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해체된 대우그룹에 98년에 입사했습니다. 대기업 연수 가신 분들은 그룹 연수 분위기 아실 겁니다. 각 그룹의 신입사원들이 모여서 4인 1실로 한 달 정도 연수받습니다. 조를 나누어 방을 배정하는데 여자는 몇 명 없으니 조에 상관없이 방을 별도로 배정받았습니다.
교육 후 조 활동 준비도 하고 저녁에는 모여서 술자리도 가지니 남자들이 여자방의 문을 두드리는 일이 많았어요. 98년이면 핸드폰이 그다지 일상화된 때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방문 노크하는 게 편하죠.
각각 다른 조의 4명의 여자가 한 방에 있으니 4개 조에서 여성 조원을 데려가려 방문을 두드립니다. (여자는 각 조로 분산배치하니 같은 조가 안 되는 거죠)
2층 침상이 두 개였고, 침상에서 제 자리가 문 근처 아래쪽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자연스럽게 노크 소리에 대답하고 문 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삼일에 한 번 정도 저녁에 노크 소리에 대답하고 방문을 열어보면 아무도 없었습니다. 크게 신경 쓰지 않았어요. 옆방에도 여자 방이 있어서 그 방문 두드리는 소리를 잘못 들었을 수도 있고 워낙 복도가 소란스럽고 이런 저런 소리가 방에서도 잘 들렸으니까요.
연수가 끝나는 날, 동기들 몇 명과 모여서 술을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죠.
그 때 남자 동기 한 명이 연수원 교관에게 들은 무서운 이야기를 해주겠다고 하더군요.
연수원에서 사람이 한 명 죽었는데 그 이후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는데 문을 열면 아무도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요.
저 속으로 웃으며 생각했습니다.
아, 이 사람이 여자들을 놀리려 한 달간 장난친 거구나.
제가 입사하기 전 해에 신입사원 연수에서 사람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먼저 입사한 학교 선배를 통해 이미 들었거든요. 연수원에 차를 갖고 왔는데 밤에 차 몰고 나갔다 사고로 죽어서 이후 연수원에 차를 갖고 들어가는 게 금지되었다는 이야기로 기억합니다. 그 선배가 입사할 때 일어난 일이라 했어요.
그래서 씩 웃으면서 말해줬죠.
"아, A씨가 장난한 거네. 어쩐지 계속 문 두드리는 소리 듣고 문을 열어도 아무도 없더라."
그런데 그 사람이 정색을 하더니 자기는 문 두드린 적 없다며, 되레 저에게 장난치지 말라는 겁니다.
저는 그 사람이 여자 방을 놀래려 한 짓이라 확신하고 있었고요.
"무슨 소리야. A씨 맞잖아. 우리를 놀래주려 일부러 그런 거잖아."
그리고 같은 방에 있는, 제 위의 침상을 쓴 여자동기에게 물었습니다.
"J씨도 어제 들었잖아. 어제 우리 둘이 침대에 있을 때 밖에서 노크 소리 난 거. 내가 노크소리 듣고 문 열었던 거 기억하지?"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여자 동기 표정이 뭔가 기묘했어요.
"나는 노크 소리 못 들었어. 그런데 갑자기 준희씨가 '누구세요?'하며 일어나서 방문을 열었다 닫던데."