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고양이
"사람? 사람이라구? 그...그건 나도 생각 못했던건데..."
나의 물음에 전상병은 적잖게 당황하는 것 같았다.
멍하니 나를 주시하더니 계속 무언가 머릿속에서 기억을 떠올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뭔가가 떠올랐는지 갑자기 두 눈을 부릅뜨고는 나에게 가느다란 숨소리로 외쳤다.
"이럴수가!!!!!!!! 왜 미처 그 생각을 못했지?"
전상병은 놀랍다는 듯 손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그의 행동을 바라보며 나 또한 놀라고 있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와....씨,발 이런 반전이 있었네..."
갑자기 전상병이 초소 뒷편에 놓아두었던 소총을 챙겨들었다.
비록 실탄이 장전되어 있지 않지만, 실탄이 들어 있는 탄창이 끼워져있기 때문에 노리쇠만 후퇴전진시키면 언제든 총을 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지금까지 들었던 얘기보다 나는 지금의 전상병이 더 무서웠다.
"도대체..왜 그러십니까?"
전상병은 대답을 회피한 채 계속해서 뭔가 무슨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그 순간 근무 교대 시간이 되었는지 저 멀리서 작은 손전등 불빛이 다가오고 있었다.
"너...오늘 한 얘기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라"
"......?"
"아무에게도 이 얘기하지마. 절대로 입 열지마라."
나는 묵언의 약속으로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러나 내 머릿속에서는 또 다시 욕설이 튀어나왔다.
'아..씨,발놈. 그럼 왜 처음부터 말을 꺼낸거야?'
취사병 도우미는 좋은 점이 하나 있다. 공식적인 훈련 외에 부대 자체 훈련과 작업에서 모두 열외된다.
그러한 좋은 점이 있음에도 나는 김병장과 함께 하는 일주일의 시간이 하루빨리 지나가기를 소원했다.
아침 배식이 끝나고 가스조리기를 열심히 닦고 있는 나에게 김병장이 말을 걸었다.
"니 나한테 할 말 있냐?"
김병장은 내가 힐끔거리며 자신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것 같았다.
김병장은 나에게 시선을 두지 않은 채, 옆에서 과도를 돌리며 사과 하나를 깍아내고 있었다.
유난히 그 과도가 눈에 크게 들어왔다.
"없습니다."
"그런데 왜 내 눈치를 자꾸 보냐?"
"눈치 보는 것 아닙니다."
김병장은 껍질을 벗겨낸 사과를 과도로 한조각 잘라내더니 입 속으로 집어넣었다.
우걱거리며 사과를 몇 번 씹더니 눈을 치켜 뜨며 나에게 다시 물었다.
"너 어젯밤 어디 근무였냐?"
"..5초소였습니다."
"누구하고 섰어?"
"전대웅 상병입니다."
"전대웅?"
"예. 그렇습니다."
"그 자식이 무슨 얘기 안하든?"
"무슨 얘기 말입니까?"
갑자기 우걱거리는 소리가 멈추었다.
그와 동시에 나의 수세미질도 멈추었다.
"나에 대해서 무슨 얘기 한 적 없냐고?"
순간 등골을 따라 식은 땀이 한줄기가 흘러내렸다.
"아..아무 얘기 없었습니다."
김병장이 얼마나 칼을 다루는 솜씨가 능숙한지를 지금도 알아챌 수 있었다.
지금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 순간에도 그의 손에 들려진 과도는 손가락 사이를 셀수없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김병장은 나를 떠보는것 같았다.
왜 전상병을 의식하는지는 모르지만, 뭔가 감추고 싶은 비밀이 있는게 분명했다.
그러나 전상병으로부터 들은 얘기만으로도 나는 지금 김병장의 많은 것을 알고 있는게 사실이다.
"너 어제부터 전대웅하고 같은 근무조에 들어간거냐?"
김병장은 다시 한번 사과 한조각을 입에 처넣더니 우걱거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내 수세미질도 다시 시작되었다.
"예....그렇습니다."
"당분간 전대웅하고 근무 계속 같이 서겠네."
"......."
"전대웅이 사단장 빽이다. 너무 많은 말 하지 마라."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전대웅 그 자식, 사단장의 먼 조카뻘되는 사이랜다. 말 조심하라고."
처음 들은 사실이다. 전상병이 그런 사람이었다니...그런데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하는걸까?
