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인종 때 새로 현감이 부임해 왔는데 며칠 후 한 촌로가 동헌 앞에 엎드려 곡을 하는 것이었다.
저는 이곳에서 약 십리가량 되는 장터에서 여관을 경영하는 자입니다.
마흔이 넘도록 자식을 보지 못하다가 무슨 은혜인지 다 늙어서 아들 사형제를 얻었습니다.
그 사형제를 키우면서 입속의 밥이라도 내주었고 창자 속의 쓴 물까지 남김없이 쏟아부은 것은 하늘과 땅이 아는 사실입니다.
다들 씩씩하고 잘생긴 청년으로 자라 제 눈가에 기쁨의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얼마전 이름모를 병으로 하나씩 죽기 시작하더니 불과 수일 새에 모두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으니
세상에 이런 변고가 있을 수 있으며 하늘의 무심함이 이에 더 할 수 있겠습니까?
사위가 캄캄하고 슬픔이 극에 달해 죽음만을 생각하다가 하도 원통하여 이렇게 현명하신 원님께 호소하는 것입니다. 하고 촌로는 돌아갔다.
원님은 한참 동안 깊이 생각하더니 사령을 불러 일렀다.
오늘밤 성문밖 행길을 지키고 있으면 삼경이 못 되어 꽃가마가 지날 것이니 불문곡직 붙잡아 동헌 마당에 대령하라.
그런데 사령에게 이끌려온, 보기에도 황홀한 꽃가마에서 나온 것은 위풍이 당당하고 몸집이 장대하여 비범해 보이는 인물이었다.
원님이 정중히 맞아들인 다음 위엄을 갖추어 말하기를,
그대는 염라대왕으로서 몹쓸 사람을 벌해야 하거늘 왜 억울한 사람을 잡아가는 것인가.
염라대왕은 그 말씀이 지당하니 노인 집 마당 밑을 파보시오, 라고 대답했다.
염라대왕의 말을 듣은 원님은 사령을 시켜 노인 집 마당을 파내려가자 물이 흐르고 있었고 그위에 썩지 않은 시체 네 구가 눈을 부릅뜬 채 둥둥 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이십여 년 전에 죽은 자들이었다.
과거에 날이 저물어 노인의 여관에 머물다가 재물을 탐낸 노인이 물속에 빠뜨려서 죽임을 당한 것이었다.
염라대왕이 이르기를 노인의 네 아들은 모두 그때 죽은 사람들의 원귀로서 원수를 갚기 위해 차례차례 아들로 태어났다가 이제 원수 갚음을 마친 것이오.라고 하였다.
품안에서 재롱을 부리며 삶의 기쁨을 알려준 사랑스러운 자식들이 사실은 과거의 끔찍한 비밀을 증거하기 위해 하루하루 자라고 있는 귀신들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왜 죽은자들은 복수의 방법으로 하필 원수의 아들이 되는 것을 택했을까.
일단 복수의 내용은 잔혹하거나 고생스럽지 않았다. 단지 오랜 시간에 걸쳐 지극한 사랑을 얻도록 한 다음 한순간 그것을 잃게 만든 것 뿐이었다.
가장 처절한 복수의 수단이 될만큼 사랑의 상실이 고통스럽다는 뜻일까. 아니면 자식이란 언젠가는 자기 부정을 통해 부모에게 치명적 보복을 가할 수 있는 존재라는 암시일까.
-어디 책에서 읽은 거구요, 전라도 고창군 민담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