그는 그 복권을 긁기로 결심을
하고 동전을 찾아봤지만 주머니에는 없었다.
‘아 동전이 없구나.’
순간 제일 먼저 눈에 들어 온 것은 돈 통을 앞에 두고 쪼그려 앉아있는 할머니였다.
“저기 할머니, 제가 만원 드릴 테니 동전 하나만 가져갈게요.”
할머니는 이상한 사람 다 보겠다는 눈으로 멀뚱멀뚱 쳐다보고 남자는 동전하나를 집어간다.
남자는 많이 답답했는지 복권을 단숨에 전부 긁어 버린다.
‘뭐지?’
복권을 다 긁었는데 아무런 숫자도 적혀 있지 않았다. 아무리 자세히 살펴봐도 다 긁었는데
아무것도 없는 이상한 복권이었다. 다른 부분은 다 똑같은데 긁은 부분에만 아무런 숫자도
볼 수가 없었다.
‘가짜복권인가? 아니면 불량? 뭐야 싱겁게 치.’
실망감과 허무함을 안고 돌아서는데 커다란 차량이 자신을 향해 달려들었다.
ㅇㅇ축산이라는 마크를 달고 있는 자동차였는데 남자를 치고는 가로수를 들이 받고서
전복되었다. 남자는 돼지들과 함께 피를 흘렸다.
그리고 남자의 손에 쥐어져 있던 복권에 숫자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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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권에는 1 0 1 4 1 6 2 7 이라는 숫자가 선명하게 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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