이런 저런 복잡한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고 있을 때 김병장이 입을 열었다.
"니 오늘 나하고 할 일이 하나 있다."
"무슨 일 말입니까?"
"고양이 좀 잡자."
헉....난 순간 숨이 턱 막혀왔다. 올 것이 온 것 같았다.
".......고..고양이 말입니까?"
"왜? 싫으냐?"
"그..그게 아니라..."
"넌 그냥 고양이를 잡아. 뒷처리는 내가 할테니까"
"그...그런데 고양이를 왜 자꾸 죽이시는겁니까?"
순간 다시한번 김병장의 사과 씹는 소리가 멈추었다.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다.
김병장의 오른손에서 시퍼렇게 날이선 칼이 춤을 추듯 돌고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후회스러움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김병장은 나즈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곧 장마철이다. 게다가 오늘 밤에 비가 온다고 했다. 지금 잡지 않으면 밤에 취사장까지 몰려 들어와.
게다가 장마철 내내 고양이 울음소리에 시달려야 돼. 너 산속에서 비오는 날 고양이 울음소리 들어봤냐?"
"......."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가로저었다.
"애기 울음 소리하고 똑같지. 응애응애거리며 울어. 정말 똑같다니까.
비오는 날 새벽에 홀로 취사장에 나와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미쳐버릴 것 같다.
모두 다 잡아내서 국물을 내버리고 싶어진다니까...."
이미 국물을 냈을지도 모른다. 전상병의 얘기가 사실이라면 충분히 그러거도 남을 상황이다.
어쩌면 부대원들은 김병장이 만든 특이한 식재료의 국물맛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자 새벽 근무때처럼 다시 한번 속이 울렁거렸다.
"그럼 제가 뭘하면 됩니까?"
"잔밥통으로 드나드는 개구멍 몇개 있지?"
"예"
"거기에 철사줄로 올가미를 열개 정도 만들어서 설치해놔."
"그냥 약을 놓으면 되지 않습니까?"
"안돼. 약을 놓았다가 약묻은 입으로 우리가 먹는 음식이라도 건드리는 날엔 우리가 거품물고 쓰러지는 수가 있어."
나는 그것보다도 김병장이 얼마나 고양이를 잔인한 방법으로 죽일까하는 걱정이 먼저 앞섰다.
점심 배식이 끝나고 식당 청소를 마친 후 나는 바로 올가미 작업에 들어갔다.
오늘도 역시나 대여섯마리의 고양이들이 콘크리트로 만든 잔밥통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간혹 몇 마리는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감시하듯 지켜보고 있었다.
이 올가미가 곧 자신들의 사형도구가 될거라는 것을 알기나 하는지 태연스럽게 나의 작업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고양이가 잔밥통으로 드나드는 군데군데 분포한 개구멍에 작은 철사 올가미를 설치했다.
밤 사이에 고양이 몇마리가 걸려들것이다.
좋지 않은 예감이 온 몸을 감쌌다.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저 멀리서 불길한 구름떼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저녁에 들어서자 하늘이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비가 곧 쏟아질 것 같아 야간 근무자들은 판초우의를 챙기기 시작했다.
점호시간이 끝남과 동시에 약속이나 한 듯이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대지에 쌀알이 쏟아지는 듯한 소리가 여기저기서 넘쳐 흘렀다.
12시 근무인 전상병과 나는 말없이 5초소 근무지를 향했다.
"도대체 저기 5초소가 왜 있는겁니까?"
"알고 싶냐?"
"어젯밤 저에게 말을 꺼내지 않으셨습니까?"
"................."
전상병은 우의속에 감춰진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채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굵은 빗줄기가 멈추지 않고 쏟아지자 우의를 뒤집어쓴 몸에 습기가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정한수란 일병이 누굽니까?"
전상병은 여전히 우의 속에 얼굴을 감춘 채 조용히 입을 열었다.
"우리 부대에 없어."
"전출갔습니까? 아니면 의가사제대라도..."
"....죽었어.."
"예?"
"죽었다구...."
"어..어떻게 죽었습니까?"
"자살했어."
나는 놀라움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왜..자살했습니까?"
"부적을 누가 훔쳐갔어."
"누가 말입니까?"
"그거야 나도 모르지. 그걸 알았으면 정한수가 죽게 내버려두지 않았을테니까."
"그깟 부적이 없어졌다고 자살을 한 겁니까?"
