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보고싶어요.

노원구삐약이 작성일 12.07.08 00:4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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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중반 여자사람입니다.

사실 짱공유에는 자주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가끔 와도 웃긴 게시물만 보고 가기 일쑤였는데

오늘 왠지 갑자기 무게 글을 읽다가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 몇자 적어봅니다.

사실 무서운 이야기는 아니고, 그냥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보고픈 마음 따뜻해지는(?) 내용이에요 ㅋㅋ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께서 맞벌이를 하셔서 저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손에서 자랐습니다.

외가쪽에서는 제가 첫 손녀였기에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사랑이 각별했어요.

많은 사랑을 받은만큼 저 또한 할아버지 할머니에 대한 사랑이 컸구요.

할머니는 다혈질이신데다가 감정을 밖으로 표출하시는 걸 좋아하시는 반면,

할아버지는 조선시대로 치면 선비같은 스타일의 분이셨어요.

싫은 일을 하실 때에도 절대 내색하지 않으시고, 싫은 소리 안 하시고, 본인이 손해보시면서도 남에게 좋은 일 하시는..


그러다보니 할아버지께서 속병이 생기셨나봐요.

간암으로 병원에 오래 입원해계시다가 결국 저 초등학교 3학년 때 돌아가시게 되었어요.


저는 정말 세상이 없어진 듯 울었습니다.

관에 들어가계신 할아버지가 어찌 그리 작으신지.. 어린마음에도 그 모습이 참 안쓰럽게까지 보이더라구요.

엄마에게 할아버지 빨리 저기서 꺼내라며 엉엉 울었어요.


그리고 49제 때, 저는 조금은 진정된 마음으로 절에 갔습니다. 저희 외가가 불교라서 절에서 제를 지냈거든요.

할아버지 좋은 곳으로 가시라고, 여기서 나쁜 것들은 병으로 다 버리고 가셨으니까 거기서는 좋은 생각만 하시라고,

절을 열심히 열심히 하다가 문득 앞을 보았는데..

할아버지 영정사진이 저를 보고 인자하게 웃으시는거에요.

분명히 봤어요, 사진의 입꼬리가 올라가며 웃으시는 그 모습을...

아..할아버지 잘 가고 계시겠구나..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러고나서 한 이삼년정도 흘렀을까요.

엄마와 외할머니는 할아버지가 한 번을 꿈에 나오지를 않는다고 하셨는데,

할아버지가 본인의 아내도, 첫째딸도 아닌 저를 가장 먼저 찾아오셨더라구요.


꿈에서 날씨가 아주 좋은 날 할아버지랑 저랑 손을 잡고 산에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산 아래부터 걷고있었어요.

아스팔트로 포장된 길이 산 입구까지 이어져있었고,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산 들어갈 때 보면 아스팔트 포장이 점점 흙길로 바뀌잖아요?

꿈에서는 그게 아니라 자로 선을 그은 것처럼 산 입구까지는 딱 아스팔트길이고 그 이후에는 흙길이었어요.

산에 들어가면서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었는데, 할아버지랑 오랜만에 둘이 산책한다는 생각에 개의치 않았어요.


낮동안 내내 할아버지랑 산에서 놀다가 저녁즈음이 되어 산을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해는 이미 서산으로 지고있었고, 하늘은 어스름해져있었어요.

저는 여전히 할아버지 손을 잡은 채 얼른 집에가서 저녁을 먹자고했고, 할아버지는 대답은 않으시고 웃고계셨습니다.


그렇게 다시 산 입구로 돌아와서 제가 아스팔트에 오른쪽 발을 딱 디디자마자

할아버지가 흙길쪽에 우뚝 서서 안 움직이시는겁니다.

저는 다시 오른쪽발을 들여놓고 할아버지를 올려다보며 할아버지, 왜 안가~ 빨리가서 밥 먹어야지~하고

천진난만하게 할아버지 팔을 잡아 끌며 다시 아스팔트쪽으로 나갔는데, 할아버지는 여전히 요지부동이셨어요.


할아버지는 저를 보시며 예의 그 인자한 미소로 

"할아버지는 여기서 못나가. 얼른 가서 저녁먹거라."

하시는겁니다.

제가 다시 흙길쪽으로 들어가려하자 

"너는 여기 들어오면 안 돼. 얼른 집으로 가거라. 할아버지가 여기서 널 지켜볼게."

하시며 저에게 손을 흔들어주셨어요.

저는 왠지 마음이 편해져서 저도 할아버지께 손을 흔들고 돌아왔지요. 돌아오는 길에 뒤를 돌아보니

해가 할아버지의 모습을 하고 있었어요. 할아버지는 해가 되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저를 지켜봐주셨구요..


물론 잠에서 깨자마자 할아버지가 너무너무 보고싶어 또 엄마를 붙잡고 엉엉 울었습니다.

지금도 엉엉 울고있네요 눈물콧물 흘리며..ㅠㅠ



그리고 또 몇 년 뒤, 꿈에서 할아버지랑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있었어요.

기차 안에는 역시 사람이 하나도 없었고 의자도 없는 그런 기차였어요.

의자 대신에 창가에 엉덩이만 걸칠 수 있도록 바가 설치되어있었는데,

저랑 할아버지는 그 바에 기대서 창 밖을 바라보며 서로 대화도 한 마디 안 하고 가고 있었어요.


꿈에서는 그냥 알게되는 그런 거 있잖아요.

그냥 할아버지가 골프를 치러 가시는 데 제가 바래다드리는 중이라는걸 알고있었어요.

할아버지는 골프를 즐기시지 않는 게 아니라 아예 쳐보신 적이 없는데..

그저 할아버지랑 나란히 엉덩이걸치고 앉아서 창 밖에 노랗게 익은 벼가 따듯한 햇살 아래서 바람에 살랑거리는 것을 보며

그렇게 따듯하고 아련하게 계속 기차만 타는 꿈이었어요.


정말 신기한 건, 제가 이 꿈이야기를 엄마랑 할머니한테밖에 안 했고, 두 분도 아무한테도 얘기 안 하셨다 하는데,

제가 그 꿈을 꾸고 얼마 후에 영국에 이민가있는 이종사촌 동생이 할아버지랑 골프를 치는 꿈을 꿨다고 하더라구요.

할아버지는 생전 골프와는 연이 없으신 분이었는데 말이에요.



그 이후로 지금까지 할아버지가 꿈에 나오거나 하지는 않지만 항상 보고계신다고 생각하면서 살고있어요 ㅎㅎ

꿈으로 뵌 할아버지가 정장을 쫙 빼입으신 채로 혈색도 좋으시고 표정도 좋으시고 상당히 정정해보이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글로 쓰니까 정말 더 보고싶네요..

다 쓰고나니 초등학생때 귀신(?)본 이야기가 생각나는데, 오늘은 이것만 쓰고 잘래요. 글 쓰면서 너무 울었더니 ㅠㅠ..

지극히 개인적이고 무섭지도 않은 이야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 굿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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