"쏟아져 나온 귀신이 어디에 붙었겠냐? 지 입으로도 자기는 귀신이 잘 붙는 몸이라고 했는데.
미,친놈처럼 하루종일 찾아 헤맸지. 그런데 어느 날 밤 사이에 정한수가 없어졌어.
인원 점검을 하던 내무반 불침번이 밤 사이에 정한수가 없어진 것을 보고 보고했지.
한밤에 전 부대원들이 일어나 정한수를 찾아나섰어. 그러다 결국 목매단 시체로 발견되었어."
나는 설마하는 마음에 내 생각이 맞지 않기를 바라며 전상병에게 물었다.
"어...어디서 죽었습니까?"
나의 물음에 전상병이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잠시 나를 응시하던 머리를 움직여 어딘가를 가리켰다.
내 예상대로 5초소였다.
순간 나도 모르게 다리가 후달렸다.
나는 잠시 마른 침을 삼켰다.
"귀신이 쏟아져 나왔다는데....그것도 사람이 자살한 자리에 왜 초소를 만든겁니까?"
"근무 시간 늦는다. 빨리 가자."
전상병은 대답을 회피한 채 아무 일도 아니란 듯 걸음을 재촉했다.
5초소가 십수미터까지 다가오자 이전 근무자의 수하소리가 들려왔다.
"손들어..움직이면 쏜다. 벽돌!!"
"......."
그런데 왠일인지 전상병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서서 암구호에 응답하지 않았다.
"벽돌!!"
"전상병님..."
"벽돌!!"
나는 급한 마음에 대신 암구호에 응답했다.
"하늘!!"
수하에 불만이 있었는지 전 근무자 사수가 손전등을 비추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우리 또한 그에게 손전등을 비추었다.
전대웅 상병 동기인 박상병이었다.
"대답 빨리 안하냐?"
박상병의 질책에도 전상병은 아무런 응대를 하지 않았다.
전상병의 응답이 없자 박상병은 나에게 시선을 돌려 물었다.
"취사장 쪽에서 움직이던 것 너희들이냐?"
"무슨 말씀이십니까?"
"뭔지는 잘 모르겠는데 누군가 돌아다니고 있어."
"누...누가 말입니까?"
"씨,발..나도 모르니까 물어본 것 아냐!!"
두려움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로 화가 나서인지 모르게 박상병은 짜증을 냈다.
박상병의 부사수인 조이병은 이미 알지 못하는 어떤 공포에 시달린듯한 표정이었다.
초소 천장을 뚫어버릴 기세로 빗줄기가 멈추지 않고 쏟아졌다.
조금전부터 내 뒷편에 앉아 아무 말없이 입을 닫고 있는 전상병이 너무나도 부담스러웠다.
"전상병님....어디 아프십니까?"
내 말은 듣고 있었는지 그가 입을 열었다.
"다들 알고 있는데 모른척 할뿐이지."
"뭐...뭐가 말입니까?"
"이맘때쯤이면 비오는 밤마다 돌아다니는 그 정체가 뭔지를...."
난 전상병이 말하지 않아도 그가 말하는 그 정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싸늘한 한기가 내 온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그 놈을 잡기 위해 이 5초소가 생긴거야."
5: 사건의 시작
그...그 놈이 누굽니까?"
예의상 전상병에게 질문을 했지만 여전히 나는 전상병의 답변이 나의 생각과 일치하지 않기를 바랬다.
그러나 곧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나의 기대를 저버렸다.
"너도 알잖아. 누구일지."
나는 마른 침을 한번 삼키고는 다시 한 번 물었다.
"자살했다는 정..정한수라는 사람 말입니까?"
"......"
초소 천장을 뚫어버릴 듯한 기세의 빗방울 소리가 전상병의 대답소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그...그 사람인지 어떻게 압니까? 누가 봤습니까?"
"......"
내 뒷편에 앉아 뭔가를 하고 있는지 모를 전상병은 나의 물음에 입을 열지 않았다.
"전상병님..."
나는 조심스레 그를 불렀다.
"난 알고 있어."
"...예?"
"............"
나는 다시 한번 마른 침을 삼켰다.
"뭐..뭘 말입니까?"
그러나 전상병은 대답을 더 이상 하지 않았고, 우리 둘은 깊은 침묵속에 오랫동안 빠져들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었을까?
멍하니 여러가지 생각을 하다가 깨닫지 못한 것이 눈 앞에 나타났다.
십수미터 앞 커다란 아카시 나무 옆에 누군가가 판초우의를 뒤집어 쓴 채 어둠속에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누군가 순찰중이라면 손정등도 켜지 않은 채 저 어둠속에서 가만히 서 있지는 않으리라.
게다가 지금은 근무 교대시간도 아니다.
"저....전상병님..."
"...."
"누...누가 앞에 있습니다."
어떻게 이 어둠속에서 그것도 빗줄기가 쏟아지는 곳에서 그가 보이는지 모르지만 여하튼 나는 그를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길게 늘여진 판초우의가 거의 땅에 닿을 정도로 작은 키였고, 나를 정면으로 바라고 보고 있었다.
내가 전상병을 다시 부르려고 하자 그는 일어서서 이미 내 곁에 서 있었다.
그러나 전상병은 그 어둠속의 형상을 찾지 못하는 듯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렸다.
순간 서서히 눈 앞에 나타난 어둠 속의 사내가 우리를 향해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밖으로 나가 수하를 하기 위해 초소문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러자 전상병이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제지했다.
"나가지마..."
"예?"
"모른 척 해"
"무...무슨 말씀이십니까?"
"쳐다보지마....눈 감어."
"도..도대체 무슨 말....."
"그냥 내 말 들어!! 씨,발놈아!!"
이미 전상병은 무언가 알 수 없는 공포에 질려 있었다.
전상병이 왜 공포스러워하는지 그의 표정을 보고나서야 나도 깨달았다.
사람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총을 쥐고 있는 손의 악력만큼이나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설마 저 앞에 서 있는 정체가 전상병이 말한 그것이란 말인가?
삭신이 저리고 온 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알 수 없는 정체가 서서히 내 코 앞까지 도달하였음을 느낄 수 있었다.
싸늘한 한기가 주변을 감사고 있었다.
몇 십초가 흘렀을까?
나는 질끈 감았던 눈꺼풀의 힘을 뺐다.
그리고 실눈을 조심스럽게 뜬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아직도 전상병은 두 눈을 부릅뜬 채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전..전상병님...지금 무슨 일입니까?"
"발 봤어?"
"예?"
"다가올 때 발이 보였냐구? 걸을 때 판초우의 펄럭이는 것 봤어?"
"그게...저..."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그이 발을 보지 못했다. 정말로 보지 못했다. 머리가 핑 도는 듯 아찔해졌다.
그가 키가 작아서 판초우의가 거의 땅에 닿을 듯 스친 것이 아니었다.
그는 걷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줄을 타고 내려오듯 나를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미,친듯이 왼손으로 얼굴을 비벼댔다. 그리고 답을 했다.
"못 봤습니다."
나의 대답에 전상병을 고개를 돌려 나에게 물었다.
"너 귀신 볼 줄 알아?"
"제..제가 어떻게 귀신을 봅니까?"
"지금 니가 본거잖아."
헛것을 봤다고 말해야 하는데, 거짓말이었다고 말해야 하는데 이미 내 시각중추에 저장된 정보는
내가 본 것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되뇌이고 있었다.
미쳐버릴 것 같았다. 정신을 차리고 싶었다.
나는 초소문을 박차고 나가 쏟아지는 장대비에 몸을 맡겼다.
뭐 이런 좆같은 부대가 다 있냐?
나는 호흡이 거칠어지고, 심장이 터질 듯 했다.
"이창훈... 너 왜 그래? 미쳤어 새꺄?"
나의 기이한 행동에 전상병이 열이 받았는지 내 등뒤에서 욕설을 내뱉았다.
그냥 나는 얼굴에 비를 맞으며 정신을 차리고 싶었다.
마음을 진정시킨 나는 천천히 뒤돌아 전상병이 서 있는 초소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공포에 질리다 못해 나는 분에 받친 눈물을 쏟아냈다.
초소안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는 전상병 옆에 또 한명의 누군가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반사적으로 총을 겨누었다.
그러나 정작 나의 조준에 놀란 것은 전상병이었다.
"야이 개,새끼야!! 너 지금 뭐하는거야!!"
나는 전상병의 외침을 무시한 채 멜빵에 매달린 손전등을 집어들고 초소안을 비췄다.
불빛과 동시에 그 형상이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나의 공포는 거기서 멈춘것이 아니었다.
전상병의 왼쪽 어깨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헛것을 보고 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는 나를 향해 계속 욕설을 퍼부었다.
"야 씨,발놈아 총 안 내려!!!"
"에이...씨,발 피...."
"뭐?"
나는 쏟아지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씨,발 왜 어깨에서 피를 흘리냐고!!"
"너...지..지금 뭐라 그랬어?"
나의 외침에 전상병은 미,친 듯이 양쪽 어깨를 쓸어내렸다. 나만큼이나 전상병도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는 듯 보였다.
그런데도 그는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듯 보였다. 그 와중에 내 눈에 또 다른 무언가가 들어왔다.
"김....선호...."
나의 세 음절에 전상병은 어깨를 쓸어내리던 행동을 갑자기 멈추었다.
그리고 서서히 고개를 들어 부릅 뜬 눈으로 나에게 물었다.
"너...이 개,새끼...지...지금 뭐라고 그런거야?"
"이...씨,발 니 명찰에 써 있잖아 씨,발!!!"
지금은 고참이고 뭐고 없었다.
둘 중에 하나는 지금 귀신들려 누구를 죽이던가 아니면 아랫턱에 총구를 대고 자살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나는 죽기가 싫었다.
전상병은 천천히 초소문을 열고 나와 빗속에 몸을 내밀었다.
그리고는 나에게 다가와 조용히 물었다.
"너...지금 했던 말 다시 해봐."
"...."
나의 대답이 없자, 갑자기 전투화 바닥이 내 복부를 향해 날아들었다.
내가 수미터를 나동그라지자 전상병은 번개처럼 달려와 내 멱살을 쥐고 다시 물었다.
"너 씨,발놈아!!! 방금 전에 무슨 이름 얘기 했잖아!!! 다시 말해봐!!!"
나는 코와 입속으로 쏟아지는 빗방울 때문에 대답은 커녕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그런데 지금 그의 가슴에 붙어있는 이름은 조금 전에 보았던 그 명찰 속의 그것이 아니었다.
전대웅....그의 명찰이었다.
그 귀신이 누구에게 붙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 순간 둘 중에 하나는 분명히 미,친게 틀림없었다.
"기....기억이 안납니다."
나는 이 무서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거짓말을 했지만, 전상병은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나의 대답과 함께 전상병은 내 멱살을 더 강하게 틀어쥐었다.
"콜록..콜록..."
"이 씨,발놈아. 거짓말 하지마. 너 아까 뭐라고 이름 불렀잖아."
"콜록...콜록..."
나는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아아아악!!! 씨,발 모른다고!!!!!!"
나는 비명 소리와 함께 멱살을 쥔 전상병의 손목을 틀어잡고 그를 향에 달려들었다.
장대비속에서 몇 초간 엎치락 뒤치락 거리고 있을 때 누군가의 외침소리가 들려왔다.
"너희들 거기서 뭐하는거야!!!"
순찰을 돌던 당직사관이었다.
근무를 마치고 행정실에서 머리를 박고 있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런 미,친 새끼들...근무자끼리 쌈질을 해?"
당직사관인 선임하사가 바닥에 머리를 박고 있는 전상병과 나를 향해 비아냥거리듯이 말을 뱉았다.
"야..이창훈."
"일병, 이창훈!!"
"너 미,친것 아니냐? 니 고참한테 어떻게 대들 생각을 하냐?
아무리 요즘 군대가 당나라 부대가 되었다고 해도 이건 아니잖아."
"시정하겠습니다."
"그리고 전대웅이 너는 고참이라는 새끼가 쫄따구하고 쌈질이나 하고 자빠졌냐? 응?
너희 두 놈 중대장이나 대대장 알면 최소 군기교육대야... 알아?"
"......."
그러나 이 순간 그 것보다 다른 걱정거리가 내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6: 비밀
묵언의 합의하에 전상병과 나는 몸싸움의 이유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다.
단지 몇 마디 나의 욕설로 인해 싸움이 일어났다는 전상병의 그럴싸한 시나리오로 마무리되었다.
한차례의 푸닥거리가 끝나고 나와 전상병은 내무반으로 들어섰다.
일병 찌끄레기가 상병 말호봉하고 몸싸움을 하다니.....
수 많은 고참들의 압박을 어떻게 견뎌야 할까?
새벽 두 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인데 고참 몇몇이 잠을 이루지 않고 침상에 걸터 앉아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미,친개 최병장이었다.
어둑어둑한 와중에서도 칼자국 같은 눈 밑의 흉터는 그가 나를 바라보는 또다른 시선으로 보였다.
내가 그의 앞을 지나가는 내내 최병장은 검게 그을린 얼굴속에 박힌 하얀 안구의 초점을 내게 계속 맞추었다.
그의 뒤를 이어 몇몇 고참들의 따가운 시선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밤을 무사히 넘길 수가 있을까?
날이 밝을 때까지 몇 번을 불러나갈까?
어떤 놈의 주먹이 제일 아플까?
여러가지 생각이 머리 속을 맴돌고 있을 쯤 최병장이 입을 열었다.
"내 밑으로 아무도 건들지 마."
순간 안도의 한 숨이 나도 모르게 내쉬어졌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최병장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침상에 앉아 머리를 감싸쥐고 있던 전상병을 이끌고 밖으로 향했다.
그 둘은 밖에서 조용히 뭔가 정보를 나누는 것처럼 보였지만 침상에 누워있는 동안 여러가지 소리들이 자그맣게 들려왔다.
최병장이 계속의 뭔가를 캐묻는 것 같았고, 전상병은 억울하다는 듯 하소연을 수차례 하는 듯 들렸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무슨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이 분명했다.
정말 내가... 전상병은 보지 못한 귀신을 본 걸까?
그 귀신이 죽었다는 정한수인가? 정한수는 정말 자살한 걸까?
그런데 김선호가 누굴까? 전상병의 명찰은 분명히 김선호였다. 처음 듣는 이름이다. 적어도 우리 부대에는 김선호가 없다.
왜 김선호라는 이름에 전상병이 미,친 사람처럼 내게 달려든 걸까?
"이창훈 너는 당분간 위병소 근무서라."
날이 밝자 당직사관인 선임하사가 명령을 내렸다.
"네. 알겠습니다."
"고참이 좀 괴롭혀도 참아야 되는게 군대생활이다. 니 고참들은 더한 고생 참아가며 작대기 하나씩 올린거다.
고참이 좀 못되게 굴었다고 몸싸움하면 대한민국에 남아날 군대 없다.
중대장이나 대대장한테는 보고하지 않을테니까 당분간 몸 조심해."
"네. 알겠습니다."
머릿속에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 선임하사가 이상한 말을 내뱉았다.
"그런데 전대웅이 공수부대 출신이라 힘이 장사였을텐데 너도 참 대단하다. 그 놈하고 몸싸움 할 생각을 했으니"
"!!!!!!!!!"
이게 무슨 말인가? 전대웅 상병이 공수부대 출신이라니.....
"특..특전사 말입니까?"
"그래 임마. 거기서 훈련하다가 다쳐서 왔다는데 사병 세 명을 한꺼번에 일반 부대로 오기는 아주 드문 일인데...."
"나머지 두 명이 누굽니까?"
"전대웅이하고, 김창식...그리고 최병희.... 벌써 생김새 보면 딱 티가 나지 않디?"
"모...모두 같은 부대에서 온 겁니까?"
"그래. 군대에서 아주 희귀한 일이지. 특히 전대웅은 사단장의 먼 친척뻘이랜다. 말썽일으키지 마라."
이럴 수가.... 전상병, 김병장, 미,친개 최병장이 모두 같은 부대에서 전입 온 병사라니...
전상병의 말이 어디까지 진실이고, 어디까지 거짓인 것일까?
낮 3시 근무였지만 간간히 하늘을 덮고 있는 구름으로 인해 뙤약볕은 피할 수가 있었다.
위병소 초소 밖에 나와서 근무를 서는 나와 달리 내 사수는 초소 안에서 뭔가를 열심히 탐독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여러가지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동안 4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수미터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음이 눈에 들어왔다.
연륜이 느껴지는 얼굴 생김새와는 달리 그녀의 피부는 생각보다 매끈하였고, 보통의 요즘 여자들과는 달린 쪽진 머리가
곱게 빗어 넘겨져 있었다.
심상치 않은 기운이 그녀에게서 느껴졌다.
그녀는 한참을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니 내게 천천히 다가와 내 앞에 멈춰섰다.
"누구 면회 오셨습니까?"
나의 물음에 갑자기 그녀의 양볼에 검은 색 마스카라줄기가 흘러내렸다.
두 줄기의 눈물이 뺨을 적시고 있음에도 그녀는 애써 울음을 참는 듯 보였다.
나는 뜬금없는 상황에 초소안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탐독하고 있는 사수를 부르려 하였다.
그러나 이내 나는 그 행동을 멈춰야만 했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내 아들을 찾아주시게"
"..예?"
"내 아들을 찾아주시게"
이해할 수 없는 묘한 기운이 주변을 감돌고 있었다.
나는 면회객 일지를 집어들고 그녀에게 물었다.
"아드님의 계급과 이름을 알려주십시오"
나는 관례상 그녀에게 묻고 있었지만 그녀는 일반적인 면회객 같아 보이지 않았다.
"......."
그녀는 입을 열지 않은 채 나를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아드님이 누군지 말씀하셔야 부대에 연락...."
"죽었다오"
"!!!"
이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하는걸까?
그녀는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말을 이었다.
"지금쯤 병장이 되었을 것이오"
면회객 일지에 쓸 내용이 없었지만, 오른손에 쥐어진 펜은 이미 나의 떨리는 손의 자취를 그리고 있었다.
"아드님...이름이....."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지만 설마하는 심정에 그녀에게 답을 확인하고 있었다.
"정한수라오."
나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졌다.
내가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 것을 알기나 하는지 그녀는 눈 한번 깜박이지도 않은 채 말을 이었다.
"그 아이가 원귀가 되어 이 곳을 떠돌고 있소. 찾아주시오."
도대체 이 순간 무슨 말을 해야 이런 오금저리는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아무 말 없이 한참 동안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은 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나는 긍정의 대답도 부정의 대답도 어떤 식으로 표현해야 하는지 몰랐다.
나는 시선을 내리고 천천히 등을 돌렸다.
더 이상 그녀의 입에서 다른 말이 나오지 않기를, 아니 그냥 떠나 주기를 바랬다.
그러나 내가 등을 돌려 발을 떼려는 순간, 그녀는 말 한마디로 내 발걸음을 붙잡고 말았다.
"그 아이를 찾지 못하면 부대원들이 죽어 나갈 것이네."
등골이 싸늘하다.
"그...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들이 죽은 뒤로 수없이 천도제를 지내게 해달라고 부대에 부탁했지만 결국 하지 못했다네.
아들이 원귀가 되어 이 부대를 떠돌고 있음에도 아무도 내 말을 믿어주지 않더이다."
"그런데 왜 우리 부대원들이 죽을거란 말입니까?"
나의 물음에 그 여자는 울먹이는 표정을 멈추고 갑자기 경직된 얼굴로 대답했다.
"서로 간의 처절한 살생이 일어날 수 있지. 자네도 어제 사람을 죽이려하지 않았는가?"
갑자기 심장이 터질 듯 요동치기 시작했다.
면회일지와 펜을 들고 있는 두 손이 동시에 떨리기 시작했다.
벌어진 입 속이 매말라가고 있음에도 한 모금의 침도 삼킬 수가 없었다.
하얀 피부에 검게 그어진 세로선이 그녀를 마치 저승사자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그..그런데 왜...왜 접니까? 왜 제가 아드님을 찾아야 합니까?"
그녀는 한 동안 입을 다문 채 계속해서 나의 눈치를 살폈다.
"사자(死者)의 기운이 느껴지는군."
"사..사자라니오?"
"죽은 자의 기운이 느껴져...."
"그....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기어들어가는 내 목소리와는 다르게 그녀는 위병소가 떠나가라 호통치듯 소리쳤다.
"곧 죽음에 직면할거라는 말일세!!!"
이런...씨,발..
내가 죽는다구? 정말 내가 죽는다구? 이 씨,발 미,친 여자가 무슨 말을 지껄이는거야?
이 기분 나쁜 여편네의 머리채를 부여잡고 힘껏 땅바닥에 내팽겨치기라도 해야 하나?
이 총의 개머리판으로 독사같은 그 주둥이를 뭉개버려야 하나?
삽탄된 총의 노리쇠를 당겼다가 놓기만하면 총알이 장전된다.
이 여자는 내가 격분하여 자신의 몸뚱아리에 총구멍을 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나 있는걸까?
그 여자의 저주같은 독설보다 더 사악한 방법의 폭력과 위협을 가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의 선택은 너무나도 초라하고 단순했다.
이미 나는 그녀의 범접할 수 없는 무서운 기운에 주눅들어 있었다.
"아..아들을 찾으려면.. 제가 그럼 뭘 해